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6-05-22   620

<경제프리즘> 삼성에버랜드에 대한 금감원의 복지부동

복지부동(伏地不動)이란 어떤 경우에 쓰는 말인가? 아는 건 없지만 ‘가만히 있으면 중간은 한다’는 신념 하에 시간을 죽이는 경우, 또는 뭔가 생각은 있는데 ‘이러다 다칠라’ 하는 두려움에 눈치 보는 경우가 있을 것이다. 전자는 무능력한 바보로 자기의 권한을 스스로 포기해야 할 것이고, 후자는 비겁한 기회주의자로 권한을 박탈당해야 할 것이다.

삼성에버랜드의 회계처리 문제(삼성생명 주식에 대한 원가법 적용의 적정성 여부)를 둘러싼 삼성그룹과 참여연대간의 논란에서 금감원(정확하게는 금감위, 증선위, 금감원을 모두 포괄하나, 여기서는 금감원으로 통칭한다)의 복지부동은 무능력한 바보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비겁한 기회주의자이기 때문일까?

금감원의 회계관련 기능은 크게 두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하나는 기업회계기준의 제정이고, 다른 하나는 재무제표의 감리이다. 현행 법령상 기업회계기준 제정 기능의 일부는 회계기준원(구 회계연구원)에 위탁되어 있으며, 감리 기능의 일부는 공인회계사회에 위탁되어 있다. 그러나 금감원은 위탁된 사무에 대한 수정권한과 감독권한을 갖고 있다. 따라서 금감원은 기업회계기준의 해석 및 회계감리에 관한 최종적인 의사결정권자이다. 이러한 권한을 가지고 있는 금감원이 유독 삼성에버랜드의 회계처리 문제(나아가 금융지주회사 문제)에 대해 그동안 얼마나 우유부단한 행태를 보였는지 살펴보자.

삼성에버랜드 관련 논란은 2004년 4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참여연대는 2003년말 사업보고서 기준으로 삼성에버랜드가 인가받지 않은, 즉 위법상태의 금융지주회사가 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당시 삼성에버랜드는 명백히 금융지주회사법 제3조를 위반하였고, 따라서 법 제70조에 따라 처벌(5년 이하 징역 또는 2억원 이하 벌금)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무슨 이유에선지 금감원은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다음으로, 삼성에버랜드는 2005.3월 기준의 분기보고서에서 삼성생명 주식에 대한 평가방법을 지분법에서 원가법으로 바꾸었다. 참여연대는 이러한 회계처리 변경이 적절했는지에 대해 질의하였으나, 감독원은 질의서를 회계기준원에 이첩하였다.

또한, 삼성에버랜드는 올 4월에 제출한 2005년말 사업보고서에서도 삼성생명 주식을 원가법으로 평가하였다. 이에 참여연대는 지분법 적용의 적정성 여부에 대해 금감원에 특별감리를 요청하였다. 이 때 다시 한번 금감원은 비겁함을 보여준다, 감리요청서를 공인회계사회에 이첩한 것이다. 언론에 따르면, 공인회계사회는 지분법 문제에 대해 또다시 회계기준원에 질의서를 보냈다고 한다. 뻔한 결론이 예상됨에도 그렇게 됐고, 그래서 계속 시간은 흘러가고 있다.

결국 이러한 금감원의 의사결정 기피로 인하여 2004년에 시작된 삼성에버랜드의 금융지주회사 문제 또는 지분법 문제는 2년이 지난 지금도 해결될 기미를 보이지 않고 허공을 헤매고 있다.

참여연대가 삼성에버랜드의 법위반 사실을 알려주었음에도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것 그리고 질의서 및 감리요청서를 회계기준원과 공인회계사회로 이첩한 것은, 금감원이 이 사안의 의미 또는 중요성을 전혀 알지 못하는 무능력한 바보이거나, 아니면 그 어딘가로부터 전해오는 유무형의 압력에 얼어버린 비겁한 기회주의자이기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이미 지적한 바와 같이, 회계기준원과 공인회계사회에 위탁한 업무에 대한 최종적 의사결정과 책임은 온전히 금감원의 것이다. 이첩했다고 해서, 의사결정의 의무와 그로 인한 책임을 면할 길이 없다. 결론은? 금감원은 ‘비겁한 바보’다. 만약 필자의 이런 추론이 옳다면, 금감원은 금융감독권을 스스로 포기하거나 또는 박탈당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필자는 금감원이 비겁한 바보가 아니라고 믿고 싶다. 필자와 같은 범부는 쉽게 이해할 수 없는 그 어떤 합리적인 이유가 있어 어쩔 수 없이 비겁한 바보 흉내를 내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렇지 않다면, 이런 금감원에게 내 소중한 재산을 보호하는 금융감독권을 맡기고 있는 우리의 처지가 너무 서글프지 않은가. 그렇지 않다면, 이런 금감원을 두고 한미 FTA 금융서비스 협상을 해야 하는 우리의 미래가 너무 위태롭지 않은가.

김상조(한성대 교수,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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