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크쇼리뷰] “영화 <제보자>의 실제 주인공과 친구들”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는 10월 15일(수) 오후 7시, 참여연대 느티나무홀(B1)에서 ‘황우석 박사 줄기세포 논문조작 사건’을 밝힌 제보자와 그를 도운 사람들이 겪었던 일과 애환을 이야기하는 토크쇼 ’영화 <제보자>의 실제 주인공과 친구‘을 진행했습니다. 이번 토크쇼에는 황우석 박사의 논문조작을 공익 제보한 류영준씨와, 당시 류영준씨를 지원했던 이재명 전 참여연대 투명사회국장(현 한겨레 기자), 공익제보지원운동을 하고 있는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이상희 부소장이 참여했습니다. 

 

토크쇼에서는 류영준 교수가 당시 제보를 하게된 계기, 참여연대를 찾은 이유, 그리고 제보 이후의 심경과 공익제보의 어려움 등에 대한 이야기가 오갔습니다. 류 교수는 복제논문 조작이나 연구원 난자체취 사건 등을 통해 황우석 전 교수에 대한 불신이 커져갔다고 말하며, 검증되지 않은 줄기세포가 환자에게 주입되는 걸 막기 위해 제보를 결심했다고 말했습니다. 이재명 기자는 처음엔 류 교수의 제보를 말렸지만 제보내용이 공익에 부합하였기에 해야만 하는 일이었음을 강조했고, 많은 역경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제보자를 지켜냈다는 점에서 참여연대의 작지 않은 기여를 상기했습니다. 또 ‘작지만 이기는 경험’을 한 것이 공익제보 사건으로서 큰 의의라는 점도 덧붙였습니다. 이상희 변호사는 공익제보자 보호에 턱없이 부족한 제도적 사회적 지원체계에 대해서 지적했습니다. 제보 내용에 대한 철저한 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진실이 규명되기도 어렵고, 공익제보자가 해고를 당하는 등 불이익조치로 어려움에 처해도 충분한 지원이 이뤄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날 토크쇼에서 류 교수와 이 기자는 당시 진정으로 힘들었던 것이 ‘황우석을 믿는 대중들의 신뢰와 상식과의 싸움’이라고 고백했습니다. 10년이 지난 지금, 대중들의 상식은 깨졌고, 제보자는 세상 밖으로 나왔습니다. 우리 사회가 공익제보자에게 빚진 것은 무엇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때 입니다.

 

 

[토크쇼] 영화 <제보자>의 실제 주인공과 친구들

 

 일시  2014년 10월 15일 수요일 저녁 7시

 장소  참여연대 느티나무홀

 출연  류영준 (황우석 사건 최초 제보자)

         이재명 (한겨레 기자, 전 참여연대 투명사회국장)

         이상희 (변호사, 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부소장)

 사회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 참여연대 부운영위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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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1] 왼쪽부터, 이상희 변호사(참여연대 공익제보지원센터 부소장), 김정인                            춘천교대 교수(참여연대 부운영위원장), 류영준 강원대 교수(황우석 사건 최초                            제보자), 이재명 한겨레 기자(전 참여연대 투명사회국장)

‘리틀 황’이 황우석을 등진 이유

 

사회자 : 이제 본격적으로 이야기를 하겠는데요. 영화에서는 다루지 못한, 영화에서는 제대로 다루지 않은, 그리고 당시에는 말 할 수 없던 이야기를 이 자리에서 나눠보도록 하겠습니다. 

황우석 사단에서 류영준 씨가 어떤 일을 했기에 그런 중요한 일들을 알게 되고 제보까지 하게 됐는지 굉장히 궁금해 하실 텐데요. 황우석 사단에 들어간 지 3개월 만에 팀장을 맡을 정도로 사실 황우석 박사의 굉장한 인정을 받으셨어요. 어떻게 제보를 결심하게 된 건지 동기를 다시 한 번 묻고 싶습니다.

 

류영준 : 저는 황우석 전 교수와 1999년에 처음 인연을 맺었습니다. 당시 98년 의과대학을 졸업하고 보건소에서 의사로 근무를 하고 있는 상태였고, 임상 의사를 할 것인지 기초의학자를 할 것인지 갈림길에 서 있었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줄기세포란 걸 처음 알게 됐는데, 그것과 97년 복제양 돌리를 만든 기술을 합치면 환자들한테 치료제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죠. 당시 우리나라에는 (그런 연구를) 하시는 분이 없어서, 해외 연구소까지 찾아서 한 3군데에 메일을 보냈습니다. 2군데서 답장이 왔는데, 동경대학에서 하나, 황우석 교수에게서 하나가 왔습니다. 

 

고민을 하다가, 일본말도 서툰데 낯선 곳에서 고생하는 것보다는 한국에서 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을 했습니다. 부모님한테 말씀드리니 다들 반대를 하셨죠. 근데 제가 뜻을 꺾지 않으니까 병원 인턴은 하고 가라해서, 서울아산병원(당시 서울중앙병원)에서 1년간 인턴을 했습니다. 그리고 (99년에) 바로 서울대 석사로 들어갔고, 황우석 박사와 만나게 됐죠. 

 

사회자 : 근데 거기서 인정을 받아서, 말하자면 고속승진이죠, 바로 팀장도 맡고 하면서 황우석 박사의 사랑을 받았어요. 그럼에도 제보를 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류영준 : 저는 매일 아침 6시20분에 학교에 출근을 했습니다. 황우석 교수는 6시35분 되면 옵니다. 새벽에 그렇게 일찍 오는 사람이 저밖에 없었고 제가 늘 연구실 문을 열고 들어갔죠. 황우석 교수랑 팀원들 다 퇴근하면 보통 밤 11시 12시 되거든요. 아침에 6시20분에 나와서 밤 12시에 가니까 그런 사람이 없지 않습니까. 그러다보니 황우석 교수가 예뻐라 했죠. 그래서 옆에 사람들이 ‘리틀 황’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총애를 받으니까. 

 

제보라는 게 어떤 하나의 특정한 계기가 생겨서 제보를 하게 되는 건 아닙니다. 연구소를 들어가면 바닥청소부터 해서 실험실 생활 적응을 한 후에, 책상에 앉아도 되는 짬밥이 몇 개월 정도 지나야 논문을 볼 수 있게 되는데요, 근데 논문을 찾으니 논문이 없는 겁니다. 그래서 제가 실력이 안돼서 못 찾는 건가 해서 같은 방의 선배에게 물었습니다. [영롱이 말하는거죠?] 그렇습니다. 그 당시 복제논문이란 뭐냐면, 개체를 입증할 수 있는 논문이 있어야 합니다. 소를 복제했으면 그 복제한 소의 사진이 나와야 하는 거죠. 근데 그게 어디에도 없는 겁니다. 그래서 팀장에게 물으니 자꾸 주저주저 하더라고요. 제가 계속 물었는데도 며칠간 말을 빙빙 돌리더니, 나중에는 하는 말이 “그런 거 없다” 그러더라고요.

(논문이 없어서) 충격을 받았지만 나갈 수는 없잖아요. 그 정도 가지고. 뭐 사정이 있었겠지 그렇게 생각하고. 그리고 저건 우리팀 일이 아니니까 내가 맡은 일만 잘해야겠다 이러고 모른 척 넘어갔죠. 그러다가 제가 있는 줄기세포팀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고 동물실험도 시작했는데, 사람이라는 게 같이 있다 보면 드러나잖아요. 근데 (황우석 전 교수가) 좋은  사람이 아닌거에요. 그 정도도 괜찮다 생각했어요. 제가 문제라고 생각한건, 저와 황 교수가 같이 하는 프로젝트에서 논문을 쓰기도 전에 KBS 기자들이 취재를 와서, 척추 손상된 개에게 줄기세포를 넣었는데 이 개가 다리를 질질 끌지언정 걷는단 말이죠. 근데 이게 줄기세포 때문인지 자연스럽게 병이 나은 건지 실험상의 검증을 하기도전에 (황 교수가) 걷는다고 결론을 내려버린 거죠. 그때 저와 심각하게 틀어졌어요.

 

사회자 : 그러면 줄기세포 관련해서는 프로젝트를 하는 중에 황 교수와 이미 틀어지신거네요?

 

류영준 : 그리고 그 과정에서 연구원의 난자(체취) 사건이 터지면서 이건 정말 돌이킬 수 없는 강을 건넜다고 생각을 했죠. 그래도 책임감은 느껴서 제가 맡은 일은 하고 나가겠다고 얘기를 했고.  

 

사회자 : 연구원이 난자제공 했던 그 일을 말씀하신 것 같네요. 그러고 나서 동물실험을 하다가 인체실험을 할지도 모른다는 얘기를 들으시고 굉장히 갈등을 하셨다고 하시던데.

 

류영준 : 제가 실험실 떠난 건 2003년도거든요. 떠나고 나서도 실험실 소식은 듣고 있었죠. 대학원 박사과정 계속 하고 있었으니까. 어떤 분들은 저보고 내부제보자가 아니라고 말씀을 하시는데, 제가 그곳 대학원생인데 어떻게 모를 수 있겠어요. 저뿐만 아니라 동기들도 실험실 내부 상황에 대해서는 실험실을 떠난 후에도 계속 들었어요. 그리고 제가 특허권을 처음부터 끝까지 썼기 때문에… 저와 제 석사동기인 변리사 한 명하고 황우석 전 교수의 특허권을 다 했거든요. 

근데 그 변리사가 2005년 4월 어느날 밤에 저희 집에 찾아왔어요. 와서는 “영준아 큰 거 하나 됐나보다.” “그래? 그러면 (줄기세포) 하나 만들었나보네.” “하나가 아닌가보던데?” “그럼 몇 개라던데? 2~3개 만들었나?” “11개 만들었단다.” 11개 만들었다는 소리를 듣는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지는거죠. 11개를 만든다는 게 있을 수 없는 일인데. 그리고 한 마디 덧붙이는게 ‘5월 달에 임상실험이 계획되어 있다’고 하더라고요. 파킨슨병 환자와 척추손상 환자 두 명한테. 그걸 듣고는 이건 아니다 싶었어요. 

여러분은 11개 만들었다고 하니 별거 아니라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저희한테는 어떻게 들리냐면, 군대 갓 들어온 이등병이 이라크 전쟁 나가서 장군이 할 수 있는 일을 해낸 것과 같은 거에요. 우리 입장에서는 정말 가능하지 않은 일인거죠. 당시에 11개 만들었다는 소리에 충격은 받았지만 제보할 마음은 없었어요. 근데 임상실험 한다는 아이가 제가 아는 아이였어요. 

 

 

류 교수 찾아간 참여연대 “제보 하지마라, 다친다” 

 

사회자 : 참여연대를 찾아오시게 된 이유는 뭔가요? 공익제보 관련 일을 한다는 얘기를 듣고 오신건가요, 계기가 있을텐데?

 

류영준 : 계기라면, 난자 문제 때문에 처음 (참여연대를) 찾았는데요. 연구원 난자를 사용한 자체가 문제가 있는데다, 그 나머지는 매매를 해서 조달이 되었기 때문에… 그래서 이건 그냥 넘길 수가 없어서 찾다보니까 그중에 참여연대하고 생명윤리학회 이런 데가 있었습니다. 그쪽 사람들과 면담하면서 관계를 맺게 된거죠.

 

사회자 : 사실 이런 센터에서 제보를 받을 때 고민이 되는게, 제보자의 말만 믿을 수 없잖아요. 증거가 있어야 하는데. 영화에도 그런 장면이 나오거든요. 피디가 증거가 있냐고 추궁하니 선생님이 ‘증거가 없다’고 말씀을 하셨어요. 그러면 증거가 없는 상태에서 제보를 하신 셈이잖아요.

 

류영준 : 여기서 하나 짚어야 되는게. 영화는 영화입니다. 영화와 현실을 매치시키려다 보면 헷갈려요. 당시 아이의 머리카락과 비교세포만 없었을 뿐 증거는 충분했어요. 난자 (매매)장부가 있었고, 박을순 연구원의 편지, 그리고 미즈메디 병원의 줄기세포 라인에 관한 것들 다 있었습니다. 아이 머리카락(DNA)과 NT2(줄기세포) 세포라인만 없었지, 충분한 증거가 있었어요. 영화에서는 피디를 돋보이게 하다 보니까 모든 게 없어야 하는 상황이 된거죠.

 

사회자 : 그러네요, 제목은 제보자인데 피디가 주로 나오더라구요.

 

류영준 : 제목을 잘못 지은겁니다. ‘언론인’이라고 해야…(웃음) 

 

사회자 : 그럼 이재명 기자에게 여쭤볼게요. 당시 참여연대 투명사회국장이었는데, 류영준 씨가 처음 참여연대 찾아왔을 때 기억하세요?

 

이재명 : 류영준 씨가 참여연대를 찾아온 게 아니고, 우리가 류영준 씨를 찾아갔죠. 처음에 당시 난자 문제로… 그 당시 생명윤리 연구 이쪽으로 유일하게 관심을 갖고 있던 곳이 참여연대 시민과학센터였구요. 그래서 아마 찾아갔던 것 같은데. 가서 바로 얘길 하지 않고 뜸을 들였죠. 사실 이 자리에 와야 하는 게 김병수 전 간사인데, 저야 큰 흐름만 기억하고 있는거고. 당시 김병수 간사가 오더니 심각하게 ‘형, 누굴 만나러 가야겠다’ 그러는 거에요. ‘무슨 일이냐’ 그랬더니 ‘누군가 황우석과 관련한 제보를 한다’ 그러더라구요. 그래서 (류영준 씨가 근무하고 있었던) 원자력병원 근처로 김병수 간사랑 찾아가서 만났는데, 그게 아마 2004년 10월 쯤 됐을 겁니다. 굉장히 스산한 날이었는데… 가서 얘길 듣는데 무슨 줄기세포, NT2 이러길래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냥 그렇게 듣고서 왔는데, 머리가 아팠죠. 사실 믿기지 않을 정도였고. 그래도 제보를 받았으니 처리를 해야 될거 아닙니까? 공부도 해야 되고. 그래서 계속 만났죠. 그렇게 만나게 된 겁니다.

 

류영준 : 저한테 제보하지 마라 그랬어요. 다친다고. 자기가 너무 많이 봐가지고… 인생 망가지고 싶냐고.

 

사회자 : 기억나요?

 

이재명 : 기억나죠. 저희가 공익제보 처리할 때 첫 번째가, 제보자가 찾아오면 일단 가족과 상의하라고 합니다. 가능한 제보하지 마라 그러고. 아무리 좋은 의도를 가지고 제보한다 그래도 제보자는 다칠 수밖에 없으니까. 그 피해를 감내할 자신이 있으면 다시 오고, 아니면 그냥 가라고 하죠. 지금도 그러는진 모르겠지만 당시엔 그랬습니다. 그래서 (류영준 씨에게) 숙고를 하라고 그랬고, 가족과 충분히 상의를 하라고 했더니, 상의를 했다고 해서 저희가 다시 병원으로 가서 얘기를 했죠. 당시 원자력병원에서 레지던트로 일하고 있어서, 제가 당시 밤에 찾아갔던 기억이 납니다. 

 

사회자 : 근데 참여연대는 사실 황우석 사건 때 거의 드러나지 않았는데, 지금까지 안 드러난, 뭔가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은 없었나요?

 

이재명 : 그런 일은 없습니다. 근데 최근 들어 더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하나의 큰 사건을 해결하는 과정에서는 필연이라는 게 있고 수많은 우연의 요소들이 공존해가면서 해결하게 됩니다. 사실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한 사람은 류영준 씨죠. 그리고 한학수 피디가 열심히 뛰었고. 그런 과정에서 수많은 난관이 있었어요. 순탄하게 가지 않았죠. 반격도 심했고. 당시 황우석이라고 하는 사람의 존재가 엄청났었죠. 

 

이건 잠시 다른 얘깁니다만, 그 사건에서 가장 어려웠던 건, 제 기억으로는, 권력과의 싸움이나 황우석과의 싸움이 아니라, 황우석을 믿는 대중들의 신뢰와 상식과의 싸움이 제일 어려웠어요. 그걸 무너뜨려야지 해결이 되는건데 황우석에 대한 신뢰가 워낙 견고하고 강했기 때문에… 그건 일반 대중들 뿐 아니라 권력자들도 그랬고 정치인들도 그랬고 심지어 언론인들도 그랬죠. 그걸 깨는게 가장 힘들었던 거죠. 그걸 깨는 과정에서 왜 역경이 없었겠습니까. 저쪽에서 반격도 많았고. <PD수첩>팀이 중간에 자책골을 넣은 것도 있고. 

 

굳이 드라마틱한 것을 얘기하라면, 저희가 별도로 당시에 국정원하고 청와대하고 접촉을 했었죠. 류 선생은 몰랐을 겁니다. 지금 국회의원인 김기식 의원이 당시 사무처장이었는데, 노무현 정부에서 시민사회수석을 하셨던 황인성 씨를 따로 만났습니다. 그래서 사건의 전모를 말씀드렸고. 이 문제를 정부 차원에서 검증할 수 있으면 검증해서, 언론에서는 따로 하겠지만, 당신들은 언제든지 줄기세포를 가져다가 비교를 하려면 할 수 있는것 아니냐. 그렇게라도 자체검증을 해서 사실이 아니라면 빨리 손을 털거나 거리를 두라고 얘기를 했는데 그 이후로 어떤 피드백도 받지를 못했습니다.    

 

사회자 : 그러셨구나. 씁쓸했겠네요. 근데 류영준 씨가 참여연대를 처음 찾아왔을 때, 왜 류영준 씨를 지원해야겠다고 마음을 먹게 된거죠?

 

이재명 : 이유가 있나요 하는 일이 그건데요. 원래 제보 앞에 공익이란 말이 당연한 수식어처럼 따라다닙니다만, 사실 제보에 있어서 저희가 판단할 때 중요했던 건 그런 겁니다. 그 사람의 의도, 제보의 순수성, 그런 건 절대 보지 않습니다. 제보의 내용이 공익과 부합하느냐 마느냐만 판단하는거죠. 제보하는 사람이 사적인 이해관계를 갖고 있건 없건 그런 건 따지지 않아요. 사실 이전에도 이해관계가 얽힌 제보가 많았습니다. 이회창 씨 아들의 병역비리를 제보했던 김대업 씨도 있었고… 그 분도 공익제보자인거죠.  

 

사회자 : 그렇군요. 그러면 제보 이후에 참여연대에서 가장 신경 쓴 부분은 뭐였나요? 

 

이재명 : 당연히 제보자 보호죠. 이 분이 밖으로 신분이 드러나는 순간 수많은 불이익이 뒤따르기 때문에, 최대한 드러나지 않게 하려 했던 거고. 그런 역할이 자연스럽게 나뉜 게, <PD수첩>이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주력했다면 참여연대는 류영준 씨를 보호하면서 어떻게 이 사건을 풀어나갈 건가를 고심했던 거죠. 그 당시 취재경쟁이 치열해지니까 (류영준 씨가) 집에도 못가고 그랬거든요. 류영준 씨를 보호하려고 김병수 간사 집에도 머물게 했는데 거기도 오래 머물지 못하니까 오피스텔을 얻어서 이동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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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2] 질문에 대답하는 황우석 사건 제보자 류영준 씨

 

과학 사기사건이 과학으로 풀리다

 

사회자 : 다시 류영준 선생님께 말씀을 드리면, 참여연대에서 제보자 보호에 대해서 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본인이 감당해야 하는 건 엄청난 거잖아요. 근데 공익제보를 결심했을 때 옆에서 조언을 해주거나 힘이 돼주거나 그런 분들은 없었나요? 부인이 상당히 큰 힘이 된 걸로 알고 있는데, 당시 실험실 안에서는 같이 논의했던 분은 없었어요?

 

류영준 : 와이프는 20살 때 만나서 상당히 신뢰감이 두터운 상태였고. 그렇다 하더라도 제가 이혼을 안 당하고 이렇게 잘 지내왔던거는 참 감사하게 생각합니다(웃음).

 

사회자 : 혹시 동료 중에는 같이 얘기를 하신 분이 없으셨어요?

 

류영준 : 일단 제가 실험실을 나온 상태였고. 당시 저와 석사 동기였던 김○○ 변리사가 저하고 많이 친했어요. 그 분이 저하고도 친하고 황우석 쪽하고도 관계가 있었으니까 굉장히 갈등이 많았겠죠. 저는 그 사람을 통해서 줄기세포가 11개 있다는 것도 확실히 알았고. 임상실험 이야기를 들은 후에는 다른 복수의 내부 사람들한테 확인하는 과정이 시작이 됐는데, 그 때도 그 분의 도움을 많이 받았죠.

 

사회자 : 사실 <PD수첩>이 취재를 시작하고 난 다음에 논문검증을 하려고 할 때, 마지막 단계에서 어떤 기관이나 학자도 안 나서줘서 굉장히 힘들었다고 하던데, 사실 예상은 하신거죠 그런 부분들은? 어떠셨나요?

 

류영준 : 근데 그 부분은 제가 확신이 있었던 게, 제보할 때부터 동업자끼리는 나서지 않을거라는 걸 알았어요. 그리고 사람들은 ‘언론이 어떻게 과학자를 검증하느냐’ 하는데, 그건 말이 안 되는게, 언론 뒤에 제가 있잖아요. 아무도 검증을 도와주지 않더라도 저는 머리카락과 NT2만 있으면 됐어요.

 

사회자 : 오늘 딱 기억하세요. 머리카락과 NT2. (웃음) 저는 인상 깊었던게, 생물학연구정보센터죠, 브릭(BRIC)에서 줄기세포 논문에 실린 사진을 검증한다던지 하면서 도움을 줬는데, 그래서 감정이 남다른지 얼마 전에 그 게시판에 신분을 밝히면서 글을 되게 발랄하게 쓰셨더라구요. 브릭에 대한 선생님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류영준 : 브릭은 학자인 저로서는 친정집 같은 곳입니다. 머리카락과 NT2가 결정적인 단서긴 했지만, 그걸로 판이 엎어진 게 아니고 2005년 12월 4일 새벽에 어나니머스(닉네임)가 그림을 올리고 아릉이(닉네임)가 DNA 핑커프린팅 조작된 걸 올렸기 때문에 판이 뒤집어 졌거든요. 우리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도움을 얻은 거죠. 과학 사기사건이 과학으로 문제가 풀린거고.

 

사회자 : 저는 황우석 사건에서 제보자에 대한 인식보다는 브릭이 했던 일 때문에 전세가 뒤집혔던 거는 기억을 하고 있어요. ‘젊은 과학자들이 이런 분들이 계시구나’ 했죠. 그런 분들이 계시다보니 친정 같다고 말씀을 하신 것 같네요. 

 

 

제보 이후 극심한 고통과 불안, 공익제보자 보호 제도는 여전히 미흡 

 

사회자 : 이제 이상희 부소장님께 여쭤보고 싶은데요. 이 자리는 참여연대가 공익제보 지원 사업을 하고 있는 만큼, 공익제보 사례를 통해, 우리사회의 어두운 면을 돌아보고, 공익제보의 소중함을 생각해보자는 취지인데 이부소장님, 류영준 선생님 이야기를 들으면서 생각나는 공익제보 사례가 없나요?

 

이상희 : 여기에도 오셨는데 정진극씨라고. 이 사건은 포스코가 중소기업과 동반성장한다고 공정거래위원회에 신고하고, 많은 지원을 받았는데 그 과정에서 서류를 조작한 것입니다. 이를 포스코 직원으로써 공정거래위원회에 제보했고, 이 때문에 징계를 당해서 3년 동안 싸우고 있는 사건입니다. 이미 언론을 통해 많이 알려진 권은희 과장은 작년에 가장 대표적인 공익제보 사례로 뽑히기도 합니다. 최근에는 사립학교 교사들이 제보 한 뒤, 재단으로부터 해임당하는 일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사회자 : 사실 우리가 걱정하는 것이 이런 분들이 겪을 어려움인데요. 이재명씨도 생활에서 겪게 될 어려움 때문에 일단 제보하지 말고 가족과 상의하라고 하신다 했는데 사회적으로 칭송은 받지만 개인적으론 굉장히 어려운 경우가 많은데 혹시 기억나는 사례가 있으세요?

 

이상희 : 아직까지도 저희에게 제보가 오면 다시 한 번 생각해보라고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왜냐면 제보자가 겪어야 하는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에요. 결국 그분들이 감당해야 하거든요. 그리고 사회적으로 칭송을 한다고 하지만 아직까지는 공익제보자에 대한 지원이 부족한 상황입니다. 그래서 저희 센터가 하는 일은 제보자를 지원하고, 사회적으론 제보자를 지지하고 응원하는 분위기를 만다는데 역점을 두고 있는데.. 정진극씨도 마찬가지지만 많은 분들이 제보 이후 파견, 해임, 형사고소를 당해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계십니다.

 

제가 영화(제보자) 보다가 궁금한 게 있었는데 질문하나 드려도 될까요? 

저희가 제보를 받을 때마다 항상 고민이 증거부분이거든요. 제보가 중요한 내용인 경우가 많은데 이것을 어떻게 입증할 것이냐의 문제가 있어요. 결국 내부에 계신 분들은 내부 자료를 가져올 수밖에 없어서 절도라든가 이런 일이 있는데, 영화를 보면서 눈에 띄었던 것이 주인공의 부인이 연구소에 들어가서 줄기세포 하나를 빼오는 부분이 있어요. 보면서 “저게 정말일까? 그럼 절도로 고소당할 수 있는데.” (웃음)

 

사회자 : 역시 변호사에요. 절도, 고소… 저는 책에서 봐서 진실을 알고 있지만 류영준 선생님 말씀해주세요. 

 

류영준 : 영화는 영화입니다. 그것과 유사한 상황은 있었습니다. (영화처럼) 탱크를 열어서 빼오면 절도죄가 성립하지요. 근데 그 당시에 하늘이 도와서, NT2가 황우석 전 교수의 실험실 밖으로 나옵니다. 당시 서울대 치과 대학에서 와이프가 일을 하고 있었는데, 이쪽도 넓게 보면 황우석 전 교수팀이라서 (와이프가) NT2가 실험실 밖으로 나왔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NT2가) 몇 개가 안 되니까 그걸 빼오면 금방 들통이 나잖아요. 

그런데 법의학적으로 DNA는 피 한 방울이 땅에 떨어질 때 생기는 흔적 정도만 있으면 찾을 수 있습니다. 세포가 조금만 남아 있으면 핑거프린팅이 되거든요. 그래서 우리가 착안한 게 다 쓰고 버린 디시(실험용접시)가 쓰레기장으로 나오면, 쓰레기차가 가지고 가지전에 가져오자. 그렇게 확보했습니다. 그래서 검찰 수사에서도 절도죄가 성립이 안됐습니다. 

그다음에 제가 난자 장부를 가지고 나온 것을, 환자 정보보호측면에서 의사로서 그럴 수 있느냐 비판하는데 그것은 제가 작성한 실험 노트입니다. 나올 때 100%로 복사해서 황우석 전 교수팀에 전달했고 내 노트 내가 가지고 나오는 것이기 때문에 그것도 절도죄 성립이 안됐습니다.

 

사회자 : 아 그랬군요. 또 한 가지 궁금한 게 제보자로 알려진 것은 선생님이 커밍아웃하고 최근이잖아요. 선생님이 제보할 당시 원자력병원에 근무하고 계셨는데, 소위 그 업계에 선생님이 제보자라는 것이 어느 정도까지 알려져 있었나요? 

 

류영준 : 2005년 6월 1일 제보 이후, 한 PD 쪽에 내용을 인수인계하고, 과학적 사실을 어떻게 입증할지 작전 짜고 한 것이 2~3개월 걸렸습니다. 11월 22일 <PD수첩>을 통해 수면으로 드러났을 뿐이지 그 전에 물밑에서 황우석 전 교수하고 계속 공방이 있었던 것입니다. 공방이 있으니까 제보자를 색출하려 했지만 10월경 까지도 황우석 전 교수는 누군지 몰랐다가 김선종 연구원 인터뷰 따고 나서 저라고 짐작했을 거에요. 그런데 11월 22일 첫 방송이 나갔을 때 첫 화면에 노란색 서울대학교 제 공책이 나가는 순간 황우석 전 교수가 저라는 것을 확실히 알고 그때부터 확 치고 들어왔죠. YTN사태(<PD수첩>팀의 취재윤리위반 문제제기 사건)가 일어나기 전에는 국정원하고 과기부에서 (원자력병원) 원장한테 압력을 넣었는데 YTN 사태로 게임이 끝났다고 원장이 판단하고, 그 후에 저보고 사직서를 내라고 했죠.

 

사회자 : 비교적 늦게 알았네요. 제보를 한 뒤에 굉장히 심리적으로 불안하고, 힘들었을 거 같은데 어떠셨나요? 

 

류영준 : 선생님들이 보시기에 괜찮아보여도 한 2년 정도 실직상태에 있었고 아르바이트를 하려 해도 안됐습니다. 제보할 당시 아이가 6개월 이였는데 계산상으로는 위험한 상황을 만들면 안 되죠. 그런데 제보라는 게 죽는 것 보다 낫다 싶을 때 하게 됩니다. 근데 당시 빚이 있었으면 못했을 거 같아요. 신혼생활도 봉천 11동 단칸방에서 시작했고 그때 평생에 돈 아껴 쓰는 법을 배웠습니다.

 

사회자 : 심리적인 것 때문에 힘들지는 않았나요?

 

류영준 : 사람으로써는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고비가 옵니다. 악플, 기자들의 괴롭힘, 그리고 황우석 지지자들이 하는 것을 보면 도저히 참을 수 없는 경계가 오거든요. 그때 잘 넘겨야 합니다.

 

사회자 : 많이 힘드셨을 거 같아요. 이상희 변호사님, 공익제보자에게 오는 불이익에 대해 이야기 많이 들으셨을 텐데 이를 보호할 수 있는 제도가 있는 건가요? 

 

이상희 : 일단 법은 두 가지가 있습니다. 공공기관에서 발생할 일로 공익신고를 한 경우에는 부패방지법이 있고, 민간 기업에서 발생한 공익신고에 대해서는 공익신고자보호법이 있습니다. 지난 10년 사이 법은 많이 정비되었지만 여전히 구멍이 많아서 사립학교 교사의 경우에는 아무 곳에서도 보호받을 수 없는 상황이에요. 

그런데 두 가지가 중요한 거 같아요. 이 사건의 경우는 정말 다행히 황우석 사태의 전모가 드러나서 진실이 규명되었지만, 실제 제보 중 진실이 규명되고 제보자가 원하는데 까지 가는 경우가 많지는 않아서 이 부분을 어떻게 정비할 것인가 하는 문제가 있습니다.

두 번째는 가장 큰 불이익이 징계, 해고인데, 나중에 국민권익위원회가 보상이나 포상을 준 다해도 그 금액이 미비할 뿐만 아니라 그것이 결정되기까지 이분들이 혼자 감당해야 하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있습니다.

 

 

작지만 승리하는 경험들이 중요하다

 

사회자 : 두 분께(류영준,이재명) 여쭙고 싶은데요. “영화는 영화다”라는 말도 있지만 영화평에서 가정 많이 나온 것이 “진실이냐 국익이냐”하는 논쟁인데, 영화에서는 “진실이고, 진실을 밝히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하지만 이 사건에서, 즉 류영준씨가 제보를 함으로써 우리사회가 한발 더 나간 것은 무엇인지 짚어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두 분께서 각각 말씀해주세요

 

이재명 : 저는 작지만 계속 승리하는 경험들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 사건은 워낙 컸기 때문에 그것을 넘어서는 것이긴 하지만요. 진실과 국익논쟁이라는 것은 그 때 그때 다를 수 있는 것이지만 (이 사건의 가장 큰 의미는) 정말 넘기 힘들었던, 넘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던 상식의 벽을 깼다는 것입니다.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제일 힘들었던 것이 “설마 황우석이 사기를 쳐서 여기까지 왔겠어? 뭔가 하나는 있겠지” 이런 대중의 신뢰였는데, 그런데 사실 하나도 없었던 거잖아요. 굳건한 사람들의 인식을 깨는 것이 가장 힘들었고 그걸 한번이라도 깨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사람들이 100%로 신뢰하는 것은 없어졌고, 의심하는 경험들을 하게 된 것이고… 이런 것이 가장 중요한 교훈이었던 거 같아요.

개인적으로는 많은 역경에도 끝까지 제보자를 지켜냈다는 것이에요. 중간에 제보자를 공개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있었지만요. 그리고 류영준 씨는 굉장히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진실이 규명되었고 학계로 돌아갔고 연구자가 되었고, 그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의 도움을 받았어요. 그래서 공익제보자의 롤 모델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예외적인 케이스이기 때문에요. 

 

사회자 : 류영준 씨도 한마디 해주세요.

 

류영준 : 제보를 하고 나서 사회가 어떻게 바뀔지, 어떻게 됐으면 좋겠다 그런 것은 없었습니다. 제가 예상할 수 도 없고, 제가 제보한 이유도 아니었기 때문에요. 지금도 저는 사회가 어떻게 바뀌는지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런데 누가 물어봐서 생각을 좀 해봤는데 바뀐 게 없는 거 같아요.

 

사회자 : 국가의 잘못된 연구자금 투입, 생명윤리문제 등 여러 가지 부분에서 이 사건이 주는 교훈은 있긴 한데 그렇다고 과연 이 사회가 변했냐고 하면… 저는 도리어 후퇴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래도 이재명 씨가 말한 것처럼 가장 큰 의의가 있다면 절대 깨질 거 같지 않은 상식, 그것이 진실에 기반을 두지 않았으니까 가능했던 것인데, 그것을 무너뜨려 보는 경험을 했다는 것이네요. 

마지막으로 이재명 기자에게 질문을 하겠습니다. 본인도 10년 동안 이 사건을 공개하지 않고 있었는데 공익제보자를 도와주면서 느꼈던 감정은 무엇인가요?

 

이재명 : 당시에는 정말 초조하고 긴박했죠. 지금은 10년이 지났으니 여유도 생기고, 돌아보게 되는데. 당시에는 이 사건을 알고 있는 사람이 참여연대 내에서도 의사결정라인인 김기식(당시 사무처장), 김병수(전 시민과학센터 간사), 저 세 사람만 알고 있었으니까요.

제가 참여연대에서 한겨레로 이직한 것이 2006년 인데 그 당시 류영준씨 가 황우석 사건의 제보자라는 것을 평생 밝히지 않기를 바랐어요. 진실이 규명되었으니까 굳이 밝혀야 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러나 세월이 흘러 본인을 드러내고 싶다면 그때는 내가 당신의 기사를 쓰겠다고 했어요. 그 이유는 딱 한 가지였어요. 그것은 류영준을 영웅으로 그리기 싫어서. ‘당신은 영웅이 아니다’ 류영준도 인간이고 뭔가 약점을 가지고 있고 그걸 그대로 써주고 싶었던 욕심 때문입니다. 작년 겨울 송년회 때 자신을 공개하겠다고 했고, 그 이유가 뭐냐고 물었더니 이 사건이 10년이 지났고 이제는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좋겠다고 해서 결국 제가 인터뷰를 11시간 넘게 했습니다. 인터뷰를 하면서 저도 ‘내가 그 사건을 같이 했었구나’하고 기억했어요. 그전에는 쭉 잊고 살았어요.

 

사회자 : 이상희 부소장님께 여쭙고 싶은데요. 저희가 매년 겨울마다 하는 행사가 있죠? 공익제보자들에게 ‘의인상’을 주고 있는데요. 이것은 양심의 목소리를 듣고 호루라기를 부는 사람들에게 감사하다는 뜻을 전달하는 것인데 올해도 공익제보자의 밤, 의인상 시상식을 하죠? 어떤 분들이 후보군 인가요? 

 

이상희 : 이렇게 압력을 넣으시다니… 후보군은 잘 모르겠고, 일단 엄격한 심사로 진행됩니다. <인사이더>라는 영화가 있는데 담배회사의 내부 정보를 외부로 알리면서 어려움을 겪는 것인데 그것이 공익제보자들이 겪는 고통을 생생하게 그린 영화에요. 개인적으로는 ‘이런 영화가 한국에도 있었으면 좋겠다’ 생각했어요. 근데 이번에 그런 영화도 나왔으니, 류영준 씨가 유력하지 않을까 하는데… 저도 일개 심사위원이기 때문에 모르겠습니다.

마지막으로 드리고 싶은 이야기는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어요. ‘공익제보가 이렇게 성공할 수 도 있다’는 성공사례를 보여줘서 지금 공익제보를 고민하시는 분들에게 힘이 될 거 같고, 또 우리사회가 공익제보자를 지원하고 응원하는 분위기를 만드는데 (류영준 씨가) 큰 일조를 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참석자 질문> 

 

<질문1> 당시 청와대에서 압력과 협박이 있었습니까?

류영준 : 당시에 노무현 대통령이 있기 때문에 그나마 저희가 안 끌려가고 살아있다고 생각합니다. 국정원이 저희를 따라다니기는 했지만… 사실 저희를 잡아갈 수 도 있었지만 안한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청와대에서 직접적인 압력은 없었습니다.

 

<질문2> “영화는 영화다”라는 말에 동의합니다. 하나의 영화에 사실과 흥행 모두를 담아 낼 수는 없지만 실제 제보자로서 영화 제보자에 평점을 주신다면 100점 중 몇 점을 주시겠겠습니까?

류영준 : 저는 과학 하는 사람이라 싱크로율 60, 70% 같다고 60점, 70점 줄 수는 없어요. 많이 짭니다. 점수를 공개하면 상처 받은 사람이 생길까봐 공개는 못하겠어요.

 

<질문3> 황우석 씨가 왜 동물복제조작을 했습니까? 집단의 기득권 유지와 재정확보를 위한 것이 아니었나요? 정말 황우석 전 교수는 논문을 조작했나요? 노벨상 때문인가요? 

류영준 : 처음에는 노벨상을 꿈꾸지는 않았습니다. 그전에도 거짓말이 약간 있긴 했지만 영롱이 건이 거짓말로 성공하면서 간이 커졌어요. 제가 듣기로, 노무현 대통령 당시에 두 가지 프로젝트가 있었는데 하나는 UN사무총장을 내는 것이고, 하나는 황우석 전 교수 노벨상을 타게 하는 것이었습니다. 실제로 스웨덴의 카로린스카 노벨 위원회에서 있던 한국인 관계자가 “(황우석 전 교수가) 계속 갔으면 노벨상 받았을 것”이라고 말했어요. 처음부터 노벨상 받으려고 한 것은 아니지만 일이 진행되면서 노벨상이 아른거린 거죠.

 

<질문4> 제보를 안했을 경우, 황우석 사기극 결말은 어떻게 났을까요?

류영준 : 재밌는 상상을 많이 해봤어요. 황우석 전 교수가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다고 이야기하는 분들도 계시더라고요. 아마 중간에 아이(척추손상 환자)한테 세포가 들어갔겠죠. 들어가서 사고가 났다하더라도 다른 이유는 얼마든지 들 수 있었을 겁니다. 덩치가 커지고 노벨상을 받은 사람이 그 건이 들통 났다고 까딱이나 하겠습니까. 계속 갔겠죠.

 

<질문5> 프레시안의 강양구 기자도 영화개봉에 맞춰 칼럼을 연재했는데 당시 제보자를 매도하고 황우석 전 교수를 비호했던 기자 중 기자 상을 받은 사람도 있다고 하던데요. 류영준 선생님은 진실이 밝혀진 뒤 사과라는 것을 받아본 적이 있으신가요? 그 이후 황우석 박사팀에 있던 사람들의 태도는 어땠는지? 

류영준 : 저를 제일 괴롭힌 것은 조선일보입니다. ‘제보자는 누구다’ 하면서 다 공개하고.  황우석 전 교수가 그 기자한테 흘린 거죠. 이후에 그 기자한테는 사과를 받았습니다.

 

<질문6> 줄기세포는 없는 것으로 안타깝게 진실이 밝혀졌지만 줄기세포 연구는 중요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줄기세포 연구가 해외나 국내에서 어느 정도 진척되었는지 알고 싶습니다.

류영준 : 난치병, 희귀병을 앓고 계신 분들에게 참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의사입장에서는 ‘안 되는 것은 안 된다. 되는 것은 된다’고 말씀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지만 황우석 전 교수 같은 사람이 나오는 것을 막는 것도 저희들의 몫이라고 생각합니다. 예전에 KBS 열린 음악회에 나온 강원래 씨한테 황우석 전 교수가 ‘내가 저 강원래군을 벌떡 일으키겠다’는 말을 했는데, 사실 그때부터는 이게 종교문제가 되는 것입니다. 줄기세포 연구는 꼭 우리나라가 아니어도 됩니다. 누구든 과학자들이 열심히 연구해서 개발하면 됩니다. 우리나라는 전반적인 과학수준이 일본에 비해 많이 떨어지고 있습니다. 미국과 비교했을 때는 따라는 가는데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도록 지원을 하지 않고 자꾸 로비를 해야 지원금을 주니까… 이런 분위기로는 노벨상 타기는 힘들 거 같습니다.

 

사회자 : 환경자체는 줄기세포 연구를 진전시키기에는 좋지 않다는 것이네요 마지막으로 황우석 사건과 관련해 참여연대에 느끼는 점과 바라는 점이 있으면 말씀해주시겠어요? 그리고 오늘 소감도 말씀해주시고요.

 

류영준 : 제가 밖에 나가는 것을 싫어합니다. 그런데 참여연대에서 한다고 하면 거의 다 옵니다. 고마워서요. 잘 모르는 분들이 국회의원실이나 기관에 제보하러 갔다가 신원이 밝혀져 어려움을 겪는 일이 있는데 만약에 진짜 제보를 결심하신다면 제보자 보호 전문가에게 일단 오시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근데 참여연대 밖에 없습니다. 일단 신변이 보호되어야 하니까 경험이 많은 사람과 상의를 하고 제보를 하는 게 좋다고 생각합니다.

 

사회자 :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할 거 같습니다. 우리사회는 류영준 씨를 비롯해 많은 공익제보자들에게 빚을 지고 있는 거 같습니다. 저희 참여연대는 매년 작은 책을 내서 이런 분들을 소개하는 작업을 하고 있습니다. 저희는 여전히 공익제보를 받고 있고, 또 공익제보자를 보호하기 위해서 앞으로도 열심히 노력할 것입니다.

류영준 씨 같은 많은 제보자들이 우리와 함께 토크쇼를 하면서 더 많은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그런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습니다. 류영준 씨를 비롯해 고생하시는 많은 공익제보자를 위해서 박수 한 번 쳐드리면서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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