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1998-10-01   834

[제3호 쓴소리] 천덕꾸러기 조세정책 돌봐주세요

대통령님,

오늘은 세금문제에 대하여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세법은 나라의 살림살이를 결정하는 매우 중요한 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는 국민개개인에서부터 고위공직자, 정치인에 이르기까지 세법에 대한 관심이 매우 낮습니다. 선진국에서는 대통령선거 또는 국회의원선거에서 후보자가 내세우는 공약사항중 조세정책이 매우 중요시되고 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공약으로 내세우는 조세정책 자체가 거의 없는 현실이 이를 반증해주고 있습니다.

이러한 무관심속에서 우리나라의 조세정책은 천덕꾸러기 취급을 받으며 사회 곳곳에서 말썽 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말썽꾸러기 조세정책으로 인하여 국민의 정부가 그동안 이루어낸 개혁의 성과가 퇴색되지 않을까 걱정이 됩니다.

몇 달전, 대통령님께서 부유층에 대한 상속/증여세의 과세를 강화하라는 특별지시를 내렸다는 신문보도를 접하고 저는 매우 반가왔습니다. 대통령님께서는 역대의 어느 대통령 보다도 세금문제에 대하여 관심이 높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아쉬움이 남았습니다. 대통령님께서 내리신 특별지시가 탈세는 꿈도 못꾸는 월급쟁이와 서민들의 감정을 다스리는데는 도움이 될지 모르지만, 조세정책의 근본적 이고 가장 중요한 문제점을 해결하는 것과는 거리가 있기 때문입니다. 대통령님의 특별지시 는 현장세무조사의 강화로 곧바로 나타날 것입니다. 현장세무조사 결과, 몇 명의 탈세범을 적발하고 약간의 세수를 확보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적발된 탈세범은 잘못을 뉘우 치기 보다 재수없음을 탓할 것이고, 국민들도 탈세범을 '처벌받아야 할 자'로 보기 보다 '재 수없는 자'로 여길 것입니다. 탈세가 관행화된 현실에서 탈세를 방지하는 제도적 보완없는 현장세무조사는 국민의 눈에는 한순간의 'SHOW'로 보일 따름입니다.

구조조정, 경기부양, 실업자구제등등 돈 쓸 곳이 너무나 많습니다. 그 돈은 결국 국민의 세금 으로 충당되어야 합니다. '돈 쓸 곳은 많은데, 세금을 늘리자니 국민의 눈이 따갑고—.' 그 러나, IMF 직후 우리국민이 보여준 금모으기 운동의 성과는 대통령님과 여러 정책담당자들 의 고민을 덜어줄 지도 모릅니다. 40년간 장롱속에 고이 간직한 결혼반지를 내놓는 우리국 민입니다. 둘도 없는 귀여운 아기의 돌반지를 내놓는 우리국민입니다.

이러한 우리국민이기에, 나라가 어려우니 세금을 조금씩 더 내어 이 위기를 극복하자고 호 소한다면 당연히 들어줄 것으로 믿습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한가지 전제가 필요하다고 생각 합니다. 즉, '조세부담의 형평성'이 보장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애국심이 강한 우리국민일지라 도 주변에 자기 보다 더 많은 돈을 벌면서 세금을 적게내는 사람이 널려있다면, 세금을 더 내라는 정부의 요구에 '돈 많이 벌고 탈세하는 사람들한테 더 걷지 왜 서민들한테만 세금을 더 거둬?'라며 반발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저희 참여연대에서 여론조사한 바에 따르면, 조사대상자의 74.9%가 조세부담의 형평성이 실 현되지 않고 있다고 응답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의 조세정책은 이러한 여론을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습니다. 여론조사 결과, 저희는 조세정책에서 최소한 다음의 두가지 는 실현되어야 정부가 조세부담의 형평성을 위해 노력하고 있음을 국민이 인정해줄 것이라 는 결론에 도달하였습니다.

첫째, 금융소득종합과세가 부활되어야 합니다. 금융소득종합과세가 시행될 당시 이자소득에 대한 서민들의 세부담율은 16.5%이었고 금융소득종합과세대상자(연간 금융소득이 4천만원이 상인 자)들의 세부담율은 최고 44%이었습니다. 그러나, 금융소득종합과세의 유보로 세부담 율이 24.2%로 통일되었습니다. 즉, 서민들은 8%정도의 세부담이 증가한 반면, 부유층은 약 20%의 세부담이 경감하였습니다.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부유층의 주머니를 채운 꼴입니다.

둘째, 변호사, 공인회계사, 세무사등 고소득전문직종에 대한 부가가치세 면세혜택을 폐지해야 합니다. 이문제에 대하여 세수확보효과가 적다거나 세부담이 소비자에게 전가된다거나 하는 반론이 제기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사회지도층이면서 돈많이 벌고 탈세하는 사람들의 대표 주자로 낙인찍힌 이들에 대한 과세를 강화하지 않고서는 '조세정의실현'의 명분이 서지 않을 것입니다.

세금을 좋아서 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정직하게 세금내는 사람이 바보가 되고 당연히 내어야 할 세금이 억울한 세금이 되는 사회분위기는 없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위 의 두가지가 실현되려면 국회를 통과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익집단의 로비에 큰 영향을 받 는 국회, 정쟁만 일삼는 무책임한 국회가 이 일을 해내리라 보는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결국, 대통령님께 기대를 거는 수 밖에 없습니다.

대통령님께 간절히 호소드립니다.

참여연대 조세팀 전문위원 공인회계사 윤종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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