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평 586] 오징어 게임의 흥행이 불편한 이유

오징어 게임의 흥행이 불편한 이유

K-컨텐츠, 한국을 닮지 않기를

 

한상원 충북대학교 교수

 

전 세계 청년들이 달고나 만들기 챌린지를 하는 영상들을 보면서 필자는 어린 시절 집안에서 달고나를 만드느라 집안의 국자와 숟가락을 태워먹었던 기억이 떠올라 흐뭇했다. <오징어 게임>이 전 세계 넷플릭스 시청자들을 사로잡고, BTS는 콜드플레이와의 콜라보를 통해 또 한번 빌보드 차트 1위를 차지했다. 거기에 옥스퍼드 영어사전에 한복, 먹방, 애교, 치맥, 대박, 파이팅, 한류 등 26개 한국어 단어가 수록되었다니, 가히 한류의 시대, K-컨텐츠의 시대라 할만하다.

 

몇 해 전만 해도 ‘두유 노 김치?’ ‘두유 노 싸이?’ 등의 이른바 ‘두유 노’ 시리즈가 일종의 K-국뽕에 대한 조롱섞인 유머로 통용되었던 것을 많은 이들이 기억할 것이다. 그런데 지금은 그러한 농담이 무색해질 만큼 한국의 여러 컨텐츠들이 전 세계인들을 사로잡고 있다. 미국에서는 올 해 할로윈 파티를 대비해 <오징어 게임> 참가자들이 입었던 츄리닝 복장이나 병사들의 복장과 가면을 사려는 네티즌들이 늘어나고 있고, 파리에서는 이 드라마의 컨셉으로 만들어진 체험관을 들어가기 위해 시민들이 2시간 동안 줄을 서는 일도 있었다. 틱톡이나 유튜브 등 소셜 미디어에는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놀이를 하는 외국인들의 영상들이 쏟아져 올라오고 있다.

 

많은 이들이 한국의 문화 컨텐츠를 소비할 뿐만 아니라 이를 따라하는 이 진풍경은 무척 놀랍다. 그리고 역시 한국인인 필자도 이러한 광경이 흥미롭고 재미있게 느껴진다. 그러나 전 세계의 청년들이 한국의 문화 컨텐츠들을 따라하는 이 현상이 마냥 달갑게만 느껴지지는 않는다.

 

독일 유학시절 필자는 1년에 한 번 정도 한국에 들어오곤 했는데, 그 때마다 가장 놀랬던 것이 한국인들의 화장과 패션에 대한 감각이었다. 유럽인들, 특히 독일인들은 진한 화장을 거의 하지 않는다. 쌩얼을 부끄러워하지도 않고 특별히 화장을 해야 한다는 강한 압력을 느끼지도 않는다. 외모를 꾸며야 한다는 압박이 적은 것이다. 그리고 이 때문에 독일로 유학이나 여행을 온 한국 여성들이 화장의 압박감으로부터 벗어나 자유롭게 거리를 활보할 수 있어 좋다는 게시물을 소셜 미디어에 자주 올리기도 한다. 그런데 최근 독일 청소년들 사이에도 K-뷰티에 대한 유행이 퍼지고 있다. ‘한국인들처럼 화장하기’가 일종의 놀이가 된 것이다.

 

물론 화장을 할지, 어떻게 본인의 외모를 꾸밀지 하는 것은 전적으로 개인의 선택에 따른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 사회는 어떠한가? 서울 강남지역 지하철 입구를 도배한 성형외과 광고들은 ‘비포(Before)’와 ‘애프터(After)’를 전시하며, 자신이 타고난 본래의 얼굴(‘비포’)을 부끄러운 것, 수술을 통해서라도 고쳐야 할 비정상적인 것인 양 생각하게 만든다. 대중매체에는 어느 연예인이 ‘동안’이라거나 화장 비법, 다이어트 비법이 무엇인지를 소개하는 내용들이 넘쳐난다. 그러나보니 네티즌들은 타인의 외모에 대한 ‘얼평’을 댓글로 공공연하게 달고, 남학생들이 단톡방에서 같은 학과 여성들의 몸매를 품평하며 성희롱을 하는 문화도 널리 퍼져 있다. K-뷰티를 따라하는 외국 젊은이들이 이와 같은 한국 사회의 외모지상주의와 성 상품화 문화만큼은 닮지 않았으면 좋겠다.

 

2020년 전 세계 모바일 게임 1위를 차지한 <배틀 그라운드>는 어떠한가? 이 게임을 시작하면 낙하산을 타고 착지한 유저는 이곳저곳을 수색하여 닥치는 대로 무기를 모으고, 타인을 발견하는 즉시 사살해야 한다. 최후의 1인이 된 유저만이 ‘치킨’을 먹으며 승리를 자축한다. 한국에서 개발된 이 게임은 타인과의 유대감을 상실하고 끝없는 무한경쟁을 반복해야 하는 한국 사회의 논리의 축소판이다.

 

상대가 누구인지, 왜 죽여야 하는지는 중요하지 않다. 그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는다. 상대를 죽이면 그가 가지고 있는 모든 아이템을 획득한다. 오늘날 연대가 상실된 채 ‘공정’이라는 이름으로 시험점수에 따른 차별을 정당화하며, 그리하여 정규직 노동자들이 노동조합의 이름으로 비정규직의 직접고용에 반대하는 이러한 풍경들 역시 한국 사회의 자화상이다. 자신보다 약한 지위에 있는 사람에게 행하는 ‘갑질’도 이러한 연대 없는 사회의 풍경이다. <배틀 그라운드>를 즐기는 전 세계의 게임 유저들이 이러한 무한경쟁의 슬픈 풍경들만큼은 배우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한 슬픈 풍경들은 2019년 칸느 영화제 황금종려상을 수상하고 2020년 제92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4관왕을 차지한 <기생충>이 보여주는 한국 사회의 불평등한 현실들과 닿아 있다. 노래 ‘강남스타일’ 유행 이후 많은 외국 관광객들이 코엑스 건물 앞에 있는 강남스타일 조형물을 구경하러 방문하고 있다. 그러나 ‘강남’이라는 기표는 한국의 지독한 빈부격차를 상징하기도 한다. ‘강남’의 땅값이 하늘로 치솟는 동안 집 없는 서민들의 삶은 더욱 궁지로 내몰리고 있다. 한국의 높은 자살률은 이러한 불평등 속에서 설명될 수 있다. 통계청의 2020년 사망원인 통계 발표를 보면, 작년 한 해 무려 1만3천195명의 자살 사망자가 나왔다. 하루에 36.1명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셈이다. 한국의 인구 10만 명당 자살자 수는 25.7명으로 OECD 국가 중 압도적인 1위를 차지하고 있다.

 

K-드라마와 영화를 즐겨 감상하고, K-팝을 즐겨 들으며, 달고나와 무궁화 꽃이 피었습니다 챌린지를 진행하는 해맑은 표정의 전 세계 청년들을 지켜보는 것은 즐거운 일이다. 그러나 나는 그들이 좋아하는 가수의 춤을 따라하고, 좋아하는 영화 대사를 따라하고, K-컨텐츠의 놀이들을 따라하더라도, 한국 사회가 가진 여러 부정적인 요소들만큼은 배우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언젠가 그러한 사회적 모순들을 극복해나가는 역동적 시민사회의 요소들이 새로운 K-컨텐츠가 되길 희망한다.

 

참여사회연구소는 2011년 10월 13일부터 ‘시민정치시평’이란 제목으로 <프레시안> 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습니다. 참여사회연구소는 1996년 “시민사회 현장이 우리의 연구실입니다”라는 기치를 내걸고 출범한 참여연대 부설 연구소입니다. 지난 19년 동안 참여민주사회의 비전과 모델, 전략을 진지하게 모색해 온 참여사회연구소는 한국 사회의 현안과 쟁점을 다룬 칼럼을 통해 보다 많은 시민들과 만나고자 합니다. 참여사회연구소의 시민정치는 우리가 속한 공동체에 주체적으로 참여하고, 책임지는 정치를 말합니다. 시민정치가 이루어지는 곳은 우리 삶의 결이 담긴 모든 곳이며, 공동체의 운명에 관한 진지한 숙의와 실천이 이루어지는 모든 곳입니다. ‘시민정치시평’은 그 모든 곳에서 울려 퍼지는 혹은 솟아 움트는 목소리를 담아 소통하고 공론을 하는 마당이 될 것입니다. 많은 독자들의 성원을 기대합니다. 같은 내용이 프레시안에도 게시됩니다. 목록 바로가기(클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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