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배경과 문제의식
“그 땅이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 소유로 알고 있는데, 이번에 3기 신도시로 지정됐다는 발표가 나왔다. 이거 큰 문제 아니냐” 제보를 받은 서성민 변호사는 ‘설마’했다. 속는 셈 치고 그 동네 등기부를 다 뗐다. 그리고 LH 홈페이지에서 직원검색을 통해 등기부에 나오는 이름들을 검색해봤다. ‘설마’했던 마음은 ‘어라?’로 바뀌었다. 동명이인이라기엔 특이한 이름들이 몇몇 등장했다. 심지어 같은 지역본부에 있는 직원들의 이름이 한 등기부에 여럿 등장하기도 했다. 단순한 우연이라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한 서성민 변호사는 참여연대와 민변에 이 내용을 공유했다.
공급보다는 수요관리에 정책의 초점을 뒀던 문재인 정부가 수도권을 중심으로 한 집값 폭등에 사실상 정책방향을 180도 선회하며 발표한 3기 신도시 대책이었기에 적지 않은 파장이 예상됐다. 소수의 전문가 실행위원과 활동가들이 붙어 해당 지역의 등기부와 임직원 이름, 토지대장, 3기 신도시 사업 대상 지역 지도를 뒤졌다. 다른 용도로 활용하기 어려운 농지를 100억 원대를 들여 쪼개기 매입한 점, 농지매입이 3기 신도시 발표 1-2년 전부터 집중적으로 이뤄진 점, 매입자금의 대부분을 월 수백만 원의 이자가 발생하는 대출로 조달한 점 등 사전정보 없이는 이렇게 과감하게 투기를 할 수 있었을까 싶은 정황들이 점차 드러났다. ‘LH 임직원의 3기 신도시 사전투기 사건’이 세상에 드러나기 불과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당시 문재인 정부는 벼랑 끝에 몰려있었다. 박근혜 대통령 탄핵과 촛불혁명을 통해 집권한만큼 그 어느 때보다 ‘적폐청산’과 ‘촛불개혁’에 대한 열망이 높았다. 그러나 개혁은 지지부진했고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해 가계경제마저 크게 위축되었다. 특히 코로나19로 인한 저금리와 유동성 확대로 전 세계적으로 집값 상승 현상이 나타나고 있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부터 이어진 부동산 경기 부양 정책과 문재인 정부에서 추진한 등록임대사업자 확대, 이들에 대한 파격적인 감세혜택이 겹치면서 다주택자가 크게 늘고 집값도 따라 올랐다. 호가를 중심으로 한 한국부동산원의 주간 아파트값 발표가 투기수요를 자극한 것도 문제였지만, 실거래가 통계를 봐도 문재인 정부의 주택가격 상승률은 역대급이었다. 특히 서울과 수도권은 문재인 정부 시기인 2017년부터 2022년까지 각각 52.8%와 34.9%의 변화율을 보이며 전국 주택가격 매매가 변화율(18.5%)의 2배를 뛰어넘었다.
국민들의 분노를 자극한 것은 ‘무능’보다 ‘위선’이었다. 대통령부터 여러 차례 집값을 잡겠다고 공언했지만, 청와대와 정부 고위 관료들은 정권 초기부터 연달아 투기 의혹과 다주택자·‘똘똘한 한채’ 논란을 일으켰다. 투기로 인한 집값, 전세값 상승으로 세입자들의 고통은 커졌고, 집값을 잡겠다던 정부 정책을 믿고 주택 구입에 나서지 않았던 국민들은 상대적 박탈감에 휩싸였다. 수도권과 수도권 외 지역의 부동산 가격 격차가 커지면서 수도권 집중화가 더욱 심해졌다. 말 그대로 ‘빚을 내서라도 집 안사면 바보’인 시절이었다.
결국 문재인 정부는 2018년 9월 언급했던 3기 신도시 계획을 구체화하기 시작했다. 2018년 12월엔 하남 교산, 남양주 왕숙, 인천 계양을, 2019년 5월엔 고양 창릉과 부천 대장을, 2021년 2월엔 광명·시흥을 3기 신도시 대상지역으로 발표하며 20만 호 이상의 주택을 공급하겠다고 밝혔다. 그리고 광명 시흥 3기 신도시 발표 일주일 후인 3월 2일, ‘LH 임직원의 3기 신도시 사전투기 사건’이 세상에 드러났다.
주요 활동 경과
2021년 3월 2일, 참여연대와 민변 민생경제위원회는 기자회견을 열어 2018년부터 2020년까지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과 그 가족으로 추정되는 인물 10여 명이 58억 원의 대출을 받아 광명⋅시흥 신도시 지구 내에 100억 원 어치, 약 7천 평 규모의 토지를 사전에 매입한 의혹을 발표하고, 이들에게 공직자윤리법상 이해충돌 방지의무 위반 및 부패방지법상 업무상 비밀이용 금지 위반 혐의가 없는지 감사원에 공익감사를 청구했다. 추가 보상을 위해 해당 지역에 묘목을 빼곡히 심는 이른바 ‘알박기 수법’ 등 LH 직원들과 투기꾼들의 투기 수법에 대한 추가 보도도 잇따랐다. 공공택지를 비롯한 각종 개발 계획을 수립하고 추진하는 LH 직원들이 업무 중에 얻은 미공개 정보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의혹이 제기되자 모두가 충격에 휩싸였다.
기자회견 바로 다음 날인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 광명⋅시흥은 물론 3기 신도시 전체를 대상으로 국토교통부, LH, 관계 공공기관의 업무 관련자와 가족들에 대한 전수조사를 실시하라고 지시했다. 이와중에도 변창흠 국토부장관은 본인이 LH 사장 재임 당시 벌어진 일임에도 ‘LH 직원들이 사전정보를 바탕으로 토지를 매입한 것은 아닌 것 같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가 성난 여론에 기름을 부었다. 4일엔 정부합동조사단이 출범했고, 7일엔 관계부처 장관회의를 통해 재발방지대책 등을 발표했다. 수사기관의 국토부 및 LH, 투기 대출 의혹을 받는 북시흥농협 등에 대한 압수수색도 이어졌다. 12일엔 변창흠 장관이 사의를 표명했고 16일엔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국무회의 모두 발언을 통해 대국민 사과 메시지를 내놨다. 공직자들의 업무상 정보를 이용한 투기행위에 대한 의혹은 정부를 넘어 국회와 전국 지방자치단체에까지 번졌다.
참여연대는 LH 임직원들의 투기의혹 폭로에 그치지 않았다. 8일엔 광명⋅시흥을 포함해 다른 3기 신도시나 공공개발지역에서도 공직자들의 사전투기 의혹이 있다는 시민들의 추가제보를 받아 합동조사단에 전달하는 한편, 공직자가 업무과정에서 얻는 정보를 사적 이익을 위해 이용하는 것을 원천 차단하고 위법행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기 위한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을 정의당 심상정 의원을 통해 입법청원하기도 하였다.
참여연대는 이번 LH 사태가 단순히 공직자들의 미공개정보를 이용한 투기행위를 방지하는 데 그치기를 원치 않았다. 공공택지 개발과정에서 토지 투기를 통해 막대한 이익이 발생하는 한 투기세력의 불법행위는 계속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국민의 안정적인 주거생활을 위해 ‘강제 토지수용권’이라는 무소불위의 권한이 주어지는 공공택지 개발, 특히 농지를 대상으로 한 투기행위를 방치하는 한 우리 사회의 미래는 없었다.
이에 3월 17일, 참여연대는 2018년부터 2021년까지 광명⋅시흥 신도시 대상 지역의 농지 소유현황을 분석하여, 확인된 다수의 농지법 위반 사례를 국가수사본부에 수사의뢰했다. 농지를 취득한 소유주가 사실상 왕래하며 농사를 짓기 어려운 먼 지역에 거주하거나 해외에 거주하는 사례, 농업을 통해서는 이자도 갚기 어려운 수준의 많은 대출을 받아 농지를 매입한 사례, 현장조사 결과 고물상이나 가건물 등 명백히 농업과는 다른 용도로 농지를 이용하는 사례 등 다수의 농지법 위반 사례들이 적발되었다. 불은 농지를 활용한 투기행위에 대한 사회적 논란으로 번져갔다. 정부와 지자체들은 저마다 농지법 위반 실태에 대한 현장점검에 나섰고, 각 정당들은 국민권익위원회에 의뢰하여 소속 의원들의 부동산 및 농지 보유현황을 전수조사 했다. 농사를 짓지 않으면서도 농지를 보유한 의원들의 명단이 공개되었고 적절한 해명을 하지 못한 의원들은 스스로 탈당하거나 출당조치되기에 이르렀다. 4월 21일에는 LH를 포함해 SH공사, 지자체 공무원, 지방의회 의원 등 공직자들의 투기행위 의혹 관련 제보 100여 건 중에 추가조사나 수사가 필요하다고 판단한 제보 30여 건을 국가수사본부에 추가로 수사의뢰하기도 했다.
참여연대는 공직자들의 이해충돌행위 방지와 투기행위 근절을 위한 입법과 근본적인 제도개선도 게을리하지 않았다. 3월 23일, 공직자의 이해충돌과 투기방지를 위해 이해충돌방지법, 국회법, 공공주택특별법, 공직자윤리법, (가칭)투기이익환수법 등 5대 입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시민 2천여 명이 서명한 입법촉구서를 국회의장에게 전달했다. 바로 다음날 5대 입법과제 중에 2개 법안이 국회 문턱을 넘었다. LH 투기 의혹을 제기한지 22일, 법안을 입법청원한지 불과 16일 만에 LH 임직원들과 공직자들이 업무 중 알게 된 정보를 이용하여 실행한 투기행위를 처벌하고 투기이익을 몰수⋅추징하기 위한 「공공주택 특별법 개정안」이 통과되었고, 부동산 관련 업무나 정보를 취급하는 공직자에게 재산등록의무를 부과하고 신규 부동산 취득을 제한할 수 있는 「공직자윤리법 개정안」도 통과했다. 이후에도 참여연대가 2002년에 처음으로 제안한 「이해충돌방지법」의 처리를 위해 법제정 촉구 서명, 릴레이 1인 시위 등 시민 캠페인을 진행하였으며, 한 달 후인 4월 29일 마침내 20년의 기다림을 끝낼 수 있었다.
LH 사태 이후에도 참여연대는 투기를 통한 불로소득을 차단하기 위해 제도개선 활동을 이어나갔다. 2021년 3월엔 광명⋅시흥 신도시 지역에서 대규모 투기행위가 가능하게 한 가장 큰 원인 중 하나였던 무분별한 대출문제를 분석해 지적하고, 토지나 주택 가격이 아닌 소득에 기반한 대출이 이뤄지도록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 규제의 전면적인 시행을 요구했다. 3월 31일엔 광명⋅시흥과 같은 3기 신도시 대상 지역인 고양 창릉, 하남 교산 신도시의 분양실태를 분석하여, 정부가 강제수용을 통해 조성한 공공택지의 상당부분을 민간건설사에 헐값 매각함으로써 민간건설사가 3조 5천억 원, 개인 수분양자가 7조 원의 ‘로또 분양’을 통해 개발이익을 사유화한다는 문제를 밝혀냈다. 참여연대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2021년 7월엔 인천 계양 신도시, 11월엔 광명⋅시흥 신도시, 12월엔 용산정비창 부지의 개발이익을 분석하여 공공택지 개발 과정에서 민간 건설사와 수분양자들이 가져가는 개발이익을 지적하고 공공주택 공급을 확대할 것을 요구하는 활동을 이어갔다.
성과와 의미
LH 사전 투기 의혹 폭로와 투기방지를 위한 제도화 운동은 한국사회에서 ‘부동산 투기’에 대한 문제의식을 한층 높이는 계기를 만들었다. 특히 공직자들이 부동산 투기와 농지를 부의 증식 수단으로 악용하는 문제에 대한 시민들의 문제의식을 다시금 일깨웠다. LH 투기행위를 폭로한지 불과 두 달만에 참여연대가 2002년부터 요구해왔던 이해충돌방지법이 국회를 통과했고, LH 임직원을 포함한 공직자들이 사전에 개발정보를 이용해 투기행위를 할 경우 형사처벌을 강화하는 것은 물론 범죄수익을 모두 환수하도록 하는 공공주택특별법과 부동산 관련 업무를 취급하는 공직자에게 재산등록의무를 부과하는 공직자윤리법 또한 입법되었다. 3기 신도시와 용산 정비창 부지와 같이 공공개발사업에서 발생하는 이익의 사유화 문제를 공론화하고 무분별한 대출문제를 드러낸 것도 성과였다.
그러나 공직자를 넘어 일반 시민들 사이에서도 만연한 부동산 투기 문제를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LH 사태를 동력삼아 토지초과이득세를 포함해 재건축·재개발 사업의 공공성을 높이고 민간 부동산 개발과정에서 발생하는 초과이익을 공공이 환수하도록 하는 활동까지 이어나가려 했지만 우리 사회에 뿌리깊게 자리 잡은 ‘부동산 불패 신화’를 완전히 극복하기에는 한계가 컸다. 그렇지만 참여연대는 포기하지 않고 누구나 기본적인 삶을 누릴 수 있는 주거, 부담가능한 주거비를 위해 지속적인 활동을 이어나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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