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1995년 07-08월 1995-07-01   1105

성(性)-다르게보기

성(性)-다르게보기

성에 대한 토론은 이제 더 이상 침묵되지 않으며 수면위로 떠오르고 있다. 성을 전체 사회의 관계망 속에 자리매김하려는 접근들을 소개한다.

성에 대한 밀담들을 만나기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영화, 비디오, 광고, 잡지, 소설, 최근에는 씨디롬(CD rom)에서까지 성에 대해 속닥거리고 있다. 하지만 밀담은 그저 밀담일 뿐, 토론과 공론을 열지 못한다는 게 문제다. 물론 성에 대한 스캔들은 갑론을박을 불러일으킨다. ‘예술이냐, 외설이냐’라는 신파조 선전문구에서부터 ‘표현의 자유’에 대한 법적 분쟁에 이르기까지 성은 언제나 화제를 낳는 스캔들로 존재해왔다. 그러나 스캔들이란 것은 대개 일시적인 파장을 일으키는데 그치며, 현실로 존재하는 성 문제에 대한 보다 열린 토론, 보다 성찰적인 접근의 장을 열어주지는 못한다.

성에 대한 진지하고 객관적인 탐구는 우리 사회의 학문공동체에서도 오랫동안 주변화되어 있었다. 그러나 전반적인 사회의 자유화 물결 속에서 성에 대한 토론은 더 이상 침묵되지 않을 것이며, 과학적인 연구와 심도 있는 성찰들은 매우 중요한 기반이 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성을 신비화시키거나 과대포장하려 하지 않고, 전체 사회의 관계망 속에, 곧 개인의 내밀한 심리에서부터 경제와 정치, 사회적 제도에 이르는 전반적 역사 속에 성을 자리매김하려는 접근들을 소개해보고자 한다.

성에 대한 역사적 접근

에두아르트 푹스의 『풍속의 역사』(전4권, 까치)는 이미 널리 알려진 역저다. 르네상스로부터 부르주아시대에 이르는 서구의 풍속, 곧 복장, 연애, 결혼, 사교생화, 매춘제도 등을 다양한 자료와 그림을 곁들여 분석하며, 나아가 종교화 사회제도에까지 분석의 통찰력을 확장한다. ‘음란 저속’하다는 이유로 히틀러에 의해 불살라진 일화는 유명하다. 그러나 『풍속의 역사』는 폭 넓은 문명사로 이해되는 것이 온당하며, 성욕과 성적 표현의 시대적 변천사를 통해 성풍속의 사회·경제사로 육박해 들어간다. 무엇보다 읽는 재미도 빼놓을 수 없다.

성에 대한 또 하나의, 그러나 푹스의 그것과는 전혀 다른 역사적 접근으로는 미셸 푸코의 『성의 역사』(나남)가 있다. ‘앎의 의지’,’쾌락의 활용’,’자기에의 배려’ 등 세 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푸코의 사상 역정에서 마지막 시기에 해당하는 저서로서 해석상의 논쟁도 많고 내용이 다서 난해한 면도 있다.

푸코는 현대사회에서 성이 억압당하고 있으며 ‘성 해방’을 쟁취해야 한다는 소위 ‘억압가설’발상을 비판하면서, 오히려 성이 만연하고 넘쳐 흐르고 있는 가운데 관철되고 있는 권력의 작용에 주목한다. 현대인들이 성에 집착하고 마치 그것이 자기 자신의 진실이자 정수인 것처럼 여기는 것은, 인간이 자신의 자아 및 신체와 맺는 관계에 대한 일정한 틀에 입각해 있다. 푸코는 그것을 ‘진리체제(Regime of Truth)’라고 부른다. 그는, 현대의 지배적인 ‘진리체제’는 기독교적 고해에서 발원한 것으로 보고, 고해가 제도로서 자리잡는 역사적 과정을 분석한다.

푸코는 또한 자신의 역사하는 방법, 곧 계보학에 따라서 기독교 이전의 세계, 곧 고대 그리스와 로마 시대로 관심을 옮겨간다. 거기에서 자아에 대한 다른 성찰, 곧 우리가 알고 있는 기독교적 금욕이나 의학적 치료의 대상으로서의 자아와 구별되는 자아상을 발견한다. 그리고 결국 그가 귀착하는 곳은 자아의 윤리학이다. 타인의 다양성을 관용하고 특정한 지리체제의 포로가 되지 않으면서 자기 스스로에 대해 성찰하며 자유의 영역을 일구어가는 존재의 미학이 거기에서 그려진다.

성에 대한 정치·사회적 접근

역사적 접근들이 과거에 비추어 현재의 위상을 이해하게 해준다면, 현재의 첨예한 정치적 초점을 맞추는 논자들 또한 빼놓을 수 없다. 성 문제를 ‘성 정치’문제로 접근하는 제프리 윅스의 『섹슈얼리티 : 성의 정치』(현실문화연구)가 대표적인 예다. 이 책의 장점은 무엇보다도 지난 한 세기 동안 서구의 사회과학이 성에 대해 어떻게 해명하고자 하였는가를 한눈에 보여준다는 것이다. 정신분석학, 성과학(Sexology), 인류학, 여성학 그리고 성 윤리에 대한 정치적 논쟁의 역사들을 포괄적으로 살펴보는 윅스의 관심은 곧 성적 영역에도 예외없이 관철되어야 할 ‘민주주의’가 과연 어떤 형태일 것인가에 대한 고민에 맞추어져 있는 듯하다. 그가 옹호하는 것은 도덕적 다원주의, 곧 성적 선택의 자유를 폭 넓게 인정하고 이른바 ‘성적 소수집단들(Sexual Minorities)’을 절대적 윤리에 입각해서 박해하거나 고립시키지 않는 민주적 사회의 비전이다.

영국을 대표하는 사회학 이론가 안토니 기든스는 성 문제를 단지 성과 관련된 관습, 도덕 등에 한정하지 않고 보다 폭 넓은 사회적 제도의 맥락으로 확장한다. 그뿐 아니라 세기말의 지성사를 뒤흔들어놓고 있는 ‘현대성(Modernity)’ 문제와 직접적으로 연결시킴으로써, 성에 대한 사회학적 관심을 한 단계 격상시켜놓았다. 『친밀성의 구조변동-현대사회의 섹슈얼리티, 사랑, 에로티시즘』(새물결 : 근간)에서 기든스는 서에 대한 담론의 변화뿐 아니라 현실의 변화까지 추적하려 한다.

기든스는 재산관계에 따른 결합이었던 중세적 결혼은 열정에 사로잡히는 낭만적 사랑으로 변화하였고, 이제는 당사자 간의 관계 자체가 가장 중요한 ‘융합적 사랑(Confluent Love)’으로 그 형태가 변해왔다고 분석한다. 그런가 하면 성은 출산이나 가족으로부터 분리된 형태로 존재할 수 있게 되었다고 본다. 피임과 인공유산, 시험관 아기 등의 의학기술, 나아가 국가차원의 인구정책들은 자연에 의해 부여된 것이 아니라 인간 자신이 성찰적으로 만들어가는 것으로서 성, 곧 ‘조형적 성(Plastic Sexuali-ty)’을 탄생시켰다고 분석한다. 여기에 보다 상세히 소개하기는 어렵지만, 이러한 변화들을 그는 억압과 문명에 대한 이론적 논쟁과 연결시키면서, 친밀성 영역에서의 민주주의에 대한 구상을 내어놓는다.

우리 현실을 다룬 책

일상생활에서는 개인적인 것으로 존재하는 성 문제를 정치적이고 사회적인 의제로 제기하고 끌어올린 공은 무엇보다도 페미니스트들에게 돌아가야 한다. 여성에 대한 억압과 배제는 임신·출산 등 여성이 가진 생물학적 기능과 밀접하게 관련되었기 때문에, 페미니즘 내부에서는 진작부터 섹슈얼리티에 대한 많은 논쟁과 급진적 대안들이 제기되어 왔다. 이런 서구의 논쟁들을 국내에 직접 소개한 것은 흔치 않고, 비슷한 문제의식을 담고 있는 것으로서 『새로 쓰는 성 이야기』(또 하나의 문화)를 들 수 있다. 이 책은 여성의 성에 초점을 맞추면서 성폭력, 여성의 출산력, 인공유산, 성교육, 매춘, 캠퍼스의 성 문화 등 우리의 현실문제들을 다루고 있다. 무엇보다도 당연시해왔던 일상에 대해 ‘다르게 보기’를 제안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가치가 있다. 성 문제에 대한 토론은 언제나 일상에 대한 새로운 성찰, 일상생활의 민주화를 촉구하며, 우리는 정치의 새로운 차원으로써 성 문제를 폭 넓게 보아야 한다.

황정미(서울대 사회학 박사과정을 수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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