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추방 의지에 찬물 끼얹은 대전지법 가처분 결정
지난 8월 11일 대전지방법원 제8민사부는, 정부와 정부산하기관 및 지자체의 대표적 반부패 정책으로 평가받고 있는 이른바 ‘청렴계약제’와 관련한 법률적 쟁점에 있어 주목할 만한 결정을 하였다. 즉 공사와 관련하여 뇌물을 주면 계약을 해지한다는 ‘청렴계약’이 일방적인 불공정 약관에 해당하다고 한 것이다. 한국철도시설공단은 민간 건설업체와 600억 상당의 공사계약을 체결하면서 만약 공사와 관련하여 공단직원에게 부정하게 금품을 건네면 공사계약을 해지하고 일정기간 입찰참가를 제한한다는 ‘청렴계약’ 내용을 포함시키고 나아가 50만원 이상의 금품을 공단직원에게 부정하게 제공하면 계약해지할 수 있다는 윤리실천협약도 체결하였다, 그런데 공사진행 중에 건설업체 직원이 공단직원에게 관리감독 등에 편의를 봐달라며 200만원의 뇌물을 제공한 것이 발각되어 공단측은 계약 내용대로 공사계약취소와 1년간 입찰참가 제한 조치를 취하였다. 건설업체는 ‘청렴계약’과 윤리실천협약이 일방적으로 체결된 불공정한 것이므로 공단측의 이 같은 조치의 효력을 정지시켜달라는 신청을 한 것이다. 대전지방법원은 이에 대해, 청렴계약 내용과 윤리실천 협약은 불공정 약관으로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계약 체결 당시 양 당사자의 객관적인 의사 및 신의성실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으로서 한국철도시설공단이 건설업체에 대해 계약 해지 및 입찰참가 제한한 것은 당사자 사이의 이익형평을 기준으로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정당한 것으로 볼 수 없다고 판단하여 가처분 신청을 받아들인 것이다. 이 같은 법원의 판단은 최근 많은 공공기관과 지자체 등에서 관급공사에 만연한 부패 관행을 근절하기 위해 청렴계약제를 도입한 취지를 무색케 한다는 비판의 목소리도 적지 않다. 참여연대는 법원의 이번 판결을 계기로 반부패 관련 판결에서 법원이 어떠한 태도를 취해야 하는지에 대해 비평하기로 하였으며, 비평 칼럼은 공익변호사그룹 공감의 김영수 변호사가 작성하였다.(편집자 주) |
청렴계약조항에 대하여 약관규제법을 적용한 대전지방법원의 결정
지난 2006. 8. 11. 대전지방법원 제8민사부(재판장 금덕희 판사, 최진영 판사, 김상일)는 S건설회사가 한국철도시설공단을 상대로 제기한 ‘2006카합774 계약해지 등 효력정지가처분’ 사건에서 부패방지를 목적으로 근래 정부ㆍ지방자치단체 및 정부산하기관들이 적극적으로 실시하고 있는 청렴계약제와 관련한 법률적 쟁점에 관한 결정을 하였다.
이번 결정은 본안소송이 아닌 가처분신청에 대한 것으로 이 사건과 관련한 법원의 종국적인 판단으로 볼 수는 없다. 그러나 재판부는 S건설회사의 토목사업본부장이 철도시설공단의 직원에게 공사의 관리감독 등에 편의를 봐 달라는 부탁과 함께 회식비 명목으로 200만원의 뇌물을 공여하였다는 이유로, 철도시설공단이 청렴계약의 내용에 따라 계약을 해지하고 1년간 철도시설공단이 발주하는 공사에 관한 입찰참가자격을 제한한 사안에 대하여, 양 당사자간에 체결된 청렴계약조항 등이 약관규제법에 위반되어 무효이거나 제한적으로 해석하여야 한다는 내용의 결정을 함으로써 청렴계약제 도입의 취지를 무색하게 하고 있다.
청렴계약제
청렴계약제는 에콰도르가 1990년대 중반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의 자문을 받아 정부투명성의 강화, 특히 국제 교역에서의 투명성을 강화하기 위한 일관되고 집중화된 국가전략을 실시하려는 일련의 조치를 발표함으로써 처음 시행된 제도이다. 이 제도는 상대적으로 부패발생의 빈도가 높고 감시 또한 취약한 관급 계약의 투명성과 청렴성을 높이는 대안으로서 세계 각국에서 채택되어 실시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외환위기(IMF사태) 이후 각종 공공부문 계약과 관련한 부패가 곧바로 부실공사나 예산의 낭비를 초래함은 물론 국가신인도와도 직결되므로 이를 근절하기 위한 환경조성이 시급한 과제로 요구되었고, 이를 수용할 수 있는 제도로서 청렴계약제가 주목받았다. 2000년 서울시 동작구에서 도입한 것을 시작으로 지금은 상당수의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및 정부산하기관에서 실시하고 있다 국가청렴위원회 조사자료에 의하면 2005. 6. 30.현재 점검대상기관 총 90개 기관 중 34개의 중앙행정기관, 14개의 광역자치단체, 14개의 시도교육청, 13개의 정부투자기관이 청렴계약제를 실시하고 있으며, 미실시 기관은 15개 기관에 불과하다.
청렴계약제도의 근본 취지는 ‘청렴계약 입찰에 참가한 모든 업체는 어떠한 뇌물도 제공하지 않으며, 정부 발주부서에서도 부패방지를 위한 조치를 취하고 절차를 투명하게 하겠다는 정부 및 정부기관과 입찰자 및 기업간의 합의’로 정의할 수 있다. 그리고 입찰에 참가한 업체가 뇌물을 제공하지 않도록 하여 정부가 발주하는 공사 및 조달부문에서의 부패와 그에 따른 정치적ㆍ경제적ㆍ사회적 비용을 감소시키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구체적으로는 입찰단계에서 청렴계약서약서를 제출한 업체에 대해서만 참가자격을 부여하고 모든 입찰업체와 관계공무원은 뇌물을 주거나 받지 않는다는 서약을 의무적으로 하게하며, 이와 관련한 계약위반사항에 대해서는 계약의 해제나 해지, 일정기간 입찰자격의 제한과 같은 특별한 제재를 할 수 있음을 그 내용으로 하고 있다.
청렴계약제를 약관규제의 법리에 따라 제한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약관’은 사업자가 다수의 고객과 계약을 체결하기 위하여 일방적으로 작성한 것으로, 고객이 구체적인 조항 내용을 검토하거나 확인할 충분한 기회를 가지지 못한 채 약관에 의한 계약이 이뤄진다면 고객은 예상하지 못한 손해를 입게 된다. 그래서 불공정한 약관으로서 고객의 정당한 이익을 침해하는 경우에는 약관규제의 법리에 따라 약관의 효력에 대하여 일정한 제한을 가하고 있다.
즉 약관의 내용이 형식적으로는 사적자치의 영역에 속하고 계약편입에 대한 고객의 동의를 얻고 있지만, 실제 고객의 정당한 이익과 합리적인 반하거나 고객의 권리를 본질적으로 제한하는 경우에는 사적 자치(私的 自治)의 한계를 벗어나는 것으로 실질적인 사적 자치를 실현하기 위해서 법원의 간섭이 정당화되는 것이다.
그러나 본래 청렴계약제는 계약참여 당사자들의 자발적인 청렴서약을 주된 내용으로 하는 것으로 본질적으로 약관과는 그 성질에 있어 차이가 있다. 청렴계약은 계약에 참여하는 모든 당사자들, 즉 정부ㆍ지방자치단체 및 정부산하기관이나 입찰자 및 기업들이 청렴계약의 성실한 이행과 위반에 대한 제재조치의 감수를 서약하게 한 것이다. 그리고 그것을 위반하는 경우에는 쉽게 불이익을 줌으로써, 청렴계약을 체결한 기업들에게 그들의 경쟁자 역시 뇌물을 제공하지 않을 것이며, 정부나 정부산하기관은 뇌물을 강요하지 않을 것이라는 확신을 심어주어 계약관련 분야에서 신뢰성을 높여준다.
더 나아가 부패의 연쇄적 고리를 끊음으로써 공공조달 계약이나 건설계약 분야에 있어 불필요하게 지출되는 고비용을 줄이고 왜곡된 영향을 감소시켜주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따라서 공정한 청렴계약과정의 정착을 위해서는 청렴계약 참여기업이 계약과정에서 공공부문과 대등한 주체로서 계약을 체결ㆍ수행할 수 있을 정도의 대등성을 확보하는 것과 아울러 이를 위한 절차적 공정성의 보장이 매우 중요하며 이를 위해 통상 청렴계약의 체결은 입찰공고시 청렴계약제 시행에 따른 유의사항 안내, 현장설명시 청렴계약 이행서약서 서식교부, 입찰등록시의 업체에서 작성한 이행서약서와 발주기관에서 작성한 청렴계약 이행서약서 상호교환, 계약체결시 서약서 내용을 계약특수조건으로 약정하는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러한 계약체결절차가 충실하게 이행된 상황에서는 양 당사자 사이에 충분한 교섭이 이루어져 일방적으로 계약내용을 제시하고 결정했다고 하는 성질이 상실되었다고 할 수 있으며 더 이상 약관규제의 법리에 따른 제한은 필요하지 않게 되며, 청렴계약제 본래의 내용에 따른 온전한 법적 효과가 발생할 수 있다.
이 사건 청렴계약에 있어 이러한 절차들이 충분하게 보장되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으나, 계약참여기업의 대등성과 절차적 공정성이 제도적ㆍ법적으로 충분히 보장되어 있지 않고 기업의 입장에서 오히려 절차적 과정에 청렴계약서를 하나 더 추가하여 업무의 가중과 복잡화를 야기하는 불편한 제도로 인식되고 있는 한, 위 조항들에 대하여 사실상 약관으로서의 성질을 부인하기는 어렵다고 보여진다
청렴계약제는 공공계약의 본질적인 요소
재판부가 위 청렴계약 조항들에 대하여 약관으로 전제한 이상 약관규제의 법리에 의한 구체적인 내용통제의 시도는 불가피한 것으로 보인다. 재판부는 금품수수 사실만 인정되면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것으로 규정된 윤리실천협약서의 계약해지조항, 부제소 합의조항 및 입찰참가제한기간에 관한 조항은 불공정약관으로 무효라고 보았다. 또 공사도급계약의 일반조건 및 특수조건의 계약해지조항에 대해서도 금품수수 등의 불법ㆍ부정행위로 인하여 계약의 목적 달성이 곤란하다고 판단되는 경우에 한하여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 것으로 제한적으로 해석하는 것이 계약 체결 당시 양 당사자의 객관적인 의사 및 신의성실의 원칙에 부합하는 것으로서, 한국철도시설공사가 S건설회사에 대하여 한 공사도급계약의 해지 및 입찰참가제한조치는 당사자 사이의 이익형평을 판단기준으로 제반 사정을 고려할 때 정당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취지로 판단하였다.
청렴계약제는 공공계약제도의 청렴성확보를 목적으로 계약에 참여하는 모든 이해 당사자들에 대하여 공정하지 못한 계약환경으로부터 새로운 규칙들을 확립하기 위해 제도적으로 제시된 것으로 그 실효성 확보 차원에서 계약 당사자들의 자발적 서약에 의해 보다 엄격한 제재를 감수하도록 하고 있다. 즉 참여업체간의 담합행위나 뇌물 제공과 같은 부패행위는 구조적 은밀성으로 인해 위반행위의 적발이 지극히 어렵고, 그 위반 액수의 다과에 상관없이 작은 부패행위라도 연쇄적인 반응을 일으켜 사회적 신용성에 치명적인 훼손을 일으키게 된다.
따라서 부패행위의 금지를 약속하는 당사자들의 엄격한 서약 및 보다 엄격한 제재를 마련하고 이에 대한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예외 없이 엄중한 제재를 과하는 것이 필요하며 이는 사회적 신용을 유지하고 궁극적으로는 경제적 효율성도 달성할 수 있게 한다. 그러므로 청렴계약제는 단순히 양 당사자간의 계약의 내용을 넘어 계약의 공정성과 절차의 투명성을 가능하게 하는 본질적인 요소로서 기능하며, 청렴계약조항이 약관규제법에 위반되어 공정을 잃어 무효인지 여부를 판단함에 있어서 이와 같은 내용은 보다 적극적으로 평가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청렴계약의 준수는 그 자체로 계약의 목적달성에 필요불가결하다 할 수 있으며, 이에 위배되는 행위는 계약의 주된 채무의 위반에 해당하여 이를 이유로 한 이 사건 계약해지나 입찰참가제한기간의 통지는 적법한 것으로 볼 여지도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볼 때 이번 결정에서 대전지법 민사부가 “계약의 이행과정에서의 금품제공행위는 계약체결과정에서 이루어진 금품제공해위에 비하여 그 비난의 정도가 가벼운 점”, “비교적 적은 규모의 뇌물을 교부하였고”, “이 사건 계약을 해지하는 것은 … 추가적인 비용이 발생할 뿐 아니라 공사가 지연되는 결과 국민경제 전체적으로도 큰 경제적 손해를 입을 것으로 보이는 점”, “거래 관행”과 같은 사정들을 고려하여 한국철도시설공단의 계약해지권의 행사를 제한한 것은 당사자간의 이익형평의 기준에 충실한 나머지 청렴계약제의 근본적 취지를 소홀히 것이라 생각된다.
제도의 한계 및 문제점
한편 이번 결정은 그 시비를 떠나 청렴계약제의 실시와 관련한 제도상의 한계 및 문제점들을 보여주고 있다.
먼저 공정한 계약의 절차적 과정을 중시하는 청렴계약이 성립되기 위해서는 정부ㆍ지방자치단체나 정부산하기관의 공무원이나 계약 기업의 당사자들의 청렴계약에 대한 전문성을 확보하는 것이 중요하며, 계약 정보의 완전한 공개와 아울러 청렴계약 참여기업이 계약과정에서 공공부문과 대등한 주체로서 계약을 체결ㆍ수행할 수 있을 정도로 당사자간의 대등성을 확보하고 계약참여자들에 대하여 계약수행상의 공정성과 절차상의 적법성을 보장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이에 대한 적절한 보완책이 마련되어야 할 것이다.
다음으로 청렴계약제의 실효성을 담보하기 위해서는 그 위반행위에 대해서는 보다 중한 제재와 예외없는 엄중한 집행이 필요하다. 처음 청렴계약제를 제안한 국제투명성기구(Transparency International)는 이를 위해 입찰권의 박탈, 계약의 해제 또는 해지, 계약공급자와 경쟁자들에 대한 손해배상, 일정기간 동안의 입찰자격 제한과 같은 제재와 시민사회가 청렴계약 실행과정에서 참여하고 감시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권고하고 있다.
그러나 이번 결정에서 보여지 듯 계약 당사자들에게 엄격한 제재 및 부담을 초래할 수 있는데, 지금의 계약 현실에서 당사자들의 청렴계약이행서약과 계약이행특수조건만으로 이를 강제하기에는 적용상 한계가 드러나고 있어 그 실시의 근거가 되는 법령이나 조례의 제정 또는 개정을 통한 제도적 받침이 필요하며, 이를 보완하는 제도적, 법적 정비가 시급히 요구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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