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2월 2007-02-01   957

무엇이 ‘선진화’인가?

‘선진화’라는 말은 이데올로기적으로 대단히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다. 그도 그럴 것이 사실 이 말은 박정희의 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 박정희 정권이 널리 퍼트린 말이기 때문이다. 그 결과 ‘선진화’는 수구-보수세력의 상징과 같은 말이 되고 말았다. 그 핵심은 잘 알다시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제성장을 이루는 것이다.

그러나 ‘선진화’는 사실 경제성장을 뜻하지 않는다. 더욱이 무조건적 경제성장은 ‘선진화’는커녕 ‘후진화’의 중요한 징표일 뿐이다. 자연을 마구 파괴하고 사람을 짐승처럼 다루면서 경제성장을 이루었다고 해서 ‘선진화’되었다고 할 수 있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경제성장은 ‘선진화’의 한가지 필요조건이나 수단일 수는 있다. 그것을 충분조건이나 목표로 여기는 사회는 ‘돈 많고 못 사는 사회’라는 기형상태에 빠지지 않을 수 없다.

한국에서 ‘선진화’가 수구-보수세력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은 대단히 역설적이다. ‘선진화’의 본래 뜻은 ‘앞으로 나아간다’는 것이며, 이런 점에서 ‘선진화’는 ‘진보’와 같은 뜻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사회의 ‘진보’에 반대하는 ‘선진화’는 거짓이다. 말의 본래 뜻을 제대로 이해한다면, ‘선진화’는 수구-보수세력이 쓸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수구-보수세력의 상징이 되면서 ‘선진화’는 혹세무민의 말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 때문에 개혁-진보세력은 ‘선진화’라는 말을 거부하는 경향을 보인다. 그러나 ‘선진화’라는 말 자체를 거부할 필요는 없다. 더욱이 ‘후진화’를 하겠다는 것도 아니지 않는가? 말의 본래 뜻으로 보자면, 사실 ‘선진화’는 개혁-진보세력의 상징이어야 한다. 이런 점에서 개혁-진보세력은 올바른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 애써야 한다. 그것은 당연히 수구-보수세력의 ‘선진화’가 잘못되었다는 것을 밝히는 이론과 담론의 실천을 포함해야 한다.

무엇이 ‘선진화’인가? 역사적으로 그것은 크게 세 단계로 이루어졌다. 첫째, 신분제를 철폐하고 만민평등의 원리 위에서 민주사회를 이룩한 것이다. 둘째, 모든 사람이 인권의 가치에 근거하여 사람답게 살 수 있도록 하는 복지사회를 이룩한 것이다. 셋째, 자연의 한계를 존중해서 현대 문명의 위험에 대처하는 생태사회를 이룩하는 것이다. 이런 점에서 민주화의 성과 위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하는 ‘선진화’는 ‘생태복지사회’를 이룩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여기에는 토건국가, 투기사회, 학벌사회라는 한국의 고질병을 발본적으로 치유하는 과제가 반드시 포함되어야 한다.

수구-보수세력은 산업화의 성과 위에서 민주화가 이루어졌으며, 이제는 민주화를 끝내고 ‘선진화’를 이루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 주장은 수구-보수세력이 자신을 위해 고안한 역사론일 뿐이다. 산업화 세력과 민주화 세력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산업화를 둘러싸고 독재세력과 민주세력이 대립했으며, 마찬가지로 이제 ‘선진화’를 둘러싸고 수구-보수세력과 개혁-진보세력이 대립하고 있는 것이다.

겉으로는 ‘선진화’를 내세우고 속으로는 ‘후진화’를 추구할 수도 있다. 중요한 것은 실제로 추구하는 정책의 내용과 방식이다. 진정한 ‘선진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올바른 정책이 실현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야 한다. 나아가 수구-보수세력과 개혁-진보세력이라는 것도 ‘선진화’를 위한 정책을 기준으로 다시 정립되어야 할 것이다.

홍성태「참여사회」 편집위원장, 상지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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