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7년 02월 2007-02-01   654

산촌유학(山村遊學)

최근 유명한 대안교육단체로부터 산촌유학(山村遊學)에 관한 강연회 안내장을 받았다. 일본에서 시작된 산촌유학은 도시 아이들이 일정기간 시골에 머물면서 그곳 학교에 다니는 것을 말하는데, 요즘 우리나라에서도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남들은 여건만 되면 자식들 해외로 보내려고 안달인데 거꾸로 나는 지난 가을 아이들을 데리고 지방유학을 다녀왔다. 이웃의 다른 한 가족과 함께 내가 살고 있는 경기도 여주를 떠나 전북 완주에 한 달 간 머물면서 교환학습제도를 이용해 그곳 학교에 아이들을 보냈다. 농촌에서 농촌으로 간 것이니 정확하게 산촌유학은 아니다.

유학을 간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100명도 안 되는 공립학교인데 분위기가 아기자기했고 선생님들은 저마다 열심이었다. 초등학교 5학년인 큰 아이는 학교 공부도 재미있을 수 있다는 사실을 그곳에서 처음 알았고, 급우가 15명 정도 밖에 안 되는 터라 편 가르지 않고 모두 사이좋게 지내는 점이 좋았다고 했다.

한 지붕 두 가족의 공동생활 체험도 보람 있었다. 직장 때문에 아빠들은 ‘기러기’가 되었고 엄마들이 아이들 둘씩 데리고 내려가 단독주택 한 채를 빌려 같이 썼다. 비어있던 집이라 난방도 안 되고, 더운 물도 안 나오고, 세탁기도 없고, 전화도 불통이었다. 엄마들은 수돗가에 앉아 손빨래를 하며 이야기꽃을 피웠다. 유치원부터 초등 6학년까지 아이 넷은 통학버스를 타고 학교를 오갔다. 컴퓨터도 없고, 텔레비전도 잘 나오지 않았지만 아이들은 조각그림 맞추기, 카드, 바둑, 장기, 오목, 실뜨기, 그리기, 연극, 감 따기 따위를 하며 하루해가 짧은 줄 몰랐다. 간식은 늘 불티가 났고 밥맛은 꿀맛이었다. 저녁밥을 지어 먹고 촛불 켜고 둘러 앉아 이야기 보따리 푸는 시간을 아이들은 특히 기다렸다. 간혹 이질감을 느낄 때도 있었지만 차이를 인정할 줄 알게 되었고 서로 더 깊이 알게 되었다.

쉬는 날이면 근방의 박물관이며 유적지, 산천, 공연장으로 구경을 다니면서 향토색과 변방의 역사 문화를 즐겼다. 전주 세계소리축제를 관람했던 딸은 판소리와 우리 춤이 배우고 싶다고 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으니까 한 달씩 집 떠나 여행하는 줄 알지 모르지만, 우리는 원래도 부자가 아닌데다 알뜰하게 살림을 꾸린 결과 집에서보다 생활비가 덜 들었다. 나갈 때도 간식거리를 챙겨가고 외식은 꼭 필요할 때 하되 전주비빔밥 같은 향토음식 위주로 했다.

아이들은 한 달로 끝나는 게 아쉬웠던지 “앞으로 교환학습 많이 다녀요. 함경북도까지 가 봐요.”라고 외쳤다. 나는 올해도 할 수만 있다면 어디로든 떠나볼 생각이다. 주마간산으로 관광지를 찍고 다니는 여행으로는 세상의 속살을 느껴볼 수 없다. 아이들이 어릴 때라도 부지런히 농촌, 산촌, 어촌, 고도(古都)를 찾아 머물며 바람 냄새, 물맛, 인심이 다르기도 하고 같기도 한 것을 깨치게 하면 그것이 바로 살아있는 사회공부, 알짜 체험학습이 아닐까. 어른들의 결심만 있으면 적은 비용으로 아이들에게 소중한 자산을 남겨줄 수 있을 것이다.

고진하 (참여사회 편집위원)
첨부파일: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