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6-09-04   881

<안국동窓> 무능해서 부패하는 보수세력

“보수는 부패로 망하고, 진보는 분열로 망한다”는 말이 있다. 보수파는 대체로 지나치게 사익을 추구하다가 망하고, 진보파는 대체로 누가 옳으냐를 따지다가 망한다는 것이다. 아마도 많은 사람들이 상당히 그럴 듯한 일반화라고 생각할 것이다. 보수파는 사익을 챙기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애쓰는데, 진보파는 그 와중에도 누가 옳은가를 두고 자기들끼리 공론을 벌이기 일쑤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이상한 말이 나돌기 시작했다. “보수는 부패하지만 유능하고, 진보는 깨끗하지만 무능하다”는 것이다. 이 댓구의 의미는 분명하다. 보수는 유능하고 진보는 무능하다는 것이다. ‘무능하다’는 것은 어떤 의미를 갖는가? 그것은 한마디로 존재할 가치가 없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 사회처럼 외형적 효율과 성과를 따지는 곳에서 ‘무능하다’고 규정되는 것은 속히 사라져야 한다는 것을 뜻한다.

처음에 누가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댓구는 이른바 진보파에 대한 ‘사회적 처벌’의 의미를 담고 있다. 적어도 그런 목적을 위해 만들어진 댓구임에 틀림없다. 따라서 보수파에서 이 댓구를 아주 즐겨 사용하고 있다는 것은 다시 말할 필요가 없다. 이런 말이 퍼지는 것 자체가 진보파에 대한 보수파의 공격이 큰 성공을 거두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것은 진보파의 몰락을 도모하기 위해 고안된 하나의 ‘참언’이다.

우습게도 진보파를 자처하는 사람들 중에도 이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리기도 하는 모양이다. 자기의 존재가치를 싹 부정하는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입에 올린다는 것 자체가 이미 심각한 패배의 징후이다. 자기를 공격하는 자의 말로 생각하는 자가 어떻게 공격을 막고 자기를 지킬 수 있겠는가? ‘참언’에 담겨 있는 민심을 올바로 읽고 대처하기 위해서도 이런 점에 대해 좀더 큰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

그러나 우리가 더욱 우려해야 하는 것은 사실 진보파에 대한 공격이 아니다. 사람들을 진보와 보수로 구분할 수 있는 한, 이런 식의 ‘참언’은 언제나 고안되고 유포될 것이다. 그런데 이 댓구는 능력을 전면에 내걸어서 부패의 문제를 완전히 부차적인 것으로 만들고 있다. 효율주의니 성과주의니 하는 것의 문제를 따지기에 앞서서 부패의 문제는 만악의 근원으로 퇴치되어야 마땅하다. 우리는 부패의 문제가 어떤 결과를 가져오는지 잘 알고 있다. 그것은 사회를 비정상적으로 만들고,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저해하며, 불평등을 갈수록 악화시킨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의 붕괴는 부패의 필연적 결과였다.

이런 점에서 보자면, 이 댓구는 그렇게 보수파에게 유리한 것도 아니다. 보수파가 안고 있는 가장 큰 문제가 부패라는 사실을 부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보수파는 능력을 내세우기에 앞서서 부패의 문제가 정말로 해결되었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러나 보수파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그저 능력을 외치면서 부패의 문제를 숨기기 위해 애쓰고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능력이란 무엇인가? 자기들이 고도성장을 이루었다는 것이다. 자기들이 한국 경제를 이렇게 세계적 규모로 키워 놓았는데 진보파가 그것을 다 망치고 있다는 것이다. 과연 그런가?

보수파가 주장하는 능력이란 사실 억압과 착취의 능력이다. 박정희와 전두환으로 대표되듯이 보수파는 경찰과 군대의 폭력을 동원하여 시민의 기본권을 억압해서 고도성장을 추구했던 것이다. 보수파는 이런 국가폭력의 문제를 떠나서 역사적으로 경제성장의 공을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렇다고 해도 1980년대에 들어서면서 세계 경제는 빠르게 변모하기 시작했다. 이미 그때부터 보수파가 자랑하는 억압과 착취의 경제성장 방식은 더 이상 작동할 수 없는 것이 되고 말았다. 그로부터 이미 20년이 넘는 시간이 지났는데도 보수파는 여전히 박정희를 내세워서 시계를 거꾸로 돌리려 한다.

보수파는 무능하다. 미래는 말할 것도 없고 현재에도 적응하지 못한다. 이미 오래 전에 죽은 박정희가 아직도 그들의 지도자로 군림하고 있다. 새로운 지도자를 자처하는 보수파 정치인들은 심지어 ‘박정희 닮기 경쟁’을 벌이기도 한다. 지구화와 민주화라는 시대적 추세를 정면으로 거부하는 이런 행태야말로 보수파의 무능을 증명하는 단적인 사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보수파가 부패할 수밖에 없는 것은 무능하기 때문이다. 자기의 능력을 훨씬 뛰어 넘는 사익을 추구하면서 보수파는 필연적으로 부패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급기야 보수파는 사회 전체를 부패의 수렁 속에 빠뜨리고 만다.

한국 사회의 발전을 위해서는 보수파의 개혁이 필요하다. 적어도 수구세력이 보수파의 주류가 되어서는 곤란하다. 그러나 아직까지 한국의 보수파를 주도하는 것은 수구세력인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일군의 학자들이 이 대열에 적극적으로 참여해서 이 사회의 발전을 비방하고 저해하는 여러 주장을 펼치고 있다. 그러나 겉보기에 학문적 외양을 갖추고 있는 그 주장들은 사실 무능해서 부패하는 보수세력을 위한 ‘참언’에 가깝다.

비현실적 ‘참언’이 퍼지는 것은 하나의 위기적 징후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 위기의 성격과 원천을 정확히 이해하지 못한다면, 제대로 대처하는 것은커녕 위기를 더욱 키우기 십상이다. 여기서 사실과 진실이 정치의 절대적 기준으로 작동하도록 하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무능해서 부패하는 보수세력의 문제를 직시하고 대응하는 것은 그 구체적 과제일 것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