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04월 2021-04-01   951

[만남] 노란 리본을 닮은 사람 – 임혜선 회원

노란 리본을 닮은 사람

임혜선 회원

월간참여사회 2021년 4월호 (통권 284호)

‘만남’의 주인공을 만나기 위해 서촌 동네를 도는데, 한눈에 ‘이분’임을 알아챌 수 있었다. 반짝이는 보석들 사이에서도 남다른 빛을 내는 한 사람, 서촌에서 주얼리샵 ‘커밍제인’을 운영하는 임혜선 회원이다. “주얼리는 만드는 과정과 그 결과물에서 힐링을 얻을 수 있어 좋아요.”라며 환하게 미소 짓는 모습이 따뜻한 햇살을 맞는 듯하다. 어느새 4월, 벌써 7년째 참여연대 세월호 추모 캠페인 ‘서촌 노랗게 물들이기’에 동참하고 있는 사연과 코로나19 상황에 자영업자로서 느끼는 어려움 등에 대해 이야기 들어봤다.

서촌에 자리를 잡으신 지 얼마나 되셨나요?

이제 7년 됐어요. 2014년 말에 가게 임대계약을 하고 이듬해에 들어왔어요. 처음 여기 왔을 때 동네가 너무 좋았어요. 사실 종로 쪽에 올 일이 잘 없었거든요. 다니던 회사를 관두고 가게를 얻기 위해 한번 와봤는데 그 뒤로 몇 번 더 놀러오면서 ‘여기서 살고 싶다’ ‘살지는 않더라도 뭘 해보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고 이곳에 자리를 잡게 되었어요.

특별히 이곳이 마음에 드신 이유가 있었을까요?

느낌이 너무 따뜻했어요. 햇빛이 항상 비추는 곳이랄까요? 위로받고 힐링 되는 느낌이 너무 좋았어요. 실은 그전까지 회사를 다니는 게 너무 힘들었거든요. 재미가 없고 적성에 안 맞는 일을 하다 보니 몸 이곳저곳이 아팠어요. 회식이 제일 싫었어요(웃음). 서촌은 제게 조용하고 한적한 시골 같았어요. 뭐랄까, 평화로운 동화 속에 있다가 바로 옆 광화문에만 가도 현실로 나가는 것 같더라고요. 마음이 좀 편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하기 싫은 것은 안 하면서 살고 싶었고요.

‘커밍제인(Coming Jane)’이라는 가게 이름의 뜻이 궁금해요.

홍콩에 갔을 때 ‘아네스베(Agnes b)’라는 이름의 플라워 카페를 봤는데, 간판이 너무 예뻤어요. 필기체로 쓰인 그 레터링이 마음에 들었죠. 저도 그런 모양을 내고 싶어서 이름을 짓다가, 영화 제목들을 살피기 시작했어요. 그러다 영화 〈비커밍 제인〉을 보고는 ‘커밍제인’으로 결정했어요. ‘제인(Jane)’은 우리나라 ‘철수’, ‘영희’ 같은 흔한 이름이잖아요. 편하게 아무나 들어올 수 있는 가게라는 의미를 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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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촌에 참여연대가 있다는 건 알고 계셨나요? 회원이 되기 전에 참여연대에 대한 인상은 어땠나요. 

참여연대의 존재는 알고 있었는데 서촌에 있는지는 몰랐어요. 이전부터 저는 사회 문제, 특히 동물이나 환경 문제에 관심이 많아서 몇 군데 후원회원이기도 해요. 참여연대는 어려움에 처한 사람들을 도와주는 서포터라는 이미지가 있었죠.

회원으로 가입하게 된 직접적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서촌 노랗게 물들이기’ 캠페인이에요. 전부터 작게나마 후원을 하고 싶다는 생각은 했지만 나서게 되진 않았는데, 2015년 4월에 참여연대 간사님이 학생들과 캠페인으로 가게에 오셨을 때 가입을 결심했어요. 그때 참 마음이 아팠거든요. ‘고작 1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벌써 사람들 기억에서 잊히고 있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면서, 뭐라도 도움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후원도 하고 참여도 하기 시작했어요. 사실 저처럼, 하고 싶어도 용기를 잘 못 내는 사람들은 이렇게 직접 만날 계기가 생겨야 행동하는 것 같아요.

벌써 7년째, 매년 4월마다 참여연대 ‘서촌 노랗게 물들이기’ 캠페인에 동참해주고 계신데, 가게에 비치된 

노란 리본과 포스터를 본 손님들의 반응은 어땠나요?

손님보다도, 사실 처음에 주변 사장님들이 매출이 걱정된다며 “사람들이 여기서 즐거운 마음으로 다녀야 물건도 사고 할 텐데, 안 붙이는 게 낫지 않겠어?”라는 말씀들을 하셨어요. 캠페인에 동참해도 되는지 각자들 고민도 하셨고요. 공감의 정도 혹은 생각의 차이라고 생각했어요. 막상 오시는 손님들은 제 느낌으로는 호의적이셨어요. 리본도 가져가겠다고 하시고, 같이 기억하고 위로하는 분위기가 흘렀던 것으로 기억해요. 서촌에 오는 분들 대다수가 참여연대 건물 앞을 지나서 오시기도 하니까요.

최근 코로나 상황으로 자영업자들이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어요. 코로나 이후 달라진 점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일단 서촌을 찾는 분들이 이전보다 4분의 1가량으로 줄었고요. 지난겨울엔 평일 같은 경우, 하루 한 명 정도 오거나 아무도 안 올 때도 많았어요. 매출이 많이 줄었죠. 가게 문을 닫은 곳도 많아졌고 이곳을 떠나겠다는 사장님들도 꽤 있어요. 임대료를 놓고 건물주와 임대인 간 입장 차이로 관계가 틀어지는 곳들도 있고요. 임대인은 상권이 많이 죽었다고 생각하는데, 건물주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하는 거죠. 임대료 조정은 협의보다는 거의 통보 방식으로 이뤄지니까 자존심이 상하기도 하고 참 괴롭더라고요. 서로가 좀 더 수평적 관계가 된다면 더 좋을 텐데….

저도 작년 말 재계약을 하면서 나가야 할지 말아야 할지 고민했어요. 임대료를 유지하는 부담이 적지 않거든요. 생존의 문제가 되니까 가게를 폐업하고 다시 회사로 돌아가야 하는지 몇 달을 심각하게 고민했죠. 결국 좀 더 유지해보기로 힘들게 마음의 결정을 내렸어요.

그리고 저 같은 경우, 한동안 꽤 무기력해지기도 했어요. 매출이 준 것이 코로나 탓인지 제 경쟁력 탓인지 정말 헷갈리더라고요. 코로나 이후로 판매 물건이나 판매 방식들이 바뀌어가는 것을 보면서 ‘커밍제인’은 이러한 변화에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고민이 깊었는데, 코로나 상황이 금방 끝날 줄 알고 그간 넋 놓고 허송세월 보냈단 느낌을 지울 수가 없어요.

월간참여사회 2021년 4월호 (통권 284호) 월간참여사회 2021년 4월호 (통권 284호)

그럼 현재 자영업자로서 정부 또는 우리 사회에 제안하거나 부탁하고 싶은 점이 있다면요?

자영업을 하면서 ‘아! 이런 게 바로 갑을관계라는 거구나…’ 하고 느낄 때가 많아졌어요. 일부 불평등한 제도들 때문이기도 하지만 ‘자영업자는 도움을 바라는, 도움만 받는 집단’이라는 프레임도 불편하더라고요. 코로나 같은 재난 상황이 왔을 때 손해를 보고 생계가 어려워지는 사람들에 대한 법 제도가 없는 게 정말 아쉬워요. 소위 ‘있는 사람들’이 선의를 베풀어야 한다고 사회적으로 강요되는 것도 결국 제도가 없어서 벌어지는 일들이죠.

명확한 기준이 담긴 제도가 있다면 서로에게 희생을 강요하거나 강요당하지 않고, 당연히 취해야 할 권리이자 책무가 되지 않을까요? 사회적 재난으로 월세를 인하해주는 건물주도 결국 따지고 보면 임대료 깎아주고 세제혜택을 받거든요. 그런데도 ‘깎아주니까 착한 사람’이라고 칭해서 갑을관계를 더 심화시키는 것 같아요.

‘보상 받는다’는 프레임도 잘 이해가 안 가요. 나라에서 행정 집행상 피해를 입은 사람이 생기면 그것에 대한 대가를 주는 것은 당연하다고 생각하는데, 그걸 두고 ‘떼쟁이’라고 이름 붙이는 건 정말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해요. 현실적이고 촘촘한 제도들이 있었으면 이런 어려운 때엔 소상공인, 임대인들도 정부 지원받고 건물주도 양보에 대한 혜택을 받음으로써 좀 더 수평적인 관계가 형성될 것이라고 봅니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 사회에 바라는 점은, 변화해야 하는 것과 변해야 하는 것에 대해서 항상 유연하게 바라보고 지지해주시면 좋겠어요. 그리고 정부가 옳은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다 같이 감시하고 불합리한 일이 생겼을 때 눈 감지 않고 같이 목소리 내길 바라요.

자영업을 하면서 혼자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발생할 때, 주로 어떻게 대처하시나요?

혼자 알아보고 해결해 나가다가 어려울 때는 지인들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 서촌에 임대해서 자영업 하는 100여 명이 단체 카톡방을 열어서, 어떤 가게가 어디에 새로 들어왔고 또 나갔는지, 수도가 고장 났을 때 어디에 연락해야 하는지 등 다양한 정보들을 공유하고 있어요.

이 시대 자영업자로서 소외받는 느낌도 있어요. 하나부터 열까지 전부 다 제가 혼자 해야 하는데, 세금 신고 부분도 아무것도 모른 채 시작해야 하는 것이 힘들었거든요. 물론 나중에 알고 보니 국세청 사이트에 접속하면 도움 되는 안내 자료들이 있긴 하던데, 어느 기관을 찾아야 알 수 있는지 자체를 몰랐으니까요. 용어들도 다 너무 낯설고요. 신규 사업장에는 챙겨야 할 행정 업무나 알고 있어야 할 정보를 설명하고 안내해주는 행정 담당자가 찾아와주거나 연결될 수 있다면 정말 좋을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공식 질문입니다. 임혜선 회원에게 ‘참여연대’란?

더 나은 사회를 위해 활동하고 감시하는 슈퍼컴퓨터이자, 도움 필요한 곳에 나타나서 손 내밀어주는 인권 변호사요.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일을 잘하고 있는지 늘 관찰하고 감시하며, 힘든 일을 겪었지만 조리 있게 자기 상황과 요구를 말하기 어려워하는 사람들을 위해 대신 말해주니까요.

그리고 참여연대에 제안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어떤 사건이 일어나면 사람들은 ‘어떻게 그럴 수 있어?’ 하고 놀라면서 관심을 보이지만, 그 문제의 해결 과정이나 결과에 대해서는 쉽게 무관심해진다는 생각을 많이 해요. 사람들이 끝까지 기억하고 결과에 대해 항상 눈여겨볼 수 있게 환기해주는 역할도 해주셨으면 해요. 세월호참사 이후 ‘노란 리본’도 그렇고 ‘서촌 노랗게 물들이기’ 캠페인도 혹시 우리 사회가 잊은 건 아닌지 묻고 기억하고 떠올리도록 해주시잖아요. 그런 참여연대 활동에 공감하고 연대할 수 있는 홍보에도 힘써주시길 바라고요, 무엇보다 힘을 잃지 않고 활동을 지속해주시는 것을 꼭 부탁합니다.

임혜선 회원은 ‘노란 리본’을 언급하며 이내 눈시울을 붉혔다. 그러곤 덧붙인다. “슬프진 않아요, 속상한 거지….” 마음이 힘들고 답답하고 억울한 감정들을 그냥 넘기지 않고 그것의 근원을 찾아서, 어떠한 사회적 제도와 문화가 변화하면 좋을지 탐구해 가는 그가 참 멋져 보였다. 이런 분이 참여연대와 함께하고 있으니 몹시 든든하기도 한 4월이다.


글. 이은주

계간 「평화저널 플랜P」 편집장, ‘지혜로운 협력대화 모델’ 와이즈 서클 대표. 민주적 의사소통 및 회의, 진행자 과정 프로그램으로 학교, 마을 공동체, 민간단체나 평생학습관 등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있으며, 참여연대 운영위원 및 아카데미느티나무 강사로도 활동하고 있다

사진. 미디어홍보팀 이한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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