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6-10-16   932

<안국동窓> 삼성왕국 이건희 대왕

10월 9일 월요일 오전 10시에 북핵실험을 반대하는 내 칼럼이 인터넷참여연대 안국동창에 올라왔다. 그런데 그 시간에 북한은 핵실험을 하고 있었다. 나는 그 사실을 오후 1시가 조금 넘어서 알았다. 마음이 무겁고 답답했다. 북한은 큰 잘못을 저질렀다. 이 잘못은 하루빨리 바로잡아야 한다.

그러나 북핵실험이 중대한 문제이기는 해도 그것이 우리가 관심을 가져야 하는 문제의 전부는 아니다. 세계 10위권의 경제력을 가진 한국에서는 매일 수없이 많은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선진국’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그 중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과제는 재벌이라는 ‘괴물’을 개혁하는 것이다. 그렇지 못하면 우리는 또 다시 IMF사태와 같은 경제위기를 맞게 될 것이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 우리는 북핵실험을 막지 못한 것만큼이나 참담한 경험을 해야 했다.

그 주범은 다름 아닌 국회다. 크고 작은 많은 ‘범죄’를 쉼없이 저지르고 있는 것이 재벌인데도 불구하고 재벌에 대해서는 제대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 국회를 보면서 우리는 다시금 한국의 정치야말로 가장 심각한 개혁대상이라는 사실을 절감해야 했다. 우리를 부끄럽고 분노하게 하는 저 국회. 우리의 국회는 여전히 제대로 된 국회라고 할 수 없다. 최연희가 버젓이 행자위 활동을 하고 있는 데서 잘 드러나듯이 아무래도 우리의 국회는 늑대와 여우의 소굴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가을 정기국회의 가장 큰 일은 국정감사다. 1972년 10월 17일, 박정희는 유신쿠데타를 일으켰다. 이로써 국회의 기능은 사실상 정지되고 ‘총통체제’가 확립되었다. 국회가 제 기능을 찾은 것은 1987년 6월 항쟁을 통해 민주화가 이루어진 뒤의 일이었다. 1988년 가을에 무려 18년만에 국정감사가 시작되었다. 국정감사는 박정희와 전두환에 맞선 반독재 민주화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그 국정감사가 완전히 엉터리로 진행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묻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과연 민주화를 이룬 것일까?

북핵실험으로 온통 뒤숭숭한 10월 13일 오후 2시, 국회 재경위에서 민주노동당의 심상정 의원은 ‘증인 신청 철회’라는 초유의 사태를 빚고 말았다. 심상정 의원은 이건희 회장을 증인으로 신청했으나, 같은 날 오후에 이건희 회장을 증인으로 신정한 열린우리당의 박영선 의원을 빼고는, 국회 재경위 의원들 중에서 이건희 회장을 증인석에 세우고 싶은 다른 의원들은 없었다. 삼성 에버랜드 전환사채를 통한 불법증여를 비롯해서 이건희 회장의 문제는 이미 잘 알려졌다. 그러나 국회는 이 엄청난 문제에 눈을 감은 것이다.

이에 앞서 이건희 회장을 검찰에 고발하는 안건을 둘러싸고 논란이 벌어졌다. 이건희 회장은 2005년 국회에서 삼성자동차 손실보전 문제로 국정감사의 증인으로 채택되었다. 그러나 그는 미국으로 건너가서 치료를 받는다는 명목으로 출석하지 않았다. 2004년 재경위 불출석 증인에 대해서는 모두 고발조치되었다. 그러나 2005년에는 고발에 관한 안건이 상정조차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국회의 직무유기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삼성의 이건희와 한화의 김승연이 주요 증인이었다.

1년이나 늦게 2005년의 불출석 증인을 검찰에 고발하는 안건이 재경위에 상정되었다. 그러나 열린우리당 박영선, 이목희, 이미경, 채수찬, 한나라당 원희룡, 민주당 김종인, 민주노동당 심상정 의원이 찬성하고, 나머지 의원들이 반대하거나 기권하여 결국 이건희 회장은 검찰에 고발도 되지 않았다. 한화 김승연 회장도 마찬가지였다. 국회는 재벌에게 완전히 굴복했다. 재벌이 확실하게 국회를 정복했다. 한국의 국회는 재벌의 국회가 되고 말았다. 국회 재경위는 재벌 옹호위로 전락했다.

다음날인 10월 14일, <조선일보>에는 삼성재벌의 이학수 부회장의 인터뷰가 실렸다. ‘삼성X파일’의 주범이기도 한 그는 ‘세계 최고의 경영자는 이건희 회장’이라는 등 이건희 회장에 대한 예찬을 쏟아놓았다. 이로써 ‘정론’을 주장하는 <조선일보>가 재벌문제, 특히 삼성문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를 잘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가 만들어졌다. 이렇듯 <조선일보>는 단지 정치적으로 수구적일뿐만 아니라 경제적으로 명백히 재벌을 옹호하고 있다. 아무래도 <조선일보>는 삼성재벌과 아주 친하게 지내고 싶은 듯하다.

수구세력은 북핵문제와 같은 안보문제에는 위기의식을 조장하는 방식으로 열을 올려서 문제를 더 악화시키고, 경제를 쥐락펴락하는 재벌문제에 대해서는 일관되게 재벌을 옹호하는 방식으로 열을 올려서 문제를 더 악화시킨다. 그런데 민주주의를 존중한다는 점에서 수구세력과 구분되는 보수세력도 북핵문제나 재벌문제에서는 수구세력과 별로 다르지 않다. 한국의 민주화가 얼마나 ‘취약한 민주화’인가를 잘 보여주는 현상이 아닐 수 없다. 우리는 이 점을 잘 인식해야 한다.

이번의 국정감사를 보면서 나는 이 나라가 정말 ‘이건희 대왕이 지배하는 삼성왕국’이 되어 버린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심상정 의원이 증인 신청을 철회해야 했을 정도로 재벌에게 굴복해버린 국회는 그 뚜렷한 지표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건희 대왕’의 실체는 ‘이건희 대마왕’일 수도 있다. 그가 삼성자동차 사업을 무리하게 추진하거나 교묘하게 불법증여를 강행해서 한국 경제에 끼친 엄청난 악영향은 무엇을 말해주는가?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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