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6-08-21   967

<안국동窓> 더럽고 무서운 ‘바다이야기’

제10호 태풍 ‘우쿵’ 덕에 시원한 바람을 맞고 모처럼 맑고 파란 하늘을 볼 수 있었다. 날씨는 사람들의 정신에 큰 영향을 미친다. 맑은 하늘을 보노라면 어쩐지 마음도 맑게 개는 느낌이 든다. 그러나 늘 우리의 하늘을 더럽히는 각종 오염물질들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그저 강한 바람에 밀려 어딘가로 갔을 뿐이다. 태풍이 아니어도 늘 맑고 파란 하늘을 볼 수 있기를.

‘우쿵’이 지나가고 계절은 가을로 나아간다. 사람들로 북적이던 바닷가도 곧 평온을 되찾을 것이다. 그런데 올 여름은 유독 더러운 바다이야기를 많이 들었던 것 같다. 올 여름 바닷가는 여느 해처럼 사람들이 많았지만 여느 해보다 쓰레기가 많았던 모양이다. 아예 해수욕장이 아니라 쓰레기장처럼 보이는 곳도 있었다. 널려 있는 쓰레기들 사이에서 먹고 자고 노는 사람들을 보며 참 비위도 좋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이렇게 더러운 바다이야기도 바야흐로 추억이 될 즈음에 새로운 바다이야기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이 새로운 바다이야기는 더럽기도 하거니와 무섭기도 하다. 다름 아니라 ‘바다이야기’라는 낭만적 이름의 사행성 게임에 관한 이야기이다. 이 게임은 사행성이 대단히 강하다고 한다. 사실 이 게임은 성인용 게임이라는 그럴 듯한 이름으로 이루어지는 도박이다. 비슷한 게임들 중에서도 사행성이 강해서 인기가 아주 높은 모양이다.

이 게임을 둘러싸고 뜨거운 논란이 빚어지는 큰 이유는 대통령의 조카가 관련 회사에 이사로 재직하다가 검찰의 수사가 시작되기 전날에야 퇴직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대통령은 아무런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자 한나라당에서는 대통령의 발언이 수사의 가이드라인을 제시한 것이라며 의혹을 더욱 키우고 나섰다. 누가 옳은지는 몰라도 검찰의 수사 부담이 한층 커진 것은 틀림없는 듯하다.

그러나 어느 경우에도 바다이야기는 정치적 공방의 자료로 끝나서는 안 된다. 사실 바다이야기가 정치적 공방의 자료로 활용되는 것은 어떤 면에서 다행스러워 보이기도 한다. 이 때문에 수사가 더욱 철저히 이루어질 가능성이 커졌으며, 따라서 망국적 ‘도박공화국’의 문제가 약화될 수 있는 가능성도 커졌기 때문이다.

도박은 사람들의 정신을 마비시키는 망국병이다. 그것은 가족끼리, 친구끼리 하는 놀이와는 아주 다르다. 도박은 가지고 있는 돈은 물론이고 집이며, 심지어 몸까지 팔아치우게 하는 악마의 유혹이다. 도박에 빠진 사람들은 마약에 쩔은 사람들과 똑같은 비이성적 행태를 보인다. 오죽하면 도박에서 벗어나기 위해 손가락을 자르겠는가? 도박을 막는 것은 종교의 책무가 아니라 정부의 기능이어야 한다.

그러나 언제부터인가 이 나라에서는 도박이 산업의 이름으로 합법화되고 성행하기 시작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도박장에서 재산을 탕진하고 인생을 망쳤는데도 불구하고 오히려 망국적 도박산업을 강력히 규제하고 단속하기는커녕 오히려 조장하고 촉진하는 정책들이 새로운 경제정책의 이름으로 추진되고 있다. 바다이야기는 이러한 도박공화국의 문제를 보여주는 한 사례일 뿐이다.

바다이야기에 관한 보도를 보다가 새삼스럽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바다이야기는 분명히 ‘대박’을 터트린 게임이지만 이른바 ‘성인오락실’ 시장의 3%만 차지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이다. 바다이야기는 그야말로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각종 상품권이 ‘도박상품권’으로 사용되고 있다는 사실은 더욱 더 놀라웠다. 2005년 8월부터 2006년 상반기까지 이러한 ‘도박상품권’이 무려 26조원어치나 발행되었다고 한다. 이 나라가 과연 정상인가?

며칠 전에 노무현 대통령은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참여정부 3년만에 놀랄만치 비대해진 도박공화국의 문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자기가 그렇게 만든 것이 아니니 아무런 책임도 없다고 생각할까? 그렇다면 심의를 맡은 영등위가 탈법을 일삼았던 것, 규제기관인 문화부가 이런 문제를 방치했던 것, 그리고 그런 기관의 장을 자신이 임명했던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할까?

뭐든지 대통령 탓으로 돌리는 ‘노무현 개그’가 인터넷을 통해 널리 유포되었다. 자기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모르겠다는 대통령의 발언은 또 다른 ‘노무현 개그’의 유행을 예고하는 것 같다. 무조건 물고 늘어지는 조중동 따위의 행태는 분명히 문제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잘못의 알리바이가 될 수 없다. 더럽고 무서운 바다이야기에서 대통령이 자기의 잘못과 책임을 찾아내기를 바란다.

>> 관련자료: 도박산업규제 및 개선을 위한 전국네트워크 기자회견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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