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민과학센터(종료) 미분류 1999-02-15   1031

[04호] 수돗물 불소화의 짧은 역사*

만약 과학이 문화적 의미에 종속된 것이라고 한다면, 수돗물 불소화의 사례는 이런 류의 현상에서 대부 격의 지위를 점할 터이다. 불소화 논쟁을 과학과 가치들에 대한 이해와 몰이해에 관한 문제로 본다면, 이는 식수를 공급하는 공공체계에 불소를 첨가하는 정책을 옹호했던 공중보건 공무원들의 문화적·정치적 순진함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이 공무원들은 놀라울 정도로 단순한 주장을 내놓았다: 불소화는 당신에게 좋은 것인데, 왜냐하면 역학(疫學), 치과학, 생화학에서 그렇게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우에 공무원들은 그 견해를 공표하고 이를 제도화하는 일만 맡아 하면 된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은 잘해 봐야 불소화의 과학적 근거에 대해 거의 아무것도 모르는 시민들보다 우위에 서서 생색을 내는 것에 지나지 않았다. 그리고 최악의 경우에는 엄청나게 두려운 것으로 시민들에게 다가갈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이는 익명의 관료들이 우리로 하여금 우리가 거의 알고 있지 못한 화학 물질을 섭취하도록 요구하는 것을 의미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불소화에 대한 반대 주장이 제기되었는데, 이에 따르면 불소화는 얼굴 없는 관료들이 당신의 영혼을 앗아가려 드는 사악한 계획이 되었다. 만약 그렇다면, 불소화 계획에 반대하는 모든 행동―그 계획의 과학적 전제들에 반대하는 것까지 포함해서―은 실존주의적 가치를 담은 용감한 행동이 될 것이었다. 적어도 1950년에서 1966년까지 불소화 논쟁의 최초 15년 동안에는, 이 계획의 가부를 놓고 시행되었던 952건의 주민 투표에서 불소화에 반대하는 주장이 59.4%로 우위를 점하고 있었다.1

과학과 의미가 뒤섞인 이러한 경우를 이해하기 위해, 나는 먼저 불소화 논쟁의 간략한 역사를 제시하겠다. 그리고 나서 나는 반(反)불소화 정서를 고무한 1950년대 미국인의 일상 생활의 주요한 문화적 테마들을 밝힐 것이다. 이어 나는 과학이 그 자신에 대해서만 봉사한다는 불소화 찬성론자들의 믿음과는 달리, 과학에 대한 특정한 상징들이 불소화 반대론자들에게 반대의 근거를 제공해 주었음을 보여줄 것이다.

* * *

콜로라도 주에 거주하는 치과의사였던 프레드릭 맥케이 박사는 1901년에 그를 찾아오는 환자들 중 많은 수가 치아반점(mottling) 증상을 나타내는 것에 주목하게 되었다. 이 증상은 전체적으로 하얗게 반짝여야 할 치아에 조그맣게 흐릿한 흰색 반점들이 나타나는, 소소한 미용상의 문제였다. 치아반점은 지역에 따라 나타나는 현상으로 밝혀졌는데, 치아가 눈에 띄게 변색된 경우를 가리키기 위해 일상적으로 흔히 쓰이던 “텍사스 치아”니 “콜로라도의 갈색 치아”와 같은 이름들은 치아반점 증상이 심해진 경우를 지칭하는 것이었다. 1916년에 맥케이는 몇몇 지역의 식수에서 자연 상태로 발견되는 불소화합물(아래에서는 편의상 그냥 ‘불소’라고 쓰고, 순수한 불소를 지칭하는 경우에는 따로 ‘불소 원소’라고 쓰겠다 ― 역주)이 치아반점의 원인이라는 사실을 밝혀냈다. 식수에 불소가 많이 들어 있을수록 치아반점은 더욱 심해졌다. 이에 따라 심한 치아반점 증상은 불소증(fluorosis)이라고 불리게 되었다.2

맥케이와 다른 이들은 이와 함께 치아반점이 심하지 않은 정도로 나타나는 경우와 좋은 치아 건강―즉 충치가 적고 튼튼한 치아―이 서로 연관되어 있음을 알게 되었다. 1931년에 역학자들은 좋은 치아 건강을 가져오는 치아반점 역시 자연적으로 존재하는 불소에 그 원인을 두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던 사례연구는 자연 상태의 식수에서 2.5ppm 농도의 불소가 발견되었던 일리노이 주 미농크를 대상으로 수행된 것이었다. 그곳에서 쭉 성장한 아이들은 다른 곳에서 치아 성장이 완료된 이후에 그곳으로 이주했던 아이들보다 충치가 적었다. 미 공공보건국(U.S. Public Health Service, USPHS)은 다섯 개 주의 13개 지역을 추가로 연구하여 불소가 많을수록 충치가 적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 결과는 12개의 다른 국가들에서도 입증되었다.3

미 공공보건국은 어떤 지역의 식수를 1.0ppm으로 인위적으로 불소화시킨다면 이는 치아반점이나 어떤 다른 부작용 없이 아이들의 치아 건강을 획기적으로 향상시킬 것이라는 가설을 시험하기 위해 1945년부터 네 개의 사례 대조연구(case-control study)를 시작했다 (치아반점 증상이 나타나는 문턱값은 약 2.5ppm 정도였다).4 뉴욕, 미시건, 일리노이, 온타리오 주에서 각각 하나씩의 지역이 인위적인 불소화를 받았고, 대조 표준으로 선정된 유사한 크기의 지역들은 자연적·인위적인 것을 막론하고 불소화를 받지 않았다. 이 연구는 10년 동안에 걸쳐 수행하도록 예정되어 있었으나, USPHS는 사례연구 지역에서 5년 동안 아이들의 충치 발생이 50% 이상 감소했다는 것을 발견하고는 인위적 불소화가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고 결론을 지었다. 1950년에 USPHS는 자연적으로 불소가 존재하지 않는 지역에서는 공공 수도 공급에 1.0ppm의 불소를 첨가하도록 권고안을 내놓았다. 미국치과의사협회(American Dental Association), 미국의사협회(American Medical Association), 미국공공보건치과의사협회(American Association of Public Health Dentists), 국립연구회의(National Research Council, NRC) 등의 조직들이 이 정책을 지지했다.5

불소는 정제(tablet)나 식품첨가물을 통해서도 섭취될 수 있었지만 이런 방법들은 훈련이나 편의, 비용, 그 외의 다른 행위변수들에 의존하는 것이었기 때문에 대단히 불완전했다. 반면에 한 지역의 식수를 불소화하는 것은 엄청나게 간단하고 비용이 적게 드는 방법으로 행위습관의 차이와 무관하게 거의 모든 이들에게 도달할 수 있었다.6

수천에 달하는 지역들이 PHS의 권고를 받아들여 물에 불소를 첨가했다. 그러나 많은 경우에 있어 이 정책의 실행에 맞서 격렬한 반발이 나타났다. 전형적인 유형은 공공보건을 담당한 부서가 USPHS의 권고안에 근거하여 마을이나 도시의 지역의회에 불소화를 권고하고 다른 공공기관들이 이를 지지하는 것이었다. 불소화에 관한 결정이 내려질 때에는 이에 대한 대중적 관심이 거의 없거나 아예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지만, 정책이 실행되는 시점, 즉 수돗물이 실제로 영향을 받게 될 때쯤에 이르러 성난 반(反)불소화 운동이 일어났다. 불소화 반대론자들이 공통적으로 사용했던 가장 흔한 전략은 불소화의 실행에 대해 가부를 결정하는 주민 투표를 요구하는 것이었다. 1950년에서 1966년 사이에 모두 952건의 주민 투표가 시행되었는데, 그 중 566건에서 불소화 반대론자들이 승리를 거두었다.7

주민 투표의 유용한 측면들 중 하나는 그것이 정서를 정량화시켜 표현한다는 점인데, 이는 곧 주민 투표의 결과와 다른 데이터와의 상관관계를 따져볼 수 있음을 의미한다. 이익집단 정치(interest politics)의 면에서 보면, 불소화에 가장 호의적인 투표자들은 불소화로부터 가장 많은 혜택을 입을 12세 미만의 아이들이 있는 젊은 부모들이었던 반면, 반대자들은 좀더 나이가 많은 사람들로 아이가 없거나 이미 다 커버린 경우여서 혜택을 가장 적게 받게 되는 이들이었다. 사회-경제적인 면에서는 불소화 옹호자들이 일반적으로 반대자들보다 높은 수준의 교육을 받았고 수입도 더 많았다. 전자가 많은 경우 전문직업 종사자이거나 관리자였던 반면, 후자는 노동계급이거나 중간계급 하층의 직업 종사자인 경향이 있었다. 마지막으로 불소화 옹호자들은 자신들이 정치적인 문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확신을 갖고 있었던 반면, 불소화 반대에 투표한 이들은 이 점에 있어서 의지할 곳이 없거나 무기력함을 느끼는 경향이 있었다. 이 마지막 측면이 가장 중요한데, 그 이유는 우리가 불소화 주민 투표를 둘러싼 문화적 환경을 고려하면서 드러날 것이다.8

주민 투표의 결과는 불소화 논쟁을 연구했던 사회과학자들을 괴롭힌 문제였다. 예컨대 버나드 모스너와 주디스 모스너는 불소화에 반대하는 관점에 “반과학적 태도”라는 딱지를 붙였다.9 인터뷰와 센서스 자료, 그 외의 다른 정보들에 근거해서 일군의 연구자들은 주민 투표의 결과를 다음 세 개의 쟁점을 포함하는 모형을 통해 해석하려 시도했다: (1) 유효성 (즉, 불소화는 그 옹호자들이 주장하는 것을 진정으로 성취할 수 있는가?); (2) 안전성 (부작용에는 어떤 것이 있으며, 그것은 얼마나 위험한가?); (3) 개인의 권리 (불소화는 개인의 사생활에 정부가 침범해 들어오는 것을 의미하는가?).

첫번째 쟁점은 가장 덜 문제가 되었다. 20세기 초부터 수행된 역학 연구들은 충분한 설득력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에 불소화 반대론자들이 그것에 직접 도전하는 일은 드물었다. 그 대신, 반대자들은 불소가 효과가 있다는 점을 암묵적으로 시인하면서, 그럼에도 치아 건강은 광범한 조치를 정당화하기에 충분할 정도로 중요한 것은 아니라고 주장했다. 왜냐하면 충치는 전염성을 가진 것도 아니고 치명적인 질병도 아니었기 때문이었다.10

두번째 쟁점은 좀더 복잡했다. 반대자들은 불소가 심각한 독성 부작용, 예컨대 두통, 피로, 졸도, 관절 통증 등을 수반한다고 말했다. 그들은 그러한 사건을 다룬 널리 알려진 보고서들을 인용했고 불소화된 물에서 죽어가는 금붕어를 가리켰다. 이에 더해 반대자들은 불화나트륨이 쥐약으로 쓰이며 불소 원소가 신경 개스의 성분이라는 점을 대중들에게 환기시켰다. 불소화 찬성론자들은 수돗물에 첨가되는 두 종류의 불소화합물(불화칼슘, 불화나트륨알루미늄)이 그러한 두 가지 독극물과는 매우 다르다고 답했다.11 불소화 찬성론자들은 아주 많은 양을 투여한다면 거의 모든 물질이 독성을 지니게 될 것이라고 지적하면서 불소와 같은 물질도 적은 양을 투여한다면 전적으로 안전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12 불소화 찬성론자들은 1.0ppm의 농도에서 불소의 독성이 발현되는 문턱값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욕조 50개에 가득 받은 물을 한번에 써야만 한다고 설명했다.13 만약 그렇다면, 이런 문턱값에 도달하는 것은 불가능할 것이다. 불소가 어떤 독성을 미치기도 전에 위나 신장이 터져 버릴 테니 말이다. 뿐만 아니라. 해산물은 보통 5.0에서 15.0ppm 정도의 불소를 함유하고 있고 차 잎사귀는 75.0에서 100.0ppm을 함유하고 있다. 불소는 식물에서 동물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이 섭취하는 모든 음식에 존재하는 것이다.14 그러나 이 모든 사실에도 불구하고, 공공 보건 기관들은 어느 누구도 부작용에 의한 피해를 입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100%의 확실성을 지니고 할 수는 없었다.

세 개의 쟁점들 중 마지막 쟁점은 특히 다루기 힘든 것이었다. 공공 보건 공무원들은 자신들이 아이들의 치아 건강을 향상시킬 책임이 있다고 믿었으며, 만일 불소화가 효과적이고 안전하며 저렴한 방법이라면 더욱 그렇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반대편에서는, 누군가의 식수를 불소화한다는 것은 곧 익명의 관료정치가 “치과의사를 필요로 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모두의 목구멍에 무차별적으로 화학물질을 부어 넣음”으로써 우리의 삶의 가장 사적인 부분, 즉 우리의 몸을 침범하는 것에 해당한다고 강하게 느꼈다.15

이 쟁점을 가장 풍부하게 탐구한 것은 아놀드 그린의 논문 “반불소화 지도자들의 이데올로기”였는데, 여기서 저자는 이 이데올로기가 다양한 형태의 소외, 사회적 두려움, 그리고 여러 가지 불안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주장했다. 불소화 논쟁은 다른 우려들―예컨대 현대세계가 “동질적인 대중 속에서 개인의 정체성을 질식시켜 버릴 것”이라는 우려와 같은―을 대신한 “일종의 대리 논쟁”이라는 것이 그의 주장이었다.16

일련의 경험적 연구보고서들이 이러한 세 가지 쟁점 모형을 받아들였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보고서들은 다소간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다음과 같은 내용을 암시하고 있었다: 즉, 불소화는 효과적이고(첫번째 쟁점의 해결) 안전하다(두번째 쟁점의 해결). 이런 경우에 주요한 문제는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과학에 의해 안전성과 효율성이 입증된 것을 받아들이지 못하는지를 설명하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보고서들이 제시하는 답은 세번째 쟁점에 있었다: 만약 어떤 시민이 비인간화 현상에 대해 우려를 하고 있다면, 이는 그가 처음 두 개의 쟁점들의 과학적 기반에 대해 합리적으로 생각하는 것을 방해한다는 것이었다.17 여기서 익명의 힘들에 굴복하여 자신의 정체성을 상실할지도 모른다는 식의 실존적 문제는 순수한 과학적 문제에 정당하게 연결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다. 그 대신에, 세 가지 쟁점 모형은 세번째 쟁점, 즉 문화적 의미의 문제가 불소화를 과학적으로 검토하는 과정에 불손하고 잘못된 방식으로 침입해 들어왔다고 간주하였다.

모스너 부처가 지적한 바와 같이, 투표자들은 불소화가 우리의 개인적 자유를 앗아갔다는 주장을 받아들이기 쉬웠는데, 그 이유는 이 주장이 어떤 공유된 문화적 가치들에 뿌리를 두고 있기 때문이었다.18 그 결과, 불소화에 대한 반대는 불소화 문제가 일간지의 헤드라인을 장식하던 1950년대의 황금기를 지나서도 계속 지속되었다. 반불소화 정서는 전국보건연합(National Health Federation)로 불리는 조직의 형태로 제도화되었다.19 이 조직과 그 외 유사한 원천으로부터, 불소화가 암, 다운증후군, 심장혈관 질환, 심지어 에이즈를 유발한다는 공격이 나왔다.20 이에 답해 소비자연맹(Consumers Union)은 1978년에 반박과 폭로를 담은 두 개의 글을 발표했는데, 여기서 그들은 전국보건연합이 존 버치 협회(John Birch Society)와 같은 우익 극단주의자들과 연결되어 있다고 비난하는 한편, 전국보건연합이 “대중을 오도하는 여섯 가지 방법”을 사용하여 과학적 증거들을 체계적으로 왜곡하고 있다고 공격했다.21

그러나 소비자연맹의 비판은 불소화 반대 움직임을 제거하는 결과를 거의 가져오지 못했다. 그 이유는 1988년에 출판된 세 편의 학술 논문들이 불소화 정책에 대한 도전을 강력하게 부활시켰기 때문이었다. 가장 영향력 있었던 것은 {화학 및 공학 뉴스}에 실렸던 베티 하일먼의 리뷰였는데, 이것은 불소가 가져올 수 있는 독성 효과들에 관한 다양한 우려, 주장, 경고들을 한데 모은 것이었다. 예컨대 치아불소증 유발 가능성에 관한 오래된 주장은 거기 수많은 데이터가 덧붙여지면서 암 유발 가능성에 대한 새로운 주장과 결합되어 읽기에 더욱 으스스한 것이 되었다. 하일먼이 불소화 옹호자들은 불소의 독성에 관한 결정적인 정보들을 줄곧 억압해 왔다고 공격했을 때, 이 주장은 대단히 불길한 어떤 것으로 보였다.22 이 글의 독자들이 이런 모든 주장을 받아들이지는 않았더라도, 최소한 발암가능성과 같은 문제들에 대해서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하일먼의 주장에는 손쉽게 동의를 표명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것이 담고 있는 모든 긴박함과 열정에도 불구하고, 이 논문의 핵심에는 불소화에 관해 뭔가가 빠져 있었다. 하일먼은 불소화의 실행에 대해 공세적으로 회의적인 시각을 가지고 많은 가설들을 매우 효과적으로 이용해 불소화의 근거를 공격했다. 그러나 그녀는 결코 불소화가 확실히 유해하다거나 아마도 유해할 것이라는 식으로 공격하지 않았다. 대신 그녀의 스타일은 그 동안 반대가 끊임없이 제기되어 왔고 논쟁이 종결된 것이 아니며 그러한 반대들에 답하기 위해 더 많은 연구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말을 계속 반복하는 식이었다. 그녀는 대단히 심각한 많은 문제들을 제기했으나 그 중 어느 하나도 해명하지 않았다. 경험적 쟁점들에 관해 단호한 입장을 취하는 대신에 그녀는 불확실성과 의심의 불길한 분위기를 창출함으로써 불소화에 대한 지지를 전복시키려 하였다.

1988년의 세 편의 논문들 중 두번째 것은 특정한 하나의 문제만을 다루고 있었다. 그것은 불소화된 수돗물이 다른 불소 함유 원천과 결합되어 섭취하는 불소의 총량이 독성을 나타내는 수준에 도달할 수 있다는, 가상적인 불소 “임계량”의 문제였다. 글의 필자인 조프리 스미스는 먹는 물 속에 들어 있는 불소가 충치를 줄이는 데 매우 효과적이라는 점에 쉽게 동의했다. 그러나 그는 치약, 구강세정제, 식품첨가물 등은 말할 것도 없고 산업폐기물이나 살충제 등으로부터 상당량의 추가적 불소 섭취가 가능하기 때문에 이 모든 원천을 합치면 독성이 나타나는 문턱값 이상으로 올라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예컨대 수돗물이 불소화되어 있지 않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도 종종 불소화의 영향(충치의 감소)을 나타내 보이는데, 이는 추측컨대 불소를 함유한 다른 많은 원천들 때문일 것이라고 지적했다. “만약 불소화되지 않은 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충분한’ 불소를 섭취하고 있다고 한다면, 불소화된 지역에 사는 사람들 중 일부는 너무 많이 섭취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이라고 스미스는 물음을 던졌다.23

어떤 의미에서 이 논문은 타협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다. 왜냐하면 이 논문은 불소화론자들의 중심되는 전제, 즉 불소화가 효과적이라는 점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스미스 역시 불소화를 옹호하는 주장을 전복시키려 했다는 점에서는 공통적인데, 이를 위해 그는 불소가 이미 독성 수위에 도달했다고 잘라서 주장하기보다는 이미 그렇게 되었을 수도 있다거나 가까운 미래에 그렇게 될지도 모른다고 강하게 시사하였다. 불소는 한때 몸에 좋은 것이었을지 모르지만, 지금에 와서는 그것이 지나쳐서 그렇지 않다―혹은 않을 수 있다―는 것이다. 스미스는 아직 관련 사항들이 “완전히 이해되지 못했으며” “어떤 확실성을 가지고 알려지지 않았고” “앞으로 해명되어야만 한다”는 얘기를 되풀이했다. 증거들은 “상호모순적이고 불확정적”이었으며, “추가적인 연구가 . . . 필요”하고, “새로운 증거들이 나타날 수 있다.”24 그의 전반적인 전략은 하일먼의 그것과 동일했다. 수돗물 불소화의 실행에 효과적으로 도전하기 위해 그는 그 자신의 주장을 단정적으로 내놓을 필요가 없었고 단지 불확실성에 관한 불안심리를 일으키기만 하면 되었다.

1988년의 논문들 중 세번째의 저자인 브라이언 마틴은 불소화 논쟁이 권력과 통제를 위한 투쟁이라고 진단했다. 마틴은 경험적 증거나 과학적 권위에 호소해 불소화를 옹호하거나 비판했던 이전의 주장들로부터 급격하게 단절하여 과학적 증거의 문제를 제쳐 두면서, 그 대신 특정한 자원(전문 학회나 과학 저널들)과 그 자원에 수반하는 권력을 장악하기 위한 냉혹한(amoral) 투쟁으로 불소화 논쟁을 바라보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관점에서는 역학자들, 치과의사들, 그리고 생화학자들이 불소화의 과학적 가치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는 이유 때문에 불소화를 지지한 것으로 보았다. 오히려 “과학자들의 주장은 . . . 하나의 사회적 투쟁 속에서 그들이 그 투쟁을 넘어선 것처럼 보였을 때 유리한 위치를 점하게 된다는 점을 깨닫고 취한 책략으로 이해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25 전문 학회들이 불소화를 단체 차원에서 지지한 사실에 있어서도 과학적 판단은 별반 상관이 없는 것이었다: “불소화 논쟁에서 심대한 비대칭성이 나타난 원인은 치과의사와 의사라는 전문직업이 정치적 자원의 통제와 보다 밀접한 연관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26

마틴이 특히 기여한 점은 반불소화 정서의 편에서 완전히 새로운 지적 전선을 열어 주었다는 것이다. 그는 상대적으로 새로운 지적 흐름인 과학지식사회학에 의존하고 있었는데, 여기서는 과학지식을 사회적 협상을 통해 생겨난 가치의존적 실체로 정의하고 있다. 이 정의가 시사하고 있는 바는, 과학지식의 경험적 기반이 그동안 과대평가되어 왔다는 것, 그리고 과학은 자연에 대한 진리를 추구하는 불편부당한 활동이라기보다는 권력을 손에 쥐기 위한 사회적 투쟁에 더 가깝다는 것, 이 두 가지였다. 마틴은 1989년에 발표한 사회학 논문에서 이런 접근을 보다 정교화시켰다.27 그는 불소화 논쟁을 다룬 1991년의 저서에서 같은 관점을 보다 분명하게 표현하고 있는데, 여기서 그는 “권력은 과학적 실행의 모든 측면에 관련되어 있으며, 이는 과학자들이 무엇이 유효한 지식인지에 관한 판단을 내리는 일상적인 과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라고 주장하면서 동시에 “불소화 논쟁에서 과학적 측면과 권력의 측면을 서로 분리시키는 것은 불가능하다”라고 단언했다.28

마틴의 접근은 표면적으로 볼 때 거대한 동어반복에 가깝다: 즉, 논쟁에서 한쪽 편이 그 논쟁을 통제하려고 드는 이유는 바로 그 논쟁이 통제에 관한 것이기 때문이라는 식이다. 이러한 특징 때문에 마틴의 주장은 논쟁의 양쪽 편을 똑같이 헐뜯는 것처럼 보일지도 모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마틴이 종종 불소화 반대론자들에 대해 비판적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자신과 같은 상대주의적 입장이 불소화 옹호자들에게 보다 신랄하게 다가갈 것이라고 언급했다.29 왜냐하면 불소화 옹호자들은 자신들의 주장이 지니는 강한 설득력이 불소화의 유효성과 안전성에 관한 경험적 증거에서 나온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렇다면, 경험적 과학지식의 기반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을 취하는 사회학의 흐름은 불소화 옹호자들의 근거를 박탈하여 이를 논쟁의 양편 모두가 권력과 통제를 향한 정치적 투쟁에서 도덕적으로 동등하다는 관점으로 바꾸어 놓을 것이다.

그리고 마틴은 1988년, 1989년의 논문과 1991년의 책에서, 불소화 지지자들은 과학적·윤리적 쟁점들에 대해 주의를 기울여 조사해 본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30 불소화를 지지한 단체들의 판단은 사실 면에서 보더라도 의심스럽다고 그는 암시했다.31 논문과 책에서 그는 불소화 반대론자들의 불만에 대해 매우 공감하는 태도를 보이는 반면, 불소화론자들의 불만은 대단히 냉소적인 태도로 다루고 있다. 과학적 논쟁에서 과학의 역할을 부인하는 그런 접근 방법이 미친 영향이 얼마나 되는지를 따져 보기는 어렵지만, 만일 마틴의 작업이 미친 영향이 있었다면 그것이 불소화 옹호자들을 깎아내리는 것이었음은 분명하다.

이제 남은 하나의 문제: 마틴은 권력을 향한 거대한 투쟁을 미국치과의사협회와 같은 전문직업 조직 내부에만 위치시키고 있다. 그곳에서 친불소화 세력이 승리를 거두었고, 그 결과 그러한 조직들은 수돗물 불소화 정책을 옹호하게 되었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그러나 불소화의 문제는 종종 주민 투표의 수단을 빌어 수천에 달하는 미국 지역들에서 제기되었던 사안이었다. 전문 학회들 내에서 정치적 자원을 장악하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분파들은 이러한 주민 투표에서 10건 중 6건의 비율로 패배를 맛보았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결국 그들의 권력이 충분히 강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권력의 소재에 관한 마틴의 정의가 지나치게 협소하거나 둘 중의 하나로 보아야 할 것이다.

1989년, 환경보호청(Enviromenetal Protection Agency, EPA) 내에서 발견된 메모에서 불소가 쥐에 골육종을 일으켰다는 실험결과를 토대로 불소의 발암가능성을 제기하자, {사이언스}와 {뉴스위크}는 그 메모에 대해 자세히 보도하는 한편으로, 치약 등에 들어 있는 불소만으로 충분하므로 수돗물 불소화는 불필요하다는 주장에 대해서도 다시 검토했다.32 이에 대응하여 EPA는 국립과학아카데미(National Academy of Sciences) 산하의 국립연구회의(NRC)에 대해 골육종 문제를 포함하여 독성에 관한 모든 의문에 대해 다시 조사하도록 위임했다. NRC는 불소화 문제를 다룰 소위원회를 구성했고 여기서 그들은 불소증, 위장에 대한 영향, 발암가능성, 유전에 대한 독성(genotoxicity), 그 외 다른 문제들을 언급했다.

소위원회 보고서는 쥐에 있어서의 발암가능성에 관한 데이터가 잘해 봐야 모호한 정도이며, 높은 농도를 주입했을 때에도 재연(replication)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썼다. 보고서는 불소증에 대해서도 그것이 극히 높은 농도(8.0ppm)에서 나타날 수 있는 문제이긴 하지만 4.0ppm 이하에서는 불안해 할 이유가 없다고 기술했다. 전체적으로 보면, NRC 보고서는 당시 알려져 있던 지식을 총동원하여 독성에 관한 각각의 주장들에 대해 하나씩 반박하는 내용을 담고 있었다.33

그러나 문화적 쟁점들은 그렇게 쉽게 다룰 수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불소화를 학문적으로 옹호했던 사람들, 특히 모스너 부처, 벤자민 폴, 하비 사폴스키 등은 과학적 쟁점과 문화적 의미를 분리시킴으로써 불소화 반대 세력의 성공을 설명하려 하였다. 불소화가 유익하고 심각한 부작용을 갖지 않는다는 것은 과학이 증명해 준 사실이다, 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은 불소화에 대해 가장 나쁜 경우를 믿고 있는데, 그 이유는 비인간화를 가져오는 관료정치에 대해 그들이 갖고 있는 두려움이 과학적 권위에 대한 그들의 믿음을 압도했기 때문이라고 그들은 주장했다.

이러한 진술들은 미국이 불소화를 경험해 온 과정을 부분적으로나마 설명해 주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기서의 전체적인 분석은 지나치게 분명한 방식으로 과학적 쟁점들과 문화적 쟁점들을 서로 분리시키고 있다. 예를 들어 만약 불소화론자들이 과학적이고 불소화 반대론자들이 감정적이었다면, 일반적으로 과학을 번영과 행복의 원천으로 숭배하는 문화 속에서 어떻게 불소화 반대론자들이 그렇게 자주 주도권을 잡을 수 있었겠는가?

보다 나은 접근은 과학 대 감정이라는 식의 모형을 폐기하고 문화적 의미들이 과학적 쟁점들을 감싸고 있다는 점을 인지하는 것이다. 과학자들의 보증, 전문 학회들의 지지, 역학 연구들,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해석들은 문화적 과정들에 종속되어 있기 때문에 순수과학의 객관적 목소리라는 것은 존재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이제 불소화 논쟁의 문제는 그러한 경험들을 틀지우고 있는 문화적 의미를 이해하는 것임과 동시에 과학을 그러한 힘들에 종속시키는 문화적 과정들을 파악하는 것이 될 터이다.

* Christopher P. Toumey, Conjuring Science: Scientific Symbols and Cultural Meanings in American Life (New Brunswick, NJ: Rutgers University Press, 1996), pp. 63-71.

후주

1. Sapolsky 1968:428.

2. Hastreiter 1983:486; Martin 1991:2-3; Paul 1961:1.

3. Shaw 1954:233.

4. Shaw 1954:235.

5. Martin 1991:4; Paul 1961:2.

6. Shaw 1954:237-238.

7. Sapolsky 1968:428.

8. Frazier 1980; Kirscht 1961:16-26; Mausner and Mausner 1955:38; Paul 1959:19; Plaut 1959:214, 222; Simmel and Ast 1962:1270-1272.

9. Mausner and Mausner 1955.

10. Paul 1959:20; Lear 1963:77.

11. Paul 1961:2.

12. Mausner and Mausner 1955:36.

13. Shaw 1954.

14. Shaw 1954:233.

15. Lear 1963:77.

16. Green 1961:16-17, 24.

17. Mausner and Mausner 1955; Paul 1959, 1961; Plaut 1959, 1960; Gamson 1961; Green 1961; Simmel and Asr 1962. 아울러 이러한 사고방식에 대해 마틴이 가한 비판도 함꼐 보라: Martin 1988: 335-336; 1989.

18. Mausner and Mausner 1955:39.

19. Consumers Union 1978a:394; Margolis and Cohen 1985:115.

20. Margolis and Cohen 1985:115-16.

21. Consumers Union 1978a, 1978b.

22. Hileman 1988:36-37.

23. Smith 1988:454.

24. Smith 1988:455, 456, 457, 459.

25. Martin 1988:356.

26. Martin 1988:347.

27. Martin 1989.

28. Martin 1991:8, 11.

29. Martin 1988:355.

30. Martin 1988:335; 1989:69.

31. Martin 1991:56 ff.

32. Science, January 19, 1990, 247:276-277; Newsweek, February 5, 1990:60-61.

33. National Research Council 199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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