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2월 2007-02-01   1063

내 머리 속의 쓰레기, 너무도 친절한 연예뉴스들

2007년 새해 벽두, 1만 여 명의 참여연대 가족들은 참여연대 협동처장 김민영의 새해 포부는 몰라도 배우 이민영의 근황은 상세히 알고 있었다. 특별히 그녀를 좋아해서가 아니다. 눈 뜨고 귀 열고 있었다면 모르기 어려웠다. 그녀와 그녀 남편의 공방은 지나치게 상세하게 대한민국 온 미디어를 통해 상세히 전해졌다. TV를 켜면 공중파 방송들은 연예정보 프로그램에서 상세히 다루고, 케이블에서는 아침 점심 저녁으로 별반 다르지 않은 이야기를 되풀이해 틀어주었다. 인터넷은 어떤가. 아예 코너를 따로 만들어, 그 부부 이야기를 ‘이보다 상세할 수 없을’ 정도로 생생히 전해 주었다. 물론 그것은 뉴스감이었다. 그녀는 널리 알려진 연예인이고 가정폭력이라는 사건의 한복판에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연초에 수많은 뉴스를 제치고 오랫동안 1순위로 다뤄질 뉴스였을까. 그뿐인가. 그들의 핸드폰 문자 메시지까지 전 국민에게 중계되는 상황에는 우리도 당혹스러웠다.

아니다. 별로 당혹스럽지 않다. 사실 익숙하다. 지나치게 자세한 연예계 뉴스가 어디 어제 오늘의 일인가. 이젠 아예 그들이 ‘인생의 파트너’처럼 느껴질 정도다. TV 전파로, 무가 신문으로, 인터넷 뉴스 등으로 공기처럼 가까이 있다. 우리는 수많은 연예인에 대해 소상히 알고 있다. 그(녀)의 학창시절부터, 어디를 어떻게 성형했는지, 첫사랑 연인과는 왜 헤어졌고 첫 키스는 언제 했으며, 어떻게 헤어졌는지까지 줄줄이 꿰고 있다. 부모님 연애사는 몰라도 연예인 누가 여자친구와 유럽여행을 가서 무슨 일로 싸우고 어떻게 헤어졌는지 시시콜콜하게 알고 있다. 내 친구 봉희가 놀림의 대상이 된 그 이름을 왜 갖게 되었는지는 몰라도 드라마 주인공 봉달희가 봉합의 달인이라 그 이름인 줄은 안다.

특별히 기억력이 좋아서가 아니다. 반복 학습의 효과다. 공중파 연예정보 프로그램은 포털 뉴스를 통해 기사화 되고 확대 재생산 과정을 거쳐 출근길 무가지에서 총정리된다. 이 정도 반복학습이면 외우지 못하는 내 머리가 문제라고 봐야 한다. 학습의 결과, 종종 연예인이 가족보다 가까운 착각이 들 정도다. 동생의 인생계획은 몰라도 어느 영화배우와 감독의 차기 작품과 촬영 스케줄까지 알고 있으니, 그런 착각이 근거 없는 것만은 아니다.

물론 싫으면 안 보면 된다. 인터넷은 필요한 것만 활용하고, 포털사이트를 열어도 절대 다른 곳은 눈길 주지 않고 오로지 왼쪽 위에 있는 로그인 박스를 열어 메일만 확인하면 된다. 곳곳에 널려 있는 가십성 정보가 유혹하더라도 결연하고 단호하게 물리칠 수 있는 맷돌 같은 심성을 길러 볼 수 있다. TV도 마찬가지다. 편성표 보고 계획표를 만들어 초지일관 흔들리지 않고 실천하면 된다. 이런 방법도 있겠지만 너무 갑갑할 것 같다. 아니, 아깝다. 이런 정보망을 왜 그렇게 소극적으로만 사용하나.

2년 동안 22번 신문을 내기 위해 온갖 위험을 감수해야 했던 사람들에 대해 읽었다. 「클레피, 희망의 기록」이라는 책은 나치가 유태인을 학살하기 직전 몇 년 동안 체코 작은 동네에 살았던 유태인 꼬마들 이야기다. 꼬마들은 갑자기 학교와 놀이터를 잃고 갈 곳도, 할 일도 없는 시간을 강요당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놀 수 없는 시간이란 얼마나 고통스러운가. 결국 더러운 물웅덩이를 찾아내 수영장 삼음으로써 스스로의 해방구를 만들어 낸다. 한발 더 나아간다. 만나서 말을 나눌 수 없는 상황이라면 시간차를 두고 대화할 수 있는 글로 소통하면 되는 것이다. 그렇게 ‘클레피’(체코어로 뒷말이라는 뜻)가 만들어진다. 몇 장 되지도 않는 신문을 만들기 위해 아이들이 감수해야 했을 위험은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이런 아이들에 비하면, 우리는 소통에 관한 한 거의 유토피아에 살고 있다. 한 사람이 한 미디어를 갖는 것이 일도 아닌 시절이다. 원하기만 하면, 바로 지금 지구 반대편에 있는 누군가에게 내 이야기를 실시간 동영상으로 보내줄 수 있다. 이렇게 막강한 기능을 가십성 정보 주고받기로 활용한다는 것은 상당히 억울한 일이다. 막강한 기능만큼 내용도 아름답고 화려하게 채워간다면 더 볼 만하지 않을까.

<타임>지는 2006년 올해의 인물로 ‘당신(You)’을 선정했다. 표지에도 거울을 붙였다. UCC(이용자가 만들어 내는 콘텐츠)로 대표되는, 미디어의 지형을 바꾸는 대중의 힘을 2006년의 가장 중요한 흐름으로 꼽은 것이다. 잡다한 연예가 뉴스에 열중하면서 ‘내 머리 속 쓰레기’에 짜증낼 것이 아니라, 치워내는 노력이 필요하다. 어떤 노력? 그것까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변화의 실마리는 바로 나, 우리들이 쥐고 있다고 하지 않는가.

최현주 참여연대 인터넷팀 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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