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6-10-21   1559

<안국동窓> 타짜, 올인, 그리고 한미FTA

경제학적으로 투기와 투자를 구분할 수 없다고 하지만 자본시장에서도 투자의 기본은 리스크(risk) 분산 즉, 헷징(hedging)이다. 심지어 도박판에서조차 유능한 ‘꾼’들은 ‘올인’보다는 신중한 분산베팅을 선호한다.

그런데 나라의 현재와 미래의 살림살이 전체를 투자하는데 있어 그에 합당한 포트폴리오나 위험분산 없이 모든 것을 다 거는 무모한 도박이 정부에 의해서 강행되고 있다. 바로 한미FTA 협상이다.

한미FTA 협상은 잘 알려진 대로 제조업과 농업, 서비스업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진 미국과 최고로 높은 수준의 포괄적인 경제통합협정을 맺는 협상이다. ‘비교우위론’의 입장에서 보더라도 대다수의 영역에서 비교우위를 갖는 미국과는 우리의 비교우위를 섬세히 고려해 낮은 수준의 제한된 경제협력을 추구하는 것이 국민의 ‘후생을 극대화’하는 데서 바람직하다. 하지만 정부는 양허유보를 최소화하는 방향, 즉 관세와 비관세 장벽의 해소를 최대화하는 방향에서 협상하고 있다고 밝히고 있다.

나아가 투자 서비스 분야가 개방되면 미국의 높은 서비스 경쟁력이 한국 내부의 개혁을 자극하는 외적충격으로 작용해 우리의 서비스 경쟁력을 높일 거라는 장담에서는 ‘하면 된다’는 식의 비논리 그 자체이다.

이 도박의 더 큰 위험성은 잘 훈련된 근육질의 헤비급 선수와 아무런 훈련도 없는 미들급 선수의 경기라는데 있다. 미국은 같은 종류의 FTA를 이미 여러 나라와 추진해왔기 때문에 모든 협상분야의 쟁점에 대한 ‘표준협상안’을 숙지한 해당업계의 전문가들이 협상에 임하고 있다.

이미 정부와 의회 및 업계 사이의 조율도 마친 상태여서 몇 마디의 구두보고만으로 협상판을 훤히 그릴 수 있는 의원들이 협상 과정 전체를 체계적으로 통제하고 있다. 한국은 어떠한가. 대다수 정부부처들은 2006년 2월 협상을 개시한다는 외교통상부의 발표 이후에 ‘FTA 벼락’을 맞았다. 국회는 더 심각하다. 국회는 7월 2차 협상 이후에나 한미FTA 특위를 꾸려 초보적인 수준의 토론을 시작했다. 3차 협상이 이루어진 9월까지 정부는 한국어로 된 협상문 초안조차 준비하지 않았다.

한미 FTA의 핵심인 투자서비스 분야 협상은 포괄주의(이른바 네거티브) 협상방식을 취하고 있다. 유보를 명시하지 않은 모든 분야는 자동으로 개방한다는 것이다. 이대로 가면 12월 이후 국회는 초보적 수준의 토론에 기초해 법률적 효력을 갖는 1000여 페이지 분량의 합의문에 대해 ‘YES’ 혹은 ‘NO’ 중 하나만을 선택하도록 강요받게 될 것이다. 특히 더 긴장해야 할 것은 문서화되지 않은 합의이다. 국회는 협정문에 적시된 유보조항 외에 자동으로 개방될 모든 것에 대해 법률적으로 책임을 져야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북한의 핵실험 사태가 터지자 집권여당의 정책위원장은 보란 듯 “미국으로부터 핵우산을 제공받으려면 한미FTA를 반드시 성사시켜야 한다”는 대단히 비경제적인 주장을 하고 나섰다.

집권여당 정책책임자가 고작 그런 ‘자동’공약을 사기 위해 우리 경제의 미래를 좌우할 한미FTA 협상 타결을 대가로 제공해야 한다고 국민을 겁주고 있는 것이다.

국민들에게 그의 주장은 한미FTA 추진이 애초부터 경제적 손익계산보다는 미국과 관계를 맺으면 모든 게 좋다는 식의 냉전적인 대세추종의 고백으로 들린다.

(이 글은 내일신문 ‘NGO칼럼’에 실린 글 입니다.)

이태호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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