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7-02-28   1016

[국민참여재판-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⑥] “국민사법참여, 사법부 신뢰회복의 초석입니다”

이 편지는 국민의 사법참여를 위한 국민참여재판의 이해를 돕고 관련 법안의 도입을 바라는 참여연대 사법감시센터(소장 : 한상희, 건국대 교수)가, 국회 법사위위원들에게 보내는 ‘국민참여재판-선택이 아닌 필수입니다’ 릴레이 편지 제6호 입니다.

존경하는 문병호 의원님!

몇 년 전 어느 토론회에서 처음 뵙고, 법사위 소위원회 위원장으로서 사법개혁을 위하여 적극적으로 활동하시는 의원님을 보면서 신뢰와 존경의 마음을 갖고 있습니다.

마침 며칠 전 법사위 4인소위에서 “국민의 형사재판참여에 관한 법률안”을 이번 임시국회에서 통과시키기로 합의하였다는 반가운 소식을 접하면서 편지를 씁니다.

아직도 본회의 통과까지는 많은 산을 넘어야 하고, 또 법률전문가, 학자, 국민들 사이에서 국민의 재판참여에 대하여 충분한 이해가 부족한 상황이므로 이 자리를 빌어 외람되게도 몇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공정한 사법은 강고한 정부의 기둥입니다

1987년 6월 뜨거운 여름 온 국민의 민주화 함성소리가 아직도 귀에 울리는 듯합니다. 군사독재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국민의 열망은 결실을 맺어 어느덧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동안 정치, 사회, 문화, 경제 등 사회의 다방면에서 우여곡절이 없지는 않아도 꾸준히 민주화와 선진화가 진행되어 왔다는 점을 부정할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유독 사법부만이 이러한 민주화의 시대적 흐름에서 뒤떨어져 있었던 것 같습니다. 국가권력의 중요한 한 축인 사법권력에 대하여 우리나라의 민주적, 국민적 견제와 참여는 거의 전무합니다. 이러한 때에 국민이 직접 배심원으로 형사재판에서 유무죄와 양형에 참여하는 제도는 우리나라의 민주주의와 형사사법을 한 단계 높일 큰 가능성을 여는 것입니다.

대법원장의 법관임명과 대법관추천, 그리고 직업법관만에 의한 재판제도가 과거에는 정치권력으로부터 사법의 독립을 지키는 데에 기여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21세기의 대한민국에서는 더 이상 정치권력이 부당히 법원의 재판에 관여하는 것을 상상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다른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유전무죄 무전유죄”, 법조비리, 전관예우 등으로 집약되는 사법부에 대한 불신은 이제 그 위험수위를 넘어서고 있다는 느낌입니다. 일부의 문제일 뿐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너무나 자주, 그리고 광범위한 현상이 되어 있습니다. 최근의 김홍수비리사건이나 석궁사건에 대한 국민의 반응은 좋은 예입니다. 사법제도, 특히 형사사법제도가 국민의 기대수준에 미치지 못하여 사법부 전체에 대한 불신으로 악화되는 상황입니다. 획기적인 조치를 취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었습니다.

뉴욕주 법원건물에 쓰여있던 “공정한 사법은 강고한 정부의 기둥이다”라는 문구가 새삼 떠오릅니다. 선진국의 문턱에 있는 우리나라가 진정한 민주적 선진국에 진입하기 위해서는 사법부의 신뢰회복이 급선무이지 않을까 싶습니다. 위기를 기회로 전환하고, 국민적 갈등과 불만을 적법절차로 해소할 수 있는 개혁이 절박한 때가 아닌가 합니다.

우리 국민의 의식수준은 세계 최고수준입니다

의원님은 사법참여에 대하여 기본적으로 찬동하시면서도 작년 9월 사법참여공청회에서 “우리나라 국민의 의식수준이 참여재판을 소화할 수 있는지” 질문을 하신 적이 있습니다. 유사한 질문은 법사위에서도 여러 차례 등장합니다. 배심원이 학벌, 지연, 혈연 등의 연고주의에 의하여 왜곡될 우려는 없는지, 피고인이나 이해관계자로부터 협박, 매수 등의 위험은 없는지 질문합니다. 좋은 질문들입니다.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경우의 부작용에 대하여 꼼꼼히 점검하고 대책을 마련하는 것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구더기 무서워 장 못 담글 수는 없습니다. 우리 국민의 평균적 의식수준, 교육수준, 지능지수 등은 세계적으로도 최상위에 속한다는 점은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고등교육을 받은 국민의 비율은 선진국보다도 높지 않습니까? 지난 20년 사이에 대통령 직선제, 국회의원선거, 지방자치 등의 민주주의가 성공적으로 정착되었고, 토론과 관용의 문화도 성숙하고 있습니다.

12세기에 영국에서 시작된 것이 배심제입니다. 1990년대에는 러시아, 스페인이 배심제를 부활하여 성공적으로 운영 중입니다. 이들 나라에서 배심제가 폐지된 적이 있습니다만, 그 이유는 국민의 의식수준이 낮아서가 아니고, 독재정권이 권력을 장악하여 배심제를 폐지했기 때문입니다. 1920년대에 십여 년간 실시하다가 피고인이 선택하지 않아 유야무야 정지된 일본도 2009년부터 다시 시작한다고 합니다.

우리 국민이 이들 나라의 국민보다 못하다는 증거가 없는 이상 국민의 의식수준은 전혀 문제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지난 3년간 사법개혁위원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의 기획추진단에 근무하면서 5차례의 국민참여 모의재판을 직접 경험하였고, 배심원들의 평의과정을 빠짐없이 모니터한 입장에서 말씀드리면, 배심원들의 판단능력과 법적 지식, 상식적 판단은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것이었습니다.

매번의 설문조사에서 배심원들은 무죄추정의 원칙, 합리적 의심의 여지가 없는 입증이라는 원리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할 수 있다고 답하였고, 실제 그렇게 평결하였습니다. 성폭행사건에서 여성배심원들은 여성피해자의 입장만을 두둔하지 않고, 형사소송법의 증거법칙에 의하여 무죄의견을 제출하기도 하였습니다.

사실 처음 모의재판을 하면서 국민의 의식수준에 대해 반신반의하였습니다. 그러나, 5차례의 국민참여 모의재판을 서울, 부산, 광주 등에서 시행하고 나서는 완전한 기우에 불과하다고 확신하게 되었습니다. 모의재판결과 국민의 의식수준이 전혀 미달이라고 판단되었다면, 참여법안은 추진되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배심원은 공정한 선정절차를 거쳐 선발됩니다

배심원이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또는 매수나 협박에 의하여 왜곡된 결정을 할 가능성은 어느 나라, 어느 시대에나 있습니다. 그러나 이는 동시에 직업법관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법관의 제척, 기피, 회피 제도가 있고, 청렴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배심원의 경우에도 이해관계자는 배제되도록 참여법안에 규정되어 있고, 엄격한 배심원 선정절차에서 배심원 후보자에게 면밀한 질문을 하여 배심원을 선정하도록 하고 있습니다.

미국 영화나 소설을 통하여 배심제를 접하였다고 하여도 미국에 있는 엄격한 배심원 선정절차에 대하여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미국에서도 그리고 우리의 참여법안에서도 배심원은 단순히 무작위로 추첨하여 결정되지 않습니다. 일단 무작위로 추첨된 후보자는 검사와 변호인의 질문을 통하여 부적절한 사유가 없는지 철저히 검증되고, 사유가 있으면 배제됩니다.

또한 불공정할 확실한 증거가 없어도 검사와 피고인은 일정한 수만큼 이유를 제시하지 않고도 후보자를 배제할 수 있습니다. 그만큼 배심원의 공정성은 철저하게 보장됩니다. 배심원에 대한 회유나 협박, 매수는 금지되고, 이를 시도하면 형벌로 처벌되도록 정하여 적절하게 대책을 마련해 놓았습니다.

오히려 직업법관의 경우, 법관에 대한 기피가 전혀 수용되지 않아 사법에 대한 불신을 키우고 있습니다만 배심원의 경우에는 그러한 위험이 없습니다. 전관변호사라는 점을 배심원은 알 수 없으며, 혹시 변호사 측에서 이를 흘렸다가는 오히려 역풍을 맞을 수 있습니다. 검사나 피고인, 변호사와 배심원이 학교동창, 선후배 등 커넥션이 있을 가능성은 거의 없습니다. 공정한 배심원을 구성할 수 있다는 점에서 법관에 전혀 뒤지지 않는다고 감히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참여법안은 우리의 독창적 참여제도를 규정하였습니다

작년 9월 사법참여 공청회에서는 사법참여에 동의하면서도 배심제를 할 것인지, 참심제를 할 것인지에 대하여 상반되는 의견이 제기되었습니다. 이는 사개위나 사개추위에서도 마찬가지였습니다. 학계에서도 의견이 분분합니다. 배심이냐 참심이냐 하고 논쟁하기 시작하면 끝도 없고 결론이 날 수도 없습니다. 두 제도는 나름대로의 장단점을 갖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어느 쪽도 시행해 본 적이 없어 어떠한 실증적 데이터도 갖고 있지 않기 때문입니다.

양자선택의 문제로 간다면,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현명하게도 사개위에서는 1단계 사법참여에서는 배심과 참심을 “혼용”하기로 합의하였고, 그 결과가 사법참여법안에 들어있습니다. 이러한 제도는 영미의 배심제나 독일의 참심제는 물론 배심과 참심을 혼용하고 있는 오스트리아의 배심제와도 다른 우리나라의 독특한 제도입니다. 최근 우리는 영미법과 대륙법의 접근에 주목하면서 다양한 절충적 제도를 도입하였습니다. 헌법재판소의 위헌심사제도나 국가인권위원회 등은 미국, 독일 등 선진국과 아시아 국가들도 많은 관심을 갖고 있습니다. 사법참여제도도 그러한 성공적 사례 중 하나가 되리라고 믿습니다.

작년 7월 미국 볼티모어의 법사회학 학술대회에서 미국 등 외국의 배심전문가들은 우리의 독특한 참여제도에 대하여 상당한 관심과 흥미를 표명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단순히 미국배심제나 독일참심제를 모방하였다면 그들의 반응이 어떠했을까 생각하면 아찔하기까지 합니다.

의원님은 이러한 혼용형 참여제도가 양 제도의 단점만 가져오는 문제점은 없는지 질문하신 적이 있습니다. 그러한 위험성에 대하여 경계하고 대응해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참여법안과 동일한 방식으로 시행해본 지난 4차례의 모의재판에서 중대한 문제점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만일 수차례의 모의재판에서 그러한 문제점이 발견되었다면, 사개추위에서 먼저 법안을 수정하자고 하였을 것입니다. 그러한 일은 발생하지 않았습니다. 다만, 세부적 문제점은 있다고 봅니다.

먼저, 참여법안에 의하면 피고인이 공소사실을 인정하는 자백의 경우에도 참여재판이 가능한 것으로 되어 있어, 이에 대한 비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는 참여제도에 대한 오해에서 기인합니다. 배심이 유무죄만 결정하고 양형은 판사가 하는 영미와 달리 우리 제도는 양형에도 배심원이 참여하므로, 자백한 경우에도 양형에 대하여는 참여재판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러한 이유에서 우리와 유사한 오스트리아에서도 피고인이 자백하여도 배심재판으로 하였을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나라는 양형에 대하여 국민의 관심이 크고 불신도 있는 만큼 배심원의 양형의견이 사전에 법관에게 전달되는 장점은 경시할 수 없습니다.

둘째, 참여법안 제75조 제2항은 “심리에 관여한 배심원은 제1항의 설명을 들은 후 유무죄에 관하여 평의하고, 전원의 의견이 일치하면 그에 따라 평결한다. 다만, 배심원 과반수의 요청이 있으면 심리에 관여한 판사의 의견을 들을 수 있다”라고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3항에서 배심원 전원의 의견이 일치하지 않을 때에는 평결을 하기 전에 심리에 관여한 판사의 의견을 듣도록 하고 있습니다. 이 때 제2항 단서의 “판사의 의견”과 제3항의 “판사의 의견”이 동일한지 문제됩니다. 이 부분은 모의재판에서도 판사와 배심원이 명확하게 구별하지 못하여 종종 혼란이 발생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배심원 평의에 판사가 참여하여 법률적인 지식 등 외에 유무죄에 관한 의견까지 제시할 수 있는지 여부가 혼란스러웠던 것입니다.

제2항 단서의 “판사의 의견”을 제3항과 동일하게 해석하면, 박기준 전문위원의 검토보고서 93쪽에서 지적하는 바와 같이 제2항이 규정하고 있는 배심적 평의의 취지에 부합하지 않게 될 위험이 있습니다. 따라서, 제2항 단서는 제1항의 설시를 보충하는 한도에서만 허용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를 명확히 하기 위하여, 제2항의 단서를 “배심원 과반수의 요청이 있으면 심리에 관여한 판사는 평의 중에도 제1항의 설명에 관하여 보충 설명할 수 있다.”로 수정하는 것이 바람직합니다. 보충 설명한다는 의미는 당해사건에 대하여 판사의 유무죄 의견을 밝히는 것은 허용되지 않는다는 의미입니다. 3항의 “판사의 의견”은 유무죄에 대한 의견을 포함합니다.

셋째, 참여법안 제75조 제3항은 유무죄에 관하여 전원일치에 이르지 못하였을 때에 다수결에 의하여 유무죄를 평결하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1단계 참여제도는 권고적 단계이므로 단순 다수결로 하여도 무방하나, 가중 다수결도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다만, 2단계의 기속적 단계에서는 배심원의 성급한 유죄평결을 막기 위하여도 가중 다수결을 도입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봅니다. 이때에는 배심원의 숫자를 너무 다양화하면 정족수에서 불균형이 발생하므로, 부인하는 경우와 자백한 경우로 이원화하는 정도가 적절하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아울러, 기속적 단계에서는 판사와 배심원이 양형에 관하여 공동으로 결정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넷째, 배심원의 평결결과를 어떻게 공개할 것인지는 논란이 많이 되었던 부분입니다. 결국 참여법안 제75조 제6항에서는 평결 결과를 소송기록에 편철한다고만 하고 있고 평결 결과의 낭독에 관한 규정이 없고, 제78조는 “판결서에는 배심원이 재판에 참여하였다는 취지를 기재하여야 하고, 배심원의 의견을 기재할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배심원의 의견이 권고적 효력만을 가진다고 하여도, 판사는 합의과정에서 배심원의 의견을 무겁게 받아들이고 도저히 그대로 따를 수가 없다는 경우에만 배심원의 결정과 다른 결정을 할 수 있다고 하는 방안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참여재판의 비용은 국민의 법교육에 대한 투자입니다

참여재판을 하게 되면 지금보다는 재판의 비용이 증가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증가폭은 그리 크지 않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무엇보다 참여재판의 비용과 공판중심주의의 비용은 구별해야 합니다. 집중심리제도나 증인소환 등에서 발생하는 비용은 공판중심주의를 정착시키기 위하여 필요한 비용으로 참여재판과 직접 관련이 없습니다. 국선변호사의 확대도 참여재판과는 무관하게 이미 시행되고 있는 것입니다.

순수히 참여재판에 드는 비용 중 가장 큰 부분은 배심원 수당일 것입니다만, 이도 집중심리 등을 통하여 최소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점은 참여재판을 통하여 국가와 국민이 얻게 되는 효과입니다. 사법참여를 통하여 사법에 대한 국민의 신뢰는 제고될 것입니다. 또한 국민은 직접 법정에 와서 형사절차의 진행을 경험하고 참여함으로써 살아있는 법교육을 받게 됩니다. 즉 참여재판에 들어가는 배심원 수당은 국민에 대한 ‘법교육 투자’라고 볼 수 있습니다.

사법참여를 통하여 법원과 국민이 가까워지고 사법절차는 보다 투명해질 것입니다. 이를 통하여, 사법과 정부에 대한 신뢰의 제고와 사회갈등의 최소화, 국민법지식의 향상이라는 ‘무형의 사회간접자본’이 확충될 수 있습니다. 현재의 작은 비용에 연연하지 않고 크게 장래를 내다보는 투자가 필요한 시점이라고도 생각됩니다.

편지가 길어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법관과 국민이 합심하여 사법정의를 실현하는 모습이 우리 법정에서도 실현될 수 있도록 국민참여법안에 더욱 힘을 실어주실 것을 간곡히 부탁드리면서 의원님과 가정에 행복이 가득하기를 기원합니다.

2007년 2월 28일

한상훈 드림

한상훈(사법감시센터 실행위원, 연세대 법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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