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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7년 04월
  • 2017.03.30
  • 624

 

 

‘그러나’와 ‘그런데’ 사이

맹승연 회원

 

 

글.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7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사진. 김경희 미디어홍보팀 간사

 


피청구인 대통령 박근혜를 파면한다. 이 한 문장으로 온통 뒤덮인 주말이었다. ‘어제 뭐 했나’라는 질문이 당당히 질문지의 맨 처음에 올랐던 것도 모두 이 한 문장 때문이었다. “어제는 학교 갔다가, 모의고사가 끝난 다음날이라서 그냥 놀았어요.”


순간 당황했으나 앳된 그녀의 얼굴과 마주치자 빙긋이 웃음이 나왔다. 저, 제 질문은 그런 의미가 아닌데요….
“아, 그거요! 그거 물어보신 거구나. 국어선생님이 TV 틀어주셔서 봤어요. 파면한다 했을 때 학교 여기저기서 악~ 이런 소리가 들렸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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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본을 만들며 
몇 번의 소름끼치는 ‘그러나’가 지난 후에야 그녀는 비로소 웃을 수, 아니 울 수 있었다. 
“초반에 계속 ‘그러나’가 나와서 안 될 수도 있겠다 했는데 마지막에 ‘그런데’에서 다시 희망이 보였죠. 주문을 듣는데 눈물이 나오려고 했어요.” 


이날, 그녀에겐 모든 게 감동이었다. 학교에서 탄핵장면을 생중계로 볼 수 있었던 것도, 파면한다는 문장을 들었던 순간도, 저녁에 식구들과 함께 먹었던 치킨도. 
“작년 가을 쯤 학교에서 탄핵 소추에 대해서 배웠어요. 근데 살면서 그 과정을 직접 눈으로 보긴 어렵잖아요. 교과서를 통해 배웠던 내용들이 뉴스에 하나하나 나오는데 신기하더라구요. 탄핵된 대통령을 가진 시민이란 관점에서는 불행할지 몰라도 학생으로서는 정말 좋은 배움의 기회였다고 생각해요.”


지난겨울, 아이들도 어른들도 모두 광장에서 배우고 성장했다. 그 공부엔 교과서도 선생님도 없었지만, 우리 모두에게 생애 최고의 수업이었다. 그리고 그녀에겐 또 하나의 엄청난 수업이 있었다. 
“작년 여름방학 때였어요. 참여연대에서 ‘노란리본공작소’를 하는데 하루는 청소년들만 모인다고 엄마가 알려주셨어요. 참여연대가 어떤 곳인지도 궁금하고 제 또래들도 만나보고 싶어서 참여하게 됐는데, 배운 것도 많고 얻은 것도 많아요.”


작년 여름, 딱 하루를 ‘노란리본공작소’에서 보내고 그녀는 일상으로 돌아갔다. 그렇게 가을이 지나고 다시 겨울이 돌아왔으나 세월호 문제는 하나도 해결된 게 없었다. 참여연대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노란리본공작소’도 변함없이 활동 중이었다. 
“그걸 보니까 방학 때 놀지만 말고 이걸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공작소에서 ‘정기 자원활동가’를 모집하길래 첨엔 그냥 단순히 리본 만드는 건 줄 알고 신청 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공작소에 처음 온 이들에게 리본 만드는 법을 가르치고, 리본 재료도 챙겨야 했으며, 작업이 끝나면 뒷마무리도 해야 했다. 무엇보다 낯선 이들이 모인 공간을 부드럽게 이끌어가는 것, 이 또한 그녀의 몫이었다. 일주일에 한 번씩 공작소를 맡아 운영하는 일, 그 어려운 임무를 덜컥 맡았을 때 그녀의 나이는 방년 16세, 중학교 3학년이었다. 
“어쩌다 하루 나갔던 거랑 매주 꼬박꼬박 2~3시간씩 하는 거랑은 차이가 많더라구요. 무엇보다 공작소 분위기가 제가 상상한 거랑 너무 달랐어요. 세월호 리본을 만드는 곳이니까 분위기가 무겁고 침울할 거라고 생각했는데 실제는 완전 달라요. 밝고 유쾌하고 편안해요. 공작소에서 다양한 직업과 연령의 사람들을, 너무 좋은 분들을 많이 만났죠. 또 간사님들 하고도 친해지고 참여연대에 대해서도 많이 알게 되고…. 그냥 앉아서 리본만 만들었을 뿐인데 배우고 얻어간 게 너무 많아서 스스로에게 여러 번 물었어요, 내가 이렇게 많을 걸 받아도 되나 하고.”


그럼에도 그녀는 이 훌륭한 수업이 어서 빨리 끝났으면 한다. 
“세월호 문제가 빨리 해결되어서 이번 여름방학 때는 다른 자원활동을 했으면 좋겠어요.”

 

서바이벌 게임
“인터뷰하러 버스 타고 오면서 나름 이런 얘기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녹음기가 앞에 있고 질문지를 보고 있으니까 땀이 나네요.”


하하하, 우리 벌써 3분의 1이나 했어요. 그럼 가볍게 학교생활 얘기를 해볼까요?
“올해 고등학교에 입학했어요. 야간자율학습이 다음 주부터 시작되구요, 지금껏 학원은 다녀본 적이 없어요. 다른 아이들하고 비교하면 특별히 힘들다고 할 순 없는데 심적으로는 좀 부담이 돼요. 수능이 더 가까워진 탓도 있겠지만 전체적으로 중학교보다 분위기가 더 무겁거든요.”


그녀의 꿈은 화가 겸 큐레이터다. 해외근무가 잦은 아빠를 따라 외국생활을 많이 해서 영어에도 익숙하다고.
“영국에 ‘테이트 모던’이라는 갤러리가 있어요. 원래 화력발전소였던 곳을 세계 최대 규모의 현대미술관으로 재탄생시킨 곳인데 거기서 꼭 일해보고 싶어요.”


미래의 테이트모던 큐레이터가 사랑하는 화가는 누굴까?
“제일 좋아하는 화가는 빈센트 반 고흐예요. 어렸을 때 네덜란드에 있는 ‘반 고흐 박물관’ 앞에 살았어요. 박물관 연간회원권을 끊어서 만날 들락거렸죠. 화장실 가고 싶을 때도 박물관에 갔으니까.”


화가와 그림에 대한 대화가 길게 이어졌다. 고흐의 생애와 거친 붓질에 대해, 그의 생애를 연극으로 공연했던 것에 대해 그리고 화가 에곤 쉴레를 다룬 19금 영화에 대해…. 질문지가 눈에 들어온 건 꽤 오랜 시간이 지난 후였다. 
외국이랑 한국이랑 10대들의 삶을 비교하면 많이 다른가요?
“거기도 분명히 경쟁이 있어요. 독일 같은 경우는 대학 등록금이 없기 때문에 오히려 성적이 정말 좋아야지만 좋은 대학에 갈 수 있거든요. 차이라면 그걸 어떻게 바라볼 것이냐, 얼마큼의 가치를 부여할 것이냐를 스스로 정할 수 있다는 거죠. 아무튼 유럽이라고 모든 게 환상적인 건 아니고 제 눈엔 현실적인 부분들이 많이 보였어요.” 


그녀는 한국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삶을 영화 ‘헝거 게임’에 비유했다. 판엠이라는 국가에서 벌어지는 이 서바이벌 게임은 12개 구역에서 만 12세에서 18세 사이의 소년과 소녀를 뽑아 진행하는데 승자는 모두를 죽이고 마지막까지 살아남은 1인이다.
“그 영화처럼 제가 실제로 칼에 맞고 친구한테 죽임을 당하는 건 아니지만 우리들의 현실은 그와 비슷하다고 생각해요. 늘 경쟁과 불안 속에 살아야 하니 자살하는 아이들도 많고, 학교에선 계속 ‘자살예방교육’이란 걸 하고. 자살예방교육이란 단어는 대체 누가 만든 건지 정말 느낌이 이상해요.”

죽을 만큼 힘들게 해 놓고는 ‘죽지는 말라’며 또 다시 교육의 이름을 들먹이는 어른들. 열일곱 소녀의 눈에 세상은 온통 모순투성이다. 

 

뭣이 중한디?
“선거 가능 연령을 만 18세로 낮추는 문제만 해도 그래요. 나이가 어려서, 미성숙해서 선거가 어렵다고 생각한다면 어떤 후보자가 더 적합한지, 좋은 정치가 무엇인지를 판단할 수 있게 교육하면 되죠. 또 단편적인 매체에만 의존하지 않고 다양한 경로로 정보를 모으는 법과 그 정보들을 비교분석하여 자신만의 의견을 세워나가는 법, 그리고 어떤 사안에 대해서 비판적으로 사고하는 법 등을 가르치면 되는 거죠. 이렇게 하지 않으면 만 19세가 되어도 혹은 더 나이가 많아도 선거권을 갖는다는 건 여전히 위험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미리 머릿속에서 생각들을 정리한 후 말하는 그녀는 말을 무척 느리게 했다. 그러나 그 느린 말투에 담긴 10대 소녀의 문제의식은 날카롭기만 하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자기 의견을 조리 있게 말할 수 있는 법, 의견이 다른 사람과 효과적으로 소통하는 법 등에 대해 많이 배워서 굉장히 익숙해져 있는데, 한국에 처음 왔을 때 여기 학생들은 대부분 그렇지 않다는 걸 알았어요. 아이들 생각이 모두 다 비슷하고 튀면 안 된다는 강박도 있는 것 같고. 토론하는 법을 토론을 통해 가르치지 않고 시험지의 문제로만 배우고 있는 게 현실이에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어떻게 배워야 하는가에 대해 그녀가 가진 고민들 그리고 그 고민들 뒤로 살짝 비치는 어머니의 그림자.
“엄마가 제게 참여연대와 자원활동을 소개해주셨거든요. 그러면서 절 참여연대에 보내는 게 일종의 엄마만의 사교육이라고 하셨어요. 제가 가서 보탬이 되기보다는 오히려 배우고 얻어오는 게 더 많을 거라고 하시면서 이기적이면서 너무나 감사한 사교육이라고 하셨죠.”


<참여사회>를 읽으며 문장연습을 한다는 그녀에게 마지막으로 꿈에 대해 물었다. 
“전 꿈이 많아요. 예술 활동을 하면서 더 많은 사람들과 만나고 싶고, 또 참여연대 이외에 다른 시민 단체들도 접해보고 싶고. 그리고 제가 깊게 생각해 보지 못했던 부분들, 눈에 잘 안 들어오는 그런 부분들에 대해서도 더 알고 싶구요. 짤막한 인터넷뉴스가 아니라 논문들도 깊이 있게 읽으며 세상 공부도 하고 싶고, 지금은 <참여사회>를 읽는 사람이지만 언젠가는 <참여사회>를 만드는 사람이 되고도 싶고…. 세상에서 제가 뭘 할 수 있는지 계속 찾아나가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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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리본공작소 자원활동가들에게 리본 만드는 방법을 알려주는 맹승연 회원

 

‘그런데’를 닮은 사람들
온 국민이 ‘그러나’에 울고 ‘그런데’에 웃었다. 생각해보면 너무나 상식적인 결과이건만 세상은 그 상식 하나를 바로 세우는 것조차 버거울 만큼 무너져 있었다. 그래도 세상은 살 만하다고 마음을 추스르려 할 때마다 나타나는, ‘그러나’를 닮은 사람들. 
“여러분이 시위에 나가 있을 때 참여 안 한 4,900만 명은 무엇인가를 하고 있어요. 여러분의 미래는 여러분이 책임져야 해요. 정치는 여러분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으니 여러분은 하던 공부만 계속 하면 되는 거예요.”


촛불집회에 대해 어느 유명 패션회사의 사장이 했다는 이 말을 듣던 날은 나도 세상처럼 그냥 무너지고만 싶었다. 그러나 사람이란 서로가 서로에게 기대어 살아가는 존재(人)이기에, 우리의 상처는 다시 사람들 곁으로 돌아가야만 한다. 
“공작소에 오시는 분들이 하나같이 분위기가 상당히 밝다고 말씀하세요. 제가 광화문 노란리본공작소도 한 번 가봤는데 거기도 분위기가 굉장히 밝아요. 공작소에 올 때마다 전 제 마음의 짐이나 슬픔을 조금씩 덜어내고 가거든요. 근데 나만 덜어내는 게 아니라 다른 분들도 와서 좀 덜어내고, 털어내고 가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그래서 일부러 웃긴 이야기도 하고 태극기 집회에서 변희재가 이런 얘기를 했다고 떠들기도 하고, 일주일 동안 겪었던 소소한 일들도 이야기하고 그랬어요. 공작소에 모인 사람들이 리본을 만들면서 좀 덜 슬프고 좀 덜 힘들 수 있도록…. 그게 내가 해야 하는 역할 중 하나가 아닐까, 그런 생각을 많이 했죠.”


버스나 지하철 혹은 거리에서 마주치는 노란 리본들. 그 작은 리본 하나하나가 세월호 유가족들에게 삶의 위안이 되고 때론 살아갈 용기를 준다고, 나지막한 목소리로 일러주는 그녀. 그녀의 목에 걸린 노란 리본에도 봄 햇살이 가득 내려앉는다.
나의 꺾어진 무릎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그런데’를 닮은 사람들이 내 곁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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