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6-08-02   511

<경제프리즘> 김근태 의장의 ‘자충수’

지난 일요일 김근태 열린우리당 의장이 이른바 뉴딜(New Deal)제안을 내놓았다. 재계가 투자와 일자리 창출에 나선다면, 불법행위를 한 재벌총수의 사면과 함께 출자총액제한제도 폐지 등의 규제완화를 적극 추진하겠다는 것이다. 상상력 결핍증이라는 직업병을 앓고 있는 경제학자가 정치인의 변화무쌍한 논리회로를 어찌 따라갈 수 있겠는가마는, 김의장의 제안은 정말 필자의 상상력의 한계를 넘어선 것이다.

무엇보다 먼저, 김의장의 제안은 정부규제 또는 외국자본의 경영권 위협이 투자침체의 근본원인이라는 재계의 주장을 기본전제로 깔고 있다. 김의장에게 묻고 싶다. 재계의 주장이 진실이라고 믿고 있는가? 참고로, 작년 우리나라의 국내총투자율(=국내총투자/GDP)은 30.2%로, 중국을 제외하고는 그 어떤 경쟁국보다도 훨씬 높은 수준이다. 실제로 대기업과 제조업의 투자는 비교적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으나, 중소기업과 서비스업의 투자가 극히 부진한 것이 현실이다. 즉 투자 문제의 핵심은 평균 투자율이 낮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기업규모별·업종별 투자 양극화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는 것이다. 김의장은 문제를 잘못 진단했고, 따라서 처방도 틀렸다.

질문을 바꾸어보겠다. 재벌이 투자를 확대하면 조만간 중소기업과 서민들의 체감경기가 나아질 것이라는 이른바 ‘떡고물 전략’(trickle down effect)이 21세기 한국경제에서도 여전히 유효하다고 믿고 있는가? 30%의 투자율로 5%의 잠재성장률조차 달성하지 못하는 한국경제의 구조적 문제, 특히 대·중소기업간 양극화 문제를 떡고물 전략으로 극복할 수 있다고 믿고 있는가?

부탁이 하나 있다. 뉴딜 제안은 ‘사회적 대타협’ 모델에 근거하고 있기 때문에, 구래의 ‘재벌 투자 확대론’과는 근본 철학이 다르다는 식의 답변으로 얼버무리지 말기 바란다. 협력이 갈등보다 더 우월한 경제적 성과를 가져올 수 있다는 것은 모든 경제학자들이 동의하는 명제이다. 김의장이 해야 할 일은 대타협의 당위성을 계몽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경제주체들이 대타협의 경기규칙을 충실히 따르도록 하는 유인체계를 만드는 것이다.

그러면 또 묻겠다. 불법행위를 한 재벌총수를 사면하고 나아가 재벌총수의 경영권을 철옹성처럼 지켜주면, 재벌총수가 대타협의 경기규칙을 충실히 따를 것이라고 김의장은 믿고 있는가? 필자가 상상력의 한계를 절감하는 것이 바로 이 대목이다. 정치권력이 읍소하면서까지 재벌총수가 원하는 것을 다 들어주겠다고 나왔는데, 재벌총수가 자신의 기득권을 양보하는 대타협의 테이블에 나올 이유가 있겠는가? 그냥 버티고 있으면 될 텐데…. 상대방의 경기규칙 위반을 응징할 수 있는 힘과 수단이 없는 상태에서 사회적 대타협이 이루어진 역사적 예를 필자는 들어본 바 없다.

또 한번 질문을 바꾸어보겠다. 노조와 중소기업은 김의장의 뉴딜을 사회적 대타협으로 인정하고 그 결과를 잠자코 지켜보겠는가? 그럴 리가 없다. 재벌총수의 수백억 배임횡령죄까지 사면해주는 법치주의의 붕괴를 보면서 대타협의 경기규칙이 엄정히 집행될 거라고 믿을 바보가 어디 있겠는가?

김의장은 재벌과의 대타협을 제안했다. 그러나 원칙을 허문 타협은 정경유착의 또다른 모습일 뿐이고, 재벌공화국의 완성일 뿐이다. 김의장은 노무현 대통령의 실패 원인이 무엇이었는지 되짚어보아야 한다. 국정철학이 과거 개발독재시대의 그것과 다르다는 주장만으로 정책의 유효성을 확보할 수는 없다. 나의 진정성을 왜곡하지 말라는 식의 항변만으로 국민을 설득할 수도 없다. 한나라당과의 대연정 제안이나 한·미 무역투자협정(FTA) 추진 등과 같은 ‘바둑판 뒤집기’ 전략으로 과거의 실패를 만회할 수도 없다. 과거의 실패에서 교훈을 얻지 못하면 그 결과는 불문가지이다. 열린우리당의 위기가 원칙 훼손에서 비롯되었는데, 그 위기를 또다른 원칙 훼손으로 극복할 수는 없음을 김의장은 잊지 말아야 한다.

* 이 칼럼은 경향신문에도 게재되었습니다.

김상조(한성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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