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2월 2007-02-01   1063

무늬만 민주주의, 성장하지 못한 인권의식

최근 유엔 인권위원회는 우리나라 정부가 종교적 신념과 양심을 이유로 병역을 거부한 행위를 처벌한 것은 양심과 종교의 자유를 보장하고 있는 「시민적·정치적 권리에 관한 국제인권규약」을 위반한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침해를 당한 개인에 대한 효과적인 보상과 함께 향후 유사한 사례가 발생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조치를 취할 것을 우리 정부에 권고하였다.

우리는 우리, 유엔은 유엔일 뿐?

우리나라의 경우 1994년 3월 18일 이른바 ‘손종규 사건’에서 유엔 인권위원회가 대한민국정부의 규약위반이라고 판단한 이래 현재까지 유엔 인권위원회에서 대한민국정부의 규약위반이라고 판단하고 피해에 대한 구제권고를 한 것이 모두 7건이나 되고 있다. 그러나 대한민국 정부는 아직까지 규약위반이라고 판단된 사건 어느 것에 대하여서도 인권위원회가 권고한 구제조치를 이행하지 않고 있다.

우리 대법원은 ‘손종규 사건’에서 “인권이사회의 견해는 권고사항으로서 이에 대하여 법적인 기속력을 인정할 근거가 없다”고 하여 정부가 인권이사회의 권고에 대하여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아니하여도 법적인 문제가 없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정부는 최근 국제인권기구의 권고사항을 이행하기 위한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만 할 뿐 아직까지 어떠한 방안도 제시하고 있지 않다.

유엔 인권위원회는 선택의정서에 따른 개인통보사건의 심사기능을 수행하기 위하여 심리 중인 사건에 대하여 규약의 해석을 채택할 권한이 있다. 만일, 인권위원회의 견해는 권고적 효력만 갖는다는 이유로 무시한다면 우리나라가 선택의정서에 가입함으로써 우리나라에 대한 개인통보사건을 인권위원회가 심사하도록 허용한 의미는 무엇인지 의문이 들지 않을 수 없다.

우리만의 특수성 주장은 그만

유엔 인권위원회의 견해는 단지 외교적 수사가 아니며, 당사국은 인권위원회의 견해를 신의칙에 따라 고려·존중할 최소한의 의무를 진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은 헌법에서 “법원은 국제인권기구의 해석까지를 포함한 국제법을 고려하여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오스트레일리아는 인권법에서 “유엔인권조약기구의 일반논평이나 견해를 고려할 수 있다”라고 했다. 또한 헝가리와 폴란드는 형사소송법에서 국제인권조약기구의 결정을 재심사유의 하나로 인정하고 있다. 이렇듯 이미 상당수의 국가들이 국제인권기구의 권고를 이행하기 위한 나름의 성의 있는 조치를 취하고 있다.

한편, 유엔 인권위원회의 결정은 분단국가라는 우리나라 특수성을 잘 모르는 외국 위원들이 잘못 내린 것이라는 반박도 있다. 그러나 같은 사건에 대하여 우리 사법기관과 유엔 인권위원회가 다른 결론을 내리는 근본적인 이유는 문제를 보는 각도가 다르기 때문으로 보인다. 예컨대, 양심적 병역거부 사건의 경우 우리 사법기관은 헌법적 해석에 매달리고, 한국 사회 구성원의 공감대 형성을 중시하는 반면, 유엔 인권위원회는 국제사회의 관행에 주목하며, 사회의 다원성에 보다 큰 비중을 둔다. 따라서 우리와 같이 의무복무제를 채택하고 있는 다른 국가들이 대체복무제도를 도입하고 있고, 이것이 사회적 불평등을 초래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회적 다양성을 키워 그 사회를 더욱 건강하게 결속시키고 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대한민국정부만이 ‘우리는 안 된다’라고 항변하는 것은 받아들여지기 어려울 것이다.

인권후진국 태도 버리고 성숙하게 행동해야

유엔 인권위원회의 결정과 우리 사회의 논의를 보면서 우리의 인권의식, 더 나아가 국제사회에서의 우리의 역할에 대하여 다시 한 번 되돌아 볼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과거 한국의 권위주의 정권은 국제사회로부터 인권탄압에 대한 많은 비난을 받았었다. 그 때마다 항변은 “우리는 특수하다” 였다. 이제 우리는 경제 발전 못지않게 나름대로 민주주의와 인권을 증진시켜왔다. 요즘 국제인권회의에서 우리 정부 대표단의 당당한 태도나 국제인권조약 가입선언을 보면 이를 실감할 수 있다. 그런데 국제인권기구가 우리 문제를 거론하면 우리는 여전히 특수성을 강변하며 슬며시 꼬리를 내린다.

어떤 사회든 인권문제는 존재할 수밖에 없고, 이와 씨름하면서 성숙해 간다. 우리사회가 발전하려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한다고 한다. IT산업은 우리가 자랑하는 분야 중 하나다. 여기에 우리의 민주주의 발전과 인권신장의 경험을 넣지 못할 이유가 없다. 요 몇 년간 국제인권회의에 참가할 때마다 휴대폰 못지않게, 한류 못지않게 우리의 민주적 발전을 부러워하는 분위기를 접하게 된다. 이제 우리는 인권후진국으로서의 태도를 털고 국제사회와 인권에 대한 우리의 생각과 경험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최근 우리나라는 새로 출범한 유엔 인권이사회의 이사국으로 선임되었으며, 유엔 사무총장까지 배출하였다. 국제인권기구의 권고에 대하여 특수성을 외치며 무시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발전의 계기로 삼아 노력하여야 할 것이다. 국제사회에서의 우리의 리더십은 이러한 바탕에서 더욱 설득력을 가질 것이다.

차지훈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 국제연대위원회 위원장,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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