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평] 여전히 근본적 재벌개혁 의지 찾아보기 어려운 공정위

여전히 근본적 재벌개혁 의지 찾아보기 어려운 공정위

김상조 위원장, 재벌그룹과의 간담회에서 또다시 자율적 개선 주문
편법적 지배력 강화, 사익편취 등에 대한 해결의지 찾아보기 어려워
공정거래법 시행령 제38조 개정 등 공정위의 적극적 행정 시급해

 

오늘(5/10)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하 “김상조 위원장”)은 10대 그룹 경영진과의 정책간담회에서 “공정경제 구축을 위해 공정위는 재벌개혁과 대-중소기업 간 불공정거래 혁신에 매진하고 있다”며, 「독점규제 및 공정거래에 관한 법률(이하 “공정거래법”)」 전면개정에 대한 협조 및 일감몰아주기 등에 대한 기업의 ‘선제적 개선’을 당부했다. 결국 김상조 위원장은 취임 후 1년 동안 재벌그룹과 3번을 만나면서도 또다시 기업의 ‘자발적 노력’을 요구한 것이다. 

 

언제까지 자발적 노력만을 요구할 것인가? 이는 재벌개혁을 핵심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정부의 기조와 맞지 않는다. 김상조 위원장은 스스로 밝힌 ‘일관된 재벌개혁’이 자칫 공허한 외침에 그칠지도 모른다는 우려를 자초하고 있다. 우리 역사상 재벌의 ‘자발적 노력’으로 개혁이 이루어진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심화되고 있는 경제력 집중 문제 및 재벌의 우월적 지위 남용과 각종 불공정행위가 만연한 상황에서 기업의 자발적 노력만으로 재벌개혁과 경제민주화는 불가능하다.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 강력한 의지와 발 빠른 조치가 요구되는 이유이다. 민변 민생경제위원회와 참여연대 경제금융센터는 ‘공정한 경제질서 구현’이라는 본연의 책무 완수에 대한 어떠한 의지도, 책임감도 찾아볼 수 없는 공정위의 태도에 강한 유감을 표한다. 공정위는 향후 재벌의 경제력 집중과 사익편취 문제 해결 등 근본적 재벌개혁을 위해 담당 행정기관으로서 최선의 노력을 다해야 할 것이다. 

 

오늘 간담회에서 김상조 위원장은 “그간 재계는 지배구조와 거래 관행 개선 사례를 발표하고 또 추진해왔다”며 “이러한 노력은 정부정책에도 부합하지만 무엇보다 시장과 사회의 기대에 부응하는 방향이라는 점에서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자평했다. 물론, 김상조 위원장의 공정위는 2017.12. 합병 관련 순환출자 가이드라인을 개정하고 2018.4. 공정거래법 제23조의2를 위반한 효성 총수일가를 최초 고발하는 등 이전 공정위와는 다른 행보를 보여 왔다. 하도급·가맹·유통·대리점 등 4개 분야 불공정거래 관계 개선에도 일정한 성과를 보였다. 하지만 공정위는 ‘시장과 사회의 기대’가 무엇인지부터 다시 살펴야 한다. 

 

‘우리사회가 기대하는 재벌개혁’은 더 이상 총수일가가 재벌그룹을 좌우하지 않는 지배구조 개선이다. 삼성그룹 이재용 부회장이 정권에 뇌물을 바친 이유는 자신의 그룹 지배력을 확보하기 위함이었다. 한진그룹 조양호 회장 일가가 거리낌 없이 불법과 전횡을 일삼을 수 있었던 이유, 한화그룹 김승연 회장이 주먹을 휘두를 수 있었던 이유는 소수 지분으로 그룹을 지배하는 왜곡된 지배구조에 있다. 공정위는 최근 출자구조 재편 방안을 발표한 현대차그룹을 자발적 지배구조 개선의 긍정적 사례로 평가했지만, 그 면면을 뜯어보면 현대모비스를 사실상의 지배회사로 하여 계열사를 지배하면서, 지주회사 관련 제재는 받지 않으려는 ‘꼼수’임을 확인할 수 있다. 법의 허점을 악용한 기업의 ‘자발적 개선’만으로는 재벌개혁이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이다.

 

‘시장이 기대하는 재벌개혁’은 더 이상 소수 재벌그룹으로 경제력이 집중되지 않는 것이다. 다단계 하도급 구조의 정점에 서있는 재벌그룹은 경영 리스크를 너무나 손쉽게 하위 하청업체들에게 전가한다. 현대차그룹의 하청업체들은 또다시 그 하위의 영세하청업체를 착취하고 있고, 현대중공업그룹은 하도급대금을 제대로 지급하지 않고 있다. 갑질의 연쇄구조에서 중소기업은 살아남기 어렵고, 노동자의 임금과 일자리의 질은 더욱 열악해졌다. 반면 총수일가가 지배하는 자회사로 일감을 몰아주면서 재벌의 지배력은 더욱 강해졌다.

 

2018.4.4. 참여연대·민변 민생경제위원회·금속노조는 공정위에 총수일가 사익편취 규제범위 관련 공정거래법 시행령 제38조 개정 촉구 의견서를 제출하여, 일감몰아주기 규제 대상 지분율을 상장·비상장사 공통 20%로 강화하기를 촉구한 바 있다. 이에 대해 2018.5.8. 공정위는 ‘사익편취 규제를 개선할 필요성에 대해 공감’하나, ‘공정거래법 전면 개편을 위한 특별 위원회 등 외부전문가의 의견수렴도 거쳐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할 예정’이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공정거래법 시행령은 공정위의 의지만으로 개정할 수 있으며, 총수일가 지분이 높은 대기업의 사익편취 행태를 규율할 수 있는 가장 효과적 수단이다. 올해 말에야 그 윤곽이 드러날 예정이며 실제 법통과 및 시행까지 요원한 공정거래법 개편으로 일감몰아주기를 규율하겠다는 것은 공정위의 추진의지 부족을 보여주는 것이며, 재벌대기업들에게 사익편취를 할 시간을 벌어 주겠다는 것에 다름 아니다.

 

 

‘박근혜-최순실 게이트’와 MB와 관련된 각종 뇌물혐의에서도 드러났듯이, 재벌총수일가는 자신들의 이익을 위하여 국가권력과 결탁했고, 각종 불법으로 국정을 농단했다. 이에 국민들은 민주주의를 외치며 정권교체의 촛불을 들었다. 그러므로 재벌개혁이야말로 또 다른 국정농단을 예방하기 위해 문재인 정부가 반드시 이뤄야 할 과업이고, 이를 수행해야 할 핵심 기관이 바로 공정위다. 공정위는 “재벌 개혁의 속도와 강도를 맞추고 3~5년의 시간적 계획 하에 일관되게 개혁을 추진하겠다”는 속편한 소리를 할 때가 아니다. 공정위는 ‘기계적 중립자’가 아니라 ‘재벌개혁의 추진 기관’이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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