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7-03-09   1465

<안국동窓> 한미FTA저지, 지금부터 시작이다

‘금속피로’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뭐라 마땅한 이유없이 추락한 비행기 사고의 원인을 조사하던 조사팀이 있었다. 장기간의 치밀한 조사 끝에 내린 사고 원인이 ‘금속피로’이다. 여물기로야 지상에 그 무엇이 따를까마는, 오랜 시간에 걸친 스트레스에 쇠도 견디지 못해 결국은 부러졌고 이는 대형 참사의 원인이 되었다는 말이다.

쇠도 그런데 사람이나 운동은 오직하랴. 한미FTA를 저지하기 위해 1년에 걸친 장기운동의 결과 피로감을 호소하는 이나 단체가 한 둘이 아니다. 그래서 대략 3월 말에 타결되면 그냥 집으로 간다는 분위기가 없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지금 그만 두면 ‘대형참사’는 불가피하다. 또 그만 두고 싶어도 그럴 수도 없다.

만약 3월 말에 한미FTA가 타결되면, 그로부터 90일 즉 대략 6월 말에 양국 정상이 워싱턴에서 정상회담을 빙자해 조인식을 가질 것이라 한다. 왜 90일 뒤인가. 대답은 간단하다. 미국내법 즉 TPA에 그렇게 규정되어 있기 때문이다. 체결예정일로부터 90일 전에 대통령은 이를 의회에 통고해야 하고, 이후 90일 동안 의회와 반드시 ‘협의(consultation)’을 거쳐야만 한다. 이 90일 기간 동안 아마 미의회, 이익단체들의 각종 요구가 다시 제기될 것이고 재협상 요구도 있을 수 있다. 그런 다음 6월 말에 정식 조인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쉽게 말해 한미FTA는 미국법에 따라 시작되고 미국법에 따라 종결된다.

아무튼 정식 조인 혹은 체결 이후 양국 의회로 공이 넘어 간다. 7월 이후 최종협정문이 한국 국회에 비준동의안과 함께 넘어 올 것이고, 국회는 이에 대해 가부를 결정하게 된다. 물론 수정은 안된다. 미국은 어떨까. TPA에 따르면 체결이후 행정부는 최종협정문과 함께 ‘이행법안(implementing bill)’을 ‘상하양원 회기 중 어느 날’을 택해 제출해야 한다. ‘어느 날’에 대한 규정은 없다. 제출일로부터 90일 내에 미 상하양원은 수정없는 가부표결에 들어가고 이로써 체결 절차는 완료된다. 가장 빠른 시나리오를 보자면, 만일 6월 30일 조인되고 그 다음 주 월요일 즉 7월 2일에 이행법안이 제출되었다면 그로부터 90일 이후인 9월 말까지 미의회가 가부를 결정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미행정부가 이행법안을 언제 제출하는가에 따라, 이 기간은 얼마든지 뒤로 늘어날 수가 있는 것이다.

반면 한국 국회는 7월 이후 여러 관련 법률과 함께 넘어 온 비준동의안을 그 이후 표결하면 된다. 정해진 날은 없다. 7월 임시국회나 9월 정기국회가 되겠지만 이미 대선+총선국면이다. 과연 대권이 눈앞에 아른거리는 상황에서 ‘표 까먹는’ 조약에 각 당이 어떻게 나올지 현재로서는 미지수이다. 차기 국회로 넘기는 것도 가능하다.

그래서 요컨대 한미FTA가 최종적으로 ‘상황종료’되는 시점은 현재로서 특정하기 어렵다. 하지만 최소 올 9월까지는 갈 것으로 보인다.

3월 말 이후 FTA는 이제 그만하고 ‘휴가(?)’ 계획을 잡은 분들은 아마도 계획을 취소해야 할 것 같다. 그래서 보자면 가장 빠른 시나리오를 전제할 때, 미의회 ‘협의’기간인 4월-6월 말까지 미의회의 각종 요구에 대응하는 일, 6월 말 정식 조인을 막는 일, 7월 이후부터 국회비준을 저지하는 일, 9월 말 미의회의 표결에 대응하는 일이 먼저 눈에 띤다. 모르긴 해도 각 단체나 활동가 역시 여기에 걸 맞는 유연한 대응 메카니즘을 미리 준비해 두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밤잠도 식음도 잊은(!) 시민사회 활동가들의 헌신적 노력 끝에 ‘비상시국회의’가 성과적으로 개최되었다. 또 8차 협상을 앞두고 미의회의 ‘턱도 없는’ 일방적 드라이브가 전해지면서 다시금 여론이 꿈틀댄다. 정치권도 각 정당, 정파별로 이제사 본격적 반응을 보이기 시작하고 있다. 앞으로 상당한 긴장은 어쩔 수 없을 것이다. 향후 일정표를 지도삼아, 각자 ‘몸만들기’에 신경쓰면서 또 ‘팔자’라 생각하고 다시 출발해야 한다. Hic Rhodus, hic saltus! (그래 팔자다, 팔자)

이해영 (한신대 교수, 한미FTA저지범국본 정책기획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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