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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019년 11월
  • 2019.10.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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속표지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무소불위 권한을 가진 대한민국 검찰, 어떻게 견제할 수 있을 것인가? 개선해야 할 수사 관행의 문제는 무엇인지, 검찰을 민주적으로 통제할 수 있는 방안은 무엇인지 살펴본다.

 

검찰은 어떻게 무소불위 권한을 가지게 되었나

글. 한상희 건국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정치검찰이라는 운명

우리나라의 검찰은 현대정치사의 맹점을 정확히 꿰뚫는다. 국가의 모든 권력이 대통령이라는 하나의 점에 수렴되어 세상을 휘잡을 때에는 그 숙주를 향한 무한 충성의 경쟁에 나섰다가, 민주화의 과정에서 정치권력의 끈이 약간이라도 느슨해지면 스스로의 권력을 확장하고 조직을 강화하는 절호의 기회로 삼아 끝없이 수탈적 조직으로 변신한다. 그래서 권위주의적 군사정부 혹은 그 연장이라 할 정치체제에서 검찰은 누구보다 앞장서서 그 정치권력의 수단이 되고자 하였고, 정권이 바뀌어 검찰권력 위에 법과 국민을 두고자 하는 정부가 들어서게 되면 여지없이 돌아서서 자신만의 독립성과 중립성이라는 방벽을 내세우며 완강하게 저항하고 반발한다. 

 

오늘날 검찰이 ‘괴물’이 되어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를 수 있었던 가장 큰 요인은, 그래서 한국정치가 된다. 국민의 정부 초기 김대중 대통령은 검찰청을 방문하여 “검찰이 바로 서야 나라가 바로 선다.”는 경고성 문구를 남겼지만, 실제 검찰이 휘청거리고 비틀거렸던 주된 동인은 검찰 그 자체가 아니라 그가 가진 형사사법의 권력을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고자 했던 정치의 패악들이었던 것이다. 

 

검찰의 역사: 민주화 전사前史

경찰이 적나라한 통치수단으로 전횡하였던 일제강점기나 자유당 정권기에서조차 ‘반공검사 오제도’와 같은 법외적 폭력이 검찰이라는 이름으로 당대를 휘잡을 수 있었던 것도 “7인의 범죄자를 검거하기 위해 100명을 잡아들인다”(동아일보 1929. 12. 6)는 식민통치의 수족이었던 검찰이 해방공간에서의 이념대립을 빌미로 한 독재권력으로 그 숙주를 이동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검찰은 무소불위의 경찰권력을 견제하고 통제한다는 명분으로, 혹은 법치의 지엄함을 빌미 삼아 한편으로는 경찰의 권력에 편승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스스로 그 폭력의 주체가 되어 국민 위에 군림했다. 당시 검사 출신의 엄상섭 의원이 걱정했듯이 경찰파쇼를 억제하기 위해 검찰에 부여하였던 기소독점이나 기소편의주의, 그리고 경찰수사 지휘권, 검사신문조서의 증거능력 인정 등의 장치들이 하나같이 검찰파쇼의 토대가 되어 독재정권이 언제든지 동원할 수 있는 권력을 낳았던 것이다. 

 

하지만 검찰이 정치권력이 구사하는 통치술에 안정적으로 내포되는 것은 군사정권에서 비롯한다. 군대와 중앙정보부 그리고 공화당이라는 사유화된 정당을 통치의 핵으로 삼았던 군사정권은 여러 공무원들이 그랬듯이 검찰과 법원조차도 관료의 틀 속에 묶어서 자신의 권력의지에 합법성의 외관을 구성해주기를 원하였다. 그에 이어 등장한 군사정부는 애초부터 검찰을 관료조직으로 만들고자 하였다. 법이 지배하는 국가가 아니라 법을 통한 지배가 관철되는 억압적 사회질서를 구축하고자 하였던 군사정권은 출범 직후부터 중앙수사국을 설치하는 등 대통령의 하명수사가 가능한 대검체제를 강화하고 영장신청권을 검사에게만 부여하는 한편, 사법시험과 같은 고시체제를 도입하여 법률전문직이 아닌 법조관료로서의 검찰과 법관을 양성하기에 이른다.

 

3선 개헌으로 등장한 권위주의체제는 사법연수원을 설치하여 국가가 획일적이고 일방적인 교육체제로 모든 검찰과 법관을 찍어내던 모습은, 유신체제에서 구속적부심 제도를 폐지하고 재정신청 제도를 최소한으로 축소하며 언제든지 긴급구속이 가능하게 만들었던 형사소송법의 개정과 함께 무소불위의 상태로 치닫는 정치권력의 한 켠에서 검찰권력 또한 극대화된 모습으로 확장되었던 우리 현대사의 허점을 극명하게 드러낸다. 신직수-김기춘 등으로 이어지는 소위 ‘정치검찰’의 계보는 이렇게 틀을 잡아갔다. 

 

검찰의 역사: 민주화 이후 

하지만, 1987년 6월 항쟁으로 촉발된 민주화의 역사는 이런 검찰권력에 별다른 충격을 주지 못하였다. 그것 자체가 신군부와 자유주의 정치세력의 타협에 의하여 이루어진 체제라는 점에서, 그리고 이 과정에서 검찰출신의 정치인들이 적지 않게 양산되고 또 새로이 등장하는 정부의 요직을 차지하게 되면서 검찰의 체질 변경이라는 것은 아예 구상되지 못했다. 오히려 통치술의 행사과정에 과거 군대나 안기부 등이 가지고 있던 몫이 민주화로 인하여 현저하게 줄어들면서 검찰은 그의 대체수단으로 자리매김하게 된다. 권력의 정점을 차지하던 안기부의 수장에 배명인, 서동권 등과 같은 검찰출신이 임용되는가 하면, ‘범죄와의 전쟁(1990~1992년)’에서 특별히 부각되었던 검찰의 수사 실적이 3당합당 이후 대통령에 대한 탈당요구와 보안사 민간인 사찰 사건 등의 정치적 위기상황을 극복하는 데 적지 않은 기여를 했다. 1992년의 강기훈 유서대필 사건이 당시의 정국을 보혁구도로 획정해내었던 사례 등은 검찰권력의 존재 자체가 민주화와는 전혀 무관한 공백영역에 자리하면서 여전히 통치술의 한 영역을 구성하고 있을 따름이었음을 잘 보여준다. 

 

물론 전두환·노태우의 처벌과정에서 ‘실패한 쿠데타’론을 제기한 측도, 그들을 수사하고 처벌로 이끈 측도 모두 검찰이라는 점에서 검찰권력의 양면성을 말할 수 있겠지만, 그 모든 과정에서 일관되게 진행되었던 것은 검찰권력의 강화였다. 검찰권력은 ‘실패한 쿠데타’론으로 두 전직 대통령을 보호할 수도, 법과 정의를 내세우며 이들을 처벌하고 현직 대통령의 아들까지도 법정에 세울 수도 있는, 그래서 경우에 따라서는 정치권력을 넘어서기도 하는 또 다른 권력임을 끊임 없이 추구해 나갔던 것이다.

 

실제 이런 양상은 국민의 정부 시절에 극대화된다. 1999년 검찰이 대전조폐공사의 파업을 유도하였다는 발언이 터져 나오고 모재벌회장의 구명운동과정에서 검찰총장을 비롯한 고위층에 고가의 옷을 로비 금품으로 증뢰한 사건이 발생하면서 검찰은 최대의 위기에 몰려들었고 이를 타개하기 위한 방편으로 최초의 특별검사가 임명되는 한편 범국가적인 사법개혁추진위원회가 구성되기에 이른다. 하지만, 국회에서 열린 청문회도 검찰의 수사도 그 사건의 실체를 제대로 규명하지 못한 채 알아낸 것은 ‘앙드레 김의 본명’뿐이라는 농담만 남긴 채 이 모든 파동은 마무리되고 말았다. 검찰개혁을 향한 국민적 요구가 무엇보다 가열차게 고양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레임덕을 걱정해야 하는 정치권력은 이 검찰을 개혁하기 보다는 그들의 안위를 보장하며 자신의 편으로 끌어들이는 것이 더욱 유리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진정한 무사는 곁불을 쬐지 않는다’는 검찰총장의 취임사와 대통령의 두 아들에 대한 구속으로 매듭된다. 

 

노무현정부에서 제기되었던 사법개혁의 논의들 역시 검찰권력을 순치함에는 그리 큰 도움이 되지 못했다. ‘검사와의 대화’는 오히려 검찰권력의 위상만 확인시켰으며, 검찰권력의 핵심인 중수부 폐지 시도는 “내가 먼저 내 목을 치겠다”는 검찰총장의 반발만 야기하였을 뿐이다. 이어 발생한 송두율교수 구속시도에 대한 천정배 법무부장관의 수사지휘권발동 사태는 검찰총장의 사퇴로 이어졌지만, 동시에 ‘아버지와도 같은 검찰총장’(이용주 당시 서울중앙지검 검사)이라는 가부장적 검찰조직의 강고한 조직주의를 재확인하는 계기를 마련하기도 하였다. 보기 나름으로는 거의 전국가적·전사회적으로 진행되었던 사법개혁의 논의조차도 검찰에 관한 한 무력하기 그지없어 공판중심주의라는 원론조차도 제도화하지 못하는 상황에 처하기도 하였다. 

 

명실상부한 검찰공화국의 탄생

이명박, 박근혜 정부의 통치시기는 명실상부한 검찰공화국의 극명한 사례로 점철된다. 이미 노무현 정부에서부터 전략적 유연성문제라든가 이라크파병, 대통령탄핵, 행정수도이전사건 등 정치적 의제들이 하나같이 사법적 판단을 통해 처리되면서 정치의 사법화 내지는 사법에 의한 정치의 식민화 현상이 나타났지만, 이 두 정부는 그러한 사법만능의 틀을 검찰권력을 통해 재편하였다는 점에서 명실상부한 검찰공화국의 체제를 만들어내었다.

 

이 정부들에서 전가의 보도처럼 사용하던 법질서 정치(law and order politics)의 통치술은 정치적 반대나 주장은 물론 시민사회의 집단적 요구나 민원조차도 업무방해죄나 교통방해죄, 명예훼손죄 등의 형사문제로 만들어 검찰의 폭력 아래 처단하였다. 전직 대통령에 대한 먼지털이식의 수사는 이렇게 법질서정치의 첨병으로 나섰던 검찰이 자신의 권력을 시민사회 모두에 대하여 재확인시켰던 작업에 다름 아니었다. 물론 이 과정에서 국정원 댓글조작사건 등과 관련하여 채동욱 검찰총장을 낙마시키는 등 나름 정치권과 검찰의 이반현상이 나타나기도 하였다. 하지만, 그는 ‘아버지 같은 검찰총장’이 되지 못하였다. 그 사건은 검찰조직에 대한 판사출신 법무부장관의 개입이 문제로 된 것이 아니라, 검찰총장을 거부한 정치권력으로부터 조직의 안전을 보호하는 것이 우선적인 문제로 인식되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검찰공화국은 정치권력과의 야합뿐 아니라 검찰제도 그 자체의 문제들로부터 야기되는 측면도 적지 않다. 영장신청권을 비롯한 수사(지휘)권에서부터 기소권, 행형지휘권은 물론이고 지자체의 송무사건에 대한 지휘권까지도 독점하고 있는 검찰은 그 강대한 권력에도 불구하고 어떠한 견제나 감시도 받지 않는다. 외청인 검찰청을 감사하고 견제하여야 할 법무부는 애초부터 검찰의 식민지가 되어 있고, 국정원 등과 같은 권력기관을 비롯하여 외부의 주요기관에 파견한 검사들은 검찰의 정보원이자 인적 네트워크의 관리자가 되어 우호적인 외부관계들을 조성한다. 뿐만 아니라 검사출신들의 영향력이 결코 적지 않은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중요한 고비마다 든든한 방호막이 되어 주기도 한다. 정치권력이 법의 이름으로 검찰을 동원하기 위하여 만들어준 그 많은 권력들이 이제는 검찰의 고유한 권력이 되어 또 다른 괴물이 되어 버린 검찰의 뼈와 근육을 구성하고 있는 것이다. 

 

속표지

 

민주적 검찰개혁

최근 터져 나온 검찰개혁의 논의들은 이제 이 검찰공화국을 직격한다. 공수처의 설치나 검경수사권조정의 문제는 검찰이 독점하던 권력을 쪼개고 분산시키는 것이기에 중요하며, 인권수사준칙이나 특수부 폐지 등은 검찰 조직과 관행에 대한 일대 수술이라는 점에서 의미를 가진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다. 이런 논의들이 야기하는 정치권과 검찰권력간의 갈등과 결별의 조짐들, 그리고 그 시끄러움에서 문득 문득 각성하게 되는 시민들의 검찰개혁 의지, 이것이야말로 불가역적 개혁의 물꼬를 여는 중대사건이다. 검찰개혁이라는 명분으로 검찰로부터 들어낸 권력을 정치기관인 법무부로 이전하는 눈가림의 개혁이 아니라 시민들이 검찰권력에 대한 감시자이자 견제자로 스스로 자리매김하게 되는, 가장 두드러진 인식의 변화가 여기서부터 시작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런 시작으로부터 우리는 민주적 검찰개혁이라는 창대한 결과를 기대할 수 있게 될 것이다. 

 

 

[특집] 검찰개혁의 시간 

1. 검찰은 어떻게 무소불위 권한을 가지게 되었나 한상희

2. 검찰의 불법적·반인권적 수사 민경한 

3. 검찰개혁, 어디까지 왔나 박근용

4. 검찰개혁과 민주주의 이국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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