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6-07-14   1659

<안국동窓> 무책임 시장국가, 개방 실패 그리고 나라 죽이기

한미 FTA로 가는 대한민국호의 돌진적인 위험한 항해가 계속되고 있다. 워싱턴의 제1차 본 협상에 이어 진행지고 있는 제2차 서울 협상을 둘러 싸고 정부의 졸속적인 강행 추진과 시민사회 운동의 저지 투쟁이 대치하고 있다. 정부는 합법적인 기자회견도, 1인 시위도 봉쇄하는 불법·폭력 행위를 서슴치 않고 있다. 제1차 워싱턴 협상 때 한미 FTA에 항의하는 우리나라 원정단이 미국 백악관 앞 거리를 활보하면서, 평화롭게 꽹과리도 치면서 자유롭게 시위하던 모습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민주화 시대에 들어 온지 20년이 된 지금도 우리 대한민국은 이런 정도 밖에 되지 않는가. 서글픈 일이다. 그렇지만 달리 보면 현정부의 행태가 그만큼 정당성과 설득력이 결여되어 있고 방어적이고 수세적임을 반증하는 것이 아닐까.

여러 곳에 구멍이 나 물이 줄줄 새고 있고, 제 정신은 어디 두고 남의 장단에 맞추느라 엔진 과열까지 겹쳐 있다. 허둥대는 참여정부의 한미 FTA 호 앞에는 어떤 타이타닉 빙산이 기다리고 있을까. 정부의 독단적인 한미 FTA 협상 강행에 대해, 국회를 포함하여 제도 정치권의 내부 견제·균형력은 거의 마비되어 있는 상태다. 유감스럽고, 불행한 일이다. 오직 시민사회운동만이 새고 있는 대한민국호의 물구멍을 틀어 막고 위험한 항로를 바로 틀기 위해 힘차고 억센 활력, 분투력과 광범한 연대력을 발휘하고 있는 중이다.

어쩌다가 우리가 이렇게 길을 잃고 나라의 운명을 건, 위험천만한 도박을 벌리게 되었는가. 이 정부는 어찌 이토록 독선적이고, 오만하고, 무책임한가. 이제는 기억도 희미해진 옛 이야기 같지만, 그 이전 “국민의 정부”보다 대한민국을 한 단계 더 업그레이드 해보겠다고 해서 ‘참여정부’라는 문패를 달고 시작한 이 정부가 아니던가. 국민 다수가 이 정권이 집권할 수 있도록 지지했고, 또 그것도 모자라 탄핵 때 다시 힘내라고 밀어준 것도 그 말을 믿었기 때문이 아니던가. 참여정부는 국민의 그런 높은 지지와 기대를 국민에 대한 기만과 배신, 국민에 대한 군림, 그리고 국민 버리기로 ”보답“하고 있다. 이 정권의 이런 행태 때문에 ”참여”라는 그 좋은 말조차 걸레같이 더러워졌다. 이미 5.31 지방 선거가 보여 준 대로지만, 땅에 굴러 떨어진 이 정부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거의 돌이킬 수 없는 상태로 보인다.

한미 FTA를 누가 왜 반대하고 있는지, 그리고 누가 왜 찬성하고 있는지 조금만 제 정신을 차리고 그 면면을 잘 보고 그 소리를 잘 들어 보면 알 만 하지 않을까. 그렇지만 정부는 우이독경(牛耳讀經)이다. 한미 FTA에 반대하는 단체들, 사람들은 모두 단견에 사로 잡혀 있고, 집단 이기주의에 사로 잡혀 그런다는 걸까. 오직 정부만이 나라를 살리는 길을 알고 있다고 생각하는 걸까. 그렇다면 큰 착각이다. 충분히 준비했다고 강변하면서 내놓는, 급조된 자료들을 보노라면, 대부분 추상적이고 막연한 이야기이거나, 허구적인 “영웅적” 가정들을 깔고 있는 단순 수량 모델이거나, 아니면 엉뚱하게 한미 FTA와 한미 동맹을 혼동하고 있는 이야기 들이다. 왜 이 정부가 이렇게 자기 반성력을 잃고 맹목이 되어 버렸나 싶다. 지금 국민들은 이 정부가 정말 누구를 위한 정부인지, 왜 이렇게 무책임한 정부가 되었는지 묻고, 또 항의하고 있는 것이다.

생각해 보아야 할 것은 만약에 지금 야당 처지에 있는 한나라당이 한미 FTA를 추진했더라면 지금과는 비교하기 어려울 정도로 광범한 국민적 저항에 부딛혔을 것이라는 점이다. 나는 바로 이 지점 때문에 현정부의 무책임성과 역사적 과오가 더욱 규탄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국민을 헷갈리게 만든 죄가 크다는 말이다. 이와 관련하여 현 정부 지지자들도 다시 각별한 분별력을 가져야 할 것으로 본다. 흔히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자유화를 병렬적, 나열적으로 이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현실에서 우리가 보는 것은 정치적 민주화를 추진하는 정부가 그 정치적 정당성에 기대어 경제적 자유화를 밀고 가는 것이다. 이 때문에 정치적 민주화의 개혁성을 지지하는 사람들은 그기에 눈이 팔려 경제적 자유화의 위험성을 간과하고 둔감하게 된다. 이것이 큰 문제다. 그렇지만 우리는 세계적으로 북측과 달리, 남측과 중진국에서 시장자유주의시대는 민주화 이행과 더불어 나타났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그리고 또 이 틈을 비집고 미국의 패권적 신자유주의가 파고 들어왔다는 사실을 같이 알아야 한다.

우리는 탈권위주의 민주 정부가 정치적 민주화와 동시에 경제적 자유화- 시장화 -개방- 두 국민 분열을 밀고 가는 모순적인, 두개의 얼굴을 하고 있다는 사실을 똑똑히 꿰뚫어 보아야 할 것이다. 따라서 참여정부에 의한 한미 FTA의 추진의 심각한 문제성은 이 정부 특유의 국정 운영 기조와 방식에도 물론 기인하고 있지만, 그것에만 그치지 않고 87년이래 약 20년간 진행된 정치적 민주화와 경제적 자유화의 모순적, 분열적 양면성이 정점에서 폭발한 사태라 보아도 좋을지 모른다.

미국이 한미 FTA를 추진하는 이유는 너무나 분명하고 확실하다. 미국은 바보가 아니다. 어제 오전 신라 호텔 앞에서 비를 맞고 홍세화 선생과 같이 동반 1인 시위를 하면서 이야기를 나눈 것이지만, 미국은 크게 웃으며 “호박이 넝쿨 채 굴러 들어 왔다”고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제 발로 굴러 들어온 이 호박을 결코 놓으려 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도대체 우리에게 돌아 오는 것은 뭘까.

개방만이 살길이다? 글쎄, 개방 대 쇄국이 아니라, 주권을 무력화하고 두 국민 분열을 조장할 맹목적 개방이냐, 경제주권 및 사회통합을 동반하는 관리된 개방이냐 하는 것이 문제다. 21세기 선진화 전략이다? 글쎄, 선진화의 실체가 문제다. 주권의 칼자루를 미국과 국제 자본에 넘겨 주고 내외 자본의 요구가 통제불가능한 수준으로 관철되는 두 국민 분열의 외형 성장이냐, 나라 경제 운영의 칼자루를 우리가 쥐면서 국민 대중의 삶의 질을 증진시키는 사회 통합적 질적 성장이냐가 문제다. 나는 한미 FTA, 맹목적인 전면 개방과 한미간 경제 통합이 한국 사회에 대재앙을 안겨 주는, 희대의 “개방 실패” 사건으로, 참여정부의 최대의 국정 실패 사건으로 기록될까 두렵다, 더 나아가 그간 민주화 20년을 이끌어 온 한국의 자유주의 정부가 마침내 자기 발등을 찍으면서 퇴장하는 비극적 사건으로 기록될까 두렵다.

한미 FTA는 어떤 사회경제적 결과를 가져 올 것인가. 그 효과는 서서히 나타날 것이지만 지배적 경향만큼은 분명하다. 이미 심각한 수위에 도달한 양극화, 즉 국민 경제의 파편적 분열증과 사회경제적 양극화 분열 증세가 엄청나게 심화될 것이다. 숫자 조작으로 비판받기도 한 정부의 CGE(Computable General Equilibrium, 연산일반균형모형) 모델이 그리고 있는 성장과 고용의 확대 균형 시나리오의 허상과는 반대로, 미국이 끌어 당기는 강력한 원심력이 작용하면서 국가 주권이 무력화되는 것이 정확한 실상일 것이다. 국민 경제의 분업 연관과 소득 순환, 나아가 사회 구성 전반의 자기 구심력과 제어력이 현저히 약화되고 탈민족화와 해체적 분열 경향, 대미 동조화와 시스템 리스크가 크게 심화될 것이다. 우리 사회의 민주적 자기 통치권이 심대한 타격을 입을 것이다. 보편적 시민권으로서 공공 서비스는 선진화는 커녕 현재의 낙후된 상태마져 손상을 입고 시장화의 길로 질주할 것이다. 서비스 산업의 경쟁력 제고? 글쎄 론스타 같은 투기 자본의 놀이터가 되지 않으면 다행한 일이 될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한미 FTA가 서비스업의 성장 동력화는 고사하고, 제조업의 경쟁력 제고와 균형 성장의 과제 마져 무산될 위험을 안고 있다는 것이다. 삼성 경제연구소를 비롯하여 재벌 산하 연구소들조차 제조업 분야에서 한미 FTA 효과가 우리 측에 불리할 수도 있다는 분석을 내놓고 있다. 자동차가 대표적인 분야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한국 산업과 경제의 선진화에서 제조업의 중요성과 중심성을 새삼스럽게 다시 강조하고 있다. 이는 현 정부가 한미 FTA 추진에서 다른 이해당사자들과는 말할 것도 없지만, 심지어 재벌과도 제대로 손발을 맞추지 않았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는 참 놀라운 이야기가 아닐 수 없다. 물론 한국의 재벌과 그 연구소는 의료 분야를 비롯하여 공공 서비스의 산업화와 노동 유연화를 몰고 오는 외부 “충격 효과“를 노리고 있고, 바로 그 점에서 한미 FTA를 적극적으로 옹호하고 있지만 말이다.

정부가 한미 FTA를 돌진적으로 추진하는 과정에서 앞으로 많은 충돌과 사회적 갈등이 예상된다. 우리는 그 고통과 낭비를 왜 무엇때문에 치뤄야 하는 걸까. 걱정되는 것은 단지 참여 정부의 운명만은 아니다. 우리들이 오래 더불어 살아가야 할 민주공화국, 대한민국의 미래가 걸려 있다. 한번 생각해 보자. 만약에 참여 정부가 국민적 저항에도 불구하고 한미 FTA를 결국 강행하고, 한나라당이 그 바톤을 이어 받아 한국사회의 보수화 새 판짜기를 밀어 부친다면 대한민국은 어떻게 돌아가게 될까. 그런데 나는 한미 FTA가 이대로 강행되면 한나라당 조차도 그 위험, 저항, 갈등, 불안정을 관리하기가 쉽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무분별하게 전면개방을 하고 제발로 주권을 무력화시키고, 공공 서비스의 시장화 길을 밀어 부치면 엄청난 혼란과 갈등이 초래될 것임이 틀림 없다. 사회 갈등과 불안정이 심화되는 것은 외국 자본도 매우 싫어 한다. 내가 보기에, 바로 이 때문에 한국에 외국 자본이 대거 유입될 것이라는 전망은 큰 오판이다. 그렇다면 한나라당도 참여정부가 망가지는 것을 즐기기만 할 것이 아니라, 좀 정신을 차려야 하지 할 것으로 본다.

정부와 시민 사회운동 간에 때 아닌 멕시코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도식적으로 말하면 정부는 나프타의 멕시코를 성공 사례로 보고 있고 따라서 한미 FTA를 통한 한국의 멕시코화를 선진화라고 주장할 판이다. 반대로 시민 사회운동은 “우리는 또 다른 나프타를 원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문화적 다양성을 원한다. 우리는 식품 안전 및 건강할 권리를 원한다. 우리는 보건 의료, 교육, 공공서비스에 대한 민중의 권리를 원한다. 우리는 식량, 환경 및 천연 자원에 대한 통제를 원한다. 우리는 불안정한 비정규직 파터 타임 일자리가 아닌 양질의 일자리를 원한다”고 외친다. 이것이 우리들이 원하는 것이다. 그러나 한미 FTA는 이 원망( 願望)과 대척점에 있고 이를 잠재우게 될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한미 FTA가 단지 나라 대 나라의 협상만이 아니라, 동시에 내외 자본의 요구 대 국민 대중의 삶의 요구가 격렬히 충돌하고 있는 사건임을 알게 된다. 그리고 한미 FTA의 파괴적 결과는 우리의 경제, 사회, 문화적 삶의 고통을 넘어 나라의 정치, 외교적 주권력에도 족쇄를 씌우게 될 것이다. 적어도 한미 FTA의 경우에는 “토대가 상부구조를 규정한다”는 명제가 들어 맞는다.

한미 FTA는 나라를 살리는 길이다? 글쎄, 나는 그 반대로 한미 FTA가 우리나라를 영영 미국을 위한 나라, 내외 자본과 권력 엘리트, 소수 기득권층을 위해 봉사하는 나라, “당신들의 나라”로 타락시키고, 우리 국민 다수가 민주와 공공을 키우고 생태와 평화를 가꾸며 더불어 살아가야 할 명실 상부한 민주공화국으로서 “모두를 위한 나라”를 죽이는 길이 될 것 같아 두렵다.

이병천 (참여사회연구소 소장, 강원대 경제무역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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