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참여사회 2011년 11월 2011-11-04   1594

문강의 문화강좌-우리시대 최고의 ‘꼼수’

우리시대 최고의 ‘꼼수’

 

문강형준 문화평론가

“즐겨라!”
이것은 우리 시대를 지배하고 있는 하나의 강력한 발화다. 서바이벌 경쟁에 스스로 몸을 던진 <나는 가수다>의 가수들은 ‘공연을 즐겼더니 좋은 성적이 나왔다’고 말하고, 수백 만 명 중 한 둘을 뽑는 <슈퍼스타 K>에 나와 긴장해 있는 가수 지망생들에게 심사위원, 멘토들은 ‘무대를 즐기라’고 조언한다.  ‘즐겨라’라는 발화는 노동과 생산과 창조의 현장에 있는 이들에게도 끊임없이 전달되는 명령이다. 과거의 노동자에게는  명령에 따라 앞만 보고 달리며 작업을 수행하는 일종의 ‘군인’의 역할(산업역군)이 요구되었다. 반면 오늘의 노동자에게는 다양한 상황에서  의사결정을 내리고 복잡한 변수들 속에서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만들어내는 ‘경영자’의 역할이 요구된다.  자기-경영자가 된 이 노동자들은 창조적인 아이디어를 위해서 자신이 놓인 상황을 전투적으로 ‘즐겨야’ 만 한다. 가장 강력한 서바이벌의 법칙이 삶의 모든 부면을 장악하고 있는 우리 시대에 ‘즐겨라’라는 명령 역시 더욱 강력해지는 것은 역설적이다.

  ‘즐겨라’라는 명령은 모든 것이 부드럽고 유연해지고 있는 오늘날 문화의 키워드다. 우리 시대는 딱딱하고 모나고 뻣뻣한 것들이 아니라 부드럽고 둥그렇고 유들유들한 것들의 시대다. 회사조직, 노동구조, 인간관계나 말투도 모두가 그렇게 변하고 있다. 스마트폰, 아이패드, 트위터, 페이스북은 모두 그런 부드럽고 유연한 것을 구현한다. 손가락으로 누를 필요 없이 살짝 터치하고, 사람을 만나 부담스러워할 필요없이 온라인 상에서 친구를 맺고, 전화를 건 고객들에게 ‘사랑합니다’라고 말하며, 백화점에서는 물건에게까지 높임말을 붙이고, 심지어 해고도 문자로 가능하다.

  나를 즐겁게 하고 내가 즐거울 수 있는 것이라면 나는 무엇이든 할 수 있지만, 나를 불쾌하게 하고 내가 피곤한 일이라면 일단은 싫다. 딱딱하고 모나고 뻣뻣한 것들, 가령 군대나 검찰, 관료 조직이나 정당, 청와대, 학교, 꼰대, 꼴통 등은 이 시대의 ‘정신’과 어긋나며, 흔히 조롱거리가 된다. 즐겨야 하는 시대에는 정치 역시 이에 맞게 전환된다. 온 몸을 불사르며 독재타도를 외치는 데모와 투쟁의 정치는 한물 간 것이 된 지 오래다.

‘정치를 엔터테인먼트로’ 혹은 ‘엔터테인먼트를 정치로’

 이 즐거움의 시대에는 정치 역시 즐거워야 하고 즐겁지 않으면 정치가 아니다. 세간의 뜨거운 이슈인 <나는 꼼수다>는 대표적이다. ‘국내 유일 각하 헌정방송’이라는 모토를 채택하고 있는 이 팟캐스트 방송은 이명박 대통령을 주요 축으로 해서 한나라당, 검찰, 대형교회, 주류언론 등의 ‘꼼수’를 파헤친다.

 
  이 ‘묵직한’ 주제들이 열광적인 반응을 얻게 된 주된 이유는 이 프로그램에 출현하는 ‘이빨’들의 과감한 입담 때문이다. ‘권력에 똥침을 날리는’ <딴지일보>의 직설은 <나는 꼼수다>에서 ‘각하는 절대 그럴 분이 아니다’라는 반어로 변한다.  보신탕집에서 발휘되는 각하의 ‘호연지기’, ‘노원구 공릉동과 월계동을 지역기반으로 하는’ 전 국회의원의 자기 자랑 ‘깔대기’, ‘누나전문기자’가 풀어놓는 각하 관련 정보들, ‘목사아들 돼지’의 대형교회 비판, ‘절친 오세훈’의 자충수에 이르기까지 <나는 꼼수다>가 펼쳐 내는 토크는 청취자들을 키득거리게 한다.

 
  김어준이 펴낸 『닥치고 정치』는 발간이 되기 전부터 부동의 베스트셀러 1위를 지키고 있다. 독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비슷하다. 이렇게 즐겁고 유쾌하게 정치를 말하는 책은 처음이라는 것.  ‘미래권력’ 정봉주 역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강력히 주장한다. 정치도 즐거울 수 있다고, 자신이 그것을 보여 줄 것이라고. 요컨대 <나는 꼼수다>는 정치를 엔터테인먼트로 전환함으로써, 혹은 엔터테인먼트를 정치와 결합함으로써 정치적 영향력을 획득한다.
 
‘즐거움’이 도달하는 곳은 결코 새롭지 않다

 투사가 멘토로, 거리시위가 토크콘서트로, 정치적 비판이 정치 엔터테인먼트로. 즉 잘못된 권력에 대한 투쟁과 평등에 대한 요구로서의 정치가 부드럽고 유연하고 시끌벅적한 ‘즐거움’의 정치로 변한 상황 – 우리가 <나는 꼼수다> 현상에서 목격하고 있는 것은 정확히 ‘즐겨라’의 정치적 버전이다.

  문제는 이 ‘즐거움’의 정체다. 언뜻 신선해 보이는 <나는 꼼수다>의 새로운 미디어 실험과 직설적 언사들이 도달하는 정치적 비전의 장소란 결국 다시 ‘국회’이고 ‘시청’이고 ‘청와대’다. 바뀌는 것은 장소가 아니라 인물이다.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 아니면, 오세훈이나 나경원이 아니라 박원순이면, 이명박이 아니라 문재인이나 안철수면 ‘희망’이 있다는 식의 생각이 이 프로그램 전반에 흐르고 있다. <나는 가수다> 순위를 놀랍게 예측하면서 대중의 ‘욕망’에 관한한 ‘지식인의 혜안’을 가지고 있음을 ‘증명’한 김어준의 ‘사람 보는 눈’은 <나는 꼼수다>를 통해서도 여지없이 발현된다. 자신이 패러디한 프로그램처럼 <나는 꼼수다>는 정치를 마치 <나는 가수다>처럼 바라본다.

  부패하고 후진 인물들을 대중의 희망을 담는 새로운 인물로 바꾸면 정말로 ‘정치’가 좋아질까? 투표장에 나가서 표를 행사하는 그 ‘행위’가 정말로 우리 시대의 진정한 ‘정치적 행위’일까? 풍자가 기존의 상식에 바탕을 둘 때 효과를 가지듯, <나는 꼼수다>의 풍자 역시 사실은 케케묵은 상식을 배반하지 않는다. ‘즐겨라’라는 이 시대의 슬로건은 예능 프로그램에서부터 정치까지 우리가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규정한다. 지금까지 하던 방식을 바꿔서 더 즐겁게, 더 신나게, 더 부드럽게, 혹은 더 강하게 감성을 자극하고 웃음을 유발하고 감동을 시키고, 그래서 즐거워지면 그것이 정당하고 옳다는 사고가 이 안에 들어 있다.

  애초에 소비자를 현혹시키던 기업의 심리 마케팅 기법은 사회 자체가 기업화됨에 따라 우리 모두의 시대정신이 되었다. 그러나 언제나 우리를 들뜨게 하는 이 즐거움의 정언명령은 더욱 가혹해져가는 자본주의와 더욱 공고해져가는 대의제 정치라는 이 시대의 진짜 핵심을 세련되게 감춘다. ‘즐겨라’는 명령이 잦아질수록 삶은 더욱 공허해지며, 그 공허에서 벗어나기 위해 우리는 다시 즐거움을 찾는다. ‘즐겨라Enjoy!’를 자신의 몸 위에 새긴 코카콜라가 하는 일이 그것이다. 바로 이것, 이것이야말로 우리 시대 최고의 ‘꼼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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