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09월 2021-09-01   819

[보자] ‘우리’는 ‘둘’이 될 수 있을까

‘우리’는 ‘둘’이 될 수 있을까 

 

 

숨겨진 연인

‘마도’(마틴 슈발리에 분)와 ‘니나’(바바라 수코바 분)는 노인이고, 동성 커플이다. 같은 층 다른 집에 따로 사는 둘이지만 일상을 보면 동거와 다름없다. 20년 넘게 지속된 관계지만 아직도 서로를 보는 눈에 꿀이 뚝뚝 떨어지는 둘은, 마도의 집을 팔고 로마로 터전을 옮겨 좀 더 홀가분한 여생을 누리자는 계획을 세운다.

 

문제는 마도가 둘의 관계를 세상에 숨겨왔다는 것이다. 많은 것이 ‘조심스러운’ 마도는 파트너와 함께 춤을 추는 댄스홀을 방문해서도 홀로 술만 마신다. 그가 파트너 니나와 춤추는 곳은 둘만 있는 집뿐이다. 마도의 집에서 함께 밤을 보낸 다음날, 니나는 부동산 중개업자가 오기 전에 서둘러 자기 집으로 건너가야만 한다. 마도의 자식들 역시 두 사람의 관계를 모른다.

 

그러던 어느 날, 마도는 생일을 맞아 자식들에게 연인과 함께 로마로 떠날 계획임을 알리기로 결심한다. 마도의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집을 방문한 마도의 딸 ‘앤’과 아들 ‘프레드릭’ 그리고 손자 ‘테오’. 프레드릭은 마도의 사별한 남편이 남기고 간 시계, 즉 자신의 ‘아빠의 유품’을 갖고 장난치는 테오에게 화를 내고, 괜찮다고 말하는 마도에게 “안 괜찮은 게 있긴 해요? 아빠가 죽기만을 기다렸잖아요” 라며 비아냥거린다. 프레드릭의 기세에 마도는 결국 자식들에게 니나와의 관계를 털어놓지 못하고, 부동산 중개업자에게 내놨던 집도 회수한다. 니나에게는 모든 것이 잘 해결되었다고 거짓말을 하며.

 

그러다 우연히 부동산 중개업자를 만나 모든 진실을 알게 된 니나는 마도에게 불같이 화를 내고, 마도는 그날 뇌졸중으로 쓰러진다. 죄책감에 휩싸인 니나. 연인 곁에서 회복을 돕고 싶지만, 세상은 그를 밀쳐낸다. 구급차를 같이 타려다가도 “뒤로 물러서라”는 말을 듣고, 마도의 집에 있다가도 갑자기 방문한 자식들을 피해 숨어야 하고(둘의 관계를 모르는 사람들에겐 니나의 행동이 주거침입으로 보일 것이다), 마도의 간병인에게 여러 차례 면회를 거절당한다.

 

월간참여사회 2021년 9월호 (통권 288호)

우리, 둘 Two of Us

2019 | 프랑스, 룩셈부르크, 벨기에 | 드라마 | 95분

감독 필리포 메네게티 출연 바바라 수코바, 마틴 슈발리에

 

 

스릴러 같은 사랑

영화는 스릴과 서스펜스를 의도한 연출을 강조한다. 시끄러운 까마귀 소리, 시계 초침 소리, 날카로운 초인종 소리와 문 두드리는 소리. 어두운 조명과 낮은 채도, 긴장된 표정의 클로즈업, 호수에 떠오르는 주검의 환영은 그들의 위태로운 사랑을 강조한다. 

 

니나는 실로 위태롭다. 마도의 가족들에게 자신의 존재를 밝힐 수 없고, 밝힌다고 해도 받아들여질 가능성은 낮다. 뇌졸중으로 언어 능력을 상실한 마도가 그를 위해 증언해주기도 어려운 상황. 결국 니나는 간병인을 쫓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하기 위해 모함과 거짓말을 동원한다. 오로지 마도의 곁에 있기 위해. 

 

그리고 이런 니나의 행동을 눈빛으로, 온 몸으로 승인하는 마도는 간병인을 엿 먹이기 위해 집을 탈출해 둘만의 추억이 깃든 공간에서 발견되거나 발견된 뒤에는 오롯이 니나만 바라보며 미소 짓고 손을 잡고, 딸에게 시위하듯 짐가방을 꾸리기도 한다. 단지 말을 하지 못할 뿐, 의지와 욕망은 니나에게 향해 있음을 또렷이 보여준다.

 

둘의 관계를 알아챈 마도의 딸 ‘앤’은 둘을 갈라놓으려 한다. 집의 잠금장치를 바꾸고, 마도를 요양소에 ‘감금’시킨 뒤 자취를 감춘다. 마도는 요양소에서 생기를 잃어가고, 연인의 행방을 알지 못해 초조한 니나는 마도의 자식들을 찾아가 돌을 던진 뒤 돌아서서 엉엉 운다. 그런 니나를 보며 내 얼굴도 뜨겁게 적셔졌다.

 

다행히 영화의 결말에서 마음이 좀 놓였다. 완벽한 해피엔딩은 아니지만 충분히 로맨틱하다. 쫓겨난 간병인과 그의 아들이 헤집어 놓은 것으로 추정되는 니나의 집. 로마로 떠나기 위해 인출한 현금이 없어지고 집 안은 난장판이지만, 서로 애틋하게 바라보며 춤추는 둘이 있다. 배경음악으로 〈Chariot (la terra)〉가 흐르며 암전, 스크린 위로 노래 가사가 새겨진다. 

 

“…당신을 위한 새로운 세계. 세상, 이 세상. 

국경 없는 세상. 달은 우리에게 행운을 주고. 

그건 우리의 미래가 되겠지. 날 사랑한다면….”

 

생활동반자법의 필요성

오랜 시간 함께한 추억이 쌓여 서로를 잘 알고, 기쁠 때나 슬플 때나 곁에 있으며 몸과 마음으로 상대를 쓸어주는 한 사람. 노년에 그런 이가 곁에 있다는 것은 실로 축복일 것이다. 그런데 혈연관계랍시고 그런 존재를 가족으로부터 떼어놓을 권리가 있을까? 혈연·혼인 관계에 비해, 다른 친밀한 관계는 권리를 보장받기 어려운 이 사회에 대해 생각해본다. 

 

특히 여성의 경우 배우자로부터 간병 받기 어렵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통계 결과가 있다. 삼성서울병원 가정의학과, 국립암센터 국제암대학원 등 공동연구팀이 암 환자 439명을 분석한 결과, 남성 환자 86.1%는 신체활동 지원을 배우자에게 맡긴다고 응답한 반면, 여성 환자는 36.1%에 그쳤다. 또한 남성 환자 84%가 심리적 위안을 배우자에게서 얻는다고 응답했지만, 여성 환자는 이 비율이 32.9%에 불과했다.

 

한국 사회에서 여성에게 더 많은 돌봄의 역할이 요구되고, 그로 인해 상대적으로 여성이 돌봄 능력을 잘 갖추게 되었음을 방증한다. 그렇다면 남성 배우자와 결혼하는 것 보다 서로를 잘 돌보는 여자들끼리 (꼭 성애적 사랑을 근간에 두지 않더라도) 생활공동체를 이뤄서 살뜰히 서로를 돌보고 의리를 지키며 사는 것도 좋은 선택지가 되지 않을까? 생활동반자법 제정이 요구되는 이유다.

 

물론 이 영화는 ‘전통적인’ 연인끼리 보아도 좋은 영화다. 그리고 충분히 ‘재미’있다. 보는 이로 하여금 손에 땀을 쥐게 하고, 때론 골 때리며, 종종 서럽다가도 이내 개운해지는, 여러 감정의 격랑을 겪게 하는 영화 〈우리, 둘〉은 7월 28일 개봉했으며 네이버 시리즈온, 카카오페이지 등에서도 볼 수 있다. 

 


글. 최서윤 작가

〈월간잉여〉 편집장으로 많이들 기억해주시는데 휴간한 지 오래됐습니다. 가장 최근 활동은 단편영화 〈망치〉를 연출한 것입니다. 화가 나서 만든 영화입니다. 저는 화가 나면 창작물로 표출해야 직성이 풀리는 사람인가 봅니다. 종종 칼럼이나 리뷰로 생각과 감정을 나누기도 합니다. 저서로 『불만의 품격』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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