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09년 09월 2009-09-01   1385

아주 특별한 만남_참여연대 15주년 특집 – 김종복 회원





김종복 회원


‘젊은이들이 미래’ 바다같은 사랑을 퍼붓다





이경휴 수필가, 참여연대 자원활동가

바다는 가장 낮은 물이고 평화로운 물이지만 이제부터는 하늘로 오르는 도약의 출발점입니다. 자신의 의지와 목표를 회복하고 청천하늘의 흰 구름으로 승화하는 평화의 세계입니다. 방법으로서의 평화가 아니라 최후의 목표로서의 평화입니다. 신영복 ‘나무야 나무야’ 중에서


여름도 끝물이다. 말복·처서도 지났고 가을 기운이 스며들기 시작한다는 백로白露가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아침저녁으로 제법 선선한 바람이 불지만 대낮의 땡볕은 폭염주의보로 마지막 기세를 드날린다. 그 기세에도 꽃들은 늠름하게 아름다움을 뽐내며 자신을 드러낸다. 분홍빛 꽃술을 편 자귀나무, 보기 드문 보랏빛 목백일홍, 백의민족을 연상케 하는 흰 무궁화, 녹색 이파리 위에 소복이 올라앉은 미색 회화나무 꽃송이들…. 생명력 넘치는 여름 산야는 멈출 기색이 도저히 없어 보인다.


하지만 세상사 영원한 것이 어디 있으랴. 생자필멸 회자정리生者必滅會者定離라는 인생무상의 진리를 깨닫게 하는 게 또한 우리의 삶이 아닐까. 최근 그 깨침을 실감케 한 이별이 있었으니 김대중 전 대통령의 장례식이었지 싶다. 야만의 시대를 한 몸으로 통과해 민주주의의 정상을 향해 나아갔던 그 어른의 투혼이 그리운 시절로 남게 되었다.


이제 ‘행동하는 양심’으로 행동할 이들이 과연 얼마나 될까. 국민 편에 서기보다는 당리당략에 눈이 멀어 양심조차 사라진 지 오래된 사람들이 들끓는다. 그래도 세상은 ‘양심 없는 빈 수레’보다는 어리석은 자들의 우직함이 세상을 조금씩 바꿔간다고 한다.


양심과 우직함을 함께 지닌 아주 특별한 사람을 만났다. ‘아주 특별한 만남’의 주인공답게 여러 가지 의미로 특별한 인터뷰였다. 9월은 참여연대가 창립 15주년을 맞는 달이기에 인터뷰이 선정에 다소 고심을 했다. 일만 명의 회원 한 사람 한 사람 모두가 소중하고 고마운 회원이라 때론 무작위(?)로 인터뷰를 하고 싶지만, 사전 인터뷰 요청에 선뜻 응하는 사람은 드물다. 일단 섭외만 되어도 절반은 성공인 셈이다.






“한식구끼리 인터뷰할 게 뭐 있다고…”


창립 15주년을 맞는 특별한 달- 인터뷰이로 일찌감치 점지된 이가 김종복(52세) 회원이었다. 그러나 한사코 그는 거절을 했다. 설득과 애걸도 통하지 않아 협박(?)카드까지 내밀었다. ‘호남好男형 아저씨’답게 웃음으로 답변을 대신했다. 일단 성공이다 싶어 거절의 변도 들으며 통화는 계속되었다.


“나는 한 식구인데 인터뷰할 게 뭐 있다고… 다른 회원 좀 하지.”


독백인지 방백인지 분간키 어려운 어투가 긴장감을 없앴다. 그는 소설 『태백산맥』의 무대인 벌교에서 태어났고, 주거지는 천안이고 현재 일터는 전남 광양이다. 직업은 건축업이요 부업은 공부(경영·회계학 전공)와 출강이요, 봉사활동으로는 시민운동에 힘을 쓰고 있는 사람이라고 ‘자기소개서’를 냈다. 인터뷰 장소를 놓고 설왕설래 하던 중, ㅇ협동사무처장의 부친상이 부산에서 있었다. 우리는 조문객으로 자정 가까운 시간에 그곳에서 만났고, 인터뷰 장소는 파도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낙점되었다.


광안리 밤바다는 드라마 세트장 같았다. 세상의 모든 물을 다 ‘받아’들이기에 바다라고 한다는데 물도 파도소리도 박제된 실물이었다. 칠흑의 물빛이 조명의 휘황함 탓이었을까, 멀리 멀리 헤엄쳐 나가고 싶다는 욕망보다는 연인과 사랑을 속삭이기에 적합한 바닷가였다. 여러 가지의 특별함이 수를 놓는 한여름 밤의 인터뷰였다.


2002년 회원 가입을 한 날부터 열심히 왔다 갔다 했으니 이제는 스스로 ‘식구’라며 열없이 웃었다. 그러니 식구끼리 무슨 인터뷰가 필요하며, 정작 참여연대에 발언하고 싶은 사람을 찾아서 어디라도 가야하는 게 진정한 인터뷰라고 일침을 놓았다. ‘큰오빠’다운 충고에 고개를 숙였지만 따뜻한 마음은 그대로 전해져 왔다.


안국동 사무실에서부터 2007년 통인동 보금자리로 둥지를 틀 때까지 그의 손길이 닿지 않은 곳은 거의 없다. 집안 구석구석을 손보고 책장이며 싱크대며 전구 하나까지 일일이 점검하고 추슬렀다. 뿐만 아니라 참여연대 인턴십 교육이 있을 때면 늘 앞장서서 ‘물주’가 돼주었고, 그들과 격의 없는 토론으로 대학생들의 마음을 사로잡기도 했다. 자타가 공인하는 ‘식구’임에 틀림없는 회원이다.





진보적 책 읽다 눈떠… 한때 운영하던 카페에 ‘똘레랑스’간판


늦깎이(?) 회원으로 가입한 동기가 궁금했다.


“우연한 기회에 진보와 관련된 책들을 읽게 되면서 의식에 일대 전환이 왔었죠. 리영희 선생의 좬전환시대의 논리좭가 사회를 보는 눈을 뜨게 했고, 홍세화 선생의 좬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좭에서 ‘똘레랑스(관용)’라는 말에 크게 공감했죠. 오죽했으면 한 때 운영하던 카페의 간판을 똘레랑스로 걸었겠어요? 그런 진보적인 책을 탐독하다 보니 참여연대 회원 가입은 자연스러운 일이었죠.”


독서량 또한 만만찮게 느껴지는 분위기라 요즘은 어떤 책을 읽느냐고 여쭸다.


“주로 정독을 하는 책, 엑기스만 읽는 책, 대충 훑어보는 책으로 구분해서 책을 읽죠. 일주일에 한 권의 책을 읽는 게 기본이라 한 달에 한 번 정도 교보문고에 가면 6-7권의 책을 삽니다. 요즘은 우노 마사미의 좬유태인 세계 전략좭을 읽고 있는데 역시 시야를 넓히는 계기가 된 책입니다.”


정독형의 책이라 싶어 호기심이 일었다. 독후감 수준으로 서평을 부탁하자, “좋게 표현하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해 세계 통일의 이상국가 실현을 목표로 하는 책이지만 나쁘게 말한다면 세계정복 음모를 펼치는 내용이라 온 몸이 오싹하더라고요. 이를 보충하는 내용으로 쑹훙빙의 좬화폐전쟁좭, 임종태의 좬경제묵시록좭, 지글러의 좬탐욕의 시대좭 등을 흥미롭게 읽고 있어요. 한마디로 신자유주의의 대안과 관련된 책들이죠.”


열쇠말은 유대인과 신자유주의다. 유대인-서구와 중동에서 그들은 입안의 가시 같은 존재다. 배타적인 선민사상으로 국제사회에서 유별난 존재로 인식된 그들은 토지를 소유할 수 없어 일찍부터 금융업과 전문직으로 나아갔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자본주의의 성장과 함께 사회적 경제적 지위가 상승되어 ‘보이지 않는 손’의 역할을 전 지구적으로 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또한 그들 손에서 놀아나는 자본주의의 극대화로 승자 독식의 숨은 전략이 아닌가.


종·횡으로 꿰고 있는 신자유주의의 폐해에 대해 개인적으로 어떤 대안이 있느냐고 여쭸다. 생각에 잠기는 듯했으나 정답은 이미 준비되어 있었다.


“기득권층의 양보가 하나의 대안이 아닐까요?”




“젊은이들과 어깨동무 해야 조직이 탄력받아”


그의 인턴과 대학생 교육프로그램에 대한 관심과 지지는 절대적이다. 밑그림은 그려지지만 그래도 그 애정의 진원지를 알고 싶었다. 금새 얼굴이 환해지며 일성(一聲)이 터졌다.


“나에게 참여연대는 세컨드죠. 퍼스트는 물론 내 인생이고. 그런데 원래 사랑이란 세컨드에게 더 많이 가는 거 아닌가요?”


갑자기 쏟아진 웃음이 밤바다에 벼락 치듯 번쩍 꽂혔다. 농담이란 엄숙하고 진지한 척 하는 담론에 대한 조롱이라는 말이 퍼뜩 떠올랐다. 통속의 언어로 자리는 한층 무르익어 갔고, 교육프로그램의 중요성으로 화제가 돌아오자 선생님의 얼굴이 되었다.


“참여연대 조직에 대한 믿음은 변함이 없어요. 그런데 조직이 탄력을 받으려면 젊은이들과 어깨동무를 해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선 교육이 중요하죠. 물론 현실적인 문제도 있지만 인턴 교육을 여름·겨울방학에만 할 게 아니라 수시로 그들에게 문을 열어놓아야 합니다. 교육의 효과가 얼마나 컸던지 수료식 날 우는 학생을 보고 감동 먹었어요. 지금도 사람들이 무지하기에 MB악법의 실체를 모르고, 매스컴은 이 악법에 의해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갈 것 같아 걱정되죠. 무지를 깨고 젊은 층의 탈정치화를 끌어들이려면 교육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그래서 나는 그들에게 무한한 관심을 갖고 세컨드(?)에게 주는 사랑을 합니다.”


그 사랑 변함없음을 확신하기에 ‘인턴과 대학생의 대부’로 헌배했다. 묵언 속에 스쳐가는 웃음은 ‘통과’의 뜻으로 받아들이기에 충분했다.


젊은이들이 현실정치에 무관심한 게 심각한 세태이다. 세상이 신자유주의 물결에 휩쓸려가는 탓인지 그들은 일자리 찾고, 소비지향적인 것 외에는 관심이 없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때론 ‘정치꾼’들은 그것을 교묘히 이용하며 대중을 따돌리며 악법을 만들어 내려고 용을 쓴다. 이 은밀한 음모가 그에게 보이지 않을 리가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시민운동은 젊은 세대의 정치적인 각성이고, 또 이들을 어떻게 투표에 참여하게 할지 고민하는 게 과제입니다. 지난 선거에서도 대학생들이 10%만 더 투표에 참여했더라면 한나라당 같은 당은 벌써 사라진 정당일 걸요. 이래서 교육프로그램이 절대적으로 필요하고, 그래서 내가 그들에게 공을 들이죠.”


광안대교 불빛은 오징어잡이를 나간 배처럼 물 위에 선연히 떠있고, 하늘 한 켠은 희붐히 밝아오고 있었다.





“만 원 내는 회원을 일억 원 내는 회원처럼 대해야”


식구끼리도 때론 반목하고 질시하는 게 인지상정이라 특별히 정이 가는 이나 마음 상했던 일은 없었냐며 눈치를 보았다.


“돌아가신 산사랑의 기우봉 선생님 같은 큰 어른을 가까이에서 오래 못 모신 게 아쉽고, 10년 가까이 자원활동하시는 맹행일 선생님을 존경합니다. 그분들의 시민운동에 대한 열정은 모두가 배워야 할 자세입니다. 또 이제 우리는 기부에 대한 생각을 바꿔야 합니다. 기부문화에 대해 담론이 활발하고, 모범을 보이는 부자들이 나와야 하는데 선심 쓰듯 찔끔거리고 재단을 만들고 이래서는 안 되죠.


마음 상하게 하는일도 개개인의 성격 탓이지, 일을 하다 보면 나랑 다를 수 있는 거지 그게 틀린 건 아니잖아요. 다름과 틀림을 정확히 이해해야죠.”


그야말로 똘레랑스를 정확히 이해하고 체험하는 답변이었다. 이왕지사 질문은 조심스럽게 나갔다. 참여연대 활동을 하면서 어려움이나 서운한 점은 없었는지.


“직업이 건축업이라 사업상 공조도 해야 하고, 비리도 눈감아야 하는 구조적 모순 때문에 회원으로서 힘들 때가 있었어요. 서운한 점은 회원 4년차 되었을 때 소통부재로 서운하고 조바심이 좀 났죠. 운영위원을 하면서 느꼈던 문제점을 꾸준히 사무처에 요구했죠. 때론 부질없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요구했고. 5년차가 되면서 조직의 특성을 이해하게 됩디다. ‘조바심을 갖지 말자. 사랑은 기브 앤 테이크Give and Take가 아니라 온니Only이다. 기브 앤 테이크는 거래이지 사랑이 아니다.’ 앞으로도 꾸준히 요구하며 참여연대를 사랑할 거예요.”


아가페적인 사랑론에 감탄하며 마무리 질문으로 자리를 정리했다. 이미 바다는 아침 해를 품은 만삭의 몸이 되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둘 다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참여연대에 대한 애정 어린 비판을 부탁하자,


“사업에 대한 고민도 중요하지만 회원 사업, 회원 확대에 주력해야 합니다. 지금 하는 사업도 충분히 잘 하고 있으니 더 이상 확대하지 말고 회원관리에 힘을 썼으면 해요. 앞서 말했듯이 나 같은 사람보다는 지역 어디라도 찾아가서 그들이 내는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만 원을 내는 회원이라도 그들이 만 명이면 일억 원이 됩니다. 만 원 내는 회원을 일억 원 내는 회원으로 생각하고 대해야 합니다. 회원들이 참여연대의 힘 아니겠어요? 힘들겠지만 그 소리들을 다 받아들여야지요.”


이미 그는 바다가 되어있었다. 이제 회원 모두를 낮고 평화로운 물길로 바다로 향하게 하려 한다. 하늘로 오르는 도약의 출발점은 당연히 참여연대가 되리라.


정부지원금 0%, 회원의 회비로 운영됩니다

참여연대 후원/회원가입


참여연대 NOW

실시간 활동 SNS

텔레그램 채널에 가장 빠르게 게시되고,

더 많은 채널로 소통합니다. 지금 팔로우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