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럿이 함께 모여서 법대로 해결한다
최초롱 ‘화난사람들’ CEO변호사
ⓒ 장은혜
“광주 HDC 현대 아이파크 붕괴로 손해 본 사람들 모임”
공동소송 온라인 플랫폼 ‘화난사람들’에 올라온 글 하나. 클릭해보니 “이번 건설중단으로 손해본 분들 모이자”는 목소리다. ‘국제 매매혼 부추기는 지자체 화나요’라는 글도 있었다. 예산을 들여 상업적 매매혼을 장려하는 지자체에 대한 우려가 담겨 있었다. 글쓴이는 “함께 분노하고 지자체의 시정을 요구해줄 분들을 모으고 있다”며 동참을 호소했다.
이 밖에도 ‘보이스피싱 피해자 모임’, ‘제주학원 차량 초등생 사고에 화난 사람들 모임’, ‘자동차리스 지원업체 사기 피해자 모임’ 등 각종 사건사고에 분노한 이들이 함께 항의할 동지들을 찾고 있었다. 일단 알리고, 모여서 공동소송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실현하는 그런 공간이었다.
지난 2018년 5월 문을 연 화난사람들은 다수의 피해자와 변호사의 연결을 돕는 공동소송 플랫폼이다. 창업주이자 주인장은 최초롱 변호사(35·사법연수원 45기)다. 그는 사법연수원 수료 후 서울고법 재판연구원으로 일하다가 창업에 뛰어들었다. 무엇이 ‘엘리트 코스’를 마다하게 했을까. 그는 왜 화난사람들을 모으고 있을까. 지난 2월 18일 오후 서울 동작구 화난사람들 사무실에서 최 변호사를 만났다.
화난사람들 누적 회원수가 18만 명이다. 규모가 상당하다.
화난사람들에선 현재 프로젝트 100건이 넘게 진행되고 있다.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주체 대부분은 변호사나 시민단체들이다. 우리 역할은 그 프로젝트가 잘 진행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주로 어떤 ‘화’를 가진 사람들이 이곳에 모이나?
여럿이 함께 ‘화’를 풀고 싶은 분들이 모이는 것 같다. 내 앞에 분노를 일으킨 어떤 문제가 있는데, 나와 같은 분노를 가진 사람, 나와 같은 피해를 입은 사람들과 함께 문제를 해결하고 싶다, 그럴 때 찾는 곳이 화난사람들이다.
공동소송을 아직까지 낯설게 생각하는 이들이 많다.
우리가 말하는 ‘공동소송’은 법적인 의미의 공동소송과는 차이가 있다. 민사소송에서 공동소송은 원고나 피고가 다수인 소송을 말한다. 우리가 말하는 공동소송은 여럿이 참여하는 모든 법적인 절차를 의미한다. 통상 법적인 절차라고 하면 민·형사소송만 생각하기 쉬운데, 행정기관에 민원이나 진정, 신고하는 방법도 있다. 헌법소원, 집단분쟁조정 절차라든지 다양한 제도가 있다. 소송 외에도 효율적이고 다양한 절차가 있는데, 많은 분들에게 참여 경험을 제공하고 싶다. 예를 들면, 디지털 성범죄 양형 기준에 대해 국민 의견을 모으는 프로젝트, 백화점 발렛 직원 성차별 인권위 진정 프로젝트 등이 대표적이다. 화난사람들이라는 시스템을 통해 절차에 참여하고 직접 문제를 해결하는 경험을 만들어 드리고 싶다.
법적 절차에 다수가 참여하면, 무엇이 더 이득인가?
혼자서 하는 것보다는 비용이 줄 수 있다. 또 많은 사람들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증거나 참고 자료를 모으고 이를 사이트에 업로드 하는데, 유리한 증거를 모아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는 가능성도 커진다. 다수가 모이면 아무래도 영향력이 커지고, 결과적으로 상대방에 대한 협상력이 올라갈 수도 있다. 언론 주목도도 높아진다. 이는 사건 사고의 재발 방지에도, 예방에도 도움이 될 수 있다.
화난사람들 수익 모델은 무엇인가? 공동소송은 보통 절차가 번거롭고 돈이 되지 않아 변호사들이 꺼린다고 들었다.
공동소송을 진행하는 변호사들이 소송을 간편하게 진행할 수 있도록 프로그램을 제공하고, 제공한 프로그램의 월 이용료를 받고 있다. 프로그램 이용료가 우리 수익 모델이다. 공동소송은 변호사들이 꺼리는 분야다. 처리해야 하는 사무가 너무 많기 때문이다. 다수의 피해가 발생했는데 사건을 맡을 변호사가 없으면, 법적인 방법을 통해 피해 구제를 받기 어렵다. 이런 환경을 바꾸려면 더 많은 변호사들이 공동소송에 참여해야 한다. 변호사들이 꺼려 하는 단순 반복적 업무를 최대한 자동화하는 시스템을 만들자고 생각한 이유다.
ⓒ 장은혜
‘로톡Lawtalk’ 같이 의뢰인과 변호사를 매칭하는 서비스도 있는데 왜 공동소송이라는 아이템으로 창업하게 된 것인지?
변호사와 의뢰인 사이 정보 비대칭 문제도 분명 풀어야 할 과제이지만, 그것보다 다수가 피해를 입는 사건에 눈길이 갔다. 법원에서 근무하면서도 다수가 피해를 입는 사건을 많이 맡았다. 그러나 그런 분들이 소송까지 오게 되는 사례는 매우 적다. 변호사들은 하나 같이 “나는 공동소송 하기 싫다. 한번 해보면 누구나 하지 않겠다고 할 것”이라고 고통을 호소했다. 소송위임장 같은 것도 예전에는 한 명 한 명 위임인 정보를 적어 날인해 만들었다. 우리 시스템에서는 자동으로 처리된다. 일하는 이들의 고통을 덜어주면, 피해자들이 아우성치다가 법원까지 오지도 못하고 흐지부지 끝나는 일들이 이제는 해결될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 장은혜
스타트업 대표로서 영리와 공적 가치 사이에서 갈등한 적 없나?
우리는 기본적으로 변호사업을 돕는 서비스다. 변호사는 인권을 옹호하는 직업이다. 인권을 옹호하는 변호사의 업을 편하게 해주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에 우리가 추구하는 가치가 충돌한 적은 없다. 다만, 돈을 벌기 어렵다는 문제는 있다. 변호사는 시간과 노동을 팔아 돈을 버는 직업이다. 변호사가 지불 능력이 큰 고객은 아니다.(웃음)
플랫폼이 더 활성화하려면, 변호사들의 참여가 필수적인 것 같다. 공동소송에 선뜻 나서지 못하는 변호사들에게 한 말씀한다면?
다수를 대리하는 소송은 준비할 것이 많다. 우리는 그런 부분을 해소해드리고 있다. 처음에는 변호사들에게 일일이 연락 드려 우리를 소개하고 프로젝트를 제안했는데, 생각보다 다들 호의적이었다. 변호사들 마음에 부채의식이 있다고 생각한다. 변호사로서 사명감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변호사들이 매일매일 과업에 시달리다 보니 여유가 부족하다고 생각하는데, 혹 이 사회에 부채감을 갖고 있다면 화난사람들이 힘이 되어 드리겠다.
마지막으로 화난사람들의 목표는 무엇인가?
더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문제를 법적 절차로 해결할 수 있도록, 법에 대한 장벽이 낮은 사회를 만드는 데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는 지금 ‘공동소송 생태계’를 만들고 있다고 자평한다. 지금까지는 프로젝트 페이지를 개발자들이 하나하나 만들었다. 이제는 개발자 없이 변호사나 활동가들이 직접 프로젝트 페이지를 만들 수 있게 도와주는 ‘빌더’를 만들고 있다. 빌더가 완성되면 접근성이 훨씬 더 좋아질 거라고 생각한다.
글 김도연 〈미디어오늘〉 기자
사진 장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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