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2월 2007-02-01   999

진보개혁 진영의 대선 대응

진보개혁진영의 대선 고민

“심판을 볼 것인가, 직접 링에 오를 것인가.”

대선을 앞둔 정치의 계절, 진보개혁진영의 고민이 시작됐다. 하지만 사면초가 형국이다. 87년 민주항쟁 이후 20년 만에 ‘보수 반동’의 역풍이 거세게 불고 있다. 뉴라이트가 출현했고, 이에 편승해 과거 부정됐던 기득권 세력의 기세도 만만치 않다. 한편으로는 ‘진보=무능’이라는 등식이 대중들의 뇌리에 각인되고 있는 중이다.

진보개혁진영의 대선 대응에 물꼬를 튼 ‘창조한국 미래구상’

진보개혁진영의 대선 대응과 관련해 첫 물꼬를 튼 것은 창조한국 미래구상(이하 미래구상)이다. 안병욱 가톨릭대 교수, 임진택 연출가, 최열 환경재단 대표, 정대화 상지대 교수, 양길승 녹색병원 원장 등이 주도적으로 참여하고 있다. 이들은 정치와도 구별되고 기존 시민운동과도 선을 긋는 새로운 정치운동 조직을 결성하겠다고 선언했다. 이들이 내세운 전략은 반수구세력 대결집. 20여 년간의 민주주의의 성과가 송두리째 부정되는 심각한 위기국면이라는 게 이들의 상황인식이다. 결국 한나라당을 제외한 모든 후보간의 예비경선을 통해 후보단일화를 이뤄 진보적이고 민주적인 정부를 수립하겠다는 것이다.

이같은 움직임은 여권에 대선 대표주자가 없고, 의원들이 잇달아 탈당하는 등 분당사태가 가시화되면서 더욱 주목을 받고 있다. 이들은 또 민주노동당의 필요성과 가치는 공감하지만 아직까지는 국가경영적 관점을 갖고 있지 못하다고 본다. 즉, 대안정당으로서의 한계를 지적하면서 새로운 정치 주체 형성의 필요성을 역설하고 있는 것이다.

비판적 지지론의 변종이라는 비판도 있어

하지만 이에 대한 반론도 만만치 않다. 대선 때 항상 등장했던 이른바 비판적 지지론의 변종이라는 주장이 그 하나이다. 지난 1월 12일 열린 ‘한국사회의 창조적 미래를 위한 구상 시국대토론회’에 참석했던 손석춘 새로운 사회를 여는 연구원 원장은 “민주노동당이나 세간에서 미래구상에 대해 열린우리당의 들러리나 시대변화에 맞춘 비판적지지 망령의 세련된 구상이라는 평가가 나오는 데 대해 말끔하게 대답할 필요가 있다.”며 단일후보 문제에 대한 신중한 접근을 요청하기도 했다.

이재영 <레디앙> 기획이사는 ‘대선의 성격과 전망, 대응방향’이란 제목의 토론회에서 현 시국에 대한 미래구상의 상황인식에 대해 이견을 제시했다. 그는 “최근 들어 민주화가 퇴조하고 반동화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며 “87년 이후 4번 정권이 교체됐는데 한나라당과 민주당 계열이 경쟁적으로 이니셔티브를 쥐었다.”고 주장했다.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이 민중 생존권 차원에서 볼 때 질적인 차별성이 크게 없는 상황에서 반한나라당 전선을 폈다가 일부 명망가들이 보수정치에 진입하는 데 그칠 공산이 크다는 것이다.

미래구상은 “기존의 시민운동과 차별되는 정치운동을 벌이겠다.”고 선언했다. 하지만 시민운동의 정치세력화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흘러나오고 있다. 그간 정치중립을 지키려고 노력했던 시민단체들이 이번 대선에 개입했다가 그나마 갖고 있는 시민운동의 기반마저 송두리째 잃을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오히려 분화된 시민운동이 각 영역에서 영향력을 확대해가는 게 필요하다는 주장이다.

이날 김민영 참여연대 협동사무처장은 “시민운동이 분화되고 있는 현실에서 단일대오를 형성해 정치적 역할을 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면서 “현장 시민운동이 이번 대선에서 직접적인 정치개입 전략을 선택할 가능성은 없다.”고 말했다. 그는 또 “정당운동과 사회운동은 구별할 필요가 있다.”며 “지금은 정당다운 정당을 제대로 건설하는 게 중요하고, 시민사회운동은 오히려 현장을 지키면서 대중과 만나고 낡은 운동방식을 진화시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사실 최근 진보개혁진영의 대선 대응 전략을 둘러싼 논란은 87년 이후 계속된 논쟁의 연장선상에 있다. 김상곤 한신대 경영학과 교수는 6월항쟁 17주년 토론회에서 80~90년대 재야운동과 사회운동은 정치세력화와 관련 개혁정치(개혁적 보수정치), 진보정치, 시민운동세력의 정치운동 등 크게 세 갈래의 흐름을 형성했다고 분석한 바 있다.

우선 김 교수가 정리한 개혁적 보수정치 흐름을 되짚어보자. 13대 대선(88년) 때 김대중 후보에게 비판적 지지를 보냈던 이상수, 이해찬 등 97명은 평민당에 입당했다. 14대 총선을 앞두고 이부영, 유인태 등 민주연합파, 95년에는 김근태, 방용석, 김희선 등 통일시대민주주의국민회의 멤버들이 민주당에 입당했다. 또 장을병, 장기표, 성유보, 서경석, 이미경, 김홍신 등이 95년 11월 개혁신당을 결성한 뒤 민주당과 합당했다. 99년에도 국민정치연구회와 젊은 한국의 이재정, 유시춘, 이인영, 임종석 등이 새천년민주당 창당추진위원회에 참여했고, 16대 대선을 앞두고 유시민, 김원웅 등이 개혁국민정당을 만들어 노무현 후보를 지원했으며 그 후 열린우리당으로 통합됐다.

보수정치 참여는 한국정치의 장식품이 되었다는 평가도

‘대선의 성격과 전망, 대응방향’ 토론회에 참석했던 김 교수는 발제문을 통해 “보수정치 개혁을 주장하며 참여한 정치세력화 집단은 부분적인 정치개혁과 정당개혁을 추진하긴 했지만 기존의 보스정치와 인맥정치의 폐해를 극복하지 못하고 개혁은커녕 보스에 줄서기, 하위팀장화의 길을 걷었다.”고 비판했다. 결과적으로 “후진적이고 부패비리의 핵심고리라는 한국 정당정치의 장식품 내지는 보조재 역할에 그쳤다.”는 것이다.

87년 이후 진보적인 정치세력화 시도는 민중의당→민중당→민주노동당 등의 과정을 거쳤다. 87년 당시 재야운동진영은 대선 대응과 관련해 비판적 지지론, 후보단일화론, 민중후보독자추대론 등을 놓고 논쟁을 벌였다. 이때 독자추대론을 중심으로 백기완후보선거운동본부가 구성됐고 이들은 이후 민중의 당을 창당해 13대 총선에 참여했다. 이들은 90년 11월 민중당을 출범시켜 14대 총선에 참여했지만 참패했다. 그 뒤 이우재, 이재오, 김문수 등 소위 민중당 3인방은 집권여당의 품으로 들어갔다.

15대 대선 때에는 민주노총, 전국연합, 진보정치연합 등 좌파와 지식인 그룹이 97년 10월 민주와 진보를 위한 국민승리 21을 결성해 권영길 후보 선거대책본부를 꾸렸다. 민주노동당은 이를 계승해 2000년 1월 창립됐다. 민노당은 17대 총선에서 지역구 2명, 비례대표 8명 등 총 10명의 당선자를 내 진보정당의 의회진출이라는 쾌거를 이뤘지만, 최근 지지율이 정체 또는 하락하고 있는 상황이다.

정치감시운동 의미있지만 최근 발언력 약화

시민운동단체의 정치 감시 운동은 또 다른 흐름이다. 16대 총선에서 낙천낙선운동을 전개한 총선연대가 대표적 사례. 이들은 국민들의 폭발적인 호응을 받아 낙천낙선 대상자로 지목된 10명중 8명의 의회진출을 막아냈다. 하지만 갈수록 시민운동의 발언력은 약화되고 있고, 특히 대선에서 이들의 영향력은 극히 미약한 수준이다. 16대 대선에서도 대선유권자연대를 만들어 분야 별로 정책캠페인을 벌였으나, 큰 실효를 거두지 못했다. 그 이전 선거 때도 마찬가지였다. 정책선거보다는 인물 중심, 지역주의에 의존해왔던 선거문화 때문이기도 하다. 이는 또 시민운동의 사회적 발언력은 높아졌지만, 그 기반이라 할 수 있는 시민 속에 깊게 뿌리내리지 못했다는 반증일 수 있다.

그럼에도 시민운동단체들은 이번 대선과 관련해 아직까지 뾰족한 묘책을 내놓지 못한 것 같다. 주변 상황은 더욱 열악하다. 사회적 보수화 흐름이 가속되고 있고, 시민운동의 분화도 심화되고 있다. 고민은 더 깊어질 수밖에 없다.

한 진보학자는 지난 5·31 지방선거 직후 열린 토론회에서 작금의 절박한 상황을 이같이 표현했다. “후대의 사가들은 지금 이 시대를 어떻게 기록할 것인가. 길고 긴 반동의 터널로 들어가는 초입인가?” 올 대선 결과가 이 질문에 대답해줄 것이다. 지난 20여 년간 대선 대응 방법에 대해 논란을 거듭하면서도 다양한 실험을 계속해 온 진보개혁진영은 이번에 어떤 성적을 거둘까.

김병기(참여사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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