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재식 칼럼

기억력과 상상력

나는 1961년에 처음으로 해외여행을 했다. 그것은 인도에서 열린 세계교회협의회(WCC)의 제3차 총회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고 김활란 박사와 강원용 목사 등이 이끈 한국교회 대표단의 청년 대표였다. 영어가 서툴던 나는 어깨 너머로 발제와 의사진행을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 일에 초년생이었던 내게는 사람들의 인상과 상징들이 훨씬 더 강한 메시지였다. 장소가 아시아였는지라 쟁쟁한 아시아 지도자들의 활동이 돋보였다. 그 가운데 버마 침례교의 목사인 우·바·민이란 분이 발제를 할 때에 버마 의상을 입고 또 두건을 쓰고 연단에 올라왔다. 내게는 아주 강한 인상을 주었다.

우·바·민 목사와 11년만의 재회

그로부터 11년 후인 1972년에 나는 아시아기독교기관의 직원이 돼 있었고, 그 자격으로 버마를 방문했다. 첫 방문이었다. 버마에서는 이미 1962년에 네윈이 이끄는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켜서 우누 정권을 무너뜨리고 나라를 대외적으로 봉쇄해버렸다. 나는 10년이 지난 후에야 외국인의 여행이 제한적으로 허락된 틈을 타서 들어간 것이다. 내 일정에는 물론 우·바·민 목사를 찾아보는 일도 들어 있었다.

우·바·민 목사는 길었던 10년을 회상하면서 “그동안 잊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목회인가를 배웠다. 나를 찾아온 젊은 학생들, 정치가들, 그들과의 대화는 곧 군 수사국의 사찰 표적이었다. 그래서 나는 심문을 받을 때마다 ‘모른다’, ‘기억이 안 난다’로 일관했다. 나는 실제 잊어버리는 연습을 해왔다”고 말했다.

그는 잊어버리려고 애쓴 것을 기억하고 있었다. 피해자의 기억력은 가해자의 그것보다 강하다. 피해자에게 있어서 기억은 그 당사자의 역사의 일부이지만, 가해자의 역사는 가해 행위에 대한 기억을 묻어버리고서야 성립한다. 그러므로 상상력을 동원하는 데 있어서는 피해자의 기억과 가해자의 기억이 일치하지 않는다. 이 점이 운동이나 역사를 진전시키는 데 큰 장애가 되는 것은 두말 할 것도 없다. 가해자가 기억을 축소 내지 은폐하려는 것과는 반대로 피해자는 기억을 확대 과장하는 게 보통이다. 그래서 피해자는 마침내 스스로 가해자가 되어도 그것을 피해에 대한 기억으로써 정당화하려고 한다. 반대로 가해자는 부당한 피해를 입어도 가해에 대한 기억 때문에 아무런 행동도 할 수 없게 된다.

피해자의 기억과 가해자의 기억

이 악순환을 명쾌하게 부순 이가 있다. 독일의 봐이젝카 전 대통령이 그 분이다. 그는 독일 패망 40주년을 기념하는 의회 연설에서 “역사는 피해자에 의해서 기억된다”, “과거를 잊으려는 사람들은 미래를 볼 수 없다”라고 절규했다. 이 유명한 연설은 세계적인 반향을 일으켰고, 독일 국민의 과거청산에 대한 의지가 새롭게 확인됐다. 가해 행위에 대한 반성은 의례적인 일회용 사과에 그쳐서는 안 되고 피해자가 그 상처를 이기고 정당하게 미래에 대한 상상력을 양생시킬 때까지 해야 한다는 게 봐이젝카 전 대통령 연설의 취지였다. 당시 서독의 정치지도부와 국민의 이런 자세는 오늘날 유럽공동체를 형성해가는 기초요, 원동력이 됐다.

우리의 경우는 어떤가. 우리는 민족 전체가 밖에 있는 가해자로부터 피해를 입었다는 기억에 아직도 사로잡혀 있다. 그 기억이 증폭되고 과장돼서 스스로 저지르는 가해 행위를 정당화하거나 문제삼지 않으려고 한다. 이 갈등 때문에 우리는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갖지 못하고 있다. 피해자가 피해와 피해의식을 스스로 극복하고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자생력을 갖기까지는 시간이 걸린다. 그런 유예기간을 상식 이상으로 연장하는 것은 잘못이다. 전쟁중에 프랑스는 독일에 의해서 극심한 피해를 입었지만 전후 프랑스는 피해의식의 포로는 아니었다. 전쟁이 끝나고 10여 년만에 프랑스 외상 슈망은 독일 수상 아데나워에게 양국의 철강과 석탄 생산을 공동관리할 것을 제의했다. 이것이 성사돼 만들어진 게 철강석탄공동체이고 이것이 지금의 유럽공동체의 태동이라고들 한다. 거기에는 가해자였던 독일에 힘입은 바가 크다고들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다. 피해를 입은 프랑스나 여타의 나라들이 피해망상에 사로잡히지 않고 ‘피해자의 특권’을 창조적으로 활용했던 것이다.

중국의 공산당과 대만의 국민당은 동족간에 피흘려 싸운 사이다. 특히 국민당은 본토에서 쫓겨나야 했던 굴욕의 역사가 있다. 그러나 지금은 이 둘 사이에 경제적 협력이 활발하고 사람들의 교류가 연간 10만을 넘는다고 한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만델라 정부는 오랜 세월에 걸쳐서 멸시와 학대와 살육을 당해온 흑인들의 정부다. 그런데도 정권을 잡자마자 터지리라 예상했던, 가해자인 백인들에 대한 보복은 없었다. 피해자가 화해와 공생의 가치를 내걸고 적극적으로 가해자를 수용하는 정책을 펴서 온 세계에 감명을 주고 있다. 기독교의 선민사상을 원용해서 백인문명의 우월성을 자랑하던 가해자들을 무릎꿇게 한 역사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피해를 기억의 망상에다 가두지 않고 새로운 역사를 열어가는 상상력의 에너지로 활용한 좋은 예다.

피해기억을 새 역사의 에너지로

왜 우리는 이런 역사를 만들 수 없을까. 사사건건 기회있을 때마다 피해에 대한 기억을 일깨우고 그것을 기준으로 발언하고 처신하게 한다. 일제의 피해에서 벗어난 지 반세기, 공산주의의 도전을 이긴 지도 40년이 넘었다. 이렇게 성장한 중년집단의 사고가 실로 어처구니없게 퇴행해가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이 나라의 교육제도에서도 잘 나타나 있다. 우선 입시제도가 관청의 입장을 암기하게 돼 있지 않는가. 상상력을 키우고 동원할 여지가 없다. 우리는 가히 ‘기억공동체’이다.

우리가 이렇게 돼가는 것은 누구의 책임인가. 입시문답식으로 하면 중앙정부라고 하겠지만, 대답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다. 아무리 생각해도 그 책임은 시민사회의 몫이다. 물론 이른바 시민사회를 어떻게 이해하느냐의 문제가 있겠지만, 국가나 시장의 논리가 아닌 또는 그런 것들을 뛰어넘는 실체를 육성해야 하고 그것이 민족공동체의 상상력을 키울 수 있어야 한다.

전에는 ‘내가 곧 국가다’라고 선언해도 어색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이 정부가 곧 국가다’라는 말이 우스갯소리로 들리게 됐다. 정부는 국가의 한 기구로서 여러 면에서 국가의 기능을 대행하지만, 그것이 곧 국가가 아닌 것은 자명한 일이다. 국가나 권력의 집중체를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했던 때에 비하면, 그것을 한 기능이나 역할로 생각하게 된 데는 시민의식의 전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밖에는 설명할 수 없을 것이다. 근대적 의미의 인간존엄사상과 만인평등주의는 권력이나 국가의 절대화에 대해서 치명적인 타격을 가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의 존엄과 만인평등이 국가보다도 더 우위의 가치라는 게 상식이 됐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국가안보는 도전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라고 생각됐으나 이제는 인간안보가 국가안보에 우선한다는 것이 세계적인 통념이 돼가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치를 선양하고 창달시키기 위해서 노력하는 것이 시민이요, 시민운동이다.

시장논리 앞에 휘청거리는 시민운동

우리 나라 시민운동이 이런 공감대를 갖게 되기까지는 많은 희생과 대가를 치러왔다. 인권운동과 민주주의를 위한 용기있는 행동들이 오늘의 이런 토대를 만든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또 다른 도전을 받게 됐다. 그것은 경제논리, 즉 시장의 논리이다. 시장의 논리는 국가나 정치권력을 상대화시키는 막강한 위력을 갖고 있고 시민과 시민운동도 상대화시켜가고 있다. 그것은 시민운동이 지향하는 가치, 즉 인간존엄과 만인평등의 가치마저도 상대화시켜가고 있는 것이다. 시장이 국제무대에서 경쟁력을 잃으면 존엄이나 평등 같은 가치는 지켜질 수 없다는 게 시장논리의 협박이다. 시장의 이런 협박은 국가지상주의 때의 그것과 일치한다. 국가가 없으면 인권도 민주주의도 의미가 없다는 논리가 그것이었다.

우리는 시장의 새로운 도전 앞에 서서 과거 국가지상주의에 밀려 폐쇄적 민족주의로 빠져들었던 것을 기억해내야 한다. 우리는 그때 문화도 종교도 사회규범도 다 민족에 걸었다. 세계의 열린 마당에 민족을 세우지 못하고 인류의 보편적 가치들을 우리 민족의 기억이란 틀에 억지로 꿰맞춘 것이다. 우리는 상상력을 잃은 민족이 되고 말았다. 시장의 유혹도 같은 함정을 갖고 있다. 인기에 영합하는 것, 대량생산, 전량판매, 성장상승 등의 논리에 시민운동이 휘청거리고 있다. 그것들이 결국은 운동이 지향하는 가치들을 삼켜버릴 것인데도 말이다.

우리는 우리가 겨우 빠져나온 함정을 경계해야 한다. 기억력은 상상력을 키우는 데 동원돼야 한다. 꿈을 꿀 수 없는 집단은 기억상실증에 걸렸거나 기억의 악몽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자들 뿐일 것이다.

오재식 참여연대 공동대표, 한국사회교육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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