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1998-09-24   1193

[제2호 쓴소리] 특별검사제와 대통령의 결단

안녕하십니까, 김대중 선생님.

저는 아직도 김대중 '대통령'보다는 '선생님'이라는 호칭이 자연스럽습니다.

김대중 대통령께서는 민주화와 개혁의 표상이며, 국민들과 고통을 함께 한 몇 안 되는 훌륭한 정치인 중의 한 분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께 거는 기대가 큽니다.

새 정부는 '제2의 건국'을 표방하며 온 국민이 하나 되어 진정한 민주 사회의 건설에 나아가자고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시작에는 언제나 과거와의 명확한 단 절이 필요합니다. 예컨대, 친일파 청산의 실패와 같은 민족적 과오를 다시 되풀이하 지 않으려면 과거의 잘못된 잔재와 유습을 청산하는 일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특히 부패와 그에 연관된 인적 고리를 끊어 내는 것이 새로운 건국의 출발점이 되어야 할 줄로 압니다.

그 토대가 될 제도로 특별 검사제의 도입을 제안드리며, 같은 맥락에서 부패방지법 안에 들어 있는 '고위 공직자 비리 조사처'를 설치할 것을 요청합니다. 특별 검사제 도입을 제안 드리는 이유는 명확합니다. 지금의 검찰에게는 도저히 대통령을 포함한 고위 공직자나 정치인의 비리, 고도의 정치적 사안에 대한 엄정하고 공정한 수사를 기대하기 어렵다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만인이 법앞에 평등해야 한다 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이 지켜지고 있다고 믿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사실 특별 검사제는 국민회의가 야당 시절 집요하게 요구했던 제도입니다. 96년 12 월에 소속의원 71명의 이름으로 제출했던 '부패 방지법안'에 포함되었던 특별 검사 제는 검찰의 편파적 수사 때문에 가장 큰 피해를 입었던 국민회의가 권력의 전횡을 막고 공정한 수사를 위한 제도로써 강력히 추진했던 사안이었습니다. 그 때에 이 법 은 한나라당의 반대에 부딪혀 처리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오늘날 특 별 검사제의 도입을 드세게 주장하는 쪽은 한나라당입니다. 국세청장, 차장을 동원하 여 기업으로부터 선거 자금을 모금하였다는 사실이 검찰에 의해 밝혀지자 검찰 수사 를 믿지 못하겠다며 특별 검사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당이 야당 되고, 야당이 여당 되었다 해서 부패의 고리를 끊기 위한 특별 검사제의 도입을 주장하는 주체가 바뀐다면, 그건 법 질서의 확립을 위해서가 아니라 정치 논리를 법에까지 확 장시켜 자기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의도로 그 제도를 이용하고 있다고 밖에 할 수 없습니다.

대통령께서 이러한 오해를 피하시려면 반드시 특별 검사제가 도입되어야 합니다. 국 세청까지 동원하여 대선 자금을 모금한 일의 수사를 두고 편파 수사니, 표적 수사니 하고 몰아부치는 야당의 부끄러운 줄 모르는 억지를 막아내려면, 그 지긋지긋한 정 치적 타협말고 하루 빨리 특별 검사제를 도입하여 단호하고도 투명한 조사를 벌여야 합니다. 그것은 부패의 문제를 정치적인 절충의 문제로 환원시키는 일이 더는 이 땅 에 발붙일 수 없도록 하는 좋은 기회일 것입니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특별 검사제는 많은 논란을 빚고 있습니다. 논란의 핵심은 '어떤 기관이 공직자 비리 사정의 권한을 갖느냐'는 것입니다. 특히 박상천 법무부장관은 특별검사제의 일환으로 참여연대가 제안한 '비위 공직자 비리 조사처'가 위헌의 가 능성이 많다는 발언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1988년에 박상천 의원을 포함한 평민당 국회의원 67명이 '특별 검사의 임명과 직무에 관한 법률안'을 제안했던 적이 있음을 대통령께서도 기억하고 계실 줄 믿습니다. 바로 그 박상천 의원이 오늘날의 법무부 장관일진대 어찌하여 생각이 이다지도 달라졌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입니다. 게다가 검찰 쪽의 반발로 지난 7월 대통령 직속의 특별 수사부를 만드는 것으로 정부의 입 장이 후퇴한 뒤에도 검찰은 한사코 '수사의 혼선'을 이유로 들어 그것까지 반대하고 있고, 한승헌 감사원장마저 사견임을 밝히며 "특별 수사부는 검찰 안의 한 부서로 둬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박장관의 발언이나 검찰과 감사원의 반대는 조직의 기득 권을 지키기 위한 조직 이기주의의 발로라고 밖에는 생각할 수 없습니다. 이는 국민 앞에 떳떳하고, 역사 앞에 부끄러움이 없어야 할 공인의 자세가 아닙니다.

현재 미국에서 진행되고 있는 특별 검사의 활동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하겠습니다. 최근의 선정성 보도에 관심을 두는 것이 아니라 절차적 민주주의의 공 정성에 놀라고 있습니다. 미국의 대통령이 특별 검사의 추적에 의해 자신의 정당성 을 심판받을 수 밖에 없게 된 공정한 법 풍토가 오늘의 미국을 이끌어 가고 있는 힘 이 아닌가 합니다. 저희는 이 같은 숨김없고 공정한 사법 활동이 실현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해묵고 완강한 부패의 고리를 끊고 깨끗한 새 세상을 여는 일이 '제2의 건국'이라면, 특별 검사제의 도입은 피할 수 없는 시대의 요청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대통령께서는 한국 현대 정치사의 증인과 같은 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그러므로 그 욕된 세월을 넘어서야 하는 것이 우리 민족의 절대절명한 과제인 줄을 누구보다 잘 아시는 분이라고도 생각합니다. '특별 검사제'는 그 험난한 길로 나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중요한 수단이 될 것입니다. 깊이 통찰하시되 더 늦추지 말 고 결정하실 일입니다.

동국대에서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참여연대 회원 윤충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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