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계의 로비에 손발 잘린 증권집단소송법

사문화될 법, 차라리 만들지 말라



여야 정책협의회 합의는 국민과 투자자에 대한 기만 행위

자산 2조원 이상 기업만이 집단소송의 대상이 되는 것은 평등원칙 위반

구제수단의 차별화는 거대기업으로의 자금집중을 더욱 심화시킬 것

1. 언론보도에 따르면, 여야는 어제(30일) 정책협의회에서 증권집단소송제와 관련하여 2005년 7월부터 시행하기로 한 자산 2조원 미만 기업의 법 적용을 제외 또는 유보하고, 소제기 요건 중 ‘소액주주 50인 이상이 보유한 주식취득가액 1억원 이상’ 규정은 추후 검토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참여연대 경제개혁센터(소장: 김상조 한성대 교수)는 이미 지적했듯이 지난 23일 법사위원회 법안심사소위를 통과한 법안조차 소제기 가능성마저 불투명할 정도로 과도한 남소방지 장치를 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여야가 증권집단소송제 자체를 사문화할 수 있는 수정안에 전격 합의한 것에 대해 경악하지 않을 수 없다.

2. 특히 여야의 합의가 전경련 회장단이 국회 의장 및 여야 정책위 의장과의 간담회에서 증권집단소송법의 남소방지 장치 강화를 요구한지 불과 이틀만에 나온 것이라는 점에서 개탄하지 않을 수 없다. 결국 증권집단소송제의 수정에 대한 여야 합의는 그간 ‘경제 위기’를 빌미로 재계의 요구를 반영한 경기부양 조치에는 앞장서면서, 증권집단소송법안과 회계제도개혁법안 등 제도개혁 입법에는 소극적인 자세로 일관하던 정치권이 재계의 전방위 로비에 굴복한 것이다.

3. 여야가 합의한 내용 중 동일한 유형의 불법행위에 대한 손해배상책임을 자산 규모에 따라 차별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헌법이 정한 평등원칙에도 위배되는 것이다. 더구나 증시불공정행위에 의한 소액다수 투자자의 피해는 불과 80개에 지나지 않은 자산 2조원 이상 거대기업보다는 중견기업이나 중소기업에 훨씬 자주 일어나고 있다는 점에서, 이 제도의 도입이 가장 절실한 중견·중소기업의 소액주주들은 사실상 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가능성조차 차단된 것과 다름없다. 이러한 피해구제 수단의 차별화는 결국 자금을 거대기업에 더욱 집중시킴으로써 한국경제의 이중구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 명약관화하다.

더구나 ‘시가총액 1억원 이상 보유한 50인’으로 규정된 소송 요건에 대해서도 추후 검토하기로 한 것은 더욱 이해할 수 없다. 법안 내용에 대한 구체적 논의가 법사위 심사소위에서 끝난 상태임에도 무엇을 더 검토해야 한단 말인가. 이는 소송대상 불법행위의 유형과 소송대상 기업의 범위가 극도로 제한된 상태에서, 소송제기 원고의 자격요건도 더욱 엄격하게 함으로써 결국 증권집단소송법의 사문화를 가져올 것으로 우려하지 않을 수 없다.

4. 지난 2000년 말부터 증권집단소송법 입법운동을 펼쳐온 참여연대는 입법 막바지에 재계와 여야가 증권집단소송제를 허울뿐인 제도로 만드는 움직임에 분노하며, 국회가 조속히 법안을 통과시킬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 이미 증권집단소송제의 도입은 지연될대로 지연된 상태이고, 여야가 할 일은 최소한 법사위 심사소의를 통과한 법안이나마 빠른 시일 내에 통과시키는 것이다.

민주당은 집권여당의 면모를 전혀 보여 주지 못하는 그 무기력함에 대해 반성해야 하며, 한나라당은 국회 과반수 정당답지 않은 그 무책임함에 대해 반성해야 한다.

5. 어제 노무현 대통령은 “권력은 점차 기업으로 옮겨간다. 단기적으로는 기업이 정부한테 제약받지만, 장기적으로는 기업의 정책에 의해 정부정책이 움직여 갈 수밖에 없다”고 발언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미 노무현 대통령의 경제정책은 기업의 요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장기적으로만 그런 것이 아니라, 단기적으로도 이미 그렇다. 작년 대통령 선거운동 이래 증권집단소송법 제정은 노무현 대통령이 약속한 경제개혁 조치의 핵심 중 하나이다. 그러나 재계의 로비 이틀만에, 그것도 분식회계 혐의로 유죄판결을 받은 전경련 회장의 로비에 의해 증권집단소송법은 허울만 남았다. 이런 상태로 국회가 입법화하면 증권집단소송법은 노무현 정부의 개혁의 상징이 아니라, 개혁 후퇴의 상징으로 기억될 것이다.

참여연대는 어제 결정에 대해 민주당과 한나라당의 정책위의장 등을 항의 방문할 계획이며, 이후에도 증권집단소송제가 유명무실한 법안으로 전락하지 않도록 총력 활동할 것이다.
경제개혁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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