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3년 08월 2013-07-26   1552

[역사] 민주주의 위기의 주범, 닉슨과 C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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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주의 위기의 주범, 닉슨과 CIA

 

김정인 춘천교육대학교 사회과교육과 교수

 

 

민주주의 위기를 경고한 워터게이트 사건

 

1972년 6월 17일 닉슨재선위원회에서 자문역을 하던 매코드 등이 워터게이트 빌딩에 자리한 민주당 전국위원회에 도청장치를 설치하려다 발각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하지만 이 워터게이트 사건은 세상의 이목을 끌지 못했고 닉슨은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2년 뒤인 1974년 8월 9일 닉슨은 이 사건으로 결국 미국 대통령으로서는 최초로 중도 사임했다.  

 

닉슨은 자신이 워터게이트 사건을 지시하거나 공모했다는 사실이 드러난 적이 없는데도 왜 탄핵의 위기 속에서 대통령직에서 물러나야만 했을까. 워터게이트 사건 은폐에 가담했고, 사건의 진실을 파헤치려는 검찰, 의회, 사법부, 그리고 언론의 노력을 집요하게 방해했으며, 그 과정에서 대통령 재임 기간에 저지른 불법 행위까지 만천하에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미국인들은 대통령이 제왕적 권력을 남용하고 오용한 범죄자라는 사실에 아연실색했다. 민주주의의 발전을 선도하는 미국이라는 나라의 국민으로서 자존심에 깊은 상처를 입었던 것이다. 하지만, 워터게이트 사건은 민주주의의 위기를 폭로하는 출발점에 불과했다.    

 

불법천국, CIA

 

국가기구의 일원으로서 대통령만이 민주주의가 위기에 처해 있음을 경고한 것이 아니었다. 그보다 더한 주범은 정보기관인 CIA(미중앙정보국)였다. 닉슨 사임으로 워터게이트 사건이 일단락되자마자, CIA가 국내외에서 자행한 정치공작과 불법행위가 줄줄이 폭로되었다. 대통령의 정적, 반정부 인사, 언론인을 도청하거나 미행하는 사찰은 일상적 불법 행위였고, 1973년 칠레의 아옌데 정부를 전복한 쿠데타를 사주하는 등 다른 나라의 내정에 부당히 개입했다. 또한, 세계 곳곳에서 카스트로(쿠바), 고딘디엠(베트남)등 정치 지도자의 암살을 기도했고 정치인을 자금으로 매수하거나 아예 공작원으로 활용하기도 했다. 이러한 사실 폭로는 외교 갈등으로 이어졌고, 태국, 인도, 쿠바 등에서는 CIA의 내정 간섭에 항의하는 반미 시위가 일어났다.      

 

CIA의 불법 행위에 대한 폭로는 해를 거듭하며 계속되었다. 1977년에는 연초부터 전 세계를 뒤흔드는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CIA가 16개국 정치 지도자들에게 자금을 제공했다는 것이다. 이 ‘CIA 뇌물 사건’에서 뇌물을 받은 정치인 명단에는 타이완의 장제스와 함께 이승만이 올라 있기도 했다. 이 사건도 베네수엘라가 주미대사를 소환하는 등 외교 갈등을 야기했다. 이 해에는 CIA가 청와대를 도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한국 정부가 이에 항의하고 해명을 요구하는 사건도 일어났다. 1977년이 저물어가는 가운데 대미를 장식한 CIA의 범죄는 400여명의 저명한 언론인을 매수하여 정보원으로 활용한 언론 공작이었다. 이렇게 수년에 걸쳐 드러난 CIA의 불법 행위는 미국인은 물론 전 세계인으로부터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범죄요 악으로 지탄받았다. CIA는 국가 안보라는 국익을 위한 행위였다고 변명했지만, 미국인은 CIA에 대한 민주적 감시를 통해 민주주의를 지키는 길을 선택했다.  

 

역사_닉슨대통령을 사임시킨 워터게이트사건을 최초로 보도한 워싱턴포스트 1면_최초보도와 닉슨 하야 보도_1972년 7월 18일(좌)1974년 8월 10일(우)
워터게이트 사건을 보도한 워싱턴포스트 1면
최초 보도 1972. 08. 18(좌)와 닉슨 하야 보도 1974. 08. 10(우)

 

의회와 정부가 나선 정보기관 개혁 

 

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이고 시민적인 감시에 앞장선 것은 미국 의회였다. 의회가 상원의 처치위원회(처치를 위원장으로 하는 정보활동과 관련된 정부업무 조사를 위한 상원 특별위원회), 하원의 파이크위원회(파이크를 위원장으로 하는 하원 정보활동 위원회) 등으로 대표되는 상설 혹은 특별 위원회를 통해 CIA의 불법 행위가 드러날 때마다 조사를 거듭하는 일은 1978년까지 계속되었다. 조사 대상이 정보기관이고 외교 갈등을 야기할 수 있기에 백악관은 공개를 꺼렸지만 의회는 원칙대로 TV로 청문회를 중계했고, 외국 요인 암살 음모 등과 관련된 CIA보고서를 일반에 공개했다. 의회의 조사활동에 FBI(미연방수사국)가 도청, 미행, 편지 위조, 절도 등을 일삼으며 자행한 불법사찰과 암살 공모 등도 포함되면서 정보기관의 부도덕성과 반민주성에 대한 미국인의 분노는 곧 미국 정부에 대한 신뢰도 추락을 가져왔다. 이에 압박을 느낀 포드 정부는 록펠러 부통령을 위원장으로, 민간인 8명을 위촉하여 CIA특별조사위원회를 설치하고 불법사찰 사례 등을 조사하여 발표했다. 그리고 의회의 권고에 따라 대외정보기관에 대한 의회의 감독을 강화하고 제3국에 대한 정치개입을 금지하는 조처 등을 취했다. 포드 정부에 이어 카터 정부도 정보기관에 대한 감독을 강화하는 법률을 시행했다. 

 

지금 우리 사회 역시 정보기관인 국정원의 대통령 선거 개입과 대통령 기록물 공개라는 불법 행위를 목도하며 정보기관에 대한 민주적 감시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다. 하지만, 정보기관의 ‘불법’에 대한 국회와 대통령의 인식과 대응은 미온적이고 안이하다. 민주주의 가치를 훼손하는 불법행위마저 정략적 차원에서 접근하고 있다. 위기는 곧 기회라고, 더욱 성숙한 민주주의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이 기회를 애써 외면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주저앉거나 뒷걸음 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김정인 참여연대 창립 멤버, 현 참여연대 운영위원회 부위원장. 한국근현대사를 전공하였다. 한국 민주주의와 시민사회의 궤적을 좇는 작업과 함께 동아시아사 연구와 교육 활동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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