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6-07-14   909

<안국동窓> 정보공개도 동의도 없는 협상, 이건 위헌이다

상대국은 협상내용 공개하는데, 우리만 비공개

“우리 정부는 의회와 90일간의 협의기간을 갖는다. 이 기간 동안은 상대국과 협상을 벌일 수 없다. 우리는 모든 사안에 대해 사업가·노동자·NGO·의회를 포함한 이해당사자들의 의견을 구하고 협의할 것이다.”

만약 우리 정부가 이렇게 태도를 밝힌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이 발언은 지난 3월 미국측 협상대표인 커틀러의 것이다.

미국 행정부는 무역촉진법(Trade Promotion Act)에 따라 상대국과 무역협상을 시작하기 90일 전에 의회에 ‘협상의향서’를 제출하고 내용에 대해 협의한다. 또한 120일 동안 ‘의회감독그룹(의회의 협상관련 위원장·야당 대표·3인 위원으로 구성)’과 상원 재무위원회, 하원 세출위원회 등이 정부의 협상 내용에 대해 협의를 거치게 되어있다.

이 때 협의는 ▲협정의 성격 ▲협정이 미국 통상법의 목적 실현에 적절한지 여부 ▲실현방식 ▲다른 법률에 미칠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하는 것이다.

미국 의회는 정부보고서에 기초해 상·하원 관련 위원회 주체로 각종 청문회 등을 열어 여론 및 이해관계자의 의견을 수렴한다. 또 공식 협상개시 후 90일 내 정부는 의회에 ‘협정체결로 인한 국내산업의 피해 여부’ 등을 담은 보고서를 제출해야 한다.

상대국은 협상내용 공개하는데, 우리만 비공개

이처럼 미국은 국가간 무역협정을 체결할 때 의회가 협상 개시 여부부터 전체 과정, 체결까지를 통제하고 있다.

나아가 미국 정부는 의회에 보낸 각종 보고서 전문을 무역대표부 인터넷 사이트에 공개함으로써 누구든지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이는 한국 정부가 각계의 요구에도 불구하고 단호하게 협상 내용 공개를 거부하는 것과 대조된다.

납득할 수 없는 것은 한국 정부의 비공개 이유이다. 미국과의 비공개 협약을 했기 때문이라는데 협상 상대국인 미국이 내용을 공개하는 사정을 보면 도무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지난 3월 시민사회단체들이 정부태도를 비판하며 협상내용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하자 그제서야 정부는 마지못해 대국민 보고를 했다. 하지만 공개된 내용은 150쪽 분량의 협정문 초안을 4쪽으로 요약한 것에 불과하고, 그 내용도 미국 정부가 인터넷에 공개한 것에 비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부실하다.

문제는 정부가 이 협정의 내용을 국회에도 충분히 공개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일부 국회의원의 강한 항의로 5월 중순이 되어서야 협정문 초안을 요약한 보고를 하긴 했지만 이 역시 별로 구체적이지 않았다. 국회가 충분히 내용을 파악하고 점검하기에는 미흡한 것이었다.

정부는 2차 협상에 임박해서 협정문 초안과 관련자료를 추가로 공개했지만 1천쪽이 넘는 분량을 한글본도 없이 눈으로 확인하도록 했을 뿐 일체 복사나 메모도 금지했다.

정보공개도 동의도 없는 협상, 이건 위헌이다

한국 정부의 이러한 협상체결과정은 우리 헌법상 규정된 국회의 권한을 침해하는 것으로서 명백히 위헌이다.

한미FTA라고 하는 국가간 조약은 일종의 입법행위이다. 게다가 우리 헌법상 조약은 국내 법률과 동일한 효력을 갖고 있다. 결국 국내법과 동일한 조약은 원칙적으로 입법기관인 의회의 고유권한이다.

다만 의회가 상대국과 직접 협상과 체결을 할 수 없으므로 그 권한을 대통령에게 위임하고, 대신 대통령의 독단적인 협상과 조약체결을 막기 위해 통제권을 행사하는 구조로 되어있다. 헌법 제60조에 규정된 국회의 권한인 ‘조약의 체결·비준에 대한 동의권’이 바로 그것이다.

국회가 ‘조약의 체결 및 비준에 대한 동의권’을 행사하기 위해서는 우선 정부가 협상의 목표와 내용을 충분히 공개해야 한다. 이같은 정보공개가 협상 이전에 이뤄져야 한다. 또한 국회가 충분히 검토하고 여론을 수렴한 뒤 이를 ‘동의’했을 때만 정부는 구체적인 협상을 할 수 있다.

정부가 이러한 대국회 정보공개와 동의절차를 밟지 않았다면, 그렇게 절차상 하자가 있는 협상은 우리 헌법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다.

국회가 잘 검토할지는 모르지만, 이건 아니다

지난 사학법 개정을 둘러싸고 국회는 조문에 ’00 등’이란 단어 한 자를 넣느냐 빼느냐를 가지고 그렇게 심각한 논쟁을 벌였다. 법령에 ‘등’이란 단어 한 자는 적법과 불법의 한계는 넘나들 수 있을 정도로 중요하다.

한미FTA협상 과정에서 양국 협상단이 치열하게 공방을 벌이는 것도 규정과 단어 하나 하나의 의미가 중요하고, 정밀한 검토없이 덜컥 사인했다가 낭패를 보는 사례가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복사나 메모도 금지하면서 이미 1차 협상도 끝나고 2차 협상이 진행 중인 상황에서 수천쪽 분량의 영문 자료를 국회의원들에게 ‘보고 싶은 사람은 와서 보라’는 식으로 던져주는 것은 무책임한 정도를 넘어 위헌적인 태도인 것이다.

물론 지난 3월 미국의회가 한미FTA의 협상개시 여부부터 내용 하나 하나를 검토하고 준비하는 동안, 우리 국회는 이명박 서울시장의 부인이 관용차를 전용한 문제로 아웅 다웅하고 있었다.

솔직히 국회에 모든 정보를 제공한다고 해서 제대로 검토하고 의견을 수렴할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자신있게 말할 수 없다. 하지만 그렇다고 정부의 독단적이고 위헌적인 협상강행이 정당화될 수는 없다.

우리 헌법과 법률은 국회의 ‘동의권’을 침해하는 정부 조치에 대해 헌법재판소의 권한쟁의심판을 통해 위헌 여부를 판단하고, 그 효력을 무효화할 수 있는 제도를 두고 있다. 한미FTA협상에 관한 정부의 독단적인 질주는 역사의 심판대에 오를 뿐만 아니라 헌법재판이라는 현실 법정에도 서게 될 것이다.

* 이 칼럼은 <오마이뉴스>에도 실렸습니다.

송호창 (변호사, 경제개혁센터 실행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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