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6-07-26   1530

<안국동窓> 놀랍고도 한심한 ‘다섯줄’ 짜리 국회 한미FTA특위 결의안

국회 특위에 던지는 6가지 질문

팔목시계의 태엽은 모두 한쪽 방향으로 돌렸을 때만 감기고 반대 방향으로 돌릴 때는 감기지 않고 태엽꼭지가 공전하도록 되어 있다. 이를 래칫 휠(ratchet wheel)이라고 한다. 이렇듯 래칫이란 단어는 일반적으로 ‘역진불가능’을 의미하는 표현이다.

한미FTA의 합의방식은 래칫 방식이다.한번 체결하면 양측이 합의한 개방수준에서 더 낮은 수준이거나 후퇴하는 개정을 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같은 방식은 사전준비가 부족한 한국 측에는 매우 불리한 방식이다.

그러나 불리한 것만 문제가 아니다.

정작 심각한 문제는 1·2차 본협상을 이미 마친 상태에서 한미간에 어떤 ‘합의’가 이미 이루어졌는지 국민도 국회도 모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지난 2차 협상 이후 언론은 우리 정부의 약가 정책에 대한 미국의 문제제기로 협상이 난항을 겪은 사실을 집중보도했으나 투자조항, 금융서비스조항, 상품 등에서의 합의에는 주목하지 않았다.

되돌릴 수 없는 합의, 내용도 알 수 없는 합의

합의의 내용이 무엇인지 세세히 확인하고 분석해도 너무 늦은 것이건만, 정부도 국회도 언론도 이를 국민에게 알리기 위한 노력을 하지 않고 있다.

투자·서비스 분야는 한미FTA의 핵심 중의 핵심이고, 국민경제에 광범위하고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분야로 알려져 있다.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국민 입장에서는 개탄하고 분노하고 저항할 만한 일이다.

이제 눈을 국회로 돌려보자.

내 생각에는 2004년 나라 전체를 들끓게 했던 ‘탄핵’보다 더 심각한 위헌적 사태가 지금 한미협상 판에서 이루어지고 있건만 우리 국회는 자신의 헌법적 의무를 사실상 포기하고 있다.

국회는 한미FTA 협상개시 선언이 있기까지 이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고 있었다. 헌법 60조 1항에는 국회가 ‘조약(협정)의 체결ㆍ비준에 대한 동의권한’을 갖는다고 명시하고 있다.

따라서 정부가 협상개시를 선언한 것은 그 자체로 위헌의 소지가 있었다. 설사 위헌이 아니더라도 국민의 대표인 국회에 사전설명조차 없었던 데 대해 국회가 침묵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놀랍게도 국회는 정부가 취한 위헌적 행위에 대해 따져묻거나 검증하려 하지 않았다. 그들은 5월 31일의 지방선거판에 빠져들어 있었고, 지방선거 이후에도 국회는 1차 본협상은 말할 것도 없고 2차 본협상에 이르기까지 한미FTA에 대해 거의 아무런 일도 하지 않았다.

눈감고 귀막은 국회, 특위구성안은 딱 다섯줄

‘거의’라고 표현한 것은 국회가 그나마 여론을 질타를 받은 끝에 2차 본협상을 코앞에 둔 지난 6월 30일, 임시국회 본회의에서 ‘한ㆍ미자유무역협정(FTA) 체결 대책 특별위원회 구성결의안(이하 한미FTA특위 구성결의안 혹은 결의안)’을 가결했기 때문이다.

사실, 한미간 2차 본 협상과 정부 대표 간에 구체적인 양허안과 유보안을 주고받는 단계에 이르러서야 국회가 특위 구성 결의안을 가결한 것은 늦어도 이만저만 늦은 것이 아니다. 게다가 통과된 것은 결의안일 뿐 아직 국회는 특위를 구성하지 않았다. 여전히 국회는 한미 FTA문제를 본격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국회 특위의 목적과 내용을 살펴보면 이 특위가 아예 만들어지지 않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 특위가 가진 문제점은 한미FTA 협상만큼이나 심각하기 때문이다.

특위구성안의 문제점이 뭐냐고? 누구든 특위 구성결의안 전문을 읽어보면 그 문제점을 알 수 있다.

놀랍게도 이 결의안은 단 5줄이다. 실제 내용은 다음의 단 두 줄로 이루어져 있다. “▲위원 수는 20인으로 한다 ▲활동기한은 2007년 6월 30일까지로 한다”가 그것이다.

이 두 문장의 앞에는 목적과 설치 근거를 설명한 3줄짜리 한 문장이 더 있다. 이를 요약하면 특위의 설치 목적은 ▲국민의 알권리 보장 ▲동 협정 체결과 관련한 각 분야별 보완 또는 지원방안 논의에 있고, 설치근거는 국회법 제44조 규정에 의한다는 것이다.

자, 이제 이 놀랍고도 한심하도록 단순한 문장들을 따져 보자.

[질문 ①] 도대체 20명으로 뭘 하겠다는 걸까

한미FTA는 17개 분과별로 협상이 이루어지고 있다. 각 주제의 협상 과정과 대책을 일일이 검토해야 할 특위 위원을 20명으로 제한하면, 위원장과 교섭단체 간사를 제외하고는 각 분과당 1명씩이라는 얘기다. 분과당 1명씩이나 금배지를 배치한 국회에 감사해야 할까?

적어도 한 분과별 협상결과를 3인 이상의 의원이 교차분석 평가할수 있도록 국회운영위원회 수준의 60명 규모로 재조정되지 않으면 이 특위는 정부의 보고를 청취하기도 바쁜 거수기 특위가 되고 말 것이다.

[질문 ②] 왜 2007년 6월 30일까지인가

결의안이 특위 활동기한을 2007년 6월 30일까지로 한정한 것은, 미국 의회가 행정부에 보다 많은 협상의 재량을 부여한 TPA(Trade Promotion Authority, 무역촉진권한법) 기한에 맞추기 위한 것으로 보인다.

왜 우리가 미국 측 일정을 준거로 삼아야 하나? 특위는 국회의 체결 비준 여부에 대한 판단을 돕는 것 외에도, 만약 협상결과에 대한 국회 비준동의가 이루어질 경우 이에 따르는 국회의 후속대책도 마련해야 한다.

따라서 적어도 국회 특위의 1차 활동기한은 17대 국회의 종료시점인 2008년 3월 31일까지로 재조정되어야 마땅하다.

[질문 ③] 각계의견은 어떻게 수렴하나

결의안은 ▲특위의 운영방안 ▲산하 자문기구 및 전문위원 구성 ▲예산추계 등에 대한 구체적 규정 없이 이를 위원장과 국회 교섭단체 간사들의 재량으로 위임하도록 하고 있다.

반면, 미국 의회는 TPA 적용 기한 중 행정부의 협상재량을 존중하면서도 각계각층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할 각계각층 자문위원회를 두도록 법에 명시하고 있다. 이 자문위원회와 의회의 관련 위원회에 협상 중의 모든 정보가 공개됨은 물론이다.

따라서 한국의 특위도 관련 업계와 이해당사자, 노동자, 농민, 시민사회단체의 대표와 이들 각계각층을 대변하는 전문가가 협상안 검토에 참여할 수 있도록 자문위원회와 전문위원회의 설치를 각각 명시하여야 할 것이다.

이같은 구체적인 조항이 결의안에 명시되지 않으면 특위가 밝힌 국민의 알권리 실현은 공염불이 되고, 국회는 정부에 대한 검증 능력을 잃은 채 정부협상에 대한 박수부대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질문 ④] ‘조약체결·비준권’ 헌법 조항은 왜 근거가 안 됐나

결의안은 국회법 44조만을 근거법령으로 소개하고 있고 국회의 조약 체결·비준 권한을 명시한 헌법 60조 1항을 근거법령으로 소개하지 않고 있다. 이는 마땅히 수정되어야 한다.

그러나 더 심각한 문제는 헌법 60조 1항을 구체화할 목적으로 지난해 국회에 제출된 통상절차법(통상협정의체결정차에관한법률안, 권영길 대표발의)가 국회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잠자고 있다는 점이다. 외교통상부도 통상절차법에 대한 반대 의견을 분명히 하고 있다.

한미FTA같이 국민 생활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대외적인 조약 및 협정의 체결 매 단계별로 국회의 점검과 평가를 받도록 한 이 법안은 한미FTA같은 벼락치기를 막고, 그 결과로 주어질 심각한 사회갈등의 핵폭풍을 예방할 최소한의 민주적 견제장치라는 점에서 하루빨리 제정되어야 한다. 그리고 이 법이 특위의 근거법령으로 명시되어야 한다.

[질문 ⑤] 왜 한미FTA ‘체결 대책’ 특위인가

결의안은 특위 명칭을 ‘체결대책’ 특위라고 하고 있다. 목적도 ‘동 협정 체결과 관련한 각 분야별 보완 또는 지원방안 논의’로 규정하고 있다. 조약에 대한 체결·비준 동의권을 갖는 국회가 왜 ‘체결대책’ 특위를 꾸리는가? 마땅히 ‘협상대책’ 특위라고 바꿔불러야 마땅하지 않나?

명칭은 그렇다 치자. 목적에서 ‘▲분야별 협상안 점검과 결과 검증 ▲협정 체결에 따른 사회적 국가적 영향 평가 및 이를 위한 각계로부터의 민주적 의견 수렴’ 등이 전혀 적시되지 않고 있는 것은 큰 문제이다.

특위의 명칭과 목적의 부실함은 위에서 제기한 근거법령의 문제점이 단지 우연한 것이 아닌 의도된 부실함이라는 의혹을 낳기에 충분한 것이다.

[질문 ⑥] ‘한미FTA연구모임’ 소속 여당 의원은 왜 빠졌나

여당이 발표한 여당 측 특위의원 10명 중에는 한미FTA의 졸속 추진에 비판적인 의원들로서 그 동안 자체 연구모임과 문제제기를 지속해온 약 30명 안팎의 한미FTA 연구모임 소속 의원은 단 한 명도 포함되지 않았다.

그나마 한미FTA에 대해 가장 많은 연구를 해왔던 이들이 제외된 것은 무슨 의미인가?

방패막이 들러리 특위는 사기극이다

현 상태 그대로 국회 특위 구성안이 유지된다면, 이 특위는 사실상 국민 알 권리를 봉쇄하고 국회에서의 논의 수준을 스스로 제한하는 사실상의 방패막이로 구실할 가능성이 더 높다. 한 마디로 국회 검토라는 명분만 취하는 요식절차가 될 것이 자명하다.

게다가 적어도 지금까지 확인된 바로는 정부와 집권여당은 특위를 제대로 구성하여 진지하게 이 문제에 매달릴 의지가 전혀 없다. 난감하고 개탄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야가 국민에 대한 의무의 최소한이라도 이행하고자 한다면 즉시 임시국회를 소집하여 ‘한미FTA특위 결의안’을 전면적으로 수정하여야 한다. 각계가 참여하는 자문위원회를 공식화하고 현 협상 내용과 그 의미를 상세히 국민에게 공개해야 한다.

더불어 국회는 한미FTA에 대한 민주적 통제가 실질적으로 가능하도록 국회에 계류된 통상절차법을 조속히 처리하고 이에 기초하여 특위를 재구성해야 한다.

특위구성 결의안의 개정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이에 못지않게 올바른 운영도 중요하다. 여야는 특위는 반대 혹은 비판적 의견을 가진 의원들이 각 분야별로 국민여론분포에 걸맞은 발언권을 갖도록 구성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특위는 하나의 ‘사기극’으로 전락하고 말 것이다

이 글은 오마이뉴스(http://www.ohmynews.com/) 에도 게재되었습니다.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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