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여연대이야기 기타(od) 2001-07-26   1397

[제115호 쓴소리] 검찰의 직무유기가 레미콘 노동자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대통령님. 지금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는 보통의 상식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광경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한 변호사의 15일째를 맞는 단식농성이 그것입니다. 법의 수단으로 정의를 대변해야 할 변호사가 단식이라는 극한 수단을 자진하는 모습이 그리 상식적인 풍경은 아닙니다. 그러나, 보통의 상식으로 더욱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그가 이렇게 길거리로 나앉게된 배경입니다.

지난 1년여간 레미콘 운송노조의 설립 과정을 법률적으로 지원, 대변해 왔던 그는 법과 공권력에 더 이상 기댈 것이 없다는 절망 끝에 최후의 수단으로 자리를 깔고 나앉은 것입니다. 노동부가 인정한 합법적인 노동조합에 대해 사용자들은 부당해고와 대체근로, 각종의 폭력과 협박 회유 등을 통해 노동조합을 와해시키려 했습니다.

'노조활동 금지 가처분 신청'을 법원이 기각하고 합법노조임을 확인했음에도 사용자들은 "한국 레미콘 협동조합 연합회"라는 사용자단체의 지휘하에 교섭에 불응하며 각종의 부당노동행위를 지금 이 순간도 멈추지 않고 있습니다. 이미 120여건의 부당노동행위가 노동조합과 60여 시민·사회단체에 의해 검찰에 고소·고발 되었으며, 이중 50여건에 대해서는 노동부도 그 불법성을 인정하고, 장관이 구속수사를 검찰에 의뢰했습니다.

또한 불량레미콘 납품, 물량 빼돌리기, 불법 매립, 폐수의 무단방류 등의 건설비리와 환경파괴행위에 대한 명백한 범죄혐의와 증거들도 검찰에 제출되었습니다. 그러나, 검찰의 수사는 전혀 진전되지 않고 있습니다. 아직 '노조활동 금지 가처분'의 확정판결이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이 검찰이 부당노동행위에 대한 사용자의 구속, 처벌을 미루고 있는 표면적인 이유입니다.

레미콘 노동자를 '노동자'로 볼 수 없으며, 노조활동 또한 적법하지 않다는 나름의 법률적 견해도 작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치 하나로 입을 맞춘 듯 각급 검찰청이 한결같은 태도를 취하고 있으며, 국회와, 민주당, 청와대 비서실등을 통해 간접 확인된 바 또한 '검찰이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대통령님 그러나, 이 사안에 대한 법률적 판단은 이미 명확합니다. 2000년 10월 27일 노동부는 건설운송노조 측의 질의에 대해 "레미콘 노동자는 비록 도급 형식으로 계약을 체결하고 있다 하더라도 노동조합을 설립할 수 있는 근로자에 해당한다. 사용 종속관계가 인정되면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로 보아야 한다"고 유권해석을 내린 바 있습니다.

서울지방노동위원회는 2001년 3월 12일 부당노동행위 사건에 대해 "레미콘 기사 노동자는 근로기준법상의 근로자이며, 사측의 노조설립을 이유로 한 해고는 부당한 해고이므로 즉시 원직복직 시키라"고 판정한 바 있습니다. 인천지방법원은 2001년 4월 19일 노조활동 금지 가처분 사건 판결을 통해 "레미콘 운송기사들이 담당하는 레미콘 운반업무는 회사측 사업에 필수적이고, 운송기사들이 사측에 종속된 상태에서 근로를 제공하고 있는 만큼 노동조합법상 근로자에 해당한다"고 판시 했습니다.

이렇듯 각급 행정기관과 법원이 이미 레미콘 노동자와 노동조합의 합법성에 대해 이미 명확한 행정적, 법률적 판단을 내린바 있습니다. 그렇다면, 검찰은 이 같은 판단을 송두리째 부정하는 것인지 저는 묻고 싶습니다. 지금 검찰이 요구받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를 저지른 레미콘 사업주들을 구속·수사하라는 것이지, 레미콘 노조의 적법성을 판단해 달라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법원의 몫이며, 법원의 판결이 이미 이를 인정한 바 있습니다.

그런데도 마치 상급법원의 확정판결이 나오기 전까지는 사업주를 구속·수사할 수 없는 듯한 태도를 취하는 것은 검찰의 일반적인 법 적용과 수사관행에 비추어 전혀 납득할 수 없는 일이며, 직무유기를 합리화하기 위한 명분에 불과하다는 것이 저의 견해입니다. 그러나, 이와는 너무도 상반되게 노조원들의 정당한 파업과 권리행사는 공권력의 철퇴를 맞았습니다.

사용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여의도 항의농성에 대하여 검찰과 경찰은 도끼와 해머를 휘두르는, 5공화국 시절에도 없었던 방법을 동원하여 100여대의 차량을 파손하고 3명을 구속, 80여명을 사법처리 하는 신속함을 보였습니다. 벼랑 끝에 내몰린 레미콘 노동자들은 노예적 "도급계약"을 받아들이느냐 아니면, 이대로 죽느냐의 선택밖에 남지 않았습니다. 과연 이를 두고 대한민국이 '법 앞의 평등'이 실현되는 법치국가라 할 수 있겠습니까. 아니면, 상식이 통하는 사회라고 할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님. 세간에는 이 사안이 이토록 해결되지 않고 형평성이 무너지는 것과 관련하여 몇 가지 불미스러운 추측이 떠돌고 있습니다. 레미콘 협회 유재필 회장이 동교동계의 핵심실세와 연관이 있다는 설이 나돌고 있습니다. 검찰의 최고위층과 동향이라는 점에 대한 강한 의혹도 떠돌고 있습니다. 비록 확인되지 않은 설들이지만 이해할 수 없는 검찰의 방관과 직무유기가 갈수록 이런 추측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습니다.

저희 시민단체는 이번 사건이 일반적인 노사갈등이나 개별노동조합의 문제로 국한되지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각급 노동위원회와 노동부가 이미 노조의 합법성을 인정하고 부당노동행위 중지를 권고했습니다. 법원 또한 노동조합활동의 합법성을 확인했습니다. 노동부 장관이 레미콘 사용자 대표인 유재필 회장의 구속수사를 품신했습니다.

60여 참여연대와 경실련, 환경연합등 대표적인 시민·사회단체가 사용자에 대한 수사 및 처벌을 거듭 촉구했습니다. 이런 점에서 이 사건은 노동기본권의 문제이자 민주주의와 정의의 문제입니다. 정부의 노동정책과 인권정책 나아가 개혁의 바로미터가 될 수 있는 사안이라고 저는 감히 단정합니다. 과연 레미콘 사업주의 명백한 범죄행위를 비호하는 것이 국민의 정부에 대한 한 가닥 믿음마저 접게 할만큼 가치 있는 것인지 저는 냉정히 묻고 싶습니다.

대통령님. 지금 사회에는 국민의 정부의 개혁에 대해 많은 비판적 견해가 제기되고 있습니다. 개혁의 본질과 방향 주체가 이미 크게 훼손되고 있다는 저희의 인식입니다. 그러나, 개혁이 끝난 것도, 또한 중단되어서는 안됩니다. 오히려 더욱 강도 높은 개혁만이 왕도이며, 보수·수구세력의 교묘한 저항을 제압하고 흩어진 민심을 모을 수 있는 첩경이라 생각합니다.

이 사건의 공정한 해결이 법과 상식 나아가 정부에 대한 신뢰회복의 출발점이 될 수 있기를 기대합니다.

참여연대 시민권리국장 박원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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