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활동✨100 1994-2014 2014-12-31   1772

[038] 상가 임대차 보호를 위한 입법운동

2001년 11월,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 촉구 수요캠페인

2001년 11월,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을 촉구하는 수요캠페인에서 민생고(民生鼓)를 치고 있다.

┃ 배경과 문제의식 ┃

IMF를 전후해 경기위축과 소비 감소로 영세 상인들은 생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다. 설상가상으로 부동산 가격의 하락 및 금리 인하를 만회해보려는 건물주가 과도하게 임대료를 인상하고, 일방적 계약 해지 후 시설투자금이나 권리금을 보상하지 않거나, 건물주 변경이나 경매에 따라 보증금을 떼이는 등의 피해가 기승을 부렸다. 그러나 이들을 구제할 수 있는 법과 제도는 전무한 상태였다.

이에 참여연대, 민주노동당, 녹색소비자연대, 소비자문제를연구하는시민모임, 함께하는시민행동 등은 2000년 9월 26일 ‘상가임대차보호공동운동본부’를 구성하고,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을 추진했다.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 운동은 노동자와 달리 보호 대상으로 인정되지 않았던 상인(자영업자)에 대한 지위를 정의하는 과정이기도 했다.

주요 비판 중 하나는 임대인과 임차인의 계약 관계에 법이 개입하는 것은 ‘사유재산권 침해’ 소지가 있다는 것이었다. 공동운동본부는 “20세기 들어 각 개인은 대등한 당사자가 아니라, 어느 일방이 경제적으로 우월한 지위에서 관계를 맺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경제적 약자를 보호해 실질적으로 대등한 관계를 만들어야 한다는 사회국가원리가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 헌법 119조도 국가가 경제 관계에 개입하여 경제적 평등을 추구할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하고 있다”고 반박하며 IMF를 거치면서 다수가 경제적 약자로 편입된 상가 임차인들의 보호를 위한 법안 제정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임차인이 반드시 경제적 약자라는 논거가 희박하므로, 영세상인 등의 범위를 구체적으로 특정할 필요가 있다는 비판이 또다시 제기되었다. 이는 운동본부도 수긍할만한 내용이어서, 임대보증금의 범위를 대통령령으로 위임해 행정부가 경제 사정을 고려하여 이 법에 의해 보호되는 임대보증금의 상한을 정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졌다.

많은 고민과 논쟁을 거쳐 공동운동본부가 마련한 상가임대차보호법은, ①주거 이외의 목적으로 사용되는, 대통령령이 정한 일정 보증금의 범위 내에 있는 건물에 대해서만 보호 ②임차인은 사업자등록을 마치면 확정일자를 받고 대항력 행사 가능 ③소액임차인의 ‘보증금 우선 변제권’ 보장 ④특별한 계약해지 사유가 없는 한 최장 10년간 계약갱신 가능 ⑤임대인의 일방적인 임대료 인상을 제한하기 위해 인상의 범위를 대통령령에 규정 ⑥권리금 문제는 임대차 갱신을 거절할 경우 시설투자금에 대한 상환 청구권을 강행규정으로 두도록 하는 것으로 정리되었다.

┃ 주요 활동 경과 ┃

공동운동본부는 2000년 10월 10일 상가임대차보호법을 입법청원하고, 본격적인 입법 활동을 전개했다. 방송과 신문을 가리지 않고 언론들에서 상가임대차 문제가 다뤄졌으며, 수백 건의 상담을 통해 11월 7일에는 ‘세입자 권리찾기 상인모임’이 결성되었다. 당사자 조직과 언론 보도를 통해 우호적인 여론이 조성되는 와중에 국회의원들에 대한 입법 로비 활동이 병행되었다. 여·야를 가리지 않고 국회의원 및 보좌진들과 수차례 면담을 진행하고, 의원 입법발의를 촉구했다. 법조인이나 법학자 등 전문가들과 연계해 법무부·법사위전문위원과의 토론도 진행하면서 법안의 구체적인 내용을 다듬어갔다.

끈질기면서도 효율적인 활동 끝에 상가임대차보호법 제정 운동은 1년 만에 그 결실을 맺게 되었다. 2001년 12월 국회에서 마침내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이 통과되었고, 행정적인 준비를 거쳐 2003년 1월 1일부터 시행하기로 공포된 것이다. 그러나 ‘시민입법의 쾌거’라는 축포를 너무 일찍 터뜨렸던 것일까? 2002년 8월 법무부는 전국을 5개 권역으로 나누어 법의 보호를 받는 환산보증금의 규모를 각각 △서울지역 2억 4,000만 원 △수도권 과밀억제권역 1억 9,000만 원 △기타 광역시 1억 5,000만 원 △기타 지역 1억 4,000만 원 이하로 하고, 계약 갱신 시 임대료 인상률 상한 12%를 골자로 하는 시행령을 발표했다. 시민.사회단체들은 이 기준이 실제보다 낮아 비현실적이라고 비판했지만, 정부안대로 2003년 1월부터 법안이 시행되었다.

그러나 한 번 만들어진 법안의 내용을 변경하는 것은 쉽지 않았다. 이후 상가임대차보호법은 2008년 서울기준 적용범위 2억 6,000만 원, 임대료 인상률 상한이 9%로 개정되었고, 2010년에는 적용범위가 3억 원으로 늘어났다. “영세 상인의 범위를 특정할 필요가 있다”는 당시의 결정은 합리적이었으나, 비현실적으로 낮게 책정된 적용범위는 법 제정 이후 계속해서 상인들을 울리는 ‘독소 조항’으로 변질되었다. 이에 참여연대는 2010년 (정부, 대기업, 유흥·사행산업 등을 제외한) 모든 상가 임대차에 법이 적용될 수 있도록 적용범위를 폐지하고, 사업자 등록을 신청한 즉시 법의 보호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상가건물임대차호보법 개정 청원안을 제출했다.

상가 임차인들의 문제는 2013년 다시 폭발적으로 제기되었다. 2013년 가로수길 곱창집 문제를 시작으로 전국 각지에서 피해 사례 제보가 이어졌다. 적용범위를 살짝 넘는 수준으로 임대료를 산정하는 사례, 건물 재건축의 경우 계약갱신을 보장하지 않아도 된다는 조항을 악용해 1년도 안되어 임차인을 내쫓는 사례, 임대료를 과도하게 인상해 임차인을 일방적으로 내쫓는 사례 등 수많은 피해들이 속출했다. 상인들은 ‘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을 결성해 사례를 수집하고, 참여연대·토지정의시민연대 등 시민단체와 연대해 문제를 공론화하고, 야당 국회의원들에게 적극적인 입법 로비 활동을 진행했다.

‘생계 수단’이라는 절박함 때문에 폭발적으로 진행된 상가 임차인 보호 운동은 2013년에도 빠른 시일 내에 성과를 남겼다. 본격적인 운동을 시작한지 3개월 만인 2013년 7월 법개정이 이뤄졌다. 보증금 금액에 상관없이 계약갱신청구권을 보장하고, 임대차 계약 전에 재건축 사실을 고지하지 않았을 경우 재건축을 이유로 일방적 계약해지가 불가능하게 되었다. 그러나 적용범위는 서울기준 4억 원 이하의 임대차 계약에 대해서만 임대료 인상률 상한 9%가 적용되면서 ‘적용범위 폐지’ 요구는 절반의 성공만 거두게 되었다.

┃ 성과와 의미 ┃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정 운동’은 IMF이후 새롭게 경제적 약자로 편입된 자영업자들을 보호하는 제도를 도입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법안 도입 과정에서 기존에 경제적 약자로 고려되지 않던 자영업자의 사회적 위치가 새롭게 정의되었고, 표면적으로 대등해 보이는 임대차 계약 내에서도 경제적 지위에 따른 불평등이 존재한다는 점이 지적됐다. 법제정으로 IMF 이후 어려운 처지에 놓여 있으면서 제도의 사각지대에 놓여 있던 400만 명의 임차 상인들을 보호할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제정은 당사자와 시민단체, 진보정당이 연대해 법안 제정을 이뤄냈다는 점에서 ‘시민입법의 쾌거’라고 볼 수 있다. 법을 만드는 가장 빠른 방법은 정부입법안을 제출하는 것이지만, 당사자들이 느끼는 어려움과 정부의 인식에는 차이가 많은 것이 현실이다. 이에 참여연대를 포함한 ‘상가임대차보호공동운동본부’는 수많은 토론을 거쳐 직접 법안을 만들어 입법청원하고, 국회의원들의 발의를 촉구하고, 밀착 모니터링을 통해 1년 만에 법안이 통과되는 성과를 얻었다.

상가 임차인 보호를 제도화하고, 시민의 힘으로 법을 제정했다는 성과에도 불구하고 상가건물임대차보호법 운동은 현재진행형이다. 2001년 법 제정 당시에도 아쉬움을 남겼던 보호 적용범위 문제는 여전히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으며, 수억 원 대의 권리금 수수 관행, 법의 사각지대를 악용한 임대인의 일방적 계약 해지 및 과도한 임대료 인상으로 인한 피해가 여전하기 때문이다.

┃ 같이 보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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