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21년 12월 2021-11-30   1068

[여는글] 그들만의 리그, 이의 있습니다

여는글

그들만의 리그,
이의 있습니다

 

글. 박정은 참여연대 사무처장

 

 

참여사회

ⓒBermix Studio

 

얼마 전에 청년 전태일을 다룬 애니메이션 영화 〈태일이〉를 볼 기회가 있었습니다. 일전에는 오랜만에 회원들에게도 알려드렸던 영화 〈노회찬 6411〉도 봤지요. 두 영화를 보고 나서는 어두운 거리를 서성거리다 한참을 걸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이 배제되는 이 사회에서 개혁운동과 진보정치는 무엇을 남기고 있는 걸까. 가진 자들이 군림하고 부를 대물림하는 그런 세상을 바꾸고자 맹렬히 활동하던 그들, 참 힘들었겠구나, 그런데 지금은 다들 어디에 가 있을까. 저에게 다가온 느낌은 적어도 희망은 아니었습니다. 대선을 앞두고 난장판 같은 정치권 때문이었는지, 혼돈과 지리멸렬함 혹은 서로를 향한 적대감으로 갈수록 뾰족해지는 시민사회 때문인지 모르겠습니다. 마치 새로운 세상을 만들어낼 것 같았던 촛불 이후가 본선이었는지 모두가 무겁고 힘든 격동의 시간을 걸어가고 있습니다. 

 

돌이켜보니, 지난 3월 LH 직원의 투기 의혹 폭로에서 시작해서 대장동 개발사업을 둘러싼 의혹과 연말 종부세에 대한 언론과 정치권의 융단폭격으로 이어지는 한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가히 부동산 공화국입니다. 그동안 상가와 주택 임대차 보호에 집중했던 참여연대도 부동산 문제에 대한 전면 대응체계로 발 빠르게 전환했습니다. 종부세 등 부동산 보유세 완화 시도에 대한 저항행동을 조직하고, 공공택지로 막대한 이익을 거두고 있는 민간개발사업의 실태를 드러내며 개발이익 환수를 위한 법 개정안까지 마련했습니다. 

 

그 와중에 참여연대가 현 정부와 짜고 LH 투기 의혹을 폭로했다는 음모론이 등장하더니, 4월 재보궐 선거가 끝나자 선거에 진 것을 참여연대 탓으로 돌리는 비난을 들어야 했습니다. 참여연대가 선거라는 정치적 일정을 고려해 LH 폭로 시기를 조율했어야 할까요? 그건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일입니다. 

 

연말이 다가오니 상위 2% 이내 주택 보유자에게 부과되는 종부세를 두고 또다시 광풍이 붑니다. 2021년 현재 국민의 50%가 공시지가 1.6억 원, 시가 2.28억 원 미만의 주택에 거주하고 있는데도 그렇습니다. 국토부 자료에 따르면, 개인 소유 토지 중 31.9%를 상위 1%가 차지하고 있고, 상위 10%가 77.2%를 소유하고 있다고 합니다. 법인의 경우 상위 1%가 전체 법인 소유 토지 중 75.7%를 소유하고 있습니다.(2019년 기준) 일부 자산가들과 법인의 토지 집중은 이토록 심각합니다. 이 좁고 제한된 땅에서 압도적 비중으로 차지하고 있는 이들의 아우성만이 들리는 우리 정치언론 환경은 분명 정상적이지 않습니다. 

 

사실 2021년의 시작은 코로나19 감염병 확산에 따라 한층 어려워진 이들의 소득 단절이나 격감에 대응하는 것이었습니다. 특히 정부 방역 조치에 따라 영업금지나 제한의 대상이 된 소상공인들과 함께 충분한 손실보상과 임대료 분담 제도화를 호소했습니다. 정부 관료는 지나치게 소극적이었고, 재정 지출의 벽은 높았지만 그래도 절박한 당사자들과 청와대로, 국회로 밤낮을 찾아다녔습니다. 여전히 미흡한 손실보상 수준이지만 일부 진전이 있었던 데에는 참여연대가 나름 기여했다고 자부합니다. 축적된 데이터를 기반으로 하는 온라인 플랫폼이 무한 확장하고 있지만, 이들 사업의 독과점과 불공정 거래를 규율한 법제도가 미비한 상황입니다. 참여연대는 온라인 플랫폼 시장에 대한 대비도 놓치지 않으려 합니다. 

 

연말을 관통하는 것은 단연 대선 판세입니다. 지금의 대선판은 ‘그들만의 리그’ 전형을 보여줍니다. 현 정부에서 임명된 이들이 야권 대선 후보를 자처하고 나서는 경우가 한둘이 아니고, 거대 야당의 선대위 지도부 자리도 현 집권당 출신들로 채워지는 모양새입니다. 정권을 잡기 위해서라면 자신들이 배출한 대통령을 구속시킨 이라도 대선 후보로 내세우는 거대 야당의 모습에서 무서운 권력의지를 봅니다. 

 

국민이 들어 올린 촛불로 정권을 잡은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은 민심을 잃은 지 오래입니다. 반성과 성찰보다, 야당의 수구성과 헛발질에 기대어 존재하려 합니다. 그러니 이들에게 지금의 양당체제는 축복일 뿐입니다. 다른 외피를 쓰고 있으나, 서로 기대어 공존합니다. 언제든 그 외피를 바꿔 쓸 수도 있다는 걸 보여줍니다. 이러한 정치체제 덕분에 대한민국은 “전두환이 쿠데타와 5.18을 빼고 정치는 잘하지 않았느냐”는 수준의 희대의 검찰주의자를 유력한 대선 후보로 두게 되었습니다. 시대적 과제라는 사회경제적 불평등과 자산격차 완화는 요원하기만 합니다. 우리가 강조하는 수많은 사회경제적 과제들도 이러한 국가권력의 내용과 구조를 바꾸지 않고서는, 그들만의 양당 정치체제와 선거제도를 바꾸지 않고서는, 임시방편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다. 

 

연말로 달려가는 지금. 촛불 정부는 일찍이 멀어졌지만 우리는 우리의 촛불을 밝히겠다고 다짐합니다. 혼돈의 세상, 흔들려도 결코 꺼지지 않고 굳건히 버텨내겠습니다. 투명인간 취급당하듯 외면받고 소리 내지 못하는 이들에게 더 촉을 세워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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