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간복지동향 2003 2003-01-10   744

보다 적극적인 빈곤탈출 정책이 필요하다

1. 빈곤양상의 변화

소위 IMF 경제위기와 함께 우리 사회는 잊었던 가난과 다시 마주하게 되었다. 결식아동이 10만 명을 넘어서고 서울역 앞에 수천 명의 노숙자가 등장함으로써, 잊고 싶었던 절대빈곤 시대를 떠올리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밥을 굶는 빈곤”이 재연되기는 했지만, 그 양상은 과거와 사뭇 다르다.

우선 최근의 빈곤은 가족해체 상황과 동반되어 나타나는 경우가 많다. 결식아동을 예로 들면, 쌀이나 부식이 없어서라기보다 거의 대부분 밥을 챙겨줄 사람이 없어서 결식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결손의 문제가 곧 결식의 문제로 이어진 것이다. 또 과거의 빈곤은 의식주와 같이 “생존에 필요한 수단”의 있고, 없음을 기준으로 했지만, 요즘은 휴대폰이나 컴퓨터와 같은 새로운 생활필수품의 유무가 중요한 기준이 된다. 청소년들의 박탈감이나 체감빈곤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이 같은 소비욕구가 충족되지 못하는 상황을 인식해야 한다.

최근의 빈곤층은 일반인의 시선에서 가려진 쪽방이나 비닐하우스촌, 영구임대주택 등에 밀집·은폐되어 있다. 더구나 가족이 해체된 상태의 단신빈곤층들이 주거, 직장, 사회관계 어느 측면에서도 정착하지 못하고 부유하는 양상도 심화되고 있다. 이에 따라 과거의 산동네를 희망이 있는 빈민지역(slum of hope)이라 한다면, 최근 빈곤층이 밀집한 지역은 희망을 잃은 지역(slum of despair)으로서의 모습을 확대해가고 있다.

최근 그 실체가 분명해지고 있는 이런 빈곤양상은 서구의 경우 이미 30여 년 전부터 드러난 문제이다. 이에 따라 빈곤논의는 그 개념부터 새롭게 정의해야 될 필요성에 직면해 있다. 전통적으로 빈곤이란 ‘생활에 필요한 자원(화폐자원)의 부족상태’로 정의되어 왔다. 곧 생필품을 구할 수 있는 경제적 능력여부가 빈곤여부를 정하는 기준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최근의 빈곤양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물질적 자원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보다도 각종 자원에 접근할 수 있는 “기회”와 “의지”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유럽 각국에서는 이렇게 이해하기 어려운 빈곤현상을 정의하기 위해 사회적 배제(social exclusion)라는 개념을 도입하고 있다.

다음 <표 1>에서 보는 바와 같이 사회적 배제는 ‘경제적인 측면만이 아니라, 문화적, 정치적, 사회적 소외와 배제현상에 초점을 맞추어 주류사회(혹은 기성사회)로부터 단절된 상황’으로 정의된다. 유럽 각국에서는 사회적 배제 개념을 실제 빈곤정책 수립에 적용하여, 프랑스는 1998년 [반소외법]을 제정했으며, 영국은 블레어 집권 이후 총리직속으로 사회통합위원회(Social Exclusion Unit)를 설치하여 홈리스, 10대 임신, 학교중도탈락자, 약물중독자 문제 등에 대해 범정부적인 대응책을 모색하고 있다.

2. 적극적 빈곤탈출 정책의 도입

풍요 속의 빈곤이라는 모순적인 상황에서 빈곤문제에 어떻게 대처할 것인가? 무엇보다 우리 사회에 “희망을 잃은” 빈곤이 만연되고 있음을 인식하는 것이 중요하다. 은폐된 빈곤을 드러내는 데서 시작해야 하는 것이다. 특히 영구임대주택 단지와 같이 빈곤층이 밀집된 지역의 실상을 정확히 이해할 필요가 있다. 단순히 빈곤층이 모여있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사회와 단절되고 격리된 지역으로 고착화되는 문제가 핵심인 것이다.

문제를 인정한다면, 다각적인 해결 노력이 필요하다. 원인이 복합적이었던 만큼 대책도 종합적이어야 한다. 일차적으로는 사회안전망이 강화되어야 하며, 보건·복지·교육·고용 등 다양한 분야에서 빈곤문제 해결에 함께 접근해야 한다. 사각지대와 중복지원 모두를 줄이려는 노력도 필요하다. 전달체계가 강화되고 각각의 네트워크가 제대로 작동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복지는 기본적으로 “기다리는 복지”였다. 이제 빈곤지역 내부를 파고드는 노력이 필요하다. 쪽방이나 비닐하우스촌 주민들은 노숙자들과 마찬가지로 포착하고, 접근하기 힘든 사람들이다. 일종의 아웃리치 개념을 활용해서 사례관리 차원으로 발전시켜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미 사회적 배제 현상이 심화된 지역에 대해서는 보다 적극적인(affirmative) 빈곤탈출 정책이 필요하다. 빈곤상황에 빠져 있다는 것은 첫 출발이 불리하다는 뜻이다. 일반인과의 경쟁에서 살아남지 못한다고 비난(victim blame)하는 방식으로는 더욱 절망감을 안겨줄 뿐이다. 교육은 빈곤에서 벗어날 수 있는 중요한 수단 중의 하나이다. 산동네나 영구임대아파트 단지의 아이들에게 대학입학 전형시 특별전형이나 가산점 부여, 장학금 지급, 학자금 융자 등을 통해 보다 적극적으로 사회이동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해야 한다.

또한 빈곤층 청소년들이 안정적인 직장을 갖도록 지원해야 한다. 진로 및 취업상담, 방문상담, 직업 훈련 및 알선 등이 필요하다. 직업관련 지원 외에도 상담, 약물치료, 일시보호를 겸할 수 있는 청소년자활지원센터를 확대해야 한다. 아르바이트가 필요한 청소년들에게 일자리를 알선하며, 아르바이트 과정에서 발생하는 문제에 대한 상담도 필요하다.

마지막으로 달성목표의 제시가 필요하다. 뭉뚱그려서 예산을 얼마로 늘리겠다는 식보다 ‘거리노숙자를 몇 명으로 줄인다’든지, ‘지하셋방 거주가구를 얼마로 줄이겠다’는 식의 구체화된 목표가 필요하다. 아울러 이들 목표는 정치적으로 검증 받을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면 [빈곤지수]나 [사회통합지수]같은 것을 개발하는 것도 방법이다. 빈곤선 이하 인구, 빈곤층 자녀 진학률·취업률, 거리노숙자 숫자 등을 종합한 지표를 개발하여 매년 평가하는 것이다.

아직 우리 사회는 빈곤현상들을 과거 고도성장기의 틀로 인식하고 싶어한다. 즉, 경제가 회복되거나 일자리가 많아지면 빈곤문제는 개선될 것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부터 직면하게 될 빈곤은 희망과 기회를 상실하는 사회적 배제로 표출될 것이며, 이미 그러한 추세는 나타나고 있다. 통상적인 사회복지 서비스의 합(合)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뿌리깊은 소외와 사회적 배제에 대해 특별한 접근이 필요한 것이다. 그 구체적인 방법을 시급히 모색해야 한다. 우선 몇몇 영구임대주택 단지나 쪽방 지역에서 집중적인 시범사업을 시행할 필요가 있다. 특히 ‘빈부격차 해소와 분배구조 개선’을 국가 10대 과제 중의 하나로 설정했던 노무현 당선자는 한시가 급한 과제이다.

김수현 / 서울시정개발연구원 연구위원, shkim@sdi.r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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