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금융소비자 보호 망각하고 금융 건전성 악화시키는 금융규제완화 중단해야

금산분리·전업주의 규제, 금융기관 건전성 유지 위해 필요한 원칙

국민 자산으로 잇속 챙기려는 금융기관 비도덕성 개탄스러워

어설픈 혁신 아닌 감독체계 점검, 금융사고 재발방지가 최우선

 

 

7월 19일 김주현 금융위원장은 「금융규제혁신회의」 출범식에서 금융규제혁신의 목표가 “우리 금융산업에서도 ‘BTS’와 같이 글로벌 금융시장을 선도하는 플레이어가 출현”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라며 “불가침의 성역없이 기존 규제를 근본적으로 재검토할 것”이라고 밝혔다. 그런데 막상 발표한 234개의 금융규제혁신 과제를 살펴보면 금산분리·전업주의 규제를 허물어 금융기관이 국민의 자산과 개인정보를 사유화하여 각종 수익사업에 진출할 수 있게 하는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다. 뿐만 아니라 일부 과제들은 혁신이라는 미명하에 각종 금융규제·감독을 완화하여 그렇지 않아도 취약한 금융소비자 보호와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약화시킬 가능성이 농후하다.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수익성을 좇기 위한 과도한 위험추구로 이어져 금융기관 건전성과 금융소비자 이익을 훼손할 수 있는 해당 금융규제혁신 과제에 반대한다. 금융기관에는 국민의 자산으로 막대한 돈벌이에 나서게 해주는 반면, 고물가·고금리·고환율 상황에서 코로나19로 고통받아온 국민들에게는 미약한 지원대책을 내놓은 정부의 모습은 개탄스럽다. 해당 정책은 사실상 기업과 금융회사를 위한 민원 해결에 다름 아니다. 윤석열 정부의 금융규제 완화 정책은 취소되어야 한다.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소유를 금지하고, 금융회사가 고유의 금융서비스만을 제공하도록 한 자회사 투자 및 겸영·부수업무범위 규제는 금융기관 건전성 훼손 및 이해상충을 방지하고, 우월적 지위 남용을 차단하기 위해 꼭 필요한 원칙이다. 금융기관이 추구해야 할 목적은 금융기관의 건전성과 금융소비자의 이익과 보호이다. 자본을 유통시키는 역할을 수행하는 금융이 제기능을 하지 못할 경우, 그 위험은 다른 분야에도 전이되어 전체 경제에 큰 손해를 입힐 가능성이 다분하기 때문이다. 만약 금융회사가 기업의 주주로서 사업의 수익만을 추구하거나 기업이 은행의 주주가 되어 자신의 사업에 유리하도록 의사결정을 내린다면 이것은 그러한 목적에 완전히 상충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금융위원회는 이종산업간 융·복합을 통해 효율성을 증대하는 것이 금산분리 규제의 완화근거로 타당하다고 밝히고 있다. 이는 전체 금융산업에 요구되는 안정성과 신뢰, 자금 보호의 책임은 도외시하고 자본만을 위한 효율성 증대에 천착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이번에 제시된 234개 과제는 은행연합회, 생·손보협회, 여신금융협회, 핀테크산업협회 등 금융회사 이익을 대변하는 8개 협회의 건의사항에 불과하나, 금융위원회는 이를 혁신과제로 지정해서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 관행을 확립해야 할 금융위원회가 해서는 안될 일이다.
 

혁신과제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음식배달·통신·가상자산·유통 등 부수업무 영위, 가상자산 포함 업종제한 없이 자기자본 1% 이내 투자(은행연), 캐피탈사·통신판매업 등 부수업무 제한 완화, 비금융회사 출자규제 완화 및 의결권 제한 개선(여신협), 1사 1라이선스 규제 폐지(생·손보협), 타회사 지분소유 규제 완화(손보협), 자회사 규제 완화(생보협) 등 부수업무 제한 및 투자한도 완화가 주를 이룬다. 현재 금융위원회는 금융혁신지원 특별볍상 금융규제 샌드박스 제도를 통해 소위 ‘혁신적’ 금융 서비스의 시범영업 및 임시 규제 특례를 제공하고 있다. 신한은행의 배달앱 “땡겨요”, KB국민은행의 알뜰폰 “리브엠” 등이 이와 같은 사례이며, 이번 규제혁신 과제는 금융회사가 영구적으로 해당 부수업무를 할 수 있게 해주자는 것이다. 그러나 단언컨대 음식 배달과 휴대폰 판매 허용 등은 금융의 혁신과는 무관하며, 금융회사가 고객 돈으로 온갖 장사를 할 수 있는 난장을 깔아준 것에 다름 아니다. 가상자산 관련 명확한 법률적 규제 체계가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최근 피해를 유발하고 있는 코인 사업을 은행이 영위할 수 있도록 추진하는 것 또한 심각한 문제이다. 일반 금융소비자를 대상으로 영업하는 은행이 그 어떠한 품목보다도 위험성이 높은 가상화폐 관련 투자상품을 무책임하게 판매할 경우 발생할 위험은 이미 과거 사모펀드 부실사태에서 여실히 증명된 바 있다. 면면이 금융소비자의 안전과는 관련없이 금융회사와 기업의 잇속을 챙기기 위한 요구사항이 아닐 수 없다. 
 

고객 동의없는 금융지주 계열사간 영업목적 정보공유(은행연), 정보주체의 동의없는 개인정보 수집, 이용, 처리 허용(핀산협) 등 고객의 신용정보를 동의없이 사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주요 과제이다. 금융소비자의 카드 사용내역, 보험료 납부내역 등  민감한 개인정보를 영업에 이용하는 것은 정보주체의 개인정보 자기결정권을 심각하게 침해하는 것으로 절대로 허가되어서는 안된다. 국민의 신용정보를 마케팅에 이용하겠다는 금융권의 탐욕적인 이권추구에 반대한다.
 

금융자본의 산업자본 투자는 지나친 수익률 추구로 귀결되어 단기적 경영성과에 집착할 가능성이 크고, 이는 심각한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이러한 문제를 예방할 수 있는 금융권 내부통제 시스템이 제대로 갖춰져 있지도 않은 상황이다. 현재 한국 금융회사 지배구조의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신한금융, 우리금융은 회장 등 경영진의 잘못으로 채용비리와 사모펀드 사태가 발생했음에도 사외이사와 감사위원은 기업가치 훼손, 주주권익 침해 행위에 대한 감시 소홀 등 기본적인 경영진 견제 역할조차 하지 않았다. 2016년~2020년 8월 사모펀드 등 금융투자상품 피해로 인한 금융회사의 보상액만 1조 원이 넘고, DLF·라임·옵티머스 등의 해당 상품의 환매중단액은 2조 원을 초과한다. 또한 우리은행 직원의 614억 원 횡령을 시작으로 올해만 신한은행, KB저축은행, 새마을금고, 농협 메리츠운용 등에서 10건이 넘는 횡령 사고도 발생했다. 최근 5년간 횡령범죄에 가담한 금융권 임직원만 174명, 그 규모는 1천 억 원이 넘는다. 이렇게 금융권의 내부통제가 부실한 상황에서 재발방지에 최선을 다하고 금융 감독체계를 점검하는 일이 최우선이 되어야 하지만, 금융위원회는 산업생태계의 불안정성을 가중시키고 금융권 자산 건전성을 악화시키는 규제 완화에만 나서고 있어 매우 우려스럽다. 
 

금융산업의 경쟁력은 무분별하게 산업과 금융의 경계를 허물고 이종교배하는 것에 있지 않다. 국민 경제의 안정적인 성장과 이를 위한 자본의 유동화를 위해 보다 섬세한 위험 관리와 금융감독에 힘쓰는 것이 필요하다. 금융회사가 건전성 확보에 힘써야 할 본령을 망각하고 국민의 자산을 곳간으로 각종 사업을 벌이는 것에 집중하면 국민 경제는 오히려 활력을 잃을 수 밖에 없다. 지금은 은행의 경우 자기자본 1% 내의 투자만 허용한다지만 향후 그 비중이 늘어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으며, 이러한 규제 완화는 향후 재벌의 금융자본 소유 요구로 확대될 수 있다. 이는 현재도 심각한 우리사회 경제력 집중으로 이어져 불평등·양극화를 더욱 심화할 수 있다. 금융기관의 무분별한 투자로 인한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미국이 은행의 자기자본거래를 제한한 볼커룰(Volcker Rule)을 도입하고 금융기관 규제 및 감독 강화, 소비자 및 투자자 보호 강화 등을 위한 도드 프랭크법을 입법한 사례를 잊어서는 안된다. 산업에 필요한 자금을 적시에 공급하여 경제에 마중물 역할을 해야할 금융기관이 본령을 망각하고 자신의 사업에 뛰어들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금융감독당국이 무분별한 규제완화를 중단하고 금융소비자 보호 및 건전성 확보 강화에 최우선을 다할 것을 촉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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