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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2019
  • 2019.07.10
  • 679

ILO 기본협약 비준 이슈 살펴보기

 

이조은 참여연대 노동사회위원회 간사

 

1919년, ILO의 탄생

3·1운동과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는 2019년은 한국에 뜻깊은 해이다. 동시에 2019년은 전 세계 노동계에도 중요한 해이다. 제1차 세계 대전이 끝난 뒤 베르사유 평화조약에 따라 1919년 ILO(국제노동기구)가 설립된 지 올해로 한 세기가 지났다. 지난 6월 10일 개최된 ILO 100주년 총회를 전후로 한국에서는 ILO 기본협약 비준 여부가 이슈로 떠오르기도 했다. ILO 기본협약은 무엇이고 기본협약을 비준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는지 깊이 살펴보려면 올해 설립 100주년을 맞이한 ILO의 탄생 배경을 돌아보는 것이 필요하다.

 

ILO은 크게 두 토대 위에서 설립됐다. 첫 번째 토대는 수많은 생명을 앗아간 제1차 세계 대전이다. 세계 대전의 비극을 수습하고 새로운 국제질서를 확립하기 위해 연합국과 독일 제국은 베르사유 궁전에서 평화조약을 맺었다. 15장 440개 조항으로 이루어진 베르사유 평화조약 1장에는 국제연맹(UN의 전신)에 대한 내용이, 13장에는 국제적인 노동동맹과 노동규약이 담겼다. 이에 근거해 ILO는 국제연맹 산하 기구로 1919년 출범했다.

 

ILO의 두 번째 토대는 러시아 사회주의 혁명이다. 지금도 그렇지만 19~20세기 초 노동문제는 세계적으로 심각했다. 산업혁명 이후 시장경제와 자본주의는 급격히 성장했지만, 생계가 어려울 정도의 저임금, 하루 12시간에 달하는 초장시간 노동, 만연한 아동노동 등 노동자는 열악한 노동조건에 처해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17년 10월 러시아 노동자 혁명의 결과로 사회주의 국가 소비에트가 탄생했다. 자본주의 국가들은 러시아 혁명이 확산되는 것을 막고자 노동문제를 시급히 해결해서 노동자들의 불만을 잠재워야 했고, 이러한 국제 정세는 국제노동기준을 다루는 ILO가 탄생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ILO의 역사적인 제1호 협약은 노동시간을 하루 8시간과 주 48시간으로 제한1)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데, 소비에트가 혁명 직후에 세계 최초로 하루 8시간 노동제를 국가 법률로 확립한 것에 영향을 받았다고도 볼 수 있다.

 

ILO 협약과 한국

‘세계의 항구적 평화는 사회정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의 영향을 받아 탄생한 ILO의 헌장 첫 문장이다. ILO는 사회정의 기초로서 국제노동기준을 협약과 권고의 형태로 제정하고 회원국의 국제노동기준 이행을 감독한다. 현재 ILO 회원국은 187개국이고, 국제노동기준이 담긴 189개 협약이 제정됐다. ILO 협약은 크게 세 가지 범주로 분류되어 기본협약(fundamental) 8개, 거버넌스 협약(governance) 4개, 기술협약(technical) 177개로 구성된다. 이 중 한국에서 크게 이슈가 된 ‘기본협약’은 ILO 회원국이라면 기본적으로 비준해야 하는 약속이자 의무사항으로 4개 분야(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금지, 아동노동 금지, 차별 금지)에 총 8개 협약이 있다.

 

<표1-1> ILO 기본협약의 구성

<표1-1> ILO 기본협약의 구성

 

한국은 기본협약 중 아동노동 금지, 차별 금지 분야에 해당하는 4개 협약을 비준했고, 결사의 자유 분야(제87호, 제98호)와 강제노동 금지 분야(제29호, 제105호)에 해당하는 4개 협약을 비준하지 않았다. 반면, ILO 회원국은 대부분 기본협약을 비준했다. 187개 회원국 중에서 기본협약 8개를 모두 비준한 국가는 141개국이다. 결사의 자유와 강제노동 금지에 해당하는 4개 기본협약을 모두 비준하지 않은 국가는 한국을 포함하여 6개국(한국, 중국, 마셜제도, 통가, 팔라우, 투발루)에 불과하다. 마셜제도, 통가, 팔라우, 투발루는 어업이 주요생계수단인 인구 10만 명 미만의 작은 섬나라이므로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한국은 중국과 함께 최소한의 국제노동기준이 담긴 협약에 비준하지 않은 독보적인 국가인 셈이다.

 

<그림1-1>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분야 4개 기본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국가

<그림1-1> 결사의 자유, 강제노동 분야 4개 기본협약을 비준하지 않은 국가

(좌측 위부터 시계순서로 한국, 중국, 팔라우, 투발루, 마셜제도, 통가)

 

아이러니하게도 한국은 ILO에 적극적으로 협력해왔다. 한국은 1991년에 ILO 151번째 회원국으로 가입했다. 1996년부터 지금까지 24년 연속으로 ILO 이사국에 선출됐고, 2003년부터 2004년까지 이사회 의장직까지 수행했다. ILO 예산분담금은 2019년 기준 약 90억 원으로 회원국 중 납부 규모가 13번째로 높다. 하지만, ILO 존재 의의라고도 할 수 있는 협약 비준 수준은 낯부끄러운 수준이다. ILO 전체 협약 189개 중 회원국은 평균 47개, OECD 국가는 평균 61개 협약을 비준했다. 한국이 비준한 협약은 29개뿐이다. ILO는 한국에 4개 기본협약을 마저 비준하라고 수차례 권고해왔지만, 한국은 비준하겠다는 약속만 수차례 반복하고 여전히 비준하지 않고 있다.

 

한국이 비준하지 않은 4개 기본협약

한국이 비준하지 않은 기본협약 4개는 이름 그대로 ‘기본적인’ 국제노동기준이다. 1930~50년대에 채택됐을 정도로 유구하며 상식적인 내용을 담고 있다. 제87호와 제98호 협약은 결사의 자유 분야, 즉 노조 할 권리에 대한 협약이다. ‘결사의 자유 및 단결권 보호에 관한 제87호 협약’은 노동자 단체와 사용자 단체의 결성과 운영에 대한 국가의 개입을 금지한다. 조합의 일은 조합이 알아서 할 테니 국가는 간섭하지 말라는 내용이다. 누구나 노조를 결성하고 가입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여기엔 실업자나 해고자도 포함된다. 해고된 교사에게 조합원 자격을 줬다는 이유로 법외노조 통보를 받은 전교조의 사례나 5급 이상 공무원에게 공무원 노조에 가입 자격을 주지 않는 사례처럼 제87호 협약 위배 사례는 한국에 넘친다. ‘단결권 및 단체교섭권 원칙의 적용에 관한 제98호 협약’은 노동자의 단체교섭권을 보장하기 위한 사용자의 의무로서 반노조 차별행위가 무엇인지에 대한 내용이 담겨 있다. 노동자가 노조 활동에 참여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거나 불리한 처분을 당하는 것을 반노조 차별 행위로 규정하여 금지한다.

 

기본협약 제29호 협약과 제105호 협약은 강제노동을 금지하는 협약이다. ‘강제근로에 관한 제29호 협약’은 모든 형태의 강제노동을 금지한다. 국가에 의한 노예노동을 금지하고, 징병제 국가의 경우 징집된 자가 비군사적인 분야에서 복무하는 것을 강제노동으로 분류하여 금지한다. 한국은 의무경찰, 공익근무요원, 의무소방원 등 보충역 제도가 제29호에 위배된다.2) ‘강제근로의 폐지에 관한 제105호 협약’은 제29호 협약을 보충하기 위해 채택된 협약으로 △정치적 의견 또는 정치·사회·경제제도에 대한 견해와 의견 표명, △경제발전을 위한 동원 노동, △노동규율에 대한 수단, △파업참가에 대한 제재, △인종·사회·민족·종교적 차별대우의 수단으로서 강제노동을 금지한다. 국가보안법 등 정치적 견해를 표명했다는 이유로 수감되어 강제노역을 하거나, 파업참가자가 업무방해죄 등으로 수감되어 강제노역을 해선 안 된다는 것이다.

 

2019.03.28.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ILO 긴급공동행동 발족 기자회견

2019.03.28. 서울 프레스센터 19층 기자회견장, ILO 긴급공동행동 발족 기자회견 <사진 = ILO긴급공동행동>

 

결사의 자유 분야, 강제노동 금지 분야에 해당하는 4개의 기본협약 비준을 촉구하기 위해, 지난 3월 28일 참여연대를 비롯한 50여 개 노동시민사회단체가 ILO긴급공동행동을 발족했다. 긴급공동행동은 ILO 기본협약 이슈를 공론화하고 정부에 비준을 촉구하기 위해 국회토론회, 성명, 기자회견, 카드뉴스, 집회 등 다양한 활동을 해왔고, 기본협약을 비준하지 않을 경우 경제적 제재가 가해질 수 있는 국제정세의 영향 등으로 노력의 결실을 일부 맺게 됐다. 지난 5월 23일, 고용노동부는 브리핑을 통해 미비준한 4개 ILO 기본협약 가운데 3개 협약(△'결사의 자유 분야' 제87호·제98호 △'강제노동 철폐 분야' 제29호) 비준을 추진하고, 협약 비준에 요구되는 법 개정 및 제도개선을 함께 추진하겠다는 입장을 밝힌 것이다. 지난 6월 13일 스위스 제네바에서 열린 ILO 100주년 총회에서도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오는 9월 정기국회에서 ILO 협약 비준동의안과 이를 위해 필요한 법 개정안을 동시에 상정하겠다고 연설했다.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해 남은 과제

하지만, ILO 기본협약이 온전히 비준되기 위해 남은 과제가 여전히 많다. 우선 정부의 안에는 기본협약 제105호 비준이 포함돼 있지 않다. 정부는 강제노동 금지협약 105호의 미비준 사유로 “우리나라 형벌체계, 분단국가 상황 등을 고려할 때 추가적인 검토가 필요하다”고 주장했지만 납득하기 어렵다. 앞서 살펴봤듯이 정치적 견해 표현으로 수감되어 강제노역을 하거나, 파업참가자가 업무방해죄 등의 처벌로 수감되어 강제노역을 하는 사례를 방치하겠다는 말이다. 제105호 협약을 비준한 국가는 ILO 전체 회원국 187개 중 175개국이다. 국제노동기준이자 헌법상 권리를 노동조합 활동을 이유로 제약할 수 없다. 국민 기본권 보장의 관점에서 제105호 협약도 마땅히 비준해야 한다.

 

또한, ILO 기본협약 비준을 위한 법 개정안에 노동개악 내용이 포함되지 않아야 한다. ILO 헌장과 협약은 협약 비준이 현행 법제도를 후퇴시키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되고, 국내법이 협약에 보장된 권리를 침해하는 방식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명시하고 있다. 하지만, 경총 등 경영계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에서 ILO 기본협약 비준의 조건으로 △파업 시 대체근로 허용 △부당노동행위 형사처벌 삭제 △사업장 내 쟁의행위 금지 △단체협약 유효기간 확대 등을 제시하는 등 국제노동기준에 미치지 못하고 노동3권을 부정하는 무리한 요구를 해왔다. 경총은 ILO가 마치 노동자만을 대변하는 기구처럼 호도하며 기본협약 비준을 반대하지만, ILO는 노사정 3자 기구3)로서 ILO가 설정한 국제노동기준에는 이미 사용자들의 이해관계가 반영4)

돼 있다. ILO 기본협약 비준을 빌미로 노동기본권이 후퇴되거나 개악되어서는 안 된다. ILO 협약 비준은 노동기본권과 인권에 관한 사항이라 애당초 흥정의 대상도, 협상으로 풀 문제도 아니다.

 

ILO 기본협약 관련 법 개정을 협약비준에 앞서서 혹은 동시에 진행해야 할 이유는 없다. ILO 기본협약을 비준한다는 것은 국내법제가 협약과 완벽하게 일치하다는 것을 인증 받는 절차가 아니다. 법제도를 국제기준에 들어맞도록 개선하고 ILO의 감시감독 절차를 수락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하고 서약하는 절차이다. 4개 기본협약을 먼저 비준하고, 협약 발효까지의 준비기간인 1년 동안 법제도를 국제기준에 부합하도록 개정하면 된다.

 

문재인 대통령은 대선 공약집에서 “국제노동기구 기본협약 비준으로 국가 위상에 걸맞은 노동기본권 보장을 이루겠다.”고 약속했다. 대통령 당선 이후 국정 5개년 계획에도 같은 내용을 포함시킨 바 있다. 정부는 경영계의 무리한 요구에 휘둘리지 말고, 제105호 협약을 비롯하여 4개 ILO 기본협약은 온전히 비준해야 한다. ILO 회원국으로서 ILO가 설립된 취지를 곱씹어야 한다. ‘세계의 항구적 평화는 사회정의 기초 위에서만 가능하다.’ 한국의 사회정의 기초는 ILO 기본협약 비준에서부터 시작된다.


1) 이후 ILO는 1935년에 제정한 제47호 협약에서 노동시간을 주 40시간으로 제한했다. 참고로 ILO 제1호 협약이 제정된지 100년이 지났지만 한국은 현재 주 52시간 노동제를 단계적으로 시행하고 있으며, 주 64시간 노동을 허용하는 탄력근로제 확대를 논의하고 있는 수준이다.

2) 2019.5.28. 고용노동부는 사회복무요원에 대해서는 제29호 협약에 부합하도록 복무에 선택권을 부여하는 등 제도개선을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3) 회원국은 매년 한 번씩 열리는 ILO 총회에서 4개의 표(정부 2표, 노동자단체 1표, 사용자단체 1표)를 가진다. 한국은 민주노총과 한국노총이 노동자단체 표를 번갈아 행사하고, 사용자 단체 대표는 경총이다. 

4) 국제노동기준의 설정은 한 국가의 노동조건 저하를 통한 덤핑이 다른 국가들의 국제경쟁력에 불이익을 초래한다는 인식아래 국제경쟁력의 공평성을 확보한다는 의미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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