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2년 03월 2022-03-01   1842

[인터뷰] 여럿이 함께 모여서 법대로 해결한다 – 최초롱 ‘화난사람들’ CEO변호사

여럿이 함께 모여서 법대로 해결한다

최초롱 ‘화난사람들’ CEO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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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은혜

 

“광주 HDC 현대 아이파크 붕괴로 손해 본 사람들 모임”

 

공동소송 온라인 플랫폼 ‘화난사람들’에 올라온 글 하나. 클릭해보니 “이번 건설중단으로 손해본 분들 모이자”는 목소리다. ‘국제 매매혼 부추기는 지자체 화나요’라는 글도 있었다. 예산을 들여 상업적 매매혼을 장려하는 지자체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었다. 글쓴이는 “함께 분노하고 지자체의 시정을 요구해줄 분들을 모으고 있다”며 동참을 호소했다. 

 

이 밖에도 ‘보이스피싱 피해자 모임’, ‘제주학원 차량 초등생 사고에 화난 사람들 모임’, ‘자동차리스 지원업체 사기 피해자 모임’ 등 각종 사건사고에 분노한 이들이 함께 항의할 동지들을 찾고 있었다. 일단 알리고, 모여서 공동소송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현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지난 2018년 5월 문을 연 화난사람들은 다수의 피해자와 변호사의 연결을 돕는 공동소송 플랫폼이다. 창업주이자 주인장은 최초롱 변호사(35·사법연수원 45기)다. 그는 사법연수원 수료 후 서울고법 재판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창업에 뛰어들었다. 무엇이 ‘엘리트 코스’를 마다하게 했을까. 그는 왜 화난사람들을 모으고 있을까. 지난 2월 18일 오후 서울 동작구 화난사람들 사무실에서 최 변호사를 만났다. 

 

 

화난사람들 누적 회원수가 18만 명이다. 규모가 상당하다.

 

화난사람들에선 현재 프로젝트 100건이 넘게 진행되고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주체 대부분은 변호사나 시민단체들이다. 우리 역할은 그 프로젝트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주로 어떤 ‘화’를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모이나? 

 

여럿이 함께 ‘화’를 풀고 싶은 분들이 모이는 것 같다. 내 앞에 분노를 일으킨 어떤 문제가 있는데, 나와 같은 분노를 가진 사람, 나와 같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그럴 때 찾는 곳이 화난사람들이다.

 

공동소송을 아직까지 낯설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가 말하는 ‘공동소송’은 법적인 의미의 공동소송과는 차이가 있다. 민사소송에서 공동소송은 원고나 피고가 다수인 소송을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공동소송은 여럿이 참여하는 모든 법적인 절차를 의미한다. 통상 법적인 절차라고 하면 민·형사소송만 생각하기 쉬운데, 행정기관에 민원이나 진정, 신고하는 방법도 있다. 헌법소원, 집단분쟁조정 절차라든지 다양한 제도가 있다. 소송 외에도 효율적이고 다양한 절차가 있는데, 많은 분들에게 참여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 예를 들면,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에 대해 국민 의견을 모으는 프로젝트, 백화점 발렛 직원 성차별 인권위 진정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화난사람들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절차에 참여하고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

 

법적 절차에 다수가 참여하면, 무엇이 더 이득인가?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비용이 줄 수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증거나 참고 자료를 모으고 이를 사이트에 업로드 하는데, 유리한 증거를 모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진다. 다수가 모이면 아무래도 영향력이 커지고, 결과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협상력이 올라갈 수도 있다. 언론 주목도도 높아진다. 이는 사건 사고의 재발 방지에도, 예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화난사람들 수익 모델은 무엇인가? 공동소송은 보통 절차가 번거롭고 돈이 되지 않아 변호사들이 꺼린다고 들었다. 

 

공동소송을 진행하는 변호사들이 소송을 간편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제공한 프로그램의 월 이용료를 받고 있다. 프로그램 이용료가 우리 수익 모델이다. 공동소송은 변호사들이 꺼리는 분야다. 처리해야 하는 사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다수의 피해가 발생했는데 사건을 맡을 변호사가 없으면, 법적인 방법을 통해 피해 구제를 받기 어렵다. 이런 환경을 바꾸려면 더 많은 변호사들이 공동소송에 참여해야 한다. 변호사들이 꺼려 하는 단순 반복적 업무를 최대한 자동화하는 시스템을 만들자고 생각한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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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은혜

 

‘로톡Lawtalk’ 같이 의뢰인과 변호사를 매칭하는 서비스도 있는데 왜 공동소송이라는 아이템으로 창업하게 된 것인지?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 정보 비대칭 문제도 분명 풀어야 할 과제이지만, 그것보다 다수가 피해를 입는 사건에 눈길이 갔다. 법원에서 근무하면서도 다수가 피해를 입는 사건을 많이 맡았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 소송까지 오게 되는 사례는 매우 적다. 변호사들은 하나 같이 “나는 공동소송 하기 싫다. 한번 해보면 누구나 하지 않겠다고 할 것”이라고 고통을 호소했다. 소송위임장 같은 것도 예전에는 한 명 한 명 위임인 정보를 적어 날인해 만들었다. 우리 시스템에서는 자동으로 처리된다. 일하는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면, 피해자들이 아우성치다가 법원까지 오지도 못하고 흐지부지 끝나는 일들이 이제는 해결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시민들이 가장 많이 참여한 프로젝트는 무엇이었나?
 
우리가 직접 기획한 프로젝트는 아니지만, 화난사람들 시스템을 통해 진행됐던 ‘대진침대 라돈 검출’ 사건이다. 5,886명이 참여했다. 현재 진행 상황은? 우리가 사건 진행사항을 계속 추적해 알리고 있는데, 현재 1심 진행 중으로 피해 입증 과정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있다. 유해 물질이 나오는 침대로 인해 질병을 얻었다는 걸 입증하는 데 어려움이 있지만, 가습기 살균제 사건 때 피해자들의 입증 과정에서 도움을 줬던 서울대 교수 연구진이 이번에도 도움을 주고 있다고 한다.
 
광주 아파트 참사 관련 입주 예정자들이 HDC현대산업개발 등을 상대로 공동소송을 준비 중이라고 들었다.
 
광주 사건 같은 경우 우리와 프로젝트를 많이 했던 변호사님이 진행하고 있다. 조직적 대응이 필요할 것 같아 또 다른 변호사를 연결해드린 사례다. 현재는 수사기관에서 아파트 붕괴 사고를 조사 중이라 당장 대응에 나선 것은 아니지만, 일단 피해자를 모집하고 있다. HDC현대산업개발 측에서 피해자들에게 합의 시도를 할 수 있고, 이 경우 피해자들이 법적 조언을 제대로 받지 못한 상태에서 기업의 일방적 정보만으로 불리한 선택을 할 수 있다는 점에서 피해자 모집에 나선 것이다.
 
전국장애인차별철폐연대과 함께 장애인 이동권 관련 공동소송도 기획했다.
 
이 프로젝트는 우리가 자체 기획한 것이다. 적극적으로 연락을 드렸다. 이 경우는 장애인 이동권 투쟁을 하다가 손해배상소송을 당한 경우이기 때문에 패소했을 때의 판결금을 위해 자금을 펀딩으로 모으고 소송에 제출할 탄원서를 모집했다. 먼저 단체에 연락을 드렸던 이유는 이들의 투쟁 이유가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는 데 있다고 봐서다. 장애인들이 이동하는 데 큰 불편함을 겪고 있고, 이를 개선해야 한다는 목소리를 알리려고 출근 시간대를 골라서 그런 투쟁을 했다고 생각했다. 
 
장애인들의 이동권 투쟁에 불편을 호소하며 비난하는 여론도 있었다. 
 
인터넷 비난 댓글을 골라 활동가 분들에게 보내드리고, 그것에 대해서 활동가들이 직접 답변하는 콘텐츠를 만들기도 했다. 이유 있는 반대 댓글을 고른 뒤 장애인들이 왜 그렇게 투쟁할 수밖에 없었는지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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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난사람들에서 진행중인 프로젝트 공동소송 

출처 화난사람들 홈페이지 화면 갈무리 angrypeople.co.kr

 
 
프로젝트를 기획하거나 시스템을 제공하는 기준이 있나?
 
시스템을 제공하지 않는 기준이 있다. 상대적 약자 지위를 저해할 수 있는 사건이거나 정치적 이슈에서 어느 일방만 대변하는 프로젝트는 하지 않고 있다. 또 재산상 회복을 주요한 목적으로 하는 사건에서 대법원 판례에 비춰 패소할 것이 분명하면 하지 않는 것으로 기준을 세웠다. 이 기준에 해당하지 않고 상대적 약자 지위를 강화할 수 있는 프로젝트는 적극적으로 기획하고 있다. 
 
왜 이런 기준을 두고 있나. 
 
상대적으로 강한 지위에 있는 사람들은 이런 시스템이 없어도 알아서 잘한다. 이들은 시스템이 없어도 변호사나 전문가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반면, 상대적 약자의 지위에 위치한 분들은 제대로 된 법률, 행정 정보를 받지 못할 때가 많다.
 
공동소송과 관련해 제도·법률적으로 보완해야 할 것이 있을까? 
 
인정되는 손해액이 작으니 피해자 입장에선 기업을 상대로 소송을 진행해도 실익이 크지 않다. 물론 ‘내가 한번 사회를 개선해보겠다’라고 생각하고 사건에 뛰어들 수 있지만, 보통 피해자들은 자신이 피해 받은 것을 돈으로 배상 받고 싶어 한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손해액과 법원이 인정하는 손해액의 격차는 크다. 손해라는 것도 피해자가 증명해야 한다. 법원이 이에 관한 입증을 엄격하게 요구하다 보니 소송 실익이 크지 않은 것이다. 이를 해소하기 위해선 집단소송제나 징벌적 손해배상제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다른 나라의 집단소송제도는 우리와 어떤 차이가 있는지도 궁금하다.
 
미국 같은 경우 경제적 규모가 크다 보니 집단소송이 활성화돼 있다. 집단소송을 하는 로펌이 투자를 받아 집단소송 홈페이지 등을 개설하기도 하는데, 우리나라 일부 로펌도 소송인단을 온라인으로 모집하는 사이트를 제작했다. 물론, 로펌 소속 변호사들만 이용 가능하다. 우리가 파악한 바로는 그런 홈페이지를 하나 만드는 데 수천만 원이 든다고 한다. 사건을 추가할 때마다 홈페이지 제작 외주업체가 수백만 원씩 달라고 한다는데, 소송 시장도 전에 변호사 간 진입장벽이 생기는 것이다. 양극화된 법조 시장에 비춰 봐도 우리 같은 서비스가 변호사들에게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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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장은혜

 

엘리트 법조인 길을 걷다가 플랫폼 스타트업을 시작한 계기는 무엇인가?
 
대학생 때나 사법연수원 생활 때도 항상 새로운 걸 만들어보고 싶었다. 다만 법원은 내가 가고 싶다고 해서 언제든 갈 수 있는 곳은 아니니까, 갈 수 있을 때 꼭 경험해보고 싶었다. 재판연구원을 하면서 다수 피해 사건의 어려움과 이를 준비하는 변호사들의 불편함을 전해 듣거나 직접 목격했는데, 나는 어려움을 시스템으로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시스템이 구조를 바꿀 수 있다는, 그런 청사진을 그려보며 창업을 하게 됐다.

 

스타트업 대표로서 영리와 공적 가치 사이에서 갈등한 적 없나?

 

우리는 기본적으로 변호사업을 돕는 서비스다. 변호사는 인권을 옹호하는 직업이다. 인권을 옹호하는 변호사의 업을 편하게 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충돌한 적은 없다. 다만, 돈을 벌기 어렵다는 문제는 있다. 변호사는 시간과 노동을 팔아 돈을 버는 직업이다. 변호사가 지불 능력이 큰 고객은 아니다.(웃음)

 

플랫폼이 더 활성화하려면, 변호사들의 참여가 필수적인 것 같다. 공동소송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변호사들에게 한 말씀한다면?

 

다수를 대리하는 소송은 준비할 것이 많다. 우리는 그런 부분을 해소해드리고 있다. 처음에는 변호사들에게 일일이 연락 드려 우리를 소개하고 프로젝트를 제안했는데, 생각보다 다들 호의적이었다. 변호사들 마음에 부채의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변호사로서 사명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변호사들이 매일매일 과업에 시달리다 보니 여유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혹 이 사회에 부채감을 갖고 있다면 화난사람들이 힘이 되어 드리겠다.

 

마지막으로 화난사람들의 목표는 무엇인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법적 절차로 해결할 수 있도록, 법에 대한 장벽이 낮은 사회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공동소송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고 자평한다. 지금까지는 프로젝트 페이지를 개발자들이 하나하나 만들었다. 이제는 개발자 없이 변호사나 활동가들이 직접 프로젝트 페이지를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빌더’를 만들고 있다. 빌더가 완성되면 접근성이 훨씬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글 김도연 〈미디어오늘〉 기자

사진 장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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