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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참여사회    since 1995

  • 2019년 11월
  • 2019.10.30
  • 655

엄마 나무는 자란다

조용연 회원

 

참여사회 2019년 11월호(통권 270호)

 

일산에서 널찍한 도로를 달리다 서울 근처에 다다르면 차창 밖으로 보이는 풍경이 확연하게 달라진다. 어디 길과 건물의 모습만 그럴까. 겉으로 보이는 구도심과 신도시의 풍경 차이만큼 그곳에서 일상을 꾸려나가는 이들의 삶도 결코 같을 순 없을 것이다.  “결혼해서는 상계동에서 살았어요. 아이들이 자라서 학교 갈 나이가 되니까 아파트 단지를 벗어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냥 남들과 똑같이 학교 보내고 학원 보내고, 그렇게 살고 싶진 않았거든요.” 오늘 인터뷰 주인공과 나눌 이야기는 ‘동네에서 다르게 살기’다. 

 

서촌에 터를 잡다
 

“비슷비슷한 집에서 살며 비슷비슷한 일상을 보내는 사람들…. 다르게 살려면 다르게 생각해야 하는데, 생각하는 방식에 공간이 미치는 영향이 크다는 걸 깨닫곤 이사를 결심하게 되었죠. 친구한테 이런 ‘인문학적 호기’로 이사를 한다고 하니까 ‘멋지다!’고 그러더군요.(웃음)”

 

교통이 편리하고 아이들을 키우는 데 적합하며 자연환경도 어느 정도 보장된 곳을 찾아야 했다. 그렇게 아파트로 둘러싸인 동네를 떠나 그녀가 새롭게 정착한 곳은 ‘서촌’, 경복궁 서쪽에 있는 동네다. 

“지금은 주말마다 놀러 오는 사람도 많고 젠트리피케이션Gentrification❶ 문제도 불거졌지만 저희가 이사 오던 2008년만 해도 전혀 그런 동네가 아니었어요.”

 

참여연대도 2007년에 이 동네로 이사를 왔다. 참여연대 초창기에 2년 정도 간사로도 일했던 경력이 있다기에 비슷한 시기에 같은 곳으로 이사 온 데에 무슨 사연이 있는 건가 했는데 그저 우연의 일치란다. 

“참여연대는 서촌 지역의 랜드마크 중 하나예요. 엄마 입장에서 아이를 어디에서 만나는 게 안전할까 생각할 때 1순위가 통인시장에 있는 정자, 2순위가 참여연대죠. 엄마들끼리 모임 할 때 (참여연대 1층) 카페통인에도 자주 간답니다.”

 

서촌 주민들은 참여연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나요? 관심이 많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맞아요. 별로 관심들이 없어요. 근데 요즘에 좀 아시는 분들 중엔 욕하는 경우도 있더라고요. 박근혜 퇴진 촛불 집회 때 소송을 해서 청와대 사거리까지 집회를 가능하게 한 게 참여연대잖아요. 그 이후 집회가 열릴 때마다 이 동네에 거주하는 주민들은 정말 힘들거든요.”

 

서울에 살지 않는 나는 집회 때마다 아이들을 데리고 대중교통을 이용해 멀리 나와야 하는 불편함이 있었다. 어떤 날은 집회 장소까지 오가는 데만 3시간이 걸리기도 했다. 이런 나와는 달리 툭하면 집회가 열리는 ‘핫 플레이스’에 사는 주민들에게도 그들 나름의 고충이 있었다.

“사람들이 거주하는 공간에서 집회를 할 때는 어떤 것들을 더 배려해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도 같이 해줬으면 좋겠어요. 주말엔 집회 때문에 차가 못 다니니까 저희 아이가 버스로 5분 걸리는 거리를 한 시간씩 가방을 메고 걸어와요. 또 청와대 주변에 학교가 6개 정도 있는데 아이들이 수업하는 시간에도 집회가 열리죠. 진보냐 보수냐를 떠나서 집회 문화 자체가 폭력적인 면이 있어서 아이들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요. 근데 한편으론 참여연대 같은 시민단체들도 고민이 많고 힘들 거란 생각이 들어요.”

 

크고 작은 집회들이 거듭될수록 우리가 풀어내야만 하는 숙제들도 하나둘 늘어가고 있다. 

 

동네를 가꾸고 지키다

 

다르게 살고 싶다는 마음 하나로 선뜻 이사하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원래 추진력과 실행력이 강한 편이신가요?

“좀 그런 것 같기는 해요. 이걸 한번 해봐야겠다고 생각하면 곧바로 실행하는 성격이죠. 근데 그런 힘도 나이를 먹으면서 점점 약해지는 것 같아요.(웃음)”

 

종로마을자치센터 마을지원활동가, 종로혁신교육실무협의회 마을분과장, 종로협치회의 위원, 청운초등학교 학부모회 대의원. 동네에서 현재 맡고 있는 일들을 간략하게 줄인 게 이 정도다. 주말엔 한국사·박물관 체험학습 강사로도 활동하고, 참여연대에서 안내데스크 자원활동까지 하고 있다니 힘이 안 떨어졌을 땐 어땠을까 싶다. 

“가장 관심을 가지고 하는 일은 ‘서울시 마을공동체사업’이에요. 종로에도 중간지원조직으로 ‘마을자치센터’가 있는데 거기서 마을지원 활동가로 일하면서 그동안 마을에서 활동하고 경험했던 것들을 토대로 마을공동체사업을 처음 하시는 분들에게 컨설팅을 해드리고 있어요.”

 

그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일이 또 있다. 바로 아이들 교육과 관련된 ‘서울형 혁신교육’이다.

“이 사업의 핵심은 ‘마을과 함께하는 학교 교육과정’인데, 일종의 마을에서 열리는 ‘방과후 학교’라고 보면 돼요. 학교라는 공간이 가진 한계를 넘어 교육을 마을에까지 확대해서 지역사회가 아이를 같이 키우자는 것이죠.”

 

혁신교육실무협의회는 민간위원, 학교 선생님, 그리고 자치구와 교육청 공무원을 모두 포함하는 ‘민관학 거버넌스’다. 사업은 마을에서 역량이 되는 이들이 수업계획을 짜서 제출하는 일종의 공모 형식으로 진행되며 종로구에서는 11개 사업이 채택되었다. 현재 그녀는 구청과 함께 이 사업들을 운영·관리하고 있다. 

“사직동에서 화원을 오래 운영하신 분이 주말에 아이들과 원예 수업을 하고 싶다고 계획서를 내셨어요. 그 수업에 가봤는데 고등학생 남자 아이가 꽃을 들고 그렇게 환하게 웃는 건 처음 봤어요.”

 

동대문시장을 중심으로 봉제 공장이 많은 창신동에서는 근처의 지역아동센터 3곳이 힘을 합쳐 ‘오케스트라’를 만들었다. 평창동엔 아이들과 함께 연극과 뮤지컬을 진행하는 팀도 있다. 

“올해부터 이 오케스트라가 마을학교 사업으로 운영돼요. 덕분에 아이들에게 첼로나 바이올린처럼 평소 접하기 어려운 악기들을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생겼죠. 실제로 음대에 가고 싶다는 꿈을 키우는 아이들도 하나둘 생겨나고 있답니다.”

 

 

참여사회 2019년 11월호(통권 270호)
참여사회 2019년 11월호(통권 270호)

청운효자동 마을계획단 보육교육분과에서 진행한 마을 어린이 축제(위)와 ‘종로 서촌지기’ 연탄나눔 활동(아래) 사진 

출처 종로서촌지기 페이스북 

 

하나의 씨앗을 뿌리다

 

이 바쁜 스케줄 속에서 그녀는 초등학생, 고등학생 두 아이까지 돌보고 있다. 대체 이런 에너지는 어디서 샘솟는 것일까?

“아이들이 마을에서 활동하는 엄마를 자랑스러워할 때 힘이 많이 나요. 그리고 제가 한 일들이 실제로 마을의 변화를 이끌어낼 때, 또 마을공동체에 관심이 있어 찾아오시는 분들께 저의 경험들이 보탬이 될 때도 무척 뿌듯하답니다.”

 

사실 알고 보면 이 모든 일들은 마음속에 품고 있던, ‘아이들을 키우기 좋은 동네’를 만들고 싶다는 작은 씨앗 하나에서 시작되었다.  

“이 모든 일은 큰 아이 초등학교 입학하고 같은 반 엄마들끼리 만든 모임에서 시작되었어요. 지금은 ‘종로 서촌지기’라는 이름으로 활동하고 있는데 처음엔 ‘육아 품앗이’ 정도였죠. 그러다 우리 모임을 마을로 확장해서 함께 해보면 어떨까 하는 의견들이 나왔고 결국 종로구와 함께 하는 마을공동체사업으로까지 성장해 간 거죠.”

 

마을의 아이들과 같이 여행도 다니고, 김치도 만들고, 벼룩시장도 열고, 마을 사람들이 강사로 나서는 ‘누구나 강사’라는 이름의 마을학교도 만들고, 연탄 나르기 봉사활동, 부모교육 강연, 독서모임, 놀이터 워크샵 등등 정말 다양한 활동들을 함께했다. 

“동네주민들 사이에서 이슈가 되는 일에도 관심을 가지고 함께 했는데, 대표적인 것들엔 시립어린이도서관 이전 반대, 필운대로 지하주차장 건설 반대, 옥인동 보안수사대 통합 청사 건립 반대 등이 있어요. 요즘 서촌 지역의 가장 큰 이슈는 ‘도시 재생’이고요. 오폐수시설이 없고 도시가스도 안 들어오는 집들이 있는데, 다양한 구성원들이 모여 사는 곳이다 보니까 어떤 지향점을 가지고 우리 동네를 바꾸어 나가야 할지 고민이 많죠.”

 

‘민관협치’라는 말이 유행하는 요즘, 이런저런 경험이 많은 그녀에게 지역자치와 민관협력이 제대로 되려면 무엇이 가장 시급한 과제인지를 물었다. 

“‘민관협치’하면 왠지 민과 관이 동등한 입장처럼 느껴지잖아요. 근데 절대 동등하지 않아요. 관官이 갖는 조직력, 예산의 힘은 민이 아무리 다가가려고 해도 접근 불가능이거든요. 결국 진정한 민관협치가 이뤄지려면 관이 조직화돼서 예산을 운영하듯이 민도 민만의 조직과 예산이 반드시 있어야 된다고 생각해요.”

 

엄마 나무는 끊임없이 자란다

 

“앞으로 꿈이 있다면 지난 6~7년 동안 한국사와 박물관 수업을 하면서 공부했던 걸 정리해 책으로 만들고 싶어요. 한국사가 아니라 한국사 공부 방법에 대한 책, 구석기가 뭔지 설명해 주는 게 아니라 어느 박물관에 가면 구석기에 대해 잘 알 수 있는지를 안내해 주는 그런 책 말이죠. 근데 내년엔 모든 회의와 활동들을 접고 안식년에 들어갈 겁니다. 큰아이가 내년에 고3이 되는데 일본에 있는 대학에 가고 싶어 해서 제가 옆에서 좀 도와주고 챙겨줘야 할 것 같아요.” 

 

좌중에 있던 사람들 모두 안식년이 아니라 고난의 해가 될 것 같다는 농담을 던지자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그녀가 답한다. 

“제가 활동적인 성향이 강하다 보니까 아이들이 어렸을 땐 함께 보내는 시간이 그렇게 행복하지만은 않았어요. 그 시기가 아이들한테 너무 미안해요. 근데 지금은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이제 다 큰 아이들이 너무 예쁜 거예요. 아이들과 함께 엄마도 같이 큰 거죠. 이제야 비로소 아이들한테 온전히 시간을 내줄 수 있는 준비가 된 것 같아요.”

 

우리 동네에 나무가 한 그루 있다. 작은 녀석이 나무의 이름을 물었을 때 난 “엄청 큰 거 보니까 ‘엄마 나무’인가 봐.”하고 대답했다. 그 말에 아이는 이렇게 말했다. “저렇게 큰 엄마 나무도 계속 자라네!” 그녀와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엄마 나무임에도 자라나길 멈추지 않는 그 나무가 생각났다. 

 

 

낙후된 구도심이 활성화되면서 사람들과 돈이 몰리고, 결과적으로 원주민이 밀려나는 현상 


글. 호모아줌마데스

두 딸을 키우고 있는 애 엄마. 2009년 참여연대 회원 가입과 동시에 자원활동 시작. 아카데미 느티나무에서 ‘백인보’라는 코너에 비정규적으로 인터뷰 글을 쓰고 있음. 특기사항 : 합기도 빨간띠

사진. 이선희 미디어홍보팀 간사

녹취. 이한나 미디어홍보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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