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법감시센터 사법감시紙 1995-12-11   1951

[02호] 사무장의 눈으로 본 사법현실

모니터 리포트 l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에 대한 설문조사

이 설문은 1995년 11월 10일∼20일 열흘 동안 변호사 사무실을 직접 방문하여 30명의 사무장을 일대일 대인조사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올초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된 사법개혁의 논의에서 계속 소외되어 왔으면서도 사법 현장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무장의 눈을 통해 우리 나라 사법현실의 단면을 살피고자 한 것이 이 설문의 취지였다.

설문 과정을 통해 우선 확인한 것은 변호사 사무실 사무장이라 공통의 지위를 갖고 있지만 변호사 사무실의 규모에 따라 일반 사무원과 구별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는 경력 3년 이하의 사무장에서부터, 수십년 된 경력을 통해 수많은 사무원과 사무장을 거느리고 있는 지위에 있는 등 일률적으로 한 범주로 묶기 어려운 여러 차이가 있다는 사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문 법조인과 일반인의 어느 곳에도 자기 정체성을 갖지 못한 독특한 동질성 역시 확인할 수 있었다.

처우에 대해 아무도 만족하지 않는다.

응답자의 70%가 개인 변호사 사무실에서 일하고 있다고 대답함으로써 우리 나라의 법률 서비스의 형태가 사안이나 전문성에 따른 집단 협력의 체제라기 보다는 주로 개인사무실 위주로 운영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보여주었다.

사무원 생활을 포함하여 사무장 경력이 '3년 이하'에 26%, '5년 이하' 35%에 응답함으로써, 5년 미만의 경력자가 과반수를 점유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대체로 사무장들은 자신들의 처우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는데, 만족할 만한 대우를 받고 있다는 항목에는 단 한사람도 응답자가 없는 반면 낮은 대우를 받고 있다고 느끼는 응답자는 48%에 달하였다. 국가기관인 법원, 검찰 직원들의 처우문제 등에 대해서 공동의 노력과 일괄적인 개선의 여지는 있다. 그러나 변호사 사무장의 경우에는 해당 변호사의 개인적 처우에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 현재에도 친목 성향의 사무원 조직은 존재하지만 기본적으로 업무의 진행과 처우가 각자의 사무실 단위로 되어 있어 고립적이고 개별적인 상황이다. 따라서 처우의 개선을 위한 공동의 노력을 조직하기가 어려운 것은 분명하다.

뿌리깊은 관행, '급행료'

다음으로는 음성적으로 문제 되고 있는 법원과 검찰직원의 급행료 문제에 대해서 질문해 보았다. 급행료란 법조 관련 행정직원들이 문서 접수 및 업무진행 과정에서 거래되는 뒷돈을 말하는데 액수가 아직 까지는 소소한 차원이기는 하되, 그 관행이 뿌리깊게 자리잡고 있는 것은 문제라고 아니할 수 없다.

법원.검찰직원이 '급행료를 항상 요구한다'는 항목에 응답자의 24%, '대체로 요구한다'에 24%, '요구 당한 경험이 있다'에 24%로 결과적으로 72%의 사무장이 최소한 급행료를 요구 당한 것으로 나타났다. 더구나 요구를 당하는 것과는 별도로 응답자 62%가 '요구하지 않아도 알아서 낸다'고 대답함으로써(표2) 급행료의 관행이 법조행정업무에서는 일종의 상식으로까지 자리잡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급행료를 지불하지 않았을 때 당하는 불이익은 76%의 응답자가 업무가 지연된다고 말함으로써 사건의 신속한 처리를 생명으로 하는 변호사 사무실의 실정에서 불이익에 대한 압박감이 만만치 않으리라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더욱 문제인 것은, 이렇게 지불된 급행료는 변호사 사무실 직원과 법원.검찰 직원만의 개인적 거래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응답자의 67%가 급행료를 사무실에서 공적으로 계상처리된다고 응답하고 34% 의 응답자가 급행료의 일부가 공금으로 계상된다고 대답함으로써, 결과적으로 이러한 관행을 대부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표3). 이러한 급행료에 대해 사무장들은 응답자의 21%가 '업무상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하였으나 절대다수 68%의 응답자는 '반드시 없어져야 한다'고 응답함으로써 이러한 관행에 대한 강한 반감을 표현하였다. 그러나 해결책으로는 50%가 '법조인들의 공동노력'을, 45%는 '법원 검찰직원의 처우개선'을 꼽은 반면, '비리척결등의 사정활동'에는 단 5%만이 동의해서 정치권의 칼을 휘두르는 방식으로 해결하는 데는 반대하였다.

다음으로 변호사 사무실의 업무와 수임료에 대해서는 일반인의 상식과는 다소 차이를 보여주었다. 즉 사건의 양은 대체로 '적당한 양'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으며, 수임료 또한 일반인들이 많다고 생각하는 반면, 사무장들은 응답자의 76%가 '적당하다'고 대답해, 변호사 사무실내에서는 변호사와 사무원이 일정하게 같은 이해관계에 있음을 보여 주었다.

당사자재판의 길은 아직 요원하다.

다음은 소송제도를 포함하여 법원.검찰 행정 처리과정과 당사자재판의 가능성에 대해 질문하였다. 행정처리 절차에 대해 응답자의 대부분이 '복잡하고 까다롭다'고 생각하고는 있으나 70%의 응답자가 '필요한 절차'라고 대답하여 사법관련 행정의 복잡한 현실을 수긍하는 결과를 보여주었다. 당사자재판에 관해서도 그 가능성이 확대되도록 '행정절차가 간소화되어야 한다'는데 동의하지만 '법률 관련 일이 일반인이 하기에는 본질적으로 어려운 사'이라고 생각하는 응답자가 52%를 넘어서고 있어 아직도 법률 관련업무가 일반인이 쉽게 접근하기까지는 많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특히 까다로운 행정처리로는 80%가 '경과확인 절차'를 들고 있어 법원.검찰의 업무진행이 민원인 중심으로 진행되기보다는 내부 편의적으로 진행되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사법개혁의 논의가 일반국민의 참여 여지가 보장되지 않은 채 법조인 중심으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에서, 사무장 또한 일종의 소외자와 국외자의 처지에 있다고 말할 수 있다. 43%의 응답자가 '사법개혁은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으며 39%의 응답자는 사법개혁논의가 '현실과 동떨어진 논의'라고 생각하여, 사무장들의 대부분이 사법개혁에 대해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나아가 '법조인을 존경한다'는 응답자는 4%에 불과하여 법조인에 대신뢰 역시 아주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한가지 특이할 만한 사항은 이렇듯 사법현실에 대한 회의적 시각과는 대조적으로 사법정의를 위한 시민운동에 응답자의 61%가 '심정적 동의'를 표했으며 26%에 달하는 응답자가 이런 활동에 '직접 참가하고 싶다'고 대답하여 사무장들이 법조인의 단순한 보조자로 남지 않고 사법개혁의 주체로 나서고자 하는 강한 열망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존경받는 법조인, 참여하는 사무장을 위하여

또한 32%의 응답자가 거대한 사법조직이 '변화하기 어렵다'고 대답한 반면 55%가 '우리의 노력 여하에 따라 변화와 견제가 가능하다'고 응답하여 현실의 어려움을 지적하기는 하되 진취적인 태도를 보여주었다.

마지막으로 사무장들은 법원의 가장 큰 문제점으로 전관예우, 업무과다, 안이한 사건처리들을 가장 많이 꼽았고, 검찰에 대해서는 권위주의적인 자세, 권력의 시녀가 되고 있다는 문제의식을, 경찰은 역시 권위주의, 그리고 비과학적이고 전근대적인 수사와 심문등의 수사과정을 주요문제로 들었다. 변호사에 대해서도 불성실한 변론, 일부변호사의 사건 브로커와의 결탁 등의 문제를 지

적하였다.

이번 설문조사를 통하여 우리는 열악한 처우, 과다한 업무, 불합리한 관행 등 이중 삼중의 어려움 속에서도 어느 한편으로 기울지 않고, 사법정의를 위한 합리적이고 현실적인 대안자로서 사무장의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었다. 조건과 환경이 조성된다면 충분히 사법정의의 한 축으로 본격적으로 조명되고 능력이 발휘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최소한 현행 법규만이라도 모두가 성실히 지킨다면 우리 사회가 아름다운 사회가 되리라는 한 사무장의 말처럼 사법정의를 향한 소박하나마 현실적이고 당당한 주체로 사무장들이 서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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