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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생희망본부    서민이 행복한 사회를 위해 민생대안을 제시합니다

  • 주거
  • 2022.01.17
  • 510

대선 후보들이 경쟁적으로 주거대책을 쏟아내고 있다. 하지만 이들의 주거와 부동산 정책은 집을 소유하거나 구입할 여력이 되는 계층에 집중돼 있다. 청년 등 세입자와 취약계층을 위한 주거대책은 도드라지지 않는다. 이들에게 필요한 주거 대책과 이를 해결하기 위한 정책은 무엇인지 ‘주거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의 목소리’를 5회에 걸쳐 싣는다. 집걱정을 끝내고, 주거권을 보장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 80여개 단체로 구성된 ‘집걱정끝장 대선주거권네트워크'가 연쇄 기고에 참여했다. ―편집자

창문으로 보이는 수많은 집들

부동산 사이트에서 집 근처 임대 매물을 구경하다가 버튼을 잘못 눌러 근처 주택들의 매매가가 떴다. 몇십 년을 일해도 턱없이 부족할 만큼 비싼 가격에 한숨이 나왔다. 2년 뒤면 나는 빚을 내서 마련한 또 다른 월세집에서 비슷한 풍경을 보고 있겠지. 창문으로 보이는 저 수많은 집들 중에서 내가 부담 가능한 비용으로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집이 있을까?

 

주거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② 서울에 사는 청년 월세 세입자

 

안녕하세요, 저는 서울에 사는 청년 세입자입니다. 요즘 대통령선거를 앞두고, ‘청년’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러나 그 ‘청년’에 제 주위 동창, 동료, 선후배들은 해당 사항이 없는 것 같습니다. 천정부지로 치솟는 집값은 고스란히 전·월세 세입자들의 보증금이 되고 있습니다. 현재의 전세 보증금이 과거의 매매가격을 웃도는 집을 목격하게 됩니다. 그런데 저는 매매를 위한 대출은커녕, 월세 보증금 마련을 위한 대출을 기웃거리고 있습니다.

 

임대주택조차 청년 세입자에겐 높은 벽입니다

 

심지어 청년 주거정책의 하나로 지어지는 임대주택조차 높은 보증금과 월세를 요구합니다. 최근에 공고가 뜬 행복주택은 계약금만 1500만 원에 달합니다. 보증금은커녕 계약금을 마련하기 위해 어떤 청년은 대출을 받아야 합니다. 실제로 한 청년은 행복주택에 입주하려고 기존에 살던 집의 보증금을 빼서 계약금을 지급하고 한동안 고시원에서 살아야 했습니다.

 

제 소득으로 높은 보증금과 월세를 부담하는 것이 점점 버겁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더 안전하고 쾌적한 집을 찾는 것은 사치처럼 느껴지곤 합니다. 제 친구는 보증금 대출을 줄이고 더 안전한 집에서 살기 위해 다른 도시로 이주하는 것을 고민하고 있습니다. 보증금은 월세가 밀렸을 때의 위험을 담보하기 위한 돈인데, 내가 왜 이렇게 많은 보증금을 마련해야 하나요? 월세가 밀리는 걸 방지하려면 몇 개월 치로 충분하지 않나요? 집다운 집에서 살고 싶은 것이 사치인가요? 우리는 왜 점점 더 많은 빚을 져야 하나요?

 

누구나 대출을 받지 않으면 집을 구하기 힘든 사회에서 당연하다는 듯 대출이 이뤄지고 있지만, 생각해 보면 이상합니다. 왜 빚을 지는 것이 당연한 일이 되어야 합니까? 대출을 무이자로 받는 것도 아닙니다. 원금만이 아니라 이자도 갚아야 합니다. 이자가 월세보다 싸니까 더 이득이라고들 말합니다. 그렇게 빚을 내 들어간 집에서 보증금을 떼였을 때, 혹은 다른 피해를 보았을 때 누가 나의 권리를 지켜주나요? 학자금 대출이라는 말이 어색해지기도 전에 다시 주거비 대출에 익숙해져야 하는 사회라니, 너무나 각박합니다.

 

빚지고 보증금 떼이고 세금까지…전부 제 책임이라고요?

 

빚을 질수록, 보증금에 대한 불안은 더욱 커집니다. 제가 어느 원룸촌에 살 때의 일입니다. 계약만료를 앞둔 제게 갑자기 임대인은 다음 세입자를 구할 때까지 보증금을 돌려줄 수 없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무나 놀라고 당황스러워 제대로 대처하지 못했습니다. 저는 계약만료 시기에 맞춰 다음 세입자를 구하지 못했고, 몇 개월 월세를 떼인 후에야 보증금 일부를 돌려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나마 이마저도 돌려주는 걸 감사해야 했습니다. 자취 경험이 긴 친구들은 이미 이런 경험에 익숙한 듯 보였습니다. 자신도 보증금을 떼인 적이 있다며, 제가 통과의례를 겪은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누구나 겪는 일이라는 친구들의 설명에, 웃지도 울지도 못했습니다. 왜 그게 누구나 겪는 일이 되어야 합니까? 누구나 쉽게 피해를 보는 여건임에도 계속 대출을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을 우리 스스로 감당해야 합니까?

 

최근 뉴스에서 종합부동산세를 강화하면 세입자의 주거비 부담이 늘어난다는 주장을 봤습니다. 집값이 올라서 부동산 세금을 더 많이 내게 된 것에 대한 책임을 세입자에게 넘길 것이 자명하며, 세입자는 더 높은 보증금과 월세를 요구받을 것이라는 이유였습니다. 보증금과 월세 부담을 느끼는 건 세입자인데, 왜 임대인의 부담을 덜어주는 공약만 내세우고 있는 것인지 의문입니다.

 

집값은 끊임없이 오르고, 보증금과 월세도 점점 높아지고, 간혹 임대인의 심기를 거스르면 주거비가 가파르게 치솟는, 이 모든 부담은 왜 오롯이 세입자로 사는 우리의 몫입니까? 집 매매를 위해 대출을 받는 게 아니라 전세, 아니 월세살이를 위해 빚을 짊어져야 하는 것이 왜 우리의 몫이 되어야 합니까?

 

그래도 보증금을 모으기 위해 저축했다

 

청년세대가 겪는 주거문제는 자산불평등에서부터 시작합니다. 원 가족이 과거로부터 보유한 자산 규모에 따라 주거문제의 양상은 달라집니다. 2021년 국무총리실 산하 청년정책조정위원회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자가를 마련한 청년일수록 가족으로부터 지원받은 주거비 비중이 높았고, 월세를 사는 청년일수록 스스로 감당하는 주거비 비중이 높았습니다. 생활비를 아끼려 전전긍긍하는 저는 ‘그냥 부모님께 달라고 해’라는 친구들의 말에 그저 웃을 수밖에 없었던 일이 생각납니다.

 

본가에 사는 동안 저는 독립하고 싶지만, 목돈이 없어 독립할 수 없었습니다. 주택청약저축도 넣었지만 갑작스럽게 임대인이 나가라고 하는 바람에 급히 이사하는 과정에서 본가의 보증금으로 쓰였고, 독립준비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습니다. 제가 다니던 회사는 연봉협상 시기만 되면 여자라서 승진도, 임금 인상도 해줄 수 없다는 말을 반복했습니다. 입사 시기가 1년 정도 차이 나는 남자 대리는 저보다 급여가 100만원 더 많았습니다. 그 뒤에 일했던 곳들도 사정은 비슷했습니다. 다른 여자들도 이만큼 받으니까 저한테 그보다 더 줄 수 없다는 말부터, 비슷한 연차나 같은 직무를 하는 누구는 그래도 남자니까 더 받아야 한다는 말까지 들었습니다. 그래도 저는 최대한 주어진 여건에서 보증금을 모으기 위해 열심히 저축했습니다.

 

하우징 트레드밀을 달리는 사람에게 모래주머니를 던지지 마라

 

월세살이로 고충을 겪는 청년들에게 누군가는 “그러니까 ‘영끌’해서 집을 사야 해.”, “세입자로 사는 게 힘들지? 내 집 마련 주거사다리를 튼튼하게!”라고 말합니다.

 

월세로 사는 사람들의 권리부터 보장받아야 합니다. 빚내지 않아도, 적정한 주거권이 우리 모두에게 보장되어야 합니다. 주거권 보장과 주거 불평등 완화를 위해 주거비는 부담가능한 선에서 형성되어야 하고, 보증금은 임대인조차도 함부로 다룰 수 없어야 합니다. 영혼을 찾아 노력할 일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져야 할 문제입니다.

 

시대는 변했습니다. 압도적으로 자산불평등이 극심해진 사회에서, 이제 막 사회에 진입하고 있는 청년층은 불평등으로 야기된 주거불안을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점차 나이를 먹어갑니다. 누군가는 경력을 쌓아도 임금 정체를 겪고, 누군가는 성별 임금격차로 인해 정당한 소득조차 보장받지 못합니다. 각자의 소득으로 감당해야 하는 주거비 수준은 늘 버겁기만 한데 집값은 계속 오릅니다. 주거 사다리를 오를 체력과 사회적 여건은 진작에 소진됐고, 우리는 매일 러닝머신 위를 달리듯 ‘주거 트레드밀’(housing treadmill) 위에서 지쳐갑니다. 매번 인상되는 보증금을 감당하기 위해 더 많은 대출을 받아야 하는 선택지만 주어지는 것이 벅찹니다. 빚지는 것을 당연하게 여기는 사회가 두렵습니다. 뉴스에는 무질서한 민간 임대차 시장의 빈틈을 노린 보증금 사기 소식이 줄을 잇습니다. 한국의 민간 임대차시장에서 월세살이들이 겪는 주거불안은 온전히 나와 친구들의 몫이기만 한 것 같습니다.

 

저는 월세를 내며 사는 일인 가구, 여성 청년입니다. 이 사회에서 ‘안전한 집’을 ‘부담 가능한 비용’으로 구하고, ‘세입자 권리를 보장’받으며 살고 싶습니다. 이것이 영혼을 끌어들여야 할 일이 아니라, 모두에게 당연한 권리로 보장되는 사회를 원합니다. 한국에서도 집다운 집에서 안전하게 월세살이를 할 수 있도록, 대선 후보들의 진정성 있는 공약을 기다립니다.

 

 

[주거 사각지대에 놓인 사람들] 

2회 서울에 사는 청년 월세 세입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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