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6-12-05   1926

<안국동窓> 일제, 독재, 그리고 뉴라이트

이른바 뉴라이트 진영에 속하는 학자들이 ‘한국근현대사 대안 교과서’라는 것을 만들어서 발표했다. 그들은 이번의 발표가 ‘최종편집본’이라고 선전했다. 그러나 문제가 불거지자 ‘시안’ 또는 ‘초안’이라고 ‘해명’했다. 아무튼 그 내용이 참으로 가관이다. 아니, 너무나 충격적이다. 노골적인 일제 찬양과 독재 찬양이기 때문이다. 이로써 뉴라이트는 그 ‘정체’를 백일 하에 드러낸 것인가?

‘교과서포럼’은 4ㆍ19혁명을 ‘학생운동’으로 격하하고 박정희의 5ㆍ16 쿠데타를 ‘혁명’으로 칭송했다. 나아가 그들은 유신독재가 행정의 집행력을 크게 높였다고 상찬하며, 심지어 전두환이 ‘발전국가를 계승했다’고 찬양한다. 여기서 나아가 일제의 악랄함을 웅변하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는 아예 삭제하고, 일제의 지배로 조선인들이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아주 잘 살게 되었다고 찬양했다. 박정희와 히로히토가 부활해서 돌아온 것 같다. 전두환은 덩실덩실 춤을 추었으리라. 우리는 일본의 극우파들이 ‘새 역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을 만들어서 역사를 왜곡하기에 광분하고 있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교과서포럼’은 바로 이 ‘새역모를 벤치마킹한 것’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한승동, ‘뉴라이트 교과서 분석3’, <한겨레신문>, 2006년 12월 3일).

‘한국근현대사 대안 교과서’라는 것을 만든 ‘교과서포럼’(공동대표 박효종 서울대 교수, 이영훈 서울대 교수, 차상철 충남대 교수)이라는 모임에 속하는 학자들은 학자라는 존재가 얼마나 위험할 수 있는가를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것 같다. 이들은 자신들의 지적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참으로 무서운 교과서를 만들어서 이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청소년들의 머릿속에 심어주려고 한다. 이들은 이 나라의 동량들을 일제와 독재를 찬양하는 얼빠진 사람들로 만들려고 한다. 이들은 역사 자체를 없애려고 한다. 박정희와 히로히토가 무덤 속에서 박수를 치고 춤을 출 것이 틀림없다.

학자라는 자들이 수많은 사람들의 피땀으로 이 정도로나마 겨우 바로 세운 역사를 다시금 완전히 때려눕히려 하다니! 타임머신에 태워 유신독재나 일제 치하로 보내야 할 자들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는 이미 한승조(고려대)의 일제 찬양 행각, 김용서(이화여대)의 쿠데타 요구 행각에 경악한 적이 있다. 그런데 이제는 이러한 ‘보수 학자’들이 대대적으로 조직을 꾸려서 아예 교과서를 만든 것이다. 등골이 오싹하는 무서운 상황이 아닐 수 없다. 도대체 어떤 사람들과 단체들이 ‘교과서포럼’을 꾸려서 이런 무서운 교과서를 만들었을까?

‘교과서포럼’ 홈페이지(www.textforum.net)를 보니, 운영위원은 강규형 (명지대 교수 – 역사학), 김광동 (나라정책원 원장 – 정치학), 김영호 (성신여대 교수 – 정치학), 김일영 (성균관대 교수 – 정치학), 김종석 (홍익대 교수 – 경제학), 김주성 (한국교원대 교수 – 정치학), 박효종 (서울대 교수 – 정치학), 신지호 (서강대 겸임교수 – 정치학), 이영훈 (서울대 교수 – 경제학), 전상인 (서울대 교수 – 사회학/운영위원장), 정성화 (명지대 교수 – 역사학), 차상철 (충남대 교수 – 역사학), 함인희 (이화여대 교수 – 사회학) 등이며, 고문은 김동규 (고려대 명예교수), 김진홍 (뉴라이트전국연대 의장), 안병직 (서울대 명예교수), 유영익 (연세대 석좌교수), 윤종영 (전 교육부 역사담당 편수관), 윤형섭 (전 교육부장관), 이대근 (성균관대 교수), 이동복 (북한민주화포럼 대표), 이상진 (전 초중고교장협의회 회장), 이성무 (전 국사편찬위원장), 이택휘 (한양대 특임교수), 이인호 (명지대 석좌교수), 이주영 (건국대 교수), 최문형 (한양대 명예교수), 한흥수 (연세대 명예교수) 등이다. 그리고 참여/후원단체로 교육공동체시민연합, 기독교사회책임, 바른사회를 위한 시민회의, 북한민주화네트워크, 북한민주화 포럼, 자유주의연대, 초/중/고 교장협의회, 학교를 사랑하는 학부모 모임, 한국교원단체총연합회, 한국사학법인연합회, 교과서포럼 후원회 등이 제시되어 있다.

그런데 언론의 보도를 보니 ‘교과서포럼’ 내부에서도 제대로 토의가 되지 않은 채 이 무서운 교과서가 발표되었던 모양이다. ‘교과서포럼’ 자체가 ‘신뢰’와는 거리가 먼 방식으로 운영되었던 것이다. 이번의 발표와 관련해서 특히 세 사람의 이름이 눈에 띈다. 안병직, 이영훈, 박효종이 그들이다. 세 사람에 대해서 좀더 자세히 살펴보자.

안병직은 1936년 경남 함안에서 태어났으며, 현재 서울대 경제학과 명예교수이고, 2006년 4월에 뉴라이트재단 이사장을 맡았다. 1980년 초에 그는 ‘식민지반봉건사회론’을 주장했다. 그러나 1980년대 중반에 돌연 ‘중진자본주의론’을 주장했다. 전자는 쉽게 말해서 ‘후진사회’라는 것이고, 후자는 ‘선진국’으로 나아가는 사회라는 뜻이다. 두 주장은 그야말로 적대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놀랍게도 이런 커다란 ‘변신’이 특별한 학문적 성취에 의한 것이 아니었다. 이 때문에 그는 ‘변신’이 아니라 ‘변절’했다는 비판을 받았다(김종철, ‘투사로 변신한 원로학자’, <한겨레신문>, 2006년 5월 1일).

그러나 그는 일제 때의 친일파들이 그랬듯이 ‘변절’을 정당화하기 위한 노력에 힘을 쏟았다. 그 결과가 ‘식민지근대화론’이다. 일제가 한국을 근대화했고, 그것을 박정희가 이어받아 ‘중진국’을 만들었으며, 그래서 오늘날 한국이 세계 10위권의 경제대국이 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논리의 연장에서 지금 한국 사회가 동요하고 있는 것은 민주화세력 때문이라고 주장한다. 참으로 무서운 주장이 아닐 수 없다. 그러나 근대화는 민주주의의 확립으로 일단락된다. 이런 점에서 민족해방과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이야말로 근대화의 고갱이가 아닐 수 없다.

이영훈은 1951년 대구에서 태어났으며 안병직의 제자로서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교수이다. ‘교과서포럼’의 공동대표인 그는 재작년 9월에 문화방송의 백분토론에 나와서 ‘일본군 위안부’와 관련해서 일제가 강제동원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고 주장했다. 다시 말해서 ‘일본군 위안부’가 ‘자발적 창녀’일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던 것이다. 일본 정부의 주장을 고스란히 되풀이한 이런 주장에 대해 시민들의 분노가 하늘을 찌르자 같은 과의 양동휴 교수는 ‘네티즌들은 역사교육을 다시 받든지 칼을 들고 와서 이영훈 선생과 나를 찔러라’고 외치며 나서기도 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이영훈은 식민지근대화론의 대표자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으며, 이와 함께 시민들을 향한 발언을 적극적으로 펼치기 시작했다. 2005년 4월에 그는 뉴라이트 잡지에 다시 ‘일본군 위안부’에 관해 논란이 큰 주장을 제시했고, 또한 12월에는 박정희에 관한 뉴라이트 토론회에서 박정희를 ‘대한민국 종합상사의 CEO’라고 추켜세웠다. 이영훈은 이른바 ‘실증’의 이름으로 일제와 독재를 되살리는 작업을 이렇듯 열심히 하고 있다. 그는 ‘실증’의 이름으로 일제와 독재를 되살리는 ‘정치’를 하고 있는 것이다.

박효종은 1947년 생으로 서울대 국민윤리교육과 교수이다. 그는 2002년에 만들어진 ‘바른사회시민회의’(노태우 때 만들어진 ‘바르게살기운동협의회’와 이름이 비슷하다)의 공동대표이며, 이번에 문제를 일으킨 ‘교과서포럼’의 상임공동대표이다. 최근에 그는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 김지하 시인, 박종화 목사, 법륜 스님, 양승규 세종대 총장 등과 ‘화해상생’이라는 모임을 만들어서 ‘화해ㆍ상생의 중도주의에 대한 성찰’이라는 제목의 토론회를 열기도 했다. 도대체 그가 생각하는 ‘화해ㆍ상생’은 무엇일까? 일제와 독재를 되살리고 민족해방과 민주주의를 위한 노력을 죽이는 것인가?

2006년 12월 4일 ‘교과서포럼’은 운영위원회 이름으로 ‘폭력행위에 의한 학술 심포지엄 무산 사태에 대한 교과서포럼의 입장’이라는 제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이 성명서 첫단락에서 그들은 시민들의 제지를 ‘폭력사태’이자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으로 규정하고 사법당국의 조사와 처벌을 요구했다. 그러나 자신들이 역사와 민족을 상대로 저지른 ‘폭력’에 대한 ‘반성’은 없다. 또한 ‘자유민주주의’를 용납하지 않았던 일제와 박정희와 전두환을 찬양하는 것이야말로 ‘자유민주주의에 대한 심각한 도전’이라는 사실에 대한 ‘반성’은 없다. 그들은 ‘자유민주주의’를 악용해서 ‘자유민주주의’를 위협하려고 할 뿐이다. 그런데 한나라당 유기준 대변인은 이 무서운 교과서를 두고 ‘학문의 발전’이라고 칭찬했다. 한나라당은 결국 일제와 독재의 부활을 꿈꾸는가?

이 ‘사건’은 ‘서울대 문제’에 대해 다시금 깊이 고민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서울대는 민주화를 위해서 큰 구실을 했지만, 독재를 위해서도 많은 일을 했다. 군부독재는 ‘육군사관학교와 서울대의 합작품’이라고도 한다. 서울대는 개교 60주년을 맞아 이것저것 큰 행사를 벌였지만, 정작 자기의 역사를 똑바로 살펴보는 일은 제대로 하지 않은 것 같다. 서울대에서 서울대 교수들의 주도로 이렇게 참담한 ‘역사 때려눕히기’가 자행되었다는 사실에 대해 서울대 구성원들은 비판적 성찰과 대응을 서둘러야 한다. 서울대는 일제와 독재를 찬양하는 자들이 아니라 민족해방과 민주주의의 역사를 찬양하는 시민들의 것이다.

홍성태 (상지대 교수, 정책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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