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나는 활동✨100 1994-2014 2014-12-31   1544

[096] 전력정책의 미래에 대한 시민합의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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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년 10월 3박 4일의 강행군 끝에 시민패널들이 지속가능한 전력정책에 대한 합의문을 발표했다.

┃ 배경과 문제의식 ┃

1990년 안면도, 1994년의 굴업도 그리고 2003년의 부안사태에서 볼 수 있듯이 당시에는 핵 폐기장 부지 선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 지속되고 있었다. 지역에서의 격렬한 저항의 일차적 원인은 결정 과정의 폐쇄성에 있다. 계획에서 선정까지 전 과정에서 관련 정보가 사전에 충분히 제공되지 않아 투명성이 결여되어 있었고, 직접 영향을 받는 지역 주민을 비롯한 이해관계자들의 참여도 철저히 봉쇄된 채 일방적으로 추진되어 왔다. 부안의 저항이 심해지자 정부는 주민투표제를 도입할 수도 있다고 밝혔으나 결국 부안 주민들의 자체 투표로 상황은 일단락되었다. 그런데 문제는 부지 선정 찬반만을 묻는 주민투표 도입만으로는 핵 폐기장 선정을 둘러싼 사회적 갈등이 쉽게 해결되기 힘들다는데 있다. 오히려 섣불리 접근할 경우 지역사회의 갈등만 증폭시키고 문제를 더욱 꼬이게 할 가능성이 있었다. 이런 갈등의 이면에는 오랜 기간 쌓여온 정부에 대한 불신과 원자력 중심 전력정책에 대한 사회적 논의 부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즉 원자력 발전 자체에 대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없이 폐기장 문제를 기술적 또는 지역만의 문제로 환원해 해결할 수 있다는 정부의 잘못된 가정이 깔려 있었던 것이다. 2004년 시민과학센터는 원자력 발전을 둘러싼 소모적 갈등을 줄이기 위해 ‘원자력 중심의 전력정책’에 대한 공론화와 이에 대한 사회적 합의가 필요하다고 판단했고, 그 방법으로 일반 시민들이 주체가 되는 합의회의를 진행하기로 했다.

┃ 주요 활동 경과 ┃

전력정책 합의회의 행사 개요

  • 제목 : ‘원자력 중심의 전력정책, 어떻게 할 것인가
    – 전력정책의 미래에 대한 시민합의회의’
  • 날짜 : 준비 워크숍 – 2004년 6월 4일 (금)
    1,2차 예비모임 – 2004년 7월 24일(토), 9월 4일(토)
    본 행사 – 2004년 10월 8일(금)~10월 11일(월)
  • 장소 : 참여연대 강당(예비모임), 국민대학교(본 행사)
  • 주최 :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

조정위원회 구성과 운영

합의회의의 ‘중립성’과 진행의 ‘효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원자력계, 환경단체, 언론인, 관련 공무원, 시민참여 전문가 등 총 8명을 조정위원으로 선정했다. 합의회의 모델에 대한 학습과 결과의 반영을 고려해 관련 부처의 공무원과 원자력 대중화 기관의 장도 포함시켰다. 조정위원회 회의에서는 합의회의 세부 주제, 본 회의 일시 및 장소, 시민패널 모집 계획 및 선정 등을 논의 했다. 시민 패널들에게 공정하고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예비모임 및 본 회의에서 발표할 전문가 패널, 시민 패널들에게 제공할 자료 목록 등을 사전에 검토하는 역할도 수행하였다.

시민패널 모집과 선정

합의회의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시민패널들은 6월 22일부터 7월 11일까지 프레시안 및 한겨레신문 광고, 동아일보 컬럼의 간접 광고 등을 통해 모집했다. 모집결과 전국에서 176명(남 142, 여 24)의 시민들이 신청했다. 이는 1998년 유전자조작식품 합의회의 40명, 1999년 생명복제 합의회의의 85명에 비하면 2-4배 이상 증가한 것이다. 시민패널의 선정은 서류심사와 면접을 통해서 이루어졌다. 서류심사에서는 연령, 직업, 성, 지역을 고려해 약 50명을 1차로 선발했다. 면접에서는 ‘시민참여제도에 대한 관심’, ‘원자력에 대한 입장’. ‘의사소통 능력’ 을 주로 평가 하였고 직접적인 원자력계, 환경단체 등 이해관계자를 가려내기 위해서도 노력했다. 시민과학센터에서는 30명을 예비후보로 선정해 조정위원회에 보고했고 조정위원회에서는 이들 중 18명을 시민 패널로 확정했다. 최종 선정된 패널들은 20대에서 70대까지의 연령층에 퇴직교사, 주부, 학생, 회사원, 농업기술자, 교수, 무직 등 다양한 직업을 가진 일반시민들이었다. 이들 중 1인은 중도에 포기했으며 다른 1인은 교통사고로 본 회의에 참석하지 못했다. 결국 합의회의 전 과정과 본 회의에 참석한 시민패널은 최종적으로 16명(남 9, 여 7)이었다.

시민패널 1, 2차 예비모임

시민패널들은 7월 24일과 9월 20일 두 차례의 예비모임을 참여연대 2층 강당에서 비공개로 가졌다. 1차 예비모임에서는 합의회의의 구조와 진행방식, 우리나라 전력정책의 쟁점과 원자력의 가능성에 대한 기초 강의를 들었다. 기초 강의 이외에 시민패널들에게 도움이 될 만한 자료들도 제공되었는데, 모든 자료가 조정위원회의 승인을 받은, 상대적으로 균형 잡힌 내용들이었다. 기초 강의를 들은 후 주제에 대한 난상토론을 벌였는데 이때 주제에 대한 자신들의 관심, 향후 전망, 각종 질문 등 시민패널들의 의견이 쏟아져 나왔다. 난상토론 후에는 본 회의 때 전문가들에게 질문 할 질문지 초안을 작성했다.

2차 예비모임에서는 우리나라 전력정책의 현황, 원자력 발전의 경제성과 안전성, 환경단체의 입장에 대한 기초 강의가 있었다. 강의가 끝난 후에는 1차 모임에서 논의된 질문들을 더욱 구체화 하고 정교화는 작업을 진행했다. 1,2차 예비모임에서 시민패널이 선정한 주요 질문은 △전력문제를 고려할 때의 중요한 가치기준 △전력정책의 현황과 바람직한 방향 △원자력 발전과 관련한 국내외 동향과 산업적 이해관계 △원자력 발전의 지속 여부 △원자력 발전의 대안 △전력정책 수립시의 사회적 합의를 위한 의사결정 구조 등이었다.

본 회의

본 회의는 국민대학교에서 3박 4일 일정으로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공개적인 형태로 개최되었다. 시민패널들은 첫날과 둘째 날 오전까지 11명의 전문가패널과 2명의 원전지역주민의 발표를 들었다. 첫날 밤 시민패널들은 전문가 패널의 발표를 평가하고, 의견을 교환하는 시간을 가졌다. 시민패널들은 토론 시간의 상당 부분을 원자력 정책을 두고 정 반대의 입장을 가진 전문가들의 발표 내용을 평가하는데 할애했다.

둘째 날 오후에는 시민패널과 전문가 패널 전체가 단상에 나와 약 4시간 동안 상호 토론 및 질의응답 시간을 가졌다. 일반인과 전문가들의 직접 토론은 평소에 쉽게 볼 수 없는 형태로 합의회의 모델의 특징이자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시민패널들은 둘째 날 밤부터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갔다. 이제까지 제공받은 다양한 정보와 각자의 가치관을 바탕으로 서로의 생각과 판단을 함께 나누는 열띤 토론시간을 둘째 날 밤과 셋째 날 내내 가졌다. 다른 쟁점들에 대한 토론과 합의는 비교적 쉽게 이루어 졌지만 원자력 발전의 지속여부에 대해서는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지 않았다. 몇 차례의 격렬한 토론 끝에 원자력 발전 지속 여부에 대해서는 상호, 조별 토론 후 ‘무기명 비밀투표’를 통해 3/4 이상의 찬성이면 ‘합의’로 간주하기로 했고, 소수 의견도 보고서에 명시하기로 했다. 여러 쟁점에 대한 합의가 끝나자 시민패널들은 조를 나눠 보고서를 작성했고 다음날 기자회견을 통해 발표했다.

시민패널 보고서

시민패널들은 전력정책을 판단할 때 우선적으로 고려해야할 가치 기준으로 ‘지속가능한 발전’을 꼽았다. 세부적으로는 △친환경성과 평화 △공급안정성 △형평성과 사회적 수용성 및 이를 바탕으로 한 사회적 신뢰를 지적했다. 이러한 가치 기준으로 현재 우리나라 전력정책을 평가해 봤을 때의 문제점으로는 △공급위주 정책으로 인한 원자력에 대한 종속 심화 △전력정책 결정과정의 폐쇄성 △신재생에너지에 대한 개발 노력 부족 등을 꼽았다.

본 회의 기간 동안 가장 논쟁 적인 주제는 역시 원자력 발전 지속 여부였다. 시민패널들은 조별 또는 전체 토론을 통해서 원자력 발전의 다양한 측면을 검토한 결과 ‘원자력 발전소의 신규 건설’을 중단해야 한다는데 합의했다.

원자력 발전 지속여부에 대한 무기명 투표 결과

  • ① 정부의 제2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의거한 원자력 발전소 추가건설 (0표)
  • ② 정부의 제2차 전력수급기본계획보다 축소.
    단 수요의 필요에 따라 국민의 동의를 얻어 제한적으로 원자력 발전소 추가건설 허용 (4표)
  • ③ 원자력 발전소 신규건설 중지 (12표)

시민패널들은 원자력 발전을 당장 대체할 수 있는 단기적 대안은 없지만 중장기적으로는 대안이 있다고 판단했다. 특히 시민패널들은 현재와 같은 원자력 중심의 전력정책을 유지하는 한 대안을 찾기 힘들 것이라는 점을 분명히 했다. 시민패널들이 제시한 대안으로는 △수요관리 시스템의 정비 △지역적 분산화와 전원구성의 다양화 등이다.

┃ 성과와 의미 ┃

이러한 시민패널 보고서는 정부 정책결정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지는 못했다. 하지만 합의회의가 장래 정책에 미칠 영향이라는 측면에서는 성과가 있었다. 합의회의의 진행 과정과 결과는 시민패널, 전문가패널 그리고 외부에서 관심 있게 지켜본 정책결정자들에게 학습의 기회를 제공했다. 지금까지도 과학기술, 환경 관련 정책을 둘러싼 사회적 공론화 과정에서 의미 있는 참고 모델로 간주되고 있다.

그러나 전력정책에 대한 시민합의회의 경험은 더 많은 함의를 갖는다. 그 동안 진행되었던 핵 폐기장 건설 과정에서 보여준 것처럼 여전히 많은 전문가들과 관료들은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 갈등의 주요한 원인을 대중의 무지와 외부의 개입에서 찾고 있다. 큰 논쟁 없이 해결이 가능한 문제가 과학적 소양이 부족한 시민들로 인해 또는 언론이나 사회단체의 개입으로 사회적 갈등이 발생한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과학기술과 관련된 사회적 갈등의 원인을 대중의 무지와 오해에서 찾게 되면 시민들은 홍보나 계몽의 대상이 되며 의사결정은 일부 전문가들과 관료들의 몫이 된다. 그러나 합의회의 진행 과정과 시민패널 보고서는 이러한 통념이 잘못된 것임을 다시 한 번 보여 주었다. 이번 합의회의를 통해 일반 시민들도 기회가 주어지고, 균형 잡힌 정보를 제공받는다면 어려운 과학기술 정책에 대해서도 충분히 판단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이 확인된 것이다. 또한 상호토론과 숙의를 통해 작성된 보고서는 정부 정책으로 인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 일반 시민들이 현재의 원자력 중심의 전력정책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었다. 이는 찬반을 묻는 기존의 단순 여론 조사를 통해서는 얻을 수 없는 결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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