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7년 01-02월 2017-01-03   1633

[만남] 나는 병역을 거부합니다 – 홍정훈 참여연대 활동가

 

나는 병역을 거부합니다

홍정훈 참여연대 활동가

 

 

글. 이선희 미디어홍보팀 간사
사진. 김경희 미디어홍보팀 간사

 

 

참여사회-7220 copy

 

2년 전, 군대를 다녀오지 않은 사람이 입사했다는 사실은 참여연대 안에서도 꽤 화제였다. 군대 문제에 관한 내부 규정이 없었기 때문에 생긴 일이지만 시민단체에서도 성인 남성은 군대를 ‘필必’해야 한다는 사회적 통념이 그대로 적용되고 있었다. 이후 내부적으로 군대 휴직제도가 생겼지만, 얼마 전 그는 병역 거부를 선언했다. 사회적으로 이유를 묻지 않고 해야 하는 것으로 간주되는 병역의 의무를 거부한 것이다. 그를 향해 사람들이 묻는다. ‘꼭 그렇게까지 해야 돼요?’

나 역시 그의 병역 거부 소식을 들었을 때 그런 생각이 잠시 들었다. 병역 거부를 반대해서가 아니라 소송과 징역을 치르는 과정이 더 험난하지 않을까, 징역살이 보다는 군대가 낫지 않을까, 너무나도 예측 가능한 사회적 비난을 감수할 수 있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저는 제 자신을 걸고 국가의 부당한 요구에 대해 이의를 제기하겠습니다.”라는 결연한 소견을 들으면서 내 질문이 잘못됐음을 깨달았다. 

군대를 현행 방식으로 운영해야만 하는가, 군대를 거부하는 사람들을 처벌하는 것은 합당한가, 국가는 국민의 개성과 신념을 어떻게 존중해야 하는가. “제 선택이 ‘양심적’인 병역 거부로 지칭되지 않았으면 합니다. 저는 비상식적인 국가에서 ‘상식적’인 국민의 길을 택한 것일 뿐입니다.” 우리 사회가 상식적으로 돌아가고 있는지 묻게 되는 2016년의 끝자락. ‘홍정훈’이라는 사람을 통해 군대 문제에 대해서도 ‘상식’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 볼 수 있기를 바란다.

 

병역 문제에 대한 고민을 오래한 것 같아요. 군대에 대한 문제의식을 처음 가지게 된 계기는 뭐예요?
막연하지만 군대를 가고 싶지 않다는 생각은 10대 후반부터 가지고 있었어요.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 선후배나 교수-학생의 관계나 문화가 군사주의적인 것에 거부감이 들면서 더 가고 싶지 않아졌고요. 

 

그래서 군대를 안 가고 대학교를 자퇴한건가요?
네, 대학교를 2년 다니고 휴학을 1년 한 후에 자퇴를 했죠.

 

소견서에 과거를 되짚어 보기 위해 자퇴를 했다고 썼던데, 당시 가장 큰 고민은 뭐였어요?
저한테는 군대를 가야 한다는 것도 누군가 정해놓은 길로 느껴졌어요. 고등학교와 대학교 2년을 바쳐서 뭘 얻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춘기가 좀 늦게 온 것 같아요.

 

휴학하고 뭐하면서 지냈어요?
음악 공부했어요. 고등학교 때부터 취미로 음악을 했었는데, 학원 다니면서 작곡 공부를 했죠. 그러다가 음악에 대한 관심이 커져서 휴학한 동안 입시 준비를 해서 음악대학에 가게 됐어요.

 

음악대학을 갔는데 거기에서도 비슷한 문화를 겪었던 거 같아요.
예술대학교는 전체적으로 군사주의 문화가 팽배해요. 새벽에 후배들을 집합시키거나, 후배의 지위를 표시하는 군복 같은 옷을 강제로 입혀서 마주칠 때마다 관등성명을 요구하기도 했어요. 교수진도 이런 걸 묵인했고요. 

 

음악에 대한 즐거움보다 그런 문화로 인한 고통이 더 컸나요?
네. 그랬어요. 

 

취직할 때 남자들에게 군필은 기본적으로 갖추어야 할 취업요건이잖아요. 졸업할 때도 군대 가야겠다는 생각은 안했어요?
미뤄야겠다고 생각했죠. 군대에 가서 습득하는 것들이 내가 추구하는 음악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생각해봤는데, 답이 안 나오더라고요. 음악적으로 좋은 영향도 못 받을 거 같고, 군대 갔다 와서 내가 변할까봐 두렵기도 했어요.

 

군대도 미루고 음악활동을 했는데, 참여연대에 취직을 했어요.
원래는 시민운동 같은 거에 관심이 없었어요. 참여연대도 잘 몰랐고요. 독립적으로 음악을 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음악 시장에서 살아남을 방법이 없는데 당사자들이 뭔가 바꿔보려고 안 하는 거예요. 친구, 선후배, 교수 다 마찬가지였어요. 자기 음악에 매진하면서도 굶어죽지 않을 정도의 삶을 누릴 수 있도록 하는데 내가 어떻게 기여할 수 있을까 알아보다가 들어오게 됐죠. 음악보다는 공익적인 일을 하는 게 더 가치 있지 않을까 생각했어요.

 

군대 문제가 해결 안 되서 참여연대에 지원한 것도 있나요? 
제가 미필인걸 알면 떨어뜨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떻게 붙었어요. (웃음)

 

그래서 일명 ‘홍정훈법’을 만들었잖아요.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게 됐나요?
첫 출근한 날 군대 미필이라고 말했거든요. 미리 말 안 한 게 잘못이냐고 하니까 그런 건 아니라고, 조치를 취하겠다고 하셨어요. 수습 끝나고 정식으로 근로계약서 쓰면서 만들게 된 거죠.

 

‘홍정훈법’의 구체적인 내용이 뭐죠?
첫 번째는 고용 보장이죠. 군대 문제를 이유로 해고하지 않는 거예요. 그리고 군대 문제를 해결하는 기간은 무급 휴직이고, 해당 기간을 경력으로 인정해 주는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어요.

 

병역거부 기자회견

병역 거부를 선언하는 홍정훈 활동가의 기자회견.

 

병역 거부를 결정하면서 제일 고민됐던 부분은요?
병역 거부 시기요. 군대를 어떻게 미룰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었는데, 3월에 병무청 사이트 가보니까 올해는 입대 가능한 날짜가 없다고 했거든요. 근데 11월에 갑자기 입대 영장이 날아온 거예요. 그래서 본격적으로 병역 거부를 준비하게 됐죠.

 

병역거부 한다고 했을 때 부모님 반응은 어땠어요?
엄마는 하시던 일을 그만두겠다고 했어요. 제가 군대 안 가는 거랑 무슨 연관이 있는지 모르겠는데, 그 어떤 것보다 우선한다는 뜻인 거 같아요. 근데 결과적으로 안 그만두셨어요. 아빠는 3주 정도 아예 말을 안 하셨는데, 원래도 말을 별로 안 하시는 분이라…. (웃음)

 

두 분이 어쨌거나 동의해 주신 건가요?
동의는 아니고 포기, 체념 이런 거죠. 제가 너무 막 살아서 내성이 좀 생기신 거 같아요. 

 

친구들은 뭐라고 하던가요?
저한테는 ‘또라이’라는 말도 아깝다고. 다 비슷한 거 같아요. 부모님이나 친구나 범법자가 된다는 걸 걱정하면서도, 제가 말린다고 들을 사람이 아니니까 체념하더라고요. 

 

친구나 부모님은 그래도 지지해주지만, 사회적으로는 병역 거부에 대한 인식이 굉장히 부정적이에요. 
군대로 인해 일반 남성들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 시기를 허비하는 게 문제라는 걸 모두가 알고 있잖아요. 그러면 누가, 언제, 어떻게 바꿀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데 군대를 갔다 오고 나면 다 끝나는 거죠. 우스갯소리로 3년으로 늘려야 된다고 하기도 하고. 갔다 오고 나면 당사자가 아니니까 잘못된 제도를 책임 있게 바꿀 수 있는 사람이 없어요. 사회적으로 무책임하게 방치된 걸 누가 해결할 수 있을까? 저는 병역을 거부한 사람들이 주체가 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병역 거부하는 사람들이 늘어야 한다고 생각해요?
가령 노동자가 파업을 하는 것처럼 10만 명이 동시에 거부를 한다고 하면 더 영향력이 생기고, 해결 가능성이 커지겠죠.

 

요구 사항 중에 ‘병역거부권 인정’이라고 되어 있는데, 지금은 우리 사회가 병역 거부를 인정하지 않는 거죠?
네. 의사, 한의사, 변호사 등 소수의 특정 직업군만 허용하고 있어요. 

 

병역 거부의 대안으로 대체복무제도 도입을 얘기하고 있어요.
지금 병역법상에 사회복무제도가 있는데, 이걸 확대한 게 대체복무제도에요. 전투 병력이 아니라 사회에 필요한 분야에서 다른 방법으로 군 복무를 대신 하는 거죠. 대체복무제도 도입으로 병역 거부 문제를 상당부분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대만, 독일, 이스라엘 등을 비롯해 많은 나라들에서 대체복무를 인정하고 있어요.

 

병역 거부 선포 기자회견과 후원회 모임을 했는데, 향후 어떤 계획들이 있나요?
일단은 소송 계획만 잡혀 있어요. 이후에 제 사례를 가지고 대중들과 소통하기 위해 스토리 펀딩 같은 것도 생각해보고 있는데 일단은 재판을 어떻게 치를 것인지가 중요해요. 국민참여재판으로 해보고 싶은데, 판사보다 일반 대중들이 병역 거부에 더 반감이 클 수 있다고 해서 고민 중이에요. 대중의 인식을 바꿔야 한다는 측면에서 필요한 부분이기도 해서요. 병역 거부가 사법부에서 어떻게 다뤄지는지 알릴 필요도 있고, 재판이 끝나면 병역 거부자를 형사 처벌하는 문제를 유엔에 제보할 수도 있을 거 같아요.

 

그동안의 판례를 보면 1년 6개월 정도 징역을 살게 될 텐데, 이후에는 활동가로 복귀할 예정인가요?
이렇게 한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거 같아요. (웃음) 좀 더 일찍 활동가의 길을 택했으면, 병역 거부도 더 일찍 했을 거예요. 돌이켜보면 그동안 많은 고민을 했던 지난 삶이 활동가의 정체성을 찾는 과정이 아니었나 생각해요. 

 

마지막으로 회원이나 시민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해주세요.
병역을 거부 한다는 게 어떤 의미인지 잘 모르는 분들이 많을 거예요. 병역 거부한 동료가 있는 참여연대 활동가들조차도 그냥 신기하거나 대단하다 정도일 거예요. 병역 거부를 하면서 설정한 중요한 목표 중 하나가 참여연대 내부 구성원들부터 한 사람이 병역 거부를 하는 게 사회적으로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짚어보고 알아가는 과정이 됐으면 좋겠다는 거예요. 많은 분들이 굳이 저렇게까지 해야 되나 생각할 거고, 저도 한때는 그랬는데, 그럴 수밖에 없는 환경 자체가 문제인 거잖아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병역 의무 이행을 요구받는 사람들이 나서야 한다는 것을 이해해 주셨으면 해요. 지지해 달라, 응원해 달라고 까지 말하는 건 욕심일 거 같아요. 이 잘못된 제도에 대한 인식은 다들 가지고 있으니까 이걸 어떻게 바꾸어 나갈지 얘기해보는 좋은 계기가 됐으면 좋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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