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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 복지동향 200호 발행
  • 연금정책
  • 2022.05.26
  • 387

공적연금강화 국민행동×<한겨레21> 공동기획: 코끼리 옮기기, 연금개혁-첫 회

 

이재훈 사회공공연구원 연구실장

 

연금개혁은 ‘코끼리 옮기기’에 비유된다. 그만큼 크고 인기는 좋은데 움직이기 어렵기 때문이다. 물론 예외도 있다. 칠레 피노체트 군부는 ‘펜 한 번으로’ 공적연금을 민영화했다(1981년). 아르헨티나의 민영연금을 재공영화로 되돌리는 개혁은 정부 발표 뒤 1개월 만에 국회를 통과했다(2008년). 89.5%라는 압도적인 찬성 여론이 한몫했다. 하지만 성숙한 연금제도와 민주주의 체계를 지닌 대다수 선진국에선 국가가 들썩일 만큼 뜨겁고 어려운 과제다. 프랑스, 이탈리아, 독일 등은 연금개혁과 정권을 맞바꿔야 했다.

 

선진국이 크고 작은 홍역을 치르면서 체득한 교훈이 있다면, 바로 사회적 논의와 합의의 중요성이다. 연금개혁은 난도가 높은 만큼, 함께 풀어야 비로소 실마리가 보이는 협동과제임을 깨달은 것이다. 국제노동기구(ILO)가 연금개혁의 출발점으로 사회적 논의를 강조해온 이유기도 하다.

 

정부 주도에서 국회 주도로?

윤석열 정부는 대선 시기부터 연금개혁의 중요성과 시급성을 강조했다. 그러나 묘한 뉘앙스 변화가 감지된다. 대선 공약엔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대통령 직속으로 만들겠다고 했다. 정부가 주도해 끌고 가겠다는 의지가 담겼다. 하지만 당선 이후,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은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어디에 둘지 아직 결정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 110대 국정과제’ 발표에선 “사회적 합의 과정을 통한 상생의 연금개혁”을 추진하고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통해 “사회적 합의 도출을 위한 기반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공약엔 한 줄도 없던 사회적 합의를 점점 부각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후 유출된 ‘국정과제 이행계획서’엔 공적연금개혁위원회를 국회에 설치하겠다는 계획이 담겨 있다. 국회로 공을 넘기려는 의중을 엿볼 수 있다.

 

실제 5월16일 윤석열 대통령이 첫 국회 시정연설에서 연금개혁이 “더 이상 미룰 수 없는 과제”이며 “정부와 국회가 초당적으로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하자, 곧바로 권성동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국회 연금개혁 특위’ 같은 것을 만들어서 집중적으로 논의하자고 화답했다. 정부 주도에서 국회 주도로, 사회적 합의보단 정치적 합의로 무게중심이 이동하는 모양새다.

 

윤석열 정부가 일방주의에서 벗어나 사회적 합의를 강조하는 것은 의미가 크다. 하지만 액면 그대로 받아들이기엔 석연치 않다. 지난 연금개혁사에서 역대 정부가 사회적 합의를 무수히 악용한 경험이 있기 때문이다. 간략히 복기해보자.

 

2003년 첫 국민연금 재정계산(5년마다 한 번씩 재정계산을 하도록 법에 정해져 있음) 이후 노무현 정부는 ‘저출산고령화대책연석회의’를 구성했는데 노사정뿐 아니라 농어민, 여성, 시민사회, 종교계, 학계까지 두루 참여했고 10대 과제 중 하나로 연금 문제가 다뤄졌다. 5개월 논의 끝에 체결된 사회협약엔 공적연금 개혁을 위한 사회적 대화의 장을 마련해 조속히 합의안을 마련하자는 내용이 포함됐다. 사회적 합의를 하자는 사회적 합의인 셈이다. 하지만 대화의 장은 없었다. 2007년 정부는 ‘더 내고 덜 받는’ 독자안을 만들어 국회에 제출했는데, 기초노령연금법 제정과 사립학교법 빅딜로 연금개혁이 이뤄졌다. 노동·시민사회단체들은 ‘정치적 야합’이라고 비판했다.

 

정치적 야합… 국회 월권… 사용자단체 반대…

박근혜 정부는 기초노령연금을 기초연금으로 바꾸고, 모든 노인에게 월 20만원을 주겠다고 약속하며 대통령에 당선됐다. 하지만 인수위 방안은 공약과 달랐다. 공약 파기로 여론의 거센 비판을 받자, 사회적 합의를 추진하겠다면서 ‘국민행복연금위원회’를 만들었다. 노인과 청년 등 세대 대표가 참여했다는 점이 눈에 띄었지만, 대표성과 임의적 위원 선정 등으로 시작부터 삐걱댔다. 넉 달간 7번 회의로 7개 합의문을 발표했지만, 공약 축소를 위해 동원된 위원회라는 비판을 벗어나지 못했다. 양대 노총과 농민단체가 위원회를 탈퇴했고, 민주노총은 합의문 참여를 거부했다.

 

박근혜 정부가 강력하게 추진하던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우여곡절 끝에 국회에 국민대타협기구가 만들어졌다. 공무원연금 개혁과 함께, 국민연금 명목소득대체율을 50%로 다시 올리고, 공무원연금 개혁으로 발생하는 총 재정절감액의 20%를 연금 크레딧과 사회보험료 지원사업 등 사각지대 해소에 활용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당시 청와대와 보건복지부가 “안 하느니만 못한 개혁” “국회의 월권” “재앙에 가까운 미래세대 부담”이라고 강하게 반발하면서 백지화됐다. 후속 조치를 위해 구성하기로 했던 국회의 ‘공적연금 강화와 노후빈곤 해소를 위한 사회적 기구’와 ‘특별위원회’는 석 달 늦장 출범했다가 성과 없이 흐지부지됐다.

 

문재인 정부의 연금개혁은 기존 연금개혁에 대한 자성적 평가에서 출발했다. 정책 방향은 ‘재정 안정 강화’에서 ‘노후소득 보장’으로 선회했고, 거듭 사회적 합의를 강조했다. 하지만 현행 유지를 포함해 4가지 개혁 방안을 제시하면서 논란만 키웠다. 어렵게 경제사회노동위원회 ‘국민연금개혁과 노후소득보장 특별위원회’가 만들어졌지만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사용자단체의 반대로 무산됐다. 권고문이 채택됐지만, 사용자단체가 동의하는 선에서만 가능했고 이조차 정부위원은 서명에 참여하지 않았다. 이런 권고문은 국회 논의 과정에서도 아무런 정치적 의미와 위상을 갖지 못했다.

 

‘보험료 인상안’ 제출했던 2018년에서 실마리

그동안 한국의 연금개혁은 정부나 국회, 전문가 주도로 이뤄졌다. 사회적 합의는 정부안을 관철하는 들러리나 책임 회피를 위한 방패막이, 명분쌓기로 활용했을 뿐이다. 심지어 여야 간 정치적 합의마저 제대로 이행되지 않았다.

 

불신의 연금정치는 고스란히 제도 불신으로 이어진다. ‘1990년생부터 국민연금 한 푼도 못 받는다’거나 다단계 사기인 ‘폰지게임’식 공포를 조장하는 선정적 주장은 바람직한 연금개혁 논의를 가로막는다. 정치인이나 전문가가 주도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노사 대표뿐 아니라 청년·노인·여성 등 다양한 이해당사자가 참여해 민주적으로 논의하는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

연금개혁이 한 번의 승부로 끝나는 것이 아닌 만큼, 충분한 사회적 논의와 합의 과정이 중요하다. 윤석열 정부가 진정 연금개혁을 위한 사회적 합의가 중요하다고 생각한다면, 실마리를 2018년에서 찾아보길 바란다. 한국 연금개혁사에서 어떻게 최초로 가입자단체들이 보험료 인상안을 제출할 수 있었을까. 재정 안정이냐 노후소득 보장이냐 식의 이분법을 넘어, 급여적절성 보장, 보험료 지원과 크레딧 확대 등 사각지대 해소를 통해 국민연금에 대한 사회적 신뢰를 확보하는 것이 전제돼야 한다. 그래야 장기적 재정 지속성까지 담보하는 선순환적 토대를 형성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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