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6-11-30   790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⑧] “로스쿨은 바로 우리 교육의 문제입니다”

열린우리당 정봉주 의원에게 보내는 편지

법률가 양성 및 선발제도의 개혁을 위해 지난 10년간 논의되었으며, 2003년부터 운영된 사법개혁위원회에서 마침내 도입하기로 결정했던 로스쿨 제도임에도, 현재 국회에서 관련 법률안의 심의가 완전히 중단된 상태입니다.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는 국회의원들에게 로스쿨 제도 도입에 필요한 법안을 조속히 심의하여 법률가 양성 및 선발제도를 개혁하는데 동참할 것을 설득하기로 하여 15일부터 ‘로스쿨 지지자의 편지’를 보내기로 했습니다. 여덟 번째 편지는 한상희 건국대 법대 교수의 “로스쿨은 바로 우리 교육의 문제입니다” 입니다.

정봉주 의원님께

한 라디오방송국의 시사토론에서 만나 뵌 지 얼마 되지도 않아 이런 편지글을 쓰려니 쑥스럽기도 합니다만, 최근 로스쿨법안이 표류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서 답답한 마음에 하소연격으로 몇 마디 적어 보았습니다.

흔히들 로스쿨 문제를 사법개혁이라는 차원에서 바라봅니다. 더러 로스쿨제도는 법률가양성이라는 사법제도의 문제이며 따라서 그것은 법조인들의 문제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물론 맞는 말입니다. 하지만 단언컨대, 이 문제는 사법의 문제이자 동시에 혹은 그 이전에 우리 교육의 문제이기도 합니다.

외국의 법률가양성은 대학교육과 긴밀한 관계를 이루고 있습니다.

이른바 전문직(profession)의 양성, 특히 그 대표격인 법률가를 양성하는 제도는 교육제도나 교육현실의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집니다. 일례로 1980년대를 전후하여 미국과 영국, 독일 등에서 법률가 양성제도의 개혁논의가 치열하게 전개됩니다만, 그 배후에는 언제나 대학진학율의 대폭적인 증가현상이 깔려 있습니다.

2차 세계대전 이후 이들 국가에서는 대학교육의 구조가 크게 바뀝니다. 경제발전으로 교육여건이 좋아짐과 함께, 대학교육이 공교육 체계로 흡수되거나 혹은 사회복지의 차원에서 교육비용을 국가가 지원하게 되면서, 종래 한정된 계층의 자녀들만 들어갈 수 있었던 대학교에 중산층 혹은 하층계층의 서민들도 입학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들 서민들이 이런 대학교육의 기회를 이용하여 보다 상위의 계층으로 진출하고자 하였음은 당연한 일일 것입니다. 이에 1970년을 전후하여 영국이나 미국에서 법과대학 또는 로스쿨로 진학하는 학생들이 급증하고, 그 결과 법률가의 수도 급증하게 됩니다.

여기서 법률서비스시장을 통제해 왔던 법조인들은 일순 당황하게 됩니다. 그들은 그동안 대학이라는 높은 문턱을 만들고 이를 통과하여야만 변호사가 될 수 있도록 하는 방법으로 변호사의 숫자를 통제해 왔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대학의 문턱이 낮아지게 되자 이런 진입장벽은 원래의 효과를 거두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법률가집단은 법조윤리강화니, 실무교육의 강화니 하면서 법률가 양성체계의 주도권을 다시 장악하고 새로운 진입장벽을 만들어보고자 무진 애를 쓰기도 하였습니다. 얼마 전 미국을 중심으로 ‘변호사 망국론’이 횡행하였던 것이나, 독일에서 1970년대 보다 개방적인 법률가 양성제도를 실험하다가 법조인들의 반대에 부딪혀 좌절되었던 것도 그 한 예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런 법조인들의 저항은 그리 주효하지 못했습니다. 대학교육의 개방은 시대적 추세이자 사회정의에 봉사하는 것이기도 한 반면, 법조인들의 기득권은 부분이익에 불과하였기 때문입니다. 실제, 그 법조인중 일부는 여성의 대학진학률이 높아지면서 여성법률가가 늘어났다는 푸념도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음을 감안한다면, 그런 기득권중심의 반발이 사회적으로 공감을 얻기는 어려웠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들 국가에서는 대학에서의 법학교육을 적극적으로 끌어들여 그 교육내용이나 방식을 개선하는 수준에서 타협하거나, 혹은 법률가의 직역확대나 세계화전략으로 이행하는 등의 방식으로 그 충격을 완화하고자 노력하기도 합니다. 요컨대, 이들은 새로운 진입장벽을 만들어 대학교육에 부담을 지우기보다는, 오히려 양자간의 긴밀한 연계를 도모하는 한편, 법조사회 내부의 구조조정이나 구조변환의 작업을 통해 이 문제를 처리하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우리나라도 경제발전과 더불어 대학진학률이 꾸준히 늘어났습니다. 1980년 27%에 머물렀던 대학진학률은 작년 기준으로 이미 82%에까지 급증하여, 미국(63%)이나 일본(49%)은 넘어섬은 물론 세계 최고 수준에 올라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늘어난 대학졸업자들을 중심으로 전문직종에 대한 수요 또한 크게 증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학교육과 전문직 간의 병존전략을 취하는 외국의 예와는 달리, 기득권을 가진 우리나라의 전문직 집단들은 대학교육으로부터 전문직으로 진입할 수 있는 통로를 철저히 통제하거나 양자의 연결고리 자체를 차단하고 있습니다. 전문직의 대표격인 의사와 법률가를 양성하는 제도는 그 단적인 예가 됩니다.

의대의 정원통제는 편향적인 입시경쟁을 야기하여 이공자연계열의 각 전공영역간 균형적 발전을 저해하고 있습니다. 사법시험의 경우에는 더욱 심하여 대학교육 자체를 외면함으로써 법학교육의 왜곡은 물론, 소위 ‘비법대 출신 합격자’라는 신조어까지 만들 정도로 인문사회계열의 교육현장을 훼손하고 있습니다. 법조인집단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하여 대학교육 자체를 파행시키고 있는 셈입니다.

사법시험은 이 교육체계에 오히려 짐이 되고 있습니다.

먼저 사법시험제도는 법학교육을 황폐하게 만듭니다. 미국 로스쿨의 교육내용이 “변호사처럼 생각하기(thinking like lawyer)” 혹은 “변호사처럼 행동하기(acting like lawyer)”에 맞추어져 있다면, 우리 법학교육은 부끄럽게도 “사법시험 출제자처럼 생각하기” 혹은 “사법시험 채점관처럼 행동하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습니다. 더불어 법대생이 아닌 여타의 인문사회과학계의 학생까지도 고시열풍에 휘몰아 넣음으로써 학문의 균형적 발전은 생각할 수 없게 만들어버립니다.

그뿐 아닙니다. 그것은 합격자 수를 기준으로 ‘명문대학’과 ‘비명문대학’ 등으로 대학의 서열화라는 폐단까지 야기합니다. 대학마다 고시반을 만들고 다른 학생들의 등록금으로 고시생들을 편파지원하기를 마다하지 않는 풍토는 여기서 연유합니다.

그리고 이런 대학교육의 왜곡현상은 그대로 대학입시 열풍으로까지 이어집니다. 입시생들은 하나같이 명문대 우선, 법학과 우선을 외치며 치열한 경쟁체제에 뛰어들기를 마다하지 않습니다. 대학은 대학대로, 입시과정에서 창의적이고 유연한 사고력을 가진 학생을 선발하려 하기 보다는 국·영·수 과목 성적이 우수한, 그래서 사법시험과 같은 획일적 전형에 익숙한 학생들을 골라 뽑는 데 여념이 없게 됩니다.

문제는 여기에 그치지 않습니다. 사법시험제도는 초등학교-중학교-고등학교-대학교로 이어지는 우리 교육체계를 법률가 양성체계로부터 단절시키고 있습니다. 사법시험은 법률에 관한 지식을 아주 좁은 법해석학 혹은 ‘법도그마’에만 한정시키고 그에 관한 단순지식만 측정합니다. 이 과정에서, 인간과 사회와 역사에 관한 다양한 이해와 현실적용능력을 함양하고자 하였던, 16년에 걸친 정규의 교육과정과 교육내용은 이제 사법시험 앞에서는 무용한 것이 되어 버리고 차라리 신림동 고시촌의 총정리 문제풀이가 더 의미 있는 것으로 받아들여지게 됩니다.

우리 교육은 그동안 많은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실제 그동안 우리 사회는 시대의 변화에 부응하는 대학교육을 이루기 위해 많은 노력들을 해 왔습니다. 특히 1990년대 중반 이래 시도되었던 학부제의 구상은 다양한 지식과 교양을 바탕으로 창의적이고 능동적인 사고능력을 갖춘 고급인력을 양산하고자 한 것입니다. 경직된 전공의 벽에 갇혀 틀에 박힌 지식이나 획일적인 사고방식을 익히기 보다는, 스스로 문제를 발견하고 다양하고 유연한 사고력과 창의성으로 그 문제를 해결하는 능력을 함양하는 것이 대학의 역할로 설정되었던 것입니다.

그에 이은 제7차 교육과정은, 중학교나 고등학교의 교육이 주어진 지식을 피동적으로 암기하고 재구성하는 수준에서 벗어나 각종의 탐구활동이나 선택학습 방식들을 통해 자신의 생활을 자율적이고도 창의적으로 수행해 나갈 수 있는 능력을 함양하는데에 초점을 맞추도록 하고 있습니다.

최근 의학전문대학원이나 MBA과정, 건축대학원 등을 중심으로 고등전문직업교육체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정부의 구상 또한 이런 교육과정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초등학교에서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거쳐 대학에 이르는 일련의 교육과정에서 건전하고도 민주적인 시민의식을 가진 교양인을 양성하고, 이러한 교양인으로서의 대학졸업자들을 대상으로 대학원과정에서 집중적인 전문직업교육을 실시함으로써 의사나 전문경영인, 건축가 등의 전문직종들을 양성하고자 하는 틀이 그것입니다.

그리고 로스쿨제도는 바로 이런 맥락에서 대학교육과 법률가의 양성을 연계시키고자 한 것입니다.

로스쿨은 우리 교육체계와 가장 잘 어울리는 법률가 양성제도입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로스쿨 제도가 사법시험이 야기한 이 모든 병폐들을 다 치유한다고 생각하지는 않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그 중요한 부분은 개선할 수 있을 것이라는 신념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우선 대학원과정에서 법률가 양성교육을 하게 되는 로스쿨은 학부제를 기반으로 하는 우리 대학교육체제와 가장 잘 들어맞는 제도입니다. 그것은 학부에서의 다양한 전공과 폭넓은 교양을 쌓게 하고, 이렇게 획득한 교양인으로서의 소양을 대학원과정에 끌어들여 법률전문직에 필요한 법률지식과 기술, 직업윤리 등과 제대로 연결시킬 수 있도록 하는 틀을 제공하기 때문입니다.

그 뿐 아닙니다. 그것은 이미 그 원조격인 독일에서조차 비판받는 ‘통일적 법률가의 양성’이라는 획일교육의 틀을 해소하고, 다양한 세계관과 가치관을 토대로 다양한 내용의 법학교육을 가능케 함으로써 종래 고립무원격인 법학으로 하여금 다른 학문영역과 원활히 교류할 수 있는 기회까지 제공하게 됩니다. 마치 학부제가 전공의 벽을 헐고 폭넓은 교양교육을 가능케 하고자 하였듯이 로스쿨은 법학이라는 ‘아집’을 깨고 사회과학으로서의 법학이 재구성될 수 있는 기회 또한 마련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리 학술과 대학교육의 균형적 발전이라는 모습으로 나타나겠지요.

로스쿨이 도입되면 상당수의 법과대학이 없어지게 됩니다. 지나친 비약일지 모르겠지만, 이런 결과는 대학입시의 고통을 완화하는 효과를 야기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까지는 법률가가 되기 위해서는 법대로 가는 것이 우선시되었지만, 로스쿨 제도하에서는 아무 학과나 적성과 능력에 맞는 대로 진학하여 거기서 열심히 하기만 하면 된다는 점에서 학과선호도가 보다 평준화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마디로 로스쿨제도의 장점은 현재 실시 중 혹은 추진 중인 우리 교육체계의 개선방향과 매우 잘 어울린다는 데에 있습니다. 제7차 교육과정이나 학부제의 구상, 고등전문직업교육체제의 도입, 평생교육을 통한 삶의 질 향상과 같은 일련의 교육체계들이 로스쿨 제도의 도입으로 더욱 효율적으로 작동해질 수 있게 될 뿐 아니라, 역으로 법률가 양성제도 자체도 이런 전반적인 교육체계와 어울림으로써 보다 우수하고도 경쟁력을 갖춘 법률가를 양성할 수 있게 된다는 것입니다.

정봉주 의원님

그러나 저는 이런 생각들이 오로지 “로스쿨주의자”에만 한정되어 있는 듯한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습니다. 사법시험 제도가 우리 교육현실에 커다란 부담이 되고 있음을 모르지 않음에도 마치 그것이 대륙법계의 특성인 양 호도하는 입장이나, 교육과정의 전후맥락조차도 포착하지 않은 채 사법시험 합격자 수만 늘이면 된다, 혹은 법학교육만 제대로 시키면 될 것 아니냐고 강변하는 경우들을 보면서 그냥 한숨만 늘어갑니다.

어떻게 보면 저는 법학을 가르치는 교육자도, 예쁜 두 딸의 아버지도 아니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저는 학생들에게 고시답안 작성요령을 주입하는 강사이자, 초조히 시험결과를 기다리는 입시생과 그 언젠가부터 ‘예비입시생’이 되기를 강요당한 한 중학생의 학부모가 되어야 했습니다. 저는 이런 자기분열에서 한시라도 빨리 벗어나고 싶습니다. 그리고 그 가능성의 한 자락을 저는 로스쿨 제도에서 찾고자 합니다.

이에 저는 의원님께 이 제도가 조속히 입법될 수 있도록 더욱더 노력해 주시기를 새삼 당부드립니다. 그것은 법률가를 지망하는 법대생이나 대학입시생의 불안을 덜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동시에 그들이 공부하고 싶은 것들을 마음대로 공부하고서도 장차 그들이 원하는 법률전문직으로 진출할 수 있다는 믿음과 확신을 그들이 가질 수 있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더 이상 시험출제관이나 채점관의 눈치를 보지 않고서도 법률가가 될 수 있게 되는 것, 법률교과서뿐 아니라 데카르트와 칸트와 쇼펜하우어를 읽고도 법률가가 될 수 있게 되는 것, 도서관이나 고시원이 아니라 사회봉사현장이나 취미생활공간에서 대학과정을 보내고도 법률가가 될 수 있게 되는 것, 바로 그에 대한 확신을 우리의 학생들과 자녀들에게 주고 싶기 때문인 것입니다.

의원님의 더욱 각별한 관심과 노력 부탁드립니다.

11월 30일

한상희 드림

⑦ “국회, ‘변호사기득권보호위원회’의 악명을 씻어주십시오”

⑥ “로스쿨에서의 교육, 그 변화를 상상해 보십시오”

⑤ “로스쿨 반대 이유, 이의있습니다”

④ “획일적인 사법연수원 교육, 이제 수명을 다했습니다”

③ “전태일이라면 로스쿨 도입에 동의했을 것”

② “세상은 왜 로스쿨을 원할까요”

① “일본 로스쿨, 똑바로 보아야 합니다”

한상희(사법감시센터 소장, 건국대 법학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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