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1999-02-11   1254

[제18호 쓴소리] 최종길교수를 기억하십니까?

작년 10월 17일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구내에서는 최종길교수 제25주기 추모식이 있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함세웅신부는 다음과 같은 요지의 추모사를 해서 장내를 숙연하게 만들었습니다.

"최종길 교수가 중앙정보부에 자진 출두하여 그 안에서 죽임을 당한지 25년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아직까지 그가 왜?, 어떻게 죽었는지 전혀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오늘 그를 추모하기까지만도 25년이나 걸렸습니다 사제인 저 자신부터, 우리가 그를 죽였으며, 권력이 두려워 그 진상조차 밝히지 못했노라고 고백하고 또 회개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그렇게 비겁하고 무능했던 것에 부끄러워하고 반성해야 합니다. 여기는 그 유명한 서울법대 교정입니다. 이 나라를 움직여왔고 또 움직이는 것이 서울법대 물신이라는 말을 우리는 듣습니다 그렇지만 최종길교수의 죽음을 놓고 서울법대 출신들이 한 것은 무엇인가 우리들의 선배이요 동료였던 최종길교수의 죽음의 진실조차 밝히지 못하고, 추모식 한 번 가지지 못했던 것을 저 자신은 물론, 서울 법대인들을 비롯하여 우리 모두 통회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물론 그 자리에 있던 저 자신부터 부끄러워 차마 얼굴을 들 수가 없었습니다. 구구절절 가슴에 와 닿는 말이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문민정부 시절 비록 잠깐이지만 공직에 몸담고 있으면서도 최종길교수 문제를 비롯, 험난했던 민주화의 도정에서 오늘을 보지 못하고 먼저 가신 분들을 위하여 아무 일도 한 것이 없습니다. 저는 이 점에 대하여 진심으로, 국민과 그리고 먼저 가신 분들의 유가족 앞에 사과 드리면서 이글을 씁니다. 최근 1973년 10월 19일, 당시 중앙정보부에서 의문의 죽음을 당한 서울법대 故 최종길교수에 대한 추모 분위기와 함께, 그 진실을 밝히자는 움직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비록 만시지탄은 있지만, 마땅하고 또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최종길교수의 죽음은 그 보다 조금 앞서 있었던 김대중납치 사건과 함께 유신독재의 시작을 알리는 시작을 알리는 상징적인 사건이었으며, 특히 그 이후 그렇게도 많이 나타났던 의문사의 효시가 되는 사건이었습니다. 유신독재는 최종길교수의 죽음을 묻고 그 무덤을 넘어 74년 1월의 긴급조치 1,4호로 시작되는 길고 험난했던 긴급조치시대를 거쳐, 마침내 79년 10월26일 유신정권이 붕괴되기까지 기승을 부리게 됩니다. 당시 중앙정보부의 발표는, 최종길교수가 간첩혐의를 자백하고, 양심의 가책을 못이겨 화장실 창문을 통해 투신자살했다고 간첩의 누명까지 씌었습니다. 독재권력이 정가의 보도처럼 휘두르던 바로 그 용공조작이 최종길교수의 죽음을 놓고서도 자행되었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의 진실과 함께 최종길교수의 명예도 반드시 회복되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73년 10월 2일에 서울대학교 문리과대학에서 시작된 반 유신 투쟁은 법대를 비롯하여 전 대학가로 순식간에 번져 나갔습니다. 이때 최종길교수는 스스로 학생들의 보호막이 되어주었고 당황한 권력이 반유신 투쟁의 불길을 잡기위하여 최종길 교수를 연행했으며 그 과정에서 최종길교수가 어이없이 희생된 것입니다. 그동안 최종길교수에 대한 추모행사나 사인에 대한 진상 조사 노력은 천주교 정의구현사제단이 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74년 12월 명동성당에서 추모미사를 올렸고 이 자리에서 사인에 대한 공개적인 의문을 제기하였던 것이지요. 88년에는 당시의 중앙정보부장, 담당수사관들 관계자 22명을 검찰에 고발했습니다. 그러나 검찰은 공소시효만기를 기회로 '타살했다는 증거도 자살했다는 증거도 찾지 못했다'면서 수사를 종결하였습니다.

가족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 누구가 처벌되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오직 그 진실만을 말해 줄 것을 애타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진실을 밝힐 수만 있다면 모든 것을 용서해 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그 가족들의 25년에 걸친 호소요 비원인 것입니다. 미국에 있는 최종길교수의 동생 최종선씨는 88년 내가 평화신문 편집국장으로 최종길교수의 죽음에 대한 특집을 통하여 정보부 발표에 정면으로 의문을 제기 할 때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바쳐 증언하였으며 지금도 최교수의 죽음과 관련된 증거와 자료를 많이 확보해 놓고 있습니다.

그는 최종길교수가 자진 출두할 때, 형을 정보부로 안내한 장본인입니다. 최종길교수의 죽음에 대해 누구보다도 더 진한 회한을 갖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나라의 민주주의를 위해 희생된 사람들의 진실이 밝혀지고 그 모든 분들의 명예가 회복되는 바로 그날을 누구보다 절절하게 또한 목메이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어두웠던 시절에 있었던 모든 의문사의 진실은 밝혀져야 합니다. 그러자면 어쩔 수없이 최종길교수의 죽음부터 밝혀져야 합니다. 그리고 김대중 납치사건 진상도 밝혀져야 합니다. 그것은 민주화의 과정에서 숨져간 사람들에 대한 남아있는 우리들의 최소한의 도리요 책무인 것입니다. 그 가족들의 한 맺힌 눈물을 닦아주기까지는 아직 민주화가 도래하였다고 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시작할 것인가?.

인권법의 개정이 논의되고 있습니다. 첫 단추가 잘 꿰어져야 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선 따로 논의 할 필요가 있지만 최종길교수의 가족들은 검찰이 조사하는 것에는 반대하고 있음도 덧붙입니다. 73년 사건 때에도 검찰이 개입했었고 88년 재조사 때에도 검찰이 진실보다는 자기 조직보호에 더 열심이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前 대통령 교문사회 수석비서관 김정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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